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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89화 (189/250)

[189화] 10장-생명의 의미2

"...이길 수 있겠어요?"

절망적인 상황에 반쯤 농담삼아 던진 말.

그러나 당아영의 대답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제가 시간을 끌 테니 도망쳐요."

"...네?"

"저 녀석도 아무런 능력도 없는 당신보단 조금이나마 위협적인 저를 먼저 노릴 거고.. 제가 시간을 끄는 사이에 당신이 길을 꼬면서 도망가면 저 녀석도 쫓아오지 못할 거에요."

"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내가 도망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게 아니다.

"그러면 소저는요..?"

"..."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거 맞는거죠..?"

-꽈악

당아영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여자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대신 죽을 테니까 저 혼자라도 살라고요..?"

"..."

"제가 그딴 식으로 살아남아서 좋아할거같..!"

"어머~ 너희는 누구야? 혹시 저 앞을 지나가려고?"

-흠칫!

순간 머리에 올라왔던 열도 바로 차갑게 식혀버리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본능적으로 그 목소리의 주인이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뱀파이어?"

"응? 그 명칭은 어떻게 알았대? 보통은 흡혈귀인지 뭔지 그렇게 부르던데. 발음도 제법 괜찮고?"

당아영과 나는 같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곳엔 붉은 눈동자와 검은 박쥐 날개를 가진 여인이 공중에 뜬 채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놓고 '저 인간 아니에요~'라고 광고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여기서 그런 태클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난장판이 된 이 마을에서 인간들의 목숨줄을 쥐고있는 건 뱀파이어들이었으니까.

'...이건 못이겨.'

내가 싸움에 소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의 승산이 한없이 0%에 가깝다는 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장 저쪽에 있는 검강을 쓰는 흡혈귀도 당아영이 목숨을 걸어야 겨우 시간끌기나 되는 수준인데 거기에 뱀파이어까지 나와있으니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당아영 또한 그걸 깨달았는지 표정이 점점 절망으로 물들어가고 있던 찰나

"무슨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누가 죽인대?"

""?""

뱀파이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었다.

"...죽이는 거 아니었어요?"

"음.. 일단 받은 임무가 인간들은 눈에 띄는 대로 죽이라는 거긴 했는데 사실 2명 정도 놓쳐준다고 해도 상관 없어. 어차피 우리 종족들은 다들 마이웨이 성향이 강해서 누가 뭐래도 자기 재미가 우선이거든."

"그러면.."

"아. 일단 거기 키 작고 망토 쓴 애. 너는 모자 좀 벗어봐. 언니가 그거랑 비슷한 망토를 쓴 얘한테 당한 게 있거든? 너가 걔는 아니겠지만 기분 나빠서 확인 좀 해봐야겠어."

"..."

그러고 보니 이 망토가 언데드들이랑 맞서 싸웠던 영웅의 망토라고 했던가.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당장 죽네 사네 하는 마당에 얼굴이 중요할까 싶어 모자를 내렸다.

-스륵

"뭐야 예쁘게 생겼네. 그런 얼굴을 왜 가리고 다닌데. 아깝게시리."

'...뭐지?'

여태 맨 얼굴을 보여준 여자들과의 경험 때문에 불안했는데 뭔가 반응이 생각한 것과 달랐다.

예쁘게 생겼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아까 언니라고 자칭했던 것도 그렇고

'...혹시 여자인 줄 아나?'

왠지 그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능성이 적은 가설은 아니었다.

몸집도 작고 유약하게 생긴 이 몸의 외모는 내가 어디가서 여자라고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외모였다.

"얘. 둘이 무슨 관계야? 자매? 친구? 설마 모녀는 아닐 거고.. 혼자 도망치라고 하는 걸 보면 엄청 가까운 사이인 것 같긴 한데.."

그리고 이어진 말로부터 확신했다.

이 뱀파이어는 지금 나를 여자로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딱히 나쁠 건 없었다.

괜히 남자인 걸 알면 그것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내 경험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여자로 알아주는 게 이 상황에선 보다 안정적이었다.

이 여자의 성적취향이 특이한 게 아니라면 이쪽이 낫겠지.

-힐끔

당아영 또한 그녀의 오해를 눈치챘는지 태연하게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친구에요. 사정이 있어서 저희 집에 얹혀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깥이 이렇게 돼서.."

"아. 어쩐지 몸에서 비슷한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동거중이었구나? 그러면 그럴 수 있지. 샴푸도 같은 거 쓸 거 아니야."

"...네?"

"아 이 세계엔 그런 거 없나?"

...아무래도 이 뱀파이어는 꽤 수다스러운 성격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걸어온 흡혈귀는 그녀의 통제하에 있는 건지 특별히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게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노릇.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 둘 다 이승과 작별하는 건 한순간이었기에 그녀의 수다가 더 이어지길 바랬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애들 불안하게 내가 계속 혼잣말만 했네. 속으로 '그래서 이년은 살려 주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 이랬겠다."

"아,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아유 너는 생긴 것도 그렇게 왜 이렇게 착하니. 하여간 예쁜 애들은 얼굴 값을 한다더니."

"아..하하.."

속으로 저런 생각을 했더라도 여기서 대놓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말하면 바로 목이 달아날게 뻔한데.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려줄 의향은 있거든? 근데 모름지기 사람이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하잖아? 그게 거래의 이치지? 응?"

"그, 그렇죠?"

"응. 그러니까.. 너 혹시 뱀파이어 안 해볼래?"

내가 그녀의 말을 귀로 듣고 뇌로 인식해 이해할 수 있는 문자로 변환하는 데에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성공했을 때.

"...네?"

나는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왜. 이게 보기엔 좀 무서워 보여도 좋은 점 많다니까? 아무리 먹어도 살도 안찌고, 피부관리도 간편하고, 늙지도 않고, 수명도 늘고. 그냥 언니 따라와서 시키는 것만 좀 도와주면 돼. 그러면 언니가 특별히 최대한 피가 진한 뱀파이어로 만들어줄 테니까."

"?????"

"아. 한번 죽어야 하긴 하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 고통 없이 죽이는 마법만 한 13종류는 있으니까 잠깐 눈만 감았다 뜨면 새 인생이 펼쳐지는 거야. 그리고 한 200년 정도만 언니 옆에서 연구만 도와줘도.."

당아영이 움직인 건 그때였다.

-푸욱!

"이 미친년이 누굴 데려가서 죽이네 마네..!"

이미 뱀파이어가 접근해서 이야기를 시도할 때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녀였다.

중원의 멸망을 노린다는 이들이 순순히 그들을 풀어줄 리 없다고 생각했고 무언가 무리한 요구를 할게 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를 여성으로 착각한 건 예상 외였지만 데려가서 죽인 뒤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이상 협상은 무의미했다.

마침 그에게 정신 팔려 당아영쪽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을 때가 기회였고 완벽하게 기습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야."

"?!"

완벽하게 뒤통수를 뚫리고도 태연하게 목소리를 내뱉는 뱀파이어의 모습에 그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단검도 예전에 본 거랑 똑같이 생겼는데.. 너희 뭐하는 애들이야?"

"..."

-꽈악

"뭐 됐다.. 어차피 얘한테만 관심 있지 너한테는 별로 관심 없었어. 쓸데없이 젖탱이만 큰 년. 죽여."

당아영은 뱀파이어의 머리에 박혀있는 단검을 회수하기 위해 단검을 쥐고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보다 흡혈귀가 움직이는 게 빨랐다.

-콰앙!

"커헉!"

흡혈귀가 되며 강화된 신체능력에 강기까지 둘러 후려친 팔이었다.

순식간에 반대편 벽까지 날아간 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는 당아영의 모습이 그녀가 얼마나 강한 위력의 공격을 받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소저!!!"

"에구 지지. 저런 거 보지 마. 너같이 순수한 애가 보기 썩 좋은 광경은 아니니까 눈 꼭 감고 있자."

"이, 이거 놔 이 미친년아!! 놔!!!!"

"그런 나쁜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저년이 알려줬어?"

나는 뱀파이어에게 붙잡힌 팔을 움직이며 발버둥쳤지만 구속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뱀파이어가 보기보다 힘이 센 것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너무 약했다.

겨우 여자가 붙잡는 것 만으로도 꼼짝도 못하는 약한 몸뚱이.

'상점창!! 상점창!!!!!'

'천지신명 이 망할년아!!! 욕 했으니까 빨리 천벌 내려!! 당장 번개 떨구라고!!"

'성녀님?! 성녀님?! 왜 대답이 없어요?! 성녀님?!'

결국 이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속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뿐이었다.

"컥.. 커흑.."

-저벅저벅

'제발..!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내상이 심한지 쓰러져서 몸을 움찔대기만 할 뿐 움직이지도 못하는 당아영을 보며 평소 쥐뿔만큼도 없던 신앙심을 최대한 쥐어 짜냈다.

그리고 그 순간

[네~ 용사님~ 잠깐 채널에 문제가 있었네요. 저 에르델이 왔답니다.]

절망만이 가득했던 눈앞에 한줄기의 빛이 내려왔다.

'서, 성녀님!! 저 포인트 제법 있잖아요! 지금 쓸만한 거 없어요? 이대로면 당아영이..!'

[음~ 잠시만요~ 창고에 물건이 좀 많아서요.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요.]

'지금 그럴 시간 없는데요?!'

지금 당장 흡혈귀가 검에 검강을 두르고 쓰러져있는 당아영에게 다가가고 있는 중이란 말이다.

그럴 시간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흠. 근데 용사님. 지금 상황이 손을 제대로 못쓰시는 상황이네요. 이러면 물건을 찾아서 보내드려도 쓸 수가 없는데 어떡하죠?]

'뭐, 뭐 좋은 수라도 없어요? 자동으로 작동하는 물건이라거나..'

[강력한 마도구는 보통 직접 의지를 불어넣어서 작동시켜야 하니까 그런 건 불가능해요. 있다고 해도 최소한 1회의 주인 입력 과정이 필요하고요. 음.. 그러면 마도구 대신 이건 어떨까요?]

'뭐, 뭔데요?'

[지금 있는 간섭력.. 포인트를 전부 소모해서 제가 일시적으로 용사님 몸에 강림하는거에요. 그러면 저 흡혈귀들도 모조리 해치울 수 있고 용사님의 애인도 살릴 수 있어요.]

'그, 그러면 그렇게 해주세요.'

포인트를 다 쓰든 말든 상관 없었다.

지금은 당아영을 살리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할게요. 그러면 제가 그쪽으로 가기 전에 준비 하나만 해주시겠어요?]

'뭐, 뭔데요?'

성녀쯤 되는 사람을 내 몸에 강림시키는 일이었다.

당연히 쉽지는 않을 터.

그녀가 내게 오기 전에 내가 무언가 해야 하는 게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미지: http://image.novelpia.com/imagebox/dc/dc6d57a8ea50a93eea5b1043c7cb5827_18530431_1683044782_ori.file]

[계약서를 써주셔야겠는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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