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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93화 (193/250)

[193화] 10장-생명의 의미6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을 전체를 불살라먹고 있던 불길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한 곳을 중심으로 모이며 공 모양으로 변했고 원래 타오르던 건물들엔 작은 불씨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길의 중심에 있는 건 3년 동안 보지 못했던 내 스승님.

-왈칵

"스승님..!!"

오랜만에 보는 그리움과 극적인 상황이 합쳐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스승님이 한 손으로 당아영을 붙잡고 불타오르던 건물에서 빠져나오고 있었으니까.

-툭

"여기까지 해줬으면 이제 알아서 하거라. 무인이라면 지혈 정도는 스스로 가능하겠지."

"가, 감사합니다. 어,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필요 없다."

스승님은 당아영을 바닥에 던져둔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스승니임..!!!"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탓에 자리에서 일어날 순 없었지만 만약 힘이 조금만 남아있었더라도 나는 당장이라도 스승님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을 것이다.

지금 내 감정은 그 정도로 벅차오른 상태였다.

"...너 뭐야."

그러나 그 감정도 옆에서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에 의해 찬물을 끼얹듯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스승님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가끔 산짐승들을 잡아오는 걸 보면 일반인보단 확실히 강한 것 같긴 한데 강한 모습이라고 해봤자 주술 몇 개 다루는 모습 정도밖에 못봤다.

하지만 이 여자는 절정인 당아영이 저항도 못하고 죽기 직전까지 몰릴 정도로 위험한 사람이었다.

"조, 조심해요! 이 여자 엄청 강해.."

"비켜라, 방해다."

-콰아앙!

"...요.."

스승님이 손을 휘두르자 공 모양으로 압축되어있던 불이 순식간에 채찍처럼 늘어나며 흡혈귀 여자를 날려 보냈다.

"...어라."

"땅바닥에 엎어져서 일어나지도 않는다니. 오랜만에 보는 스승을 반기는 태도가 영 엉망이구나."

"그, 그게 아니라 지금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뭐, 스승이 폐관수련에 들어가자마자 냅다 스승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서 달아난 제자이니 스승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산에서 나오기 전 밖에 나가서 굶어 죽을 순 없으니 스승님의 지갑에 손을 댔던 적이 있었다.

-삐질삐질

"스, 스승님 그게 말입니다.."

"됐다. 어차피 그게 아니더라도 네게 심문할 건 차고 넘치니 저걸 처리하는 동안 어떻게 변명할 지나 생각해 놓고 있거라."

'...좆됐다.'

평소 스승님이 화나면 무섭다는 걸 알고 있는 나였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스승님에 의해 날려 보내진 흡혈귀 쪽을 쳐다봤다.

"왜.. 왜.. 왜.. 왜 자꾸 방해하는 거야.. 그것도 전부 다른 년들만 나와서.."

아까 당아영을 제압할 때도 몸이 사실 꽤나 떨리고 있었는데 스승님의 공격 때문에 상처가 악화되기라도 했는지 그녀는 검과 벽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투둑.. 툭..

아니, 간신히 지탱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처럼 보이는 몰골이었다.

그럼에도 저 몸이 오싹해지는 광기는 여전하다는 게 더 무서웠지만.

"정신이 조금 이상한 여자 같구나. 보아하니 네게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전 애인이라도 되는 것이냐?"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요즘 강호에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저렇게 집착하는 문화가 있나 보군. 세상이 많이 변했어."

"그런 문화 따위 없습니다..."

"닥쳐..! 닥쳐...! 너가 뭘 알아..! 너가 유성이에 대해 뭘 아냐고..!"

'뭐지 진짜 아는 사람인가.'

저 정도로 발작하는 걸 보면 정말로 나를 전에 알던 사람인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짐작 가는 게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했었지.'

적어도 내가 빙의한 이후에 딱히 기억을 잃었던 기억은 없었다.

대신 기억상실 비슷한 건 있었다.

내가 이 몸에 빙의한 시점.

만약 내가 빙의하기 전에도 알던 사람이라면?

'...근데 그것도 이상한데?'

내가 이 몸에 빙의한 시점이 대략 10살 전후인데 그 전에 알던 사람이라고 해도 저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거의 애인과 비슷한 그것이었다.

저 여자가 크레이지 싸이코 페도필리아라도 되지 않는 이상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저 정도 광기를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원래 미친 사람들은 항상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라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제자에 대해 뭘 아느냐 라.. 꽤 재밌는 질문이구나. 적어도 네놈보단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만."

"...뭐?"

"저 칠칠맞은 놈을 주워서 다 클 때까지 길러준 게 이몸이거늘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는 것이냐?"

-멍

그녀는 스승님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스승님이.. 거두었던 게 아니었어?"

"난 네 스승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 스승님은 어디에.. 윽.."

그녀는 또 혼잣말을 하더니 머리가 아파왔는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혼자서 이랬다 저랬다 정말 정신병자가 따로 없는 상황.

"...상관없어. 스승님이 거뒀던 게 아니었다고 해도 유성이는 내가 받아갈.."

"아까부터 쫑알쫑알 말도 많구나. 그렇게 내 제자에게 관심 있는 거라면 그 망할 태도부터 고치거라. 내 제자는 그런 성격은 질색하는 편이니."

"...뭐?"

"뭐가 '뭐'냐.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폭력을 휘두르고 사람도 막 죽이려드는 년을 좋아할 남성은 굳이 내 제자가 아니더라도 없을 거다. 물론 네가 성격을 고쳐온다고 해도 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지만."

스승님의 말에 정통으로 얻어맞기라도 한 듯 그녀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아, 아니야.. 유성이가 나를 싫어.. 그러면 내가 억지로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그런데 유성이가 그런 성격을 싫어.. 아..?"

"...단순히 정신병자는 아닌 것 같고. 이제 보니 몸도 일반적인 인간이랑은 많이 다르구나. 요괴인가? 내 오래 살면서 온갖 요괴를 봤지만 이런 요괴는 처음 보는데.."

"아. 흡혈ㄱ.. 강시 같은 거에요! 원래 죽었던 사람이에요!"

"호오. 요즘 강시술도 엄청 발전했구나. 외모만 조금 이질적인 걸 빼면 살아있는 인간과 다를 게 하나도 없지 않느냐."

"아니 조금 다른 거긴 한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완전히 죽이는 게 낫겠느냐 아니면 제압만 해두는 게 좋겠느냐."

"...네?"

"내가 방금 와서 상황은 잘 모르지만 일대가 난리가 난 것 같은데 강시라면 아마 이 녀석도 그 주동자와 관련이 있겠지. 정신적인 문제는 있어 보여도 의식은 제대로 있는 것 같고. 인질이나 포로로서의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아!"

그러고 보니 그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흡혈귀처럼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면 생포해서 정보를 캐내는 용도로 쓸 수 있을 거다.

하필 성녀님이 강림한 동안 덤빈 적들은 전부 소멸 시켜 버려서 생포할 수 있는 적이 없었는데 그럴 수 있다면..

"...근데 그러면 당아영이.."

"전 괜찮으니까 스승님 말대로 해요."

"..괜찮겠어요? 방금 소저를 죽일뻔했던.."

"결과적으로 살았으면 된 거죠. 원래 무인은 목숨을 내놓고 사는 게 일상이에요? 당장 서로 목 끝까지 칼을 들이밀던 원수들이 필요에 의해 협력할 수도 있는 세상인데."

"...그렇게 말한다면.."

나보단 당아영이 걱정이었지만 당아영이 저렇게 까지 말한다면 생포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마 당아영도 지금 저 여자를 포로로 잡아두는 게 자신의 원수를 갚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더 가치 있다고 여겼겠지.

똑똑한 여자니까 그렇게 판단했을 거다.

"그나저나 평소엔 그렇게 틱틱 대더니 아까는 조금 감동이었어요. 정말 그렇게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니까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요."

"에이 또 부끄러워하신다. 자자, 스승님도 오셨는데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에요. 당신도 일어나야죠."

당아영은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내게 다가와 나를 다시 끌어올렸..

"...울었어요?"

"이, 이건 스승님을 만나서 난 거에요!"

"그러고 보니 아까 당신 눈가에 눈물이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와아아악!!"

당아영과 다시 티키타카를 찍으며 간신히 둘 다 살아남았다는 걸 체감했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고개를 힘겹게 움직여 당아영의 상처부위를 살펴봤고

"...붕대?"

"오, 옷이 불에 타서 찢기도 애매하더라고요. 그냥 평소에 쓰던 붕대로.. 급한대로.."

-출렁

...아.

붕대를 어디서 났나 했더니.

평소 흔들리지 않게 붙잡고 있던 붕대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 덕분에 숨을 쉬는 것 만으로도 흔들리는 그것에서 애써 눈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돌린 방향에선..

"...사이가 꽤나 좋아 보이는구나 제자야."

"히익!"

"감히 이 스승이 부르는 걸 3번이나 무시한다라.. 강호에 나와서 여자랑 3년 정도 붙어있다 보니 먹여주고 길러준 스승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 이거냐?"

"아, 아니에요! 오해에요!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게 체감이 돼서..!"

움직이지 않는 현실의 몸을 대신해서 마음속으로 손사래를 치며 스승님을 향해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건 진짜로 변명이 아니라 진짜인데.

하필 아까 눈을 돌렸던 방향이 스승님의 흉부 쪽이었다.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생물의 본능은 그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둘을 비교해버렸고

'...미안해요 소저.'

속으로 작게 당아영에게 사과를 건넸다.

역시 저건 이길 수 없었다.

"...흥. 이번은 봐주마."

"...?"

그 와중에 스승님은 뭐가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풀렸는지 이번은 봐준다고 하더니 흡혈귀 여자가 있던 쪽을 손으로 가리켰고 그곳엔 어느새 금줄에 묶여서 제압 당한 그녀가 허공을 바라보면서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까 스승님한테 들은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던걸까.

"아..하..하.. 하... 유성이가 나를.."

"..저기 이 여자 맛이 갔는데요?"

"나에게 묻지 마라. 정신의학을 공부한 적은 없으니."

"음..."

일단 상황은 어떻게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비록 마무리가 미흡했지만 성녀님이 마을에 퍼져있던 흡혈귀들은 전부 처리한 것 같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이상한 흡혈귀도 생포하는데 성공한 상황.

스승님 덕분에 마을에 불도 꺼졌으니까..

"...이제 집에 가서 쉬죠."

"...지쳤어요?"

"저도 지쳤을 거고 소저도 지쳤을 거고.. 워낙 일을 많이 겪었으니까요.."

"흠. 집이라. 얼마나 좋은지 한번 보도록 하지."

"...그런데 불에 안타고 남아있을련지.."

이 여자는 무림맹에 가져다주는 게 좋을 것 같지만 당장 그쪽도 이런저런 난리로 여유가 없을텐데 이런 걸 데려가 봤자 일이 더 복잡해지겠지.

스승님이 있으니 또 날뛸 염려도 없을 거고.

"혹시 타버렸으면 별장으로 가죠 뭐. 조금 멀리 있으니 거기는 불에도 안 탔을 거에요."

"...별장도 있었어요?"

"혹시 독 연구하다 잘못돼서 집이 날아가 버리기라도 하면 임시로 지낼 곳이 필요하니까요."

"...그렇구나."

새삼스럽지만 정말 부잣집 아가씨라는 게 다시 한번 느껴졌다.

이 땅값 비싼 동네에서 주택에 별장까지 가지고 있다니.

"뭐.. 잘 됐..네...요....."

"...피곤해요?"

"이것도 부작용인지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먼저 잘.."

"자는 건 괜찮지만 자는 동안 변명거리는 잘 준비해 놓는 게 좋을 거다."

Zzz...

그렇게 마지막 긴장까지 풀린 나는 당아영이 나를 붙잡고 있는 상태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풀썩

잠들기 전 얼굴에 포근하면서도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역시 사람이 가장 안심되는 온도는 사람의 체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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