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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01화 (201/250)

[201화] 11장-기억?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갑자기 누구냐니.

이제 와서 기억상실인 척이라도 해보려는 걸까.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였나.

"...이제 와서 기억상실인 척 해보려는 거에요?"

"자, 잠깐만. 기억상실이라뇨. 그건 또 무슨 소리.."

"그게 그렇게 흔히 걸리는 병도 아니고 이렇게 형편 좋게 걸릴 리가 없잖아요. 자결하려고 했다가 실패하니까 이제 와서 수작이라도 부려보려는 모양인데 그런 건 안 통해요."

"...자결이요? 진짜 죄송한데 지금 상황이 대체.."

그녀는 연기인지 진짜 상태인지 모르게 눈을 좌우로 떨다가 바닥을 보더니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보고 깜짝 놀라며 몸을 뒤틀었다.

"이, 이 피는 또 뭐에요?! 설마 제 몸에서 나온 거에요?!"

"그러면 그쪽한테서 나왔지 어디 땅에서 솟았겠어요?"

"아니아니 이상하잖아요! 이 정도 양이면 과다출혈로 이미 죽거나 최소 혼수 상태여야 정상이에요! 사람 몸에서 어떻게 이렇게 피가 많이 나와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혈교인 그쪽이 알겠지."

"혈교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입이 떡 벌려졌다.

거의 무표정만 짓던 그 사람과 정말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

'..연기 진짜 잘하는데.'

정말 연기가 아닐지도?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의 메소드 연기였다.

근데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포로로 잡힌 사람이 이렇게 딱 좋은 타이밍에 기억상실에 걸린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해서 벗어나려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일리 있었다.

"...무슨 일 이느냐."

"아. 스승..님."

그렇게 생각하고 이 여자의 가면을 어떻게 벗겨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스승님이 뒤에서 다가와 어깨 너머로 목을 내밀었다.

순간 스승님의 체취가 코로 들어오며 밤에 있던 일이 생각나버린 탓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스승님은 밤중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나만 모르는 척 하면 된다.

"ㅇ, 이 여자가 지금 자기가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상.."

그래서 태연하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스승님의 반응이 먼저였다.

"...너는 누구냐?"

"네?"

"에?"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

그 이상한 태도에 나와 그녀는 거의 비슷한 반응을 내뱉었다.

"...심기체가 일그러져있는 건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러긴 했지만 강시 같은 존재라길래 그런 것인가 했더니 오늘은 더 뒤틀렸구나. 하룻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스, 스승님. 그게 대체 무슨.."

"그래. 너를 처음 봤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구나. 몸의 기운은 크게 상하고 혼은 육체와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게."

'...뭐?'

나를 처음 봤을 때랑 비슷하다고?

그러면 혹시 이 여자도..

"으아아..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이게.."

"저, 저기요. 혹시 그쪽도 지구출신이에요?"

"...ㄴ,네? 지구가 뭐죠? 나라 이름인가요? ㅈ, 전 중원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건 아니구나.

스승님의 말에 혹시나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간만에 동향 사람이라도 만나나 싶어 설렜던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동향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말해주려고 했는데 먼저 물어보더구나."

"..."

"아무튼 기억을 잃었다는 건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구나. 네 말대로 연기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저 상태라면 정신 상태는 상당히 혼란스러울 거다. 말했다시피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상태이니."

"마, 맞아요! 제, 제가 묶여있는 걸 보면 제가 여러분한테 좋은 인물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사, 상황 설명 만이라도 부탁 드릴 수 있을까요!"

...잠시 스승님과 처음 만났을 시절을 돌아봤다.

영문도 모르고 낯선 세계에 떨어져서 정신은 정신대로 혼란스럽고 몸은 몸대로 최악이었던 상태.

"...좋아요. 상황 설명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니니까."

맞아도 왜 맞는지는 알아야 억울하지 않을 테니 상황 설명 정도는 해주기로 했다.

사실 나도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니 내가 아는 것만 얘기해줬다.

그녀는 어쩌다가 죽었었고 이후 혈교의 손에 강시 비슷한 것으로 살아나 마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우리까지 죽이려고 했었는데 다행히 제압한 다음 무림맹에 넘기기 전 이렇게 밧줄로 묶어두고 있는 상태라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반응은..

"ㅈ,ㅈ,제가요? 심지어 죽었었다고요?"

또다시 진짜 연기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일단 물어보겠는데 지금 몸이 당신 몸 맞죠?"

"...네?"

"혹시 정신 차려보니 지금 원래 자기 몸이 아니라 다른 사람 몸에 있다거나 그런 거 아니냐고요."

"어.."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묶여있는 상태로 본인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 내 몸이 아닌가?"

"아니에요?"

"제,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몸이 엄청 커졌는데요.. 가, 가슴이라거나.. 엉덩이도 커진 거 같고.. 허벅지도.."

"..."

나는 조용히 그녀의 앞에 거울을 가져다가 들이밀었다.

"아.. 제가 맞는 거 같네요. 얼굴은 저가 맞는 거 같은데.. 나이를 좀 더 먹은 느낌..?"

"기억 상으로 본인 나이가 몇 살 정도 되는데요?"

"여, 열 네살이요.."

아 14살...

"...잠깐만. 몇 살이라고요?"

"14살.."

"...어제는 21살에 죽었다고 했었는데?"

"그, 그래요? 그러면 나중에 크면 이렇게 되는 건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기억상실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이렇게 되면..

"지, 진짜 14살까지 밖에 기억이 없다고요? 뭐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도 없어요?"

"어, 없어요! 그, 그래도 제가 뭔가 잘못한 거 같아서 가만히 있긴 했는데 사실 제 입장에선 수련 마치고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이런 상황인 거거든요..! 몸은 묶여있는데 엄청 자라있고..!"

..몸만 성인이지 안에 들어있는 건 완전 어린애 아닌가.

순간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일단 풀어줘야 하나 했지만 금방 정신을 되찾았다.

만약에 정말로 이게 연기라면?

일부러 어리다는 걸 이용해서 풀려나는 걸 노리고 그 뒤에 본색을 드러낸다면?

"...일단 그쪽 말을 들어는 주겠지만 완전히 믿어주진 않을 거에요. 밧줄을 풀어주지도 않을 거고요.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우리한테 한 짓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도 그거까진 안 바랬어요. 스승님이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사과.."

그녀는 말하다가 잠깐 멈추더니 굉장히 빠른 속도로 사과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고 보니 저 사과도 안 했었네요! 죄송해요! 비, 비록 제가 기억은 못하지만 저 때문에 죽을뻔 했다니.. 정말 죄송해요! 이 죄 값은 어떻게든 갚을게요!"

"...네?"

"뭐, 뭘 원하세요? 그 정도 죄면 평생 갚아도 못 갚을 것 같은데.. 도, 돈은 저도 스승님한테 용돈을 받는 처지라 힘들 것 같지만 원하신다면 어떻게든 벌어볼게요! 아, 아니면 혹시 호위는 안 필요하세요? 이래 보여도 일류라서 호위로는 쓸만할 거에요! 장정 7명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어요!"

"...저기."

"여, 역시 힘드려나요? 그, 그렇겠죠.. 자기 목숨을 노렸던 사람이니까.. 제, 제 목숨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정말 염치불구 하지만 죽기 전에 스승님의 소식이라도 듣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만나게 해달라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지금 무사히 살아 계시는 지 정도만..! 유명하신 분이라 알아내는 게 어렵지도 않을 거에요!"

"...하아."

나는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미간을 짚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정말 연기라면 이 여자는 정말 똑똑하면서 사람 마음까지 이용할 줄 아는 악녀 중의 악녀라고.

"...안 죽여요."

"화산파의 검.. 네?"

"어차피 기억 잃기 전에도 무림맹에 넘겨서 정보나 뽑으려고 했지 당장 죽이려곤 안 했어요. 기억이 그렇게 날아갔으면 정보도 안 남아있겠지만."

"그, 그러면.."

"...물론 아직 의심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니까 묶어 놓긴 할 거에요. 정말 죄송한 거면 그사이에 기억나는 건 없나 기억을 더듬어라도 보세요. 당장 원하는 건 그 정도 밖에 없으니까."

-활짝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순수하게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 살려주시는 건가요?"

"의심되는 행동하면 바로 죽일 거에요."

"괘, 괜찮아요! 저 가만히 앉아있는 거 잘해요! 명상 수련 할 땐 12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도 몇 번이나 해봤던걸요!"

'...14살이라고 하지 않았나?'

무림인들은 원래 다 저런가?

대체 스승이라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었길래 애를 저 정도로 가르쳤나 싶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죄값을 치루는 게 당연한 거긴 하지만 저렇게 어린애가 순순히 목숨을 가져가도 좋다고 할 정도면 꽤 엄한 스승이었던 것 같다.

"대화 다 끝났으면 잠깐 비켜줄래요? 피 치우는데 방해되니까."

"아! 제, 제가 흘린 피니까 제가 닦을.."

"당신이 닦으려면 당신을 풀어줘야 돼요. 그냥 가만히 있어요."

피를 닦을 걸레를 가지러 갔다가 옆에서 조용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당아영은 그녀를 옆으로 치우고 바닥에 묻은 피를 마저 닦았다.

"...괜찮아요? 소저를 죽일려고 했던 사람인데."

"당신 말대로 원래 당장 죽일 생각은 아니었잖아요? 어차피 묶어뒀고 당신 스승님도 있으니 당분간 지켜봐 보죠. 저게 연기가 아니라 진짜라면 조금 불쌍하기도 하고요."

"스승님은 어때요? 저 말이 진짜인지 알 거 같아요?"

"...안 듣고 있었다."

"..."

그렇게 한 명의 신분이 혈교의 포로에서 기억을 잃었을 지도 모르는 포로로 변했다.

그리고..

"저, 저기 그러면 정말 염치불구하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요."

-꼬르르륵

"어, 어차피 살려두기로 한 거라면 뭐라도 먹을 것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벽곡단이어도 괜찮으니까.."

...기억을 잃으면서 식사를 해야 하는 몸으로 바뀌어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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