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87화 (187/250)

[187화] 10장-전쟁

-쾅!!

서둘러 천막 밖으로 빠져나오자 이미 주변은 난장판으로 변한지 오래였다.

지속적으로 터지는 폭탄에 의해 천막을 비롯한 목재 자제들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곳곳에서 눈이 붉게 물든 혈교의 종복들이 그렇지 않은 무인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그들의 힘에 물들게 되면 힘이 훨씬 강력해진다.

이미 죽은 몸이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사라져 더 위험하게 전투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목을 베어버리지 않는 한 웬만한 상처는 쉽게 회복하는 재생력. 그리고 내공과는 다른 이계에서 비롯된 힘까지 더해져 그 무력은 사실상 경지가 한 단계 올라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하핫!! 죽어라 이 망할 위선자 놈들!!"

"우, 우와악!!"

-서걱

'일단 한 놈.'

우선 가장 가까이 있던 눈에 띄는 적을 하나 베어 넘기고 그 도끼에 찍히기 직전이던 무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황한 건 알겠지만 빨리 일어나서 무기부터 드세요.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앉아있으면 죽으니까."

"네, 넷!"

이 이상 도와주기엔 전장의 상황이 너무 나빴다.

그를 뒤로하고 바로 몸에 번개를 휘감았다.

-파지직!

가볍게 하늘 높이 도약해 주변을 살피자 전황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침투한 뒤 일을 터뜨렸는지 이미 곳곳에서 칼부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목을 베어야 해!! 이 녀석들 작은 상처는 금방 재생한다고!!"

"2인 1조로 상대해!! 지금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는 놈들은 무림맹에서 영구재명당할줄 알아라!!"

다행히 미리 귀뜸해둔 이들이 상황을 잘 수습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지휘관으로서 소질이 없는 건 알고 있다.

경지가 높은 것과 전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고 지휘관이 아닌 자신이 전장에서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적장의 목을 베는 것.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계의 마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비틀린 성격을 생각하면 여기까지 와서도 어딘가에 숨어서 인간들끼리 죽고 죽이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겠지.

설마 사파놈들을 흡혈귀로 만들어서 싸우게 만들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어느쪽이 이기던 손해를 입는 것은 인간 쪽이다.

결국 그의 본대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고 전장에 생길 시체는 모두 인간이었던 것들일 테니까.

"후우우우.."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주변 일대의 모든 구름을 하늘로 끌어모았다.

이미 혈교에 감염된 이들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그 근원을 제거하는 게 조금이라도 흘리는 피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우르릉

비를 머금은 구름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떨리다 순식간에 머금고 있던 빗방울을 지상으로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기상현상은 아니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눈이 붉게 물든 사파인들을 해치우는데 바쁜 무인들에게 그런 거에 신경 쓸 여력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그냥 비가 오는구나 하고 말겠지.

-후두둑

-파스슥

빗방울이 내리며 자연스럽게 폭발로 인해 여기저기서 몸집을 키우고 있던 화재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걸 노린 것도 의도에 있긴 했지만 비를 내린 의도는 화재 때문이 아니었다.

-투둑.. 툭..

의식을 넓게 퍼뜨려 빗방울의 울림에 의식을 집중한다.

곳곳에서 들리는 칼 부딪히는 소리. 비명소리. 기합소리. 익숙한 중원의 내공과 익숙하지 않은 이계의 기운.

미약한 잔챙이들의 기운은 흩어내고 조금씩 조금씩 그 근원을 찾아서 올라가면

-번뜩!

"거기냐!"

-파지지지직!!!

찾았다.

기운을 감추고 있지만 실제론 이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합쳐도 수십 배는 더 많은 이계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는 수상한 자를 발견했다.

-파앙!

곧바로 몸에 번개를 휘감고 그쪽을 향해 전력으로 돌진하며 당장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격을 준비했다.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일격필살로 끝낸다.'

한번에 끝내지 못하면 귀찮아진다.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자다.

도망가게 뒀다간 다시 이 지루한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번개에 감싸여 움직이자 순식간에 수상한 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전장의 분위기와 걸맞지 않는 고귀한 분위기의 아가씨.

겉으로 보이는 눈은 검은색이었지만 자신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도저히 중원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그녀의 주변을 넘실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달려오는 것을 눈치 챘는지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미 내 검은 그녀의 지천까지 도달한 뒤였으니까.

"흐압!"

-파지지지지지직!!!!

-콰과과광!!!

작렬하는 푸른 섬광과 함께 구름에서도 순식간에 수차례 번개가 내려 꽂혔다.

제대로 맞는다면 절벽도 가볍게 무너트리는 일격이다.

아무리 이미 죽은 뒤 움직이는 시체라고 하더라도 육편 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소멸할 정도의 위력.

그러나 번개에 의해 피어오른 연기와 먼지가 걷히기 전에도 느낄 수 있었다.

"휴~ 하마터면 인사도 못하고 그대로 죽을뻔하지 않았나. 아무리 적이라도 통성명 정도는 하는 것이 예의이거늘."

-까득

죽지 않았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팔 한쪽이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곧 일어날 상황 쯤은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슈르르륵

"어쩐지 갑자기 비가 내리더니 이걸 이용해서 찾아왔나? 하여간 성녀라는 놈들은 어느 세계나 귀찮게 하는군."

그녀의 팔이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기운에 감싸이더니 마치 새 팔이 돋아나기라도 한 듯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손으로 변모했다.

"아쉽구나. 에르델 그 계집이었다면 신성력으로 상처를 지져서 재생도 못하게 막은 다음 천천히 압박해왔을텐데. 신성력도 못쓰는 성녀라니. 옛날에 들었으면 말도 안되는 농담으로 취급했을지도 모르겠어."

"...당신이 말하는 신성력은 애초에 다른 세계의 신의 기운이니까요."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내가 태양 아래를 걷지 못하게 만든 것도 그 여신년의 저주였으니 세계가 달라서 적용되지 않는 것일지도. 말이 같은 태양이지 아예 다른 항성일테니까."

-파직!

"말하는 도중에 목을 노리다니. 아무리 미개한 세계라고 하지만 성녀라는 자가 자존심도 없나?"

"칫."

조금만 더 깊었으면 벨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

-후두둑

"당신한테 밝힐 이름따위 없어요. 당신에게 차릴 예의는 더더욱 없고요."

"자존심 센 여자는 인기가 별로 없다만?"

"하, 이미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으니 걱정 마시길."

"의외군. 남편이 고생 좀 하겠어."

-탓!

그들 사이에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여소천의 무기는 검.

그 말은 상대가 거리를 벌리게 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더욱이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여소천이었다.

결국 시간을 끌수록 인간들만 더 많이 죽어나가게 될 테니까.

-파지지직!!

판단을 내렸으니 행동은 빨랐다.

여소천은 푸른 번개에 휩싸여 바르슈타인에게 달려들었고 바르슈타인이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나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그리고 그 시각 섬서에서도 결코 웃기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쾅! 콰앙!

"왜 무협배경에서 폭탄을 던지는건데에에!!!"

"조금만 더 버텨요! 무림맹 본부까지만 가면 안전할 거에요! 적어도 거긴 무인들이 많을 테니까..!"

-타다다닷!

아니 이 시대에도 벽력탄이라거나 화약 무기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저거 100% 마도구라고!"

"네? 못 들었어요! 주변이 시끄러워서!"

"소저한테 한 말 아니에요!!"

집에서 검후님과 여소천이 무사하길 빌며 얌전히 책이나 읽고 있던 순간 갑자기 주변에서 커다란 폭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구였다면 '아 뭐야 평범한 폭탄테러단체구나 난 또 뭐라고' 하면서 그대로 할걸 했을 수도 있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여기가 어딘가.

섬서다.

무림맹 본부는 물론이요 구파일방, 오대세가 등 중원에선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그런 세력들의 중심지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폭탄테러?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그걸 알고도 이런 간 큰 짓을 저지를 정도로 막강한 세력이 저지른 일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이런 짓을 저지를만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혈교.

당아영과 나는 빠르게 최소한의 물건을 챙기고 무림맹 본부까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캬아아아악!!!"

"꺼져!!"

[부정한 것을 불태우는 태양빛]

"끄이야아아아악!!!"

-화르륵!

주변 거리는 이미 난장판이 된 지 오래였다.

폭발의 여파인지 곳곳에서 화재가 일어났지만 당장 그걸 끌 여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 점점 불길을 키워나가고 있었고

눈이 붉게 물든 옛날에 당아영과 함께 토벌하러 가서 봤던 흡혈귀 같은 것들이 거리 곳곳에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처음엔 당아영도 그것들을 해치우고 사람들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도망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현재 상황에서 제일 안전한 곳으로 추정되는 무림맹 본부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헤엑..! 헤엑...!"

"쓰러질 거 같으면 말해요!"

"아직.. 버틸만.. 해요!"

내 체력을 생각하면 당아영이 업고 달리는 게 빠를 수도 있겠지만 당장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

당아영이 나를 업으면 잘 안는다고 해도 한 손은 봉인되어버린다.

더군다나 당아영은 손을 움직이는 게 중요한 암기가 주특기니 나를 업으면 위험성이 크게 올라가게 되어버린다.

내가 10살도 안되는 애도 아니고 고작 달리는 거 힘들다고 그런 위험한 일을 일으킬 순 없는 상황.

'다리가 풀릴 때까지 버텨봐야지.'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곤 하지만 당아영도 인간이다.

잘못하다간 정말 둘 다 죽을 수도 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태양빛을 내뿜은 뒤 충전 시간에 들어간 브로치를 손에 꽉 쥐며 젖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 달렸다.

맨날 이 세계가 위험하다고만 했지 이 정도로 죽음이 코앞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상황에 처한 적은 없던 거 같은데.

'갑자기 장르가 아포칼립스 재난 스릴러로 변했어.'

힘을 쥐어 짜내며 고개를 들어 건물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경치를 보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다리가 풀릴뻔한 장면을 목격했다.

"어? 어? 어어??? 소, 소저! 저거 봐요!!"

"왜요?! 적이에요?!"

"아, 아니!! 저기 저거!!"

나는 다급히 손을 들어 내가 본 곳을 가리켰고 당아영도 그쪽을 바라보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매화향이 난다는 소문과 달리 산 대부분이 돌로 이루어져 삭막한 분위기를 주지만 그럼에도 간간히 경치 보는 재미를 주었던 섬서의 자랑.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화산(華山)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