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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88화 (188/250)

[188화] 10장-생명의 의미1

혈교가 그들의 데뷔전 무대로 화산을 선택한 곳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곳곳에 숨어 작게 사고를 치긴 했으나 그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기에 그들의 존재를 눈치챈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눈치채더라도 그들이 크게 일을 벌리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견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리고 그런 수면 밑에 존재하는 조직으로서 최대한의 효율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커다란 기습 작전 한방이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동안 은밀하게 활동하며 얻어왔던 이익의 상당수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고 그걸 버리는 만큼 한번에 얻을 수 있는 걸 최대한 얻어와야 했던 만큼 화산파는 혈교에게 있어서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중원의 멸망을 바라는 그들에게 있어서 중원의 무림인들은 결국 언젠가 맞서 싸워야 할 적이고

중원에서 가장 큰 세력이라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전력 중 하나를 시작부터 괴멸시킬 수 있다면 이후 일어날 전쟁을 훨씬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더군다나 화산이 있는 섬서는 정파 세력의 힘이 모이는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

안전할 거라고 믿었던 장소에서 테러를 성공시킨다면 민간인이나 무림인이나 모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혈교 측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당연했고.

비록 그들의 컨트롤타워이자 최대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슈타인이 신투의 비고로 향하면서 전력 자체는 줄었지만 그건 화산과 무림맹도 마찬가지였기에 결국 전력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산과 인근 마을을 향한 습격이 시작된 지금

전황은 혈교 측에게 매우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 *

서로의 전력이 비슷하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해지는 건 정보였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전쟁에서 정보의 차이는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혈교는 화산에 심어 놓은 스파이나 되살려낸 화산의 무인으로부터 얻은 정보가 많은 방면 화산은 현재의 혈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으니 정보의 차이는 혈교측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특히 무림인들은 한번도 상대해보지 못했을 마법이라는 이계의 신비는 한끗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무인의 세계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끄르륵.. 비겁하게 사술을.."

-서걱!

-쿵!

"이 건물에 남은 인간은 이자가 마지막인 것 같다. 다음 건물로 이동하겠다."

"알았다 리그레타. 플로라는 어떻지?"

"로드의 은혜를 과분할 정도로 받고 있는 녀석 말인가?"

리그레타라고 불린 여성형 뱀파이어는 돌아온 무전을 듣고 고개를 돌려 플로라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말해. 지금 검후는 어디 있어."

"큭큭..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으냐.."

쓰러진 무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심문하고있는것처럼 보였다.

"잘 있는 것 같군. 여유가 넘치는지 쓸데없는 일도 하는 것 같고 말이야."

"그런가. 그래도 길 안내는 도움이 되지 않나? 그녀도 살아있을 땐 이곳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전혀. 그 사이에 위치가 바뀌었는지 오히려 나보다 더 헤매더군. 듣자하니 인간 시절에도 일정 구역 이상을 돌아다니진 않았던 모양이야."

"쯧. 쓸모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알았으니 그녀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마라. 로드께서 그녀를 감시하라고 하셨으니."

리그레타는 바르슈타인의 명령으로 인해 플로라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 일에 굉장히 불만이 많은 상황이었다.

애시당초 바르슈타인에 의해 창조된 순혈 뱀파이어인 그녀는 기본적으로 인간이었다가 부활한 권속들을 깔보는 성향이 있었는데 그런 반푼이가 로드의 총애를 받고 있다니.

말이 감시이지 이건 다르게 해석하면 그녀의 보모역할을 하라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그것도 실전 한번 나가본 적 없을 애송이를.

"...불의의 사고로 인해 그녀가 다치거나 죽으면 어떡하지? 예를 들면 숨어있던 적의 기습이라거나."

"그에 대해선 따로 당부가 없으셨다. 본인의 목숨은 본인이 부지해야지. 이미 한번 살려줬으면 된 거 아닌가?"

"호오."

그 말은 로드도 그 장난감을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여차하면 그냥 버려버려도 로드의 엄벌이 떨어지진 않을 거라는 말.

"빨리 말해. 고문 방법은 배운 게 없어서 어떻게 해야 안 죽이고 고통만 주는지 모르니까."

"하, 이제 와서 목숨이 아까울 것 같나? 그리고 말해주면 살려준다는 보장은 있나?"

"...일단 팔 하나는 자르고 시작해야겠네. 검 쓰는 손이라도 간수하고 싶으면 빨리 말하는 게 좋을.."

-푹!

"시간 낭비는 충분히 했나? 여유부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니 다음 장소로 움직이지."

플로라가 심문하던 무인의 미간을 꿰뚫어 즉사 시키며 플로라를 강제로 일으켰다.

눈빛에서 불쾌감을 전혀 숨기지 않는 모습.

"착각하지 마라 플로라.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정해진 구역을 청소하는 거지 네 원수를 갚는 게 아니니."

"..."

-꽈아악

플로라가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설마 여기서 폭발해주려는 건가?'

그렇다면 자신은 오히려 환영이었다.

순혈 뱀파이어인 로드의 관심을 조금 받았다곤 하나 고작해야 반푼이인 년에게 당할 리가 없고

먼저 검을 휘두른 건 저쪽이니 명분도 이쪽에 있었다.

상황을 잘만 꼰다면 플로라가 생전의 정 때문에 적들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아군에게 검을 휘두르며 배신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어쩔 테냐 반푼이.'

리그레타는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도록 마력회로를 가열하며 플로라가 폭주하길 기다렸지만

"..."

-철컥

-휙!

감정을 진정 시키는 데 성공했는지 말없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앞쪽으로 걸어갔다.

'아쉽군.'

잘하면 귀찮은 년 하나는 치울 수 있었는데.

리그레타는 혀를 차며 달궈놨던 마력회로를 다시 진정 시켰다.

플로라가 여기서 한번 날뛰어주길 바랬지만 그러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저 성질머리를 생각하면 조금만 더 자극해주면 한번 사고를 치는 순간이 생길 테니 그때를 노리면 된다.

그러나 리그레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방금 목숨을 건진 건 오히려 자신 쪽이었고

플로라가 날뛰지 않은 건 그녀의 원수를 만났을 때를 대비해 힘을 조금이라도 비축해두기 위해서였지 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는 걸.

* * *

-타닷! 탓!

'젠장 연기가..!'

적들을 피해 무림맹 본부까지 달려가는 와중에도 화재는 점점 더 확산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다 보니 건물을 만들 때 쓴 재료들이 대부분 불에 잘 타는 재질이라 화재가 그칠 기미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강가에서 물이라도 끌어와서 부어버린다면 모를까 흡혈귀들이 사람들을 습격하러 돌아다니고 있는 와중에 한가하게 건물에 불이나 끄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재산이 중요하다고 해도 일단 살고 봐야지.

-꽉

급하게 옷을 조금 찢어 구한 천쪼가리로 코를 가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금방 파악했을 터.

무림맹 본부쪽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을 테니 화재도 어떻게든 대처했을 거다.

'비라도 내리면 조금 나을텐데..!'

천지신명이라는 양반은 평소엔 쪼잔한 걸로 천벌도 내리더니 정작 이럴 때는 비 한방울도 안 내려준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가만히 보면서 즐기는 성격은 아닐 테니 나름의 사정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삑! 삑! 삑!

'상점창은 또 왜 안 열려..!'

비를 내리는 마도구라거나 지금 도망칠 때 도움이 될만한 거라도 사보려고 상점창을 호출해도 열리지 않는다.

속으로 성녀님을 호출해도 마찬가지.

천지신명이나 성녀님이나 둘 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뭔가 일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걸 느끼면서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다가

-투둑 툭..

"...?"

빗방울이 손을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어찌저찌 구름이 모여서 비를 내리고 있기는 했지만

'소나기 정도인가..?'

화재가 확 그칠 정도로 시원한 물줄기는 아닌 게 느껴졌다.

아마 길어봐야 5~10분 정도면 그칠 것 같은 미약한 빗줄기.

그래도 이거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냥 놔두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불길의 확장세가 조금은 줄어들 테니까.

구름을 보던 고개를 다시 내려 당아영쪽을 바라보자 당아영이 어느새 걸음을 멈춘 채 골목 벽에 등을 기대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ㅅ.."

[쉿.]

무슨 일 있나 물어보려는 순간 들려온 전음.

당아영의 표정이 지금 상황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당아영의 전음.

[...지나가야 하는 쪽에 적이 있어요.]

"..."

"...그리고 저쪽이 이쪽을 눈치챈 거 같고요."

-저벅

당아영의 전음과 함께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강한데요?"

"...검강을 두르고 있어요."

"..."

절망적이었다.

눈에 보일 정도의 검강을 다룰 수 있다는 건 최소 초절정이라는 거고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당아영의 경지는 절정.

그것도 이미 상대에게 기척을 들키며 주특기인 암습까지 봉쇄당한 상태였다.

압도적인 전력차.

-스르릉

검이 공기와 스치며 나는 소리가 마치 사신의 예고처럼 우리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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