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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98화 (198/250)

[198화] 11장-위기

"빠, 빨래라면 제가 해도 되는데.."

"이거 보기보다 옷이 예민해서 경험자가 직접 하는 게 나아요. 스승님이랑 살 때는 전부 제가 하기도 했고. 소저는 스승님한테 점수라도 따고 있으세요."

"네..에..."

스승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당아영에게 심술을 많이 부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사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간만에 낑낑대며 스승님의 옷을 빨고 빨래 줄에 널어둔 뒤 어디 또 할게 없나 둘러보다 잠시 잊고 있던 게 눈에 띄었다.

"..."

묶어 놓고 그냥 잊고 있었던 흡혈귀 여자.

딱히 눈을 막거나 입을 막거나 하지도 않고 묶어두기만 했을 뿐인데 발버둥 하나 안치고 얌전히 있어서 어느 순간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한테도 물어볼게 있었다.

'나를 아는 것 같은 눈치였지.'

나는 그녀를 완전히 처음 보는데 그녀는 나를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었다.

그냥 단순한 미친 여자일 수도 의심 가는 게 있는 이상 마냥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기도 애매한 상황.

무슨 사정이 있었다고 한들 당아영을 내 눈앞에서 그렇게 죽일뻔했던 걸 용서하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물어는 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빙의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니까.

'아직 먹을 걸 주기는 좀 그렇고..'

어차피 하루 굶는다고 죽지도 않으니 그냥 물 한 병 들고 묶여있는 그녀의 앞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아까부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는 내가 다가오자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내 쪽을 바라봤고

"유성..아?"

방금 전까지 죽어있던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참고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이름을 함부로 말하고 다닌 적이 없었다.

어디가서 자칭을 해야 한다면 가명이나 무면금귀라는 어쩌다 보니 지어진 내 별호를 댔었지 유성이라는 이름을 알려준 사람은 정말 몇 되지 않는다.

당아영마저 나랑 사귀고 나서야 내 이름을 알게 됐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일단 마셔요. 물어볼게 있으니까."

그러니 이 여자가 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디가서 말했는데 그걸 내가 잊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에 나를 알던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일 확률이 높았다.

"자, 아."

"..아."

물이 들어있는 병을 그녀의 입에 대고 기울였고 그녀는 거부할 생각은 없었는지 물을 잘 받아 마셨다.

묶여있는 상태로 입 만으로 받아 마시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물을 흘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이 여자가 뭘 잘해서 묶여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 여자도 상당하네.'

물을 마시다가 흘렸는데 가슴에 떨어지는 여자가 그렇게 흔한 게 아닌데 이 여자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딱히 그것 외엔 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당장 어제 당아영을 내 눈앞에서 죽이려고 했던 여자다.

예쁘고 가슴 크다고 다 설렐 정도로 내가 굶주린 사람은 아니다.

"...물어보기 전에 이것부터. 그쪽 이름이 뭐에요?"

우선 생긴 걸 보면 중원 사람에 가까웠다.

눈이 붉은색이고 머리카락도 빨간색 브릿지가 곳곳에 있긴 했지만 기본적인 얼굴 형태는 중원 사람과 비슷했다.

"...한소연."

"이름 보면 중원 사람인거 같은데 맞아요?"

"...응."

"나이는요?"

목숨 줄이 이쪽에 걸려있는 자신의 처지는 알고 있는 걸까.

그녀는 어제 보여주던 광기 넘치는 모습에 비해 꽤 얌전하게 묻는 대로 대답하고 있었다.

내 질문을 들은 그녀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네?"

"죽은 상태에서 지난 나이도 세야 하는 거야..?"

"...아."

생각해보면 흡혈귀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었다.

그녀가 죽은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나이를 세기가 애매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죽기 전 나이로 말해봐요."

"..21살?"

"대충 그 정도 외모로 보이긴 하네요. 언제 죽었는데요?"

"xx력 xx년."

15년 전이다.

마침 내가 이 몸에 빙의했던 년도와 같은 년도.

어째 점점 의심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이번엔 좀 더 결정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을 하기 전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저희 옛날에 아는 사이였나요?"

".......응."

그녀의 입에서 긍정의 대답이 나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펄럭펄럭

'대체 뭐 하는 여자야.'

일단 예전에. 내가 이 몸에 빙의하기 전 이 몸의 주인과 알던 사이라는 건 확인됐다.

이제 문제는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

나는 왜 막 빙의했을 때 몸 상태가 그렇게 엉망이었으며 그녀는 왜 하필 내가 빙의한 년도와 같은 년도에 죽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하고 중요한 문제였는데 그 대답을 당장 들을 수는 없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며칠만 주면 안될까?'

저렇게 말하는데 뭐 어쩔까.

억지로 대답을 강요하면 뭐라도 대답을 들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게 뭐 그리 급한 일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두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에 봤을 때 완전 탁했던 눈동자가 어딘가 변한 것 같은데 이건 기분탓일지도 모르겠다.

'뭐 했다고 벌써 날이..'

그나저나 벌써 해가 저물었다.

오늘 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잘 시간이다.

기상을 늦게 해서 하루가 짧게 느껴진 것도 있겠지만 뭔가 하루를 손해 본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밤이면 성녀님 달래줘야 하는데.'

아까 그렇게 달궈 놓은 상태로 밤까지 기다리라고 방치해 놨는데 저걸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벌써 고민이었다.

상호자위 해주겠다고 하긴 했는데 사실 나도 해본 적이 있어야지.

대충 맞춰주면서 나도 자위하면 되나?

혼자서 해결한 지 너무 오래 돼서 잘 되려나 모르겠는데.

"으음.. 슬슬 날도 저물었는데 다들 이만 잘까요?"

"마음대로 하거라."

내가 성녀님 때문에 고민 중인 사이 당아영이 스승님의 눈치를 보며 슬슬 자러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스승분은 이 방에서 주무시면 될 것 같아요. 아까 미리 청소도 해놨고 제 방은 저 방이니까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시면 와서 말씀하세요?"

"음. 알겠다."

당아영은 그렇게 말하며 슬금슬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참고로 어제 스승님은 내 방에서 주무셨었다.

그땐 아직 스승님 방이 준비도 안됐었고 내가 쓰러져있었으니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러면 이제 나는 내 방에서 혼자 자면 된다.

성녀님이랑 그것도 해야 하고.

'방에 정액 닦을만한 게 있었ㄴ..'

"자. 그러면 가자꾸나."

-휙

"응?"

내가 오늘 밤에 있을 일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이 스승님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위쪽으로 올라갔다.

알고 보니 스승님이 나를 들어 올리고 스승님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 스승님?! 저는 왜 데려가십니까?!"

"나는 여기서 자라고 하지 않았더냐. 당연히 제자인 너도 여기서 자야지."

"가, 같이 잔다고요?"

"뭘 그렇게 놀라느냐. 언제는 따로 자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때야 집에 방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이제 집에 방도 많은데 굳이 같이 잘.."

"시끄럽다. 말이 많구나."

-벌컥

내 발버둥 따윈 아무런 방해도 안됐는지 정말 스승님은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 그대로 문을 닫은 뒤 침대에 나와함께 누워버렸다.

결국 내가 뭘 할 틈도 없이 평상시 스승님이랑 잘 때처럼 얼굴은 가슴에 파묻고 다리는 스승님의 다리와 엉키는 포지션이 완성되어버렸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은 이게 편한가..?'

나도 물론 남자로서 전혀 싫어할 이유가 없는 체위긴 하지만 솔직히 잠을 자기엔 상당히 불편한 자세였다.

지금이야 익숙해져서 어떻게든 요령이 생긴 거지 예전엔 정말 질식할뻔 했던 적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단 말이다.

베개보다 부드럽고 푹신하면 뭐 한단 말인가. 숨을 쉬기가 힘든데.

그런데 그런 나와 달리 스승님은 이게 편하기라도 한 듯 잘 때마다 이 자세를 고집하시니 내가 반항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몸을 돌리는 것도 못한다.

자는 동안 돌려도 그게 다 느껴지는지 잠꼬대로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려놓는데 이젠 나도 익숙해져서 포기했다.

그냥 베개는 베개답게 얌전히 있어야겠지.

스승님과 내 체형 차이를 생각하면 좀 큰 베개를 껴안고 자는 거랑 느낌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새액.."

그 와중에 스승님은 많이 피곤하셨는지 상당히 빨리 잠드셨다.

"..."

-꼬옥

잠든 스승님을 보며 나도 말없이 스승님을 끌어안았고

[요, 용사님! 슬슬 주무실 때가 될 것 같아서 왔어요! 일부러 예열하느라 용사님쪽도 안보고 있었..]

'어.'

[...는데?]

한참 안 좋은 타이밍에 성녀님이 찾아와 버렸다.

[요, 용사님! 이건 약속이랑 틀리잖아요! 오늘 밤은 저를 위해 써주신다고 했잖아요!]

'저,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스승님이 억지로 끌고 와서 누워버리는 바람에..'

[야, 약속했잖아요! 약속을 얼마나 어기려는 건데요! 평생 같이 있어준다고 했던 약속도 배신하고 떠나버리시더니 끝까지..!]

'그런 약속 한 적 없거든요?!'

[아무튼! 저는 이번 만큼은 양보 못해요! 그 상태로라도 해주세요!]

'미친 소리 하시네?!'

[용사님이 약속했잖아요!!! 안 해주면 진짜 상점창 막아버릴 거에요! 그땐 저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큰일이다.

성욕으로 이성을 흔들고 붙잡아 놨는데 정작 그걸 해결 못해주게 생겼다.

그렇다고 스승님이랑 껴안고 자는 동안 그런 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삐질삐질

일생일대의 위기가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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