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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02화 (202/250)

[202화] 11장-제자

우선 급한 대로 어제 먹다 남은 반찬을 적당히 데워서 입안에 넣어줬다.

묶여있는 상태로 입과 턱만 움직여 먹어야 하는 것이기에 잘못하면 체할 수도 있었지만 정말 배고팠는지 그녀는 급하게 음식을 받아먹었다.

"...배고픈 건 알겠는데 좀 천천히 먹어요. 1인분 정도 더 준비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우물우물.. ㅈ, 죄송해여 너무 맛있어서.."

"일단 안에 있는 건 다 먹고 말하고요. 그러다 체할라."

"...우물우물."

입안 가득히 먹을 걸 받아먹고 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게 사람인가 햄스터인가 싶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꽤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같은 얼굴이어도 성격이 바뀌니까 엄청 다르네.'

지금은 안에 들어있는 게 14살 짜리 애라서 그런지 꽤 귀여워 보였다.

일단 외모 자체는 상당한 미인이었으니까.

"어, 엄청 맛있네요. 누가 요리하셨어요?"

"아까 본 검은 머리 여자요."

"누, 누님 분이 요리 실력이 엄청 좋으시네요.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당아영이 요리를 좀 잘 하긴 하.."

...잠깐만 뭐라고?

"..누님이요?"

"아, 아니었어요? 가, 같이 사셔서 당연히 남매인 줄 알았는데."

"...애인인데요?"

"네에?!"

그녀는 정말 전혀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격렬하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와,와와와.."

"그건 또 무슨 반응이에요."

그 상태로 한 1분 동안 저러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괘, 괜찮아요! 사랑이 죄는 아니니까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두분 사이에 사랑만 있으면.. 그깟 나이 차이는 얼마든지.."

"...이건 또 뭔 소리래."

나랑 당아영이 동갑인데 나이 차이가 무슨 소ㄹ..

...아.

"...혹시 제가 몇 살로 보이세요?"

"저, 저랑 동갑 정도 아니셨어요?"

"...14살?"

"아, 아니에요?"

"...저 20대에요."

"네에에에?!"

이번엔 전보다 반응이 더 격렬했다.

14살 짜리가 성인이랑 사귀는 것보다 내가 성인이라는 게 더 놀랍다는 건가?

'뭔가 기분 나쁜데 이거.'

어차피 집 안이고 다 아는 사람 뿐이라 모자는 내리고 있었더니 이런 오해가 발생했다.

나 스스로도 딱히 성인 남성처럼 보이는 외모가 아니라는 건 자각하고 있지만 14살은 좀 심하지 않나.

초-중딩처럼 보이는 외모라는 소리 아닌가.

"특별히 병 같은 거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자란 거니까 딱히 신경 쓰지 마세요. 불편한 곳 없이 잘 살고 있으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죄, 죄송해요!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제, 제가 사실 또래 친구를 잘 못 만나봐서 나이 가늠을 잘 못해요!"

"...네?"

"어, 어렸을 때 스승님한테 거두어지긴 했는데 그분이 워낙 높으신 분이라 교류할만한 다른 제자가 없어서 또래 친구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죄송해요!"

...뭐랄까.

이 사람도 썩 좋은 인생을 산 것 같진 않은 모양이다.

뭐, 그러니까 21살 정도 되는 젊은 나이에 죽었겠지.

아무리 목숨을 몸 밖에 내놓고 다니는 게 무림이라지만 죽기엔 많이 젊은 나이였으니까.

"아까부터 말하는 걸 들어보면 스승님이 꽤 엄하신 분이신가 보네요."

"조, 조금 엄하시긴 하지만.. 좋은 분이세요. 전쟁터에서 혼자 남겨지고 이제 죽었구나 했을 때 구해주신 다음 갈 곳이 없는 저를 돌봐주시기까지 했으니까요."

"전쟁터요?"

"네. 그.. 혈교.. 5년 정도 전에 있던 일인데 혹시 아세요?"

"..혈교?"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제가 혈교라고 했었죠. 저, 저는 대체 어쩌다가 그런 무서운델 들어간 걸 까요.."

...이 여자의 상태를 생각하면 20년도 더 전에 있던 그 혈교와의 전쟁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지금 이 여자 입장에선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소리.

기억상실도 상실이지만 죽은 뒤에 되살아나기까지 있던 시간이나 흡혈귀로서 있던 시간이 싸그리 날아갔으니 갑자기 세상이 확 바뀌어버린 심정일 거다.

"그리고 그때는 그냥 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훨씬 더 대단하신 분이더라고요! 화산파 아시죠! 제가 거기 제자라니까요?"

"...화산파?"

"호, 혹시 모르세요? 구파일방.."

"아뇨 모를 리가 없죠. 여기서 좀만 가면 화산인데."

"에."

"당장 밖에 나가면 경치로 화산이 보여요."

"네?!"

"화산파에 아는 사람도 있는데."

"네에에?!"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놀라는 리액션이 참 풍부하다.

앞에 두고 떠들면 떠드는 맛이 날 것 같은 느낌.

"그러고 보니 스승님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했었죠. 풀어줄 순 없지만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으니까 이름이나 별호 말해보세요."

"저, 정말요?!"

"근데 지금 시간이 아마.. 당신 기준에서 20년 정도 지난 뒤라서 아마 스승님이 연세가 있으시다면 어쩌면.."

"어.."

-멍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렇게 마음이 편하진 않다.

아직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저 정도면 99% 확률로 진짜 기억을 잃은 것처럼 보이고

정말 그 말 대로라면 그녀의 입장에선 14살짜리 애가 갑자기 20년 뒤 세상에 툭 던져진 상황이니.

'...이렇게 보면 비슷하긴 하네.'

그녀는 기억상실이고 나는 빙의라는 차이가 있지만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완전 다른 세상에 던져진건 똑같았다.

스승님이 비슷하다고 한 데는 역시 이유가 있던 모양이었다.

"...알고 싶지 않으면 말 안 해도 돼요."

"아, 아뇨! 스승님이 연..세가 있으시긴 한데 돌아가시진 않았을 거에요! 반로환동도 하신 분인데 20년 정도는 거뜬하겠죠! 그, 그냥 조금 당황스러워서.."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니었나본데.'

반로환동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닌데 이 여자 스승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화산파 인물에 반로환동까지 한 사람이라면 그 표본이 굉장히 줄어들 거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일단 검후님이랑..

'...더 있나?'

그 어렵다는 반로환동을 한 사람이 같은 시대에 그것도 같은 문파에 두 명 이상 존재할 수 있나..?

라는 생각 때문에 잠시 생각이 멈춘 사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밥 다 됐어요! 제가 먹이고 있을 테니까 당신은 가서 스승님이랑 같이 드시고 계.."

"화산파의 검후! 신유월이라는 분을 찾아주시면 돼요!"

그리고 마침 밥 때문에 나를 데리러 왔던 당아영도 그녀의 말을 듣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

"..."

"저.. 왜 그러세요..? 혹시 스승님한테 무슨 일.. 있으셨나요..?"

...이 여자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본인이 검후님의 제자라고?

"그, 그럴리가요. 검후님한테 제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그분 제자를 사칭해서 상황을 좀 유리하게 해보려는 건 아니죠?"

내가 얼 타는 사이 당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를 좀 불쌍하게 보던 당아영이었지만 이번 말 만큼은 쉽게 믿기 어려운 것 같았다.

..실제로 나도 당아영처럼 생각하는 부분이 좀 있었고.

"아, 아니에요! 비, 비록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믿으시겠지만 진짜에요! 감히 스승님의 제자를 어떻게 사칭해요..!"

"저, 정말 그분의 제자라면 뭐 증거라도 대보세요. 무공을 보여준다거나."

"묶여있는데 어떻게 무공을 펼쳐요..!"

"...아니면 뭐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가까운 사람들만 알만한 비밀이라거나."

"...가까운 사람들만 알만한 비밀?"

본인을 검후님의 제자라고 자칭한 그녀는 당아영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녀가 비밀이랍시고 댄 걸 우리가 모르면 결국 말짱 도루묵이었다.

우리가 검후님이랑 아는 사이긴 하지만 제자보다 친한 건 아니지 않나.

사실 검후님에 대해서 아는 게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 그녀가 이상한 대답을 하면 그 진실 여부를 우리가 파악할 수 없었..

"허벅지 안쪽에 점이 있으세요."

"...네?"

...어.

...잠깐만.

"그, 그런 걸 대봤자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오른쪽이요 왼쪽이요?"

"오른쪽이요."

"..."

"...당신?"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당아영에게서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맞는 거 같아요."

"..."

"보, 보세요! 저분이 아신다잖아요! 스승님 허벅지 안쪽에 점이.. 있는...걸...?"

검후님의 제자는 자신의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해줬다는 것에 기쁘면서도 뭔가 이상한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아,하하. 세상 참 좁네요. 서, 설마 이렇게 만난 사람이 검후님의 제자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을 수 있나."

"..."

"스승님을 잘 아세요?!"

"네. 잘 알죠. 가끔씩 만나기도 하는데요."

"그러면 무사히 계시는 거겠네요!"

"네..에. 그렇죠. 지금은 잠시 어디 가셔서 만나진 못하고.. 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만나게 해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괜히 14살 짜리의 상상이 이상한 곳까지 뻗어나가기 전에 말을 걸며 생각을 끊어냈다.

'...근데 성지식은 있나 쟤?'

검후님이면 왠지 저 나이엔 따로 성교육을 안 해줬을 거 같은데.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

아까부터 이쪽을 조금씩 째려보는 당아영의 시선이 따가웠다.

어떻게 합의가 돼서 하렘을 차리긴 했지만 그래도 눈치가 조금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화 끝났으면 가서 밥이나 드세요. 이분 밥은 제가 드리고 있을 테니까."

"...넵."

왠지 모르게 박력이 느껴지는 당아영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과연 저 제자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검후님 돌아오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네.'

검후님이 지금은 여기 안 계신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스승님을 모시고 옷을 맞추러 나가야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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