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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05화 (205/250)

[205화] 11장-재능

"잘 듣거라. 이제부터 네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해온 건지 알려줄 테니."

"힝."

나는 스승님에게 꿀밤 맞은 부분을 문질거리며 얌전히 자리에 앉아 스승님의 말을 경청했다.

위험한 짓 했다고 한대 맞았다.

"우선 천기가 대충 뭔지는 너도 배워서 알고 있을 테니 넘어가고. 간단하게 생각해보자꾸나. 만일 사람이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천기를 통해 미래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음.."

천기란 쉽게 설명하자면 흔히 생각하는 아카식 레코드와 비슷하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기록이 담겨져 있다는 허공록과 성질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허공록이 이미 모든 기록이 담겨져 있는 도서관이라면 천기는 실시간으로 쓰여져 가는 기록이라는 것.

즉. 흔히 미래를 읽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지금 속한 천기 안에서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과거라면 모를까 미래의 기록은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으니까.

그래도 특별한 개입이 없다면 천기에 기록된 미래의 예측은 거의 절대적인 확률로 들어맞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천기를 읽는 것은 그다지 추천되는 일이 아니다.

사실 원래 사람은 자기 미래를 모르고 사는 게 일반적이고 괜히 미래를 신경 쓰게 되면 그 때문에 현재를 망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그런데 그런 천기를 아무나 읽을 수 있게 되면..

"수많은 천기누설이 발생해 기록이 엉키게 되고 미래의 기록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겠죠. 어차피 그걸 읽은 사람들에 의해 뒤틀리게 될 테니까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그러면 그게 계속 이어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미래의 기록에 대한 예측도가 점점 떨어지는데 미래는 곧 현재가 되고 그 뒤엔 과거가 될 테니 곧 천기의 기록 자체에 불안정성이 상승하다가 결국 붕괴.."

"좀 많이 간 것 같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구나. 네 말대로 천기 자체에 큰 혼란이 오게 되겠지."

아. 이건 좀 너무 갔나.

간만에 아는 내용이 나와서 조금 흥분했다.

"아무튼 그래서 천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관리하는 관리자가 존재하는데.."

"천지신명이요?"

"그래. 그런 이름으로도 불리지. 사실상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최상급 신이니까."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어요."

성녀님에게 납치당하던(?) 나를 또 이쪽으로 납치한 어떻게 보면 모든 일의 시작점인 사람.

아마 이 세계에서 나랑 제일 많이 티격태격한 사람을 뽑으라면 무조건 그녀일 것이다.

...애초에 사람이 아니라 신이지만.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거라. 네가 천기를 관리하는 입장이라면 천기를 읽기 어렵게 해두겠느냐 아니면 쉽게 해두겠느냐."

"...어렵게 해두겠죠?"

"너는 네가 천기를 읽는 재주를 얻을 때까지 꽤 고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말도 안되게 빠른 편이었다. 네가 얼마나 걸렸었는지 기억하느냐?"

"..처음 입문하는데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네가 한 달 걸렸다는 그 경지가 다른 사람들은 최소 산속에서 10년은 수행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네?"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그동안 특별히 말할 필요를 못 느껴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네 속도는 비정상적으로 빨랐단 말이다."

"...그러면 제가 천재인건가요?"

"재능의 영역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긴 하지만 천재(天才)라는 뜻 자체를 보자면 맞는 말이긴 하지.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주이니."

"..."

이건 조금 놀랐다.

스승님이 맨날 나를 구박을 했으면 했지 딱히 내가 재능 있다는 식으로 말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스승님 말고는 따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굳이 있다면 여소천 정도가 있긴 했지만 그녀가 천지신명의 성녀인걸 생각하면 비교하기에 좋은 대상도 아니었다.

"천기의 관리자는 천기를 읽을 권한을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방금 말했던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했던 것도 '그 정도 정성이면 보여줘도 되겠다' 정도에 가까운 거지 관리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년이 아니라 평생을 노력해도 읽을 수 없겠지."

"...예를 들면요?"

"천기를 읽어서 속세의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다닐 것 같은 사람. 천기를 읽어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 그 외에 흑심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들에겐 관리자가 문을 열어줄 리가 없지."

-뜨끔

어라.

이거 완전 난데.

-삐질삐질

"어..음.."

"물론 권한을 박탈하는 것도 언제든지 그녀의 재량이니 어떻게 권한을 얻어냈다고 해도 옳지 못하게 사용한다면 바로 박탈 당할 거고."

혹시나 했던 생각도 바로 빗나갔다.

이미 권한을 얻어 놨으면 그 다음엔 뭘 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고 하려고 했었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그러면 저는 왜 아직도 멀쩡한 거죠?"

"그게 나도 의문이구나. 보통 너 같이 행동하면 바로 권한을 박탈 당하고 머리 위로 번개 몇 번은 떨어졌어야 정상인데."

"..."

"뭐, 의문이라고 하긴 했지만 결론은 하나밖에 없지. 관리자가 널 봐주고 있다는 것."

"...네?"

천지신명이 나를 봐주고 있다고?

그 괴팍한 여자가?

"...스승님이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 게 저는 그 여자와 사이가 나쁩니다."

"그런가? 이상하구나. 진짜 나쁘다면 이미 네가 천벌을 받고 죽었거나 못해도 천기를 읽을 권한은 진작에 박탈 당했을텐데."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러면 네 말대로 너와 그녀의 사이가 나쁘지만 모종의 이유로 네가 천기를 계속 읽을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또요?"

"천기라는 건 그렇게 단시간이 자주 읽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스승님의 표정이 한츰 진중해졌다.

"네가 점집을 운영했다고 했었지. 손님이 하루에 몇 명이나 왔었느냐?"

"어.. 적으면 3명 정도에서 많은 날엔 10명도 넘었습니다."

"그 사람들마다 매번 천기를 읽었을 거고?"

"...그렇죠?"

"그게 제일 큰 문제라는 거다. 정말 어떻게 용케 안 미치고 있는 건지."

이후에 이어진 스승님의 설명은 이러했다.

천기를 그렇게 무분별하게 읽으면 본래 자신의 기억과 다른 천기에서 흘러 들어온 기록 사이에 혼란이 생겨 미쳐버릴 수 있다고.

애초에 나처럼 천기를 자주 읽는 경우가 특이한 거라고 한다.

보통 수행자들은 천기를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정말 중요할 때나 힘을 빌리는 만큼 천기를 읽는 주기가 굉장히 길다고.

"...그러면 속세에 있는 점쟁이들은 뭐죠? 그 사람들도 천기를 못 읽.."

"애초에 고작 점 따위 보겠다고 천기까지 들쳐보는 네가 비정상적인 거다. 점이나 운세 정도라면 사주팔자나 별을 보는 것 정도로도 충분히 가능하거늘 너는 무슨 닭 잡는데 보석으로 만든 칼을 쓰고 있는 셈이니."

"...어.."

그랬어?

진짜 내가 이상했던 거라고?

"그러면 그걸 왜 안 가르쳐ㅈ.."

"다시 한번 끝까지 말해보겠느냐."

"...죄송합니다."

음.

이건 내 잘못이었다.

애초에 뭘 알려주기도 전에 멋대로 산 밖으로 뛰쳐나갔으니까.

"그리고 네가 그 수많은 사람들의 천기를 읽을 때마다 미래에 조금씩 변화가 생길 테니.. 관리자가 정말 좋아했겠구나. 사이도 안 좋은 꼬맹이가 자기 영역을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드는데 혹시 다치지 않을까 신경 써줘야 하고 왔다 갈 때마다 천기를 정리해둬야 할 테니 정말 좋아했겠어. 천기의 관리자라는 게 결코 한가한 직책이 아닐텐데 말이야."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귀찮을 법 했다.

그러면 진짜 그동안 천지신명이 내 편의를 많이 봐준 건가?

내가 고생해서 얻은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천기를 볼 수 있게 해주고 말고가 그녀의 손에 달려있던 거였다면 내 고생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사실 내가 천기를 읽는 법을 배우게 된 것도 큰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스승님이 나를 데리고 온 뒤에 뭐라도 가르쳐줄까 하다가 위험한 술법들 대신 일단 이거라도 배워보자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거였으니까.

애초에 스승님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술법은 내가 못 익히는 종류기도 하고.

다른 세계에서 온 내가 이 세계의 천기를 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던 것도 있었고.

'...혹시 미안해서 그러나?'

갑자기 다른 세계로 끌고 온 게 미안해서 내가 천기를 멋대로 읽어도 뭐라도 안 하는 거 아닐까.

사실 이게 지금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그 여자 성격에 '정말?'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가능성이었지만 저것 말고는 따로 추측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게 아니면 본인의 업무가 늘어나는 것도 무릅쓰고 내가 천기를 계속 멋대로 읽을 수 있게 둘 이유가 없으니까.

"..."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다른 세계에 멋대로 던져 놓고 나몰라라 한 제멋대로인 여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선물을 주고 있었을 줄이야.

성녀님은 상점창도 줬는데 이 여신은 아무것도 안주고 맨날 괴롭히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게 조금 무색해질 지경이다.

천기를 읽는 능력은 확실히 상점창이랑 견줄 정도로 유용하게 써왔던 능력이었으니까.

천기를 읽는 내 정신을 보호해줬다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해가 갔다.

평상시엔 멀쩡하다가 천마의 천기 좀 읽었다고 갑자기 정신에 이상이 생겼던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보호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는데 천마가 너무 강해서 그 한계를 넘어버린 탓에 완벽히 보호를 못해준 거라면..

'...이건 너무 갔나?'

아무리 천마가 강하다고 해도 천지신명 상대로 까지 그 힘이 먹힐까.

이건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그나저나 누가 그 신에 그 성녀 아니랄까봐

그런 거였으면 미리 말을 좀 하지 제대로 표현을 못하는 건 신이나 인간이나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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