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10장-사파
사파란 일반적으로 정파와 반대되는 문파들을 일컫는 말로 적어도 겉으로는 정의를 표방하고 대외적인 인식을 중요시하는 정파와 달리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한 이들이다.
대표적인 세력으론 녹림이나 장강수로채, 하오문 등이 있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게 다라는 것.
기본적으로 사파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범죄 하나둘 정도는 저질렀거나 저지를 생각이 만만이라는 건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믿고 등을 맡긴단 말인가.
정파의 고지식하고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정파에 소속되지 못하는 이들도 차라리 떠돌이 무사가 되거나 적당히 작은 문파에 들어가면 들어갔지 사파 문파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장 대표적인 세력이라는 녹림이나 장강수로채도 결국 조직화된 도적 무리인 현실에 그 축에도 못 드는 작은 문파들은 사실상 힘들게 익힌 무공으로 정파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구석진 마을 몇 개를 무력으로 수탈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깡패에 가까운 게 현실이니..
결국 현재 사파의 현실적인 모습은 성격 상 정파는 도저히 못하겠는데 그렇다고 떠돌이는 되기 싫은 무인들의 모임에 불과했다.
그것도 언제 보다 못한 관군이나 명성을 드높이는데 안달이 난 고수들의 눈에 띄어 쓱싹 당할지 모르니 선을 잘 지켜야 하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 여기 그런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뻑뻑
"젠장 수입이 저번 달보다 줄었잖아."
정파 세력이 득실거리는 대륙 중앙과는 훨씬 떨어진 어느 지역.
철혈문이라는 작은 문파를 이끌고 있는 그는 곰방대를 피우며 손에 든 장부를 불만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야. 근데 이거 정확히 얼마나 줄어든 거냐? 내가 숫자 좀 적당히 쓰라고 하지 않았냐?"
"형님. 장부에 숫자를 안 쓰면 그게 장부입니까?"
-팍!
"악!"
"형님은 새끼야. 문주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누가 말대답하래. 내가 숫자 읽을 줄 모르는 거 몰라?"
"그러니까 숫자도 모르는 양반이 왜 장부를 보겠다고 설쳐서.."
-빡!
"악!"
"안보면 니가 횡령을 하는지 안 하는지 내가 모르잖아 새끼야."
문파라기보단 깡패 조직에 가까운 모습.
사파라는 성격과 문파 구성원이 다 합쳐서 1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문파라는 것까지 겹쳐져 생긴 어쩔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름 몇 달 동안 같은 밥을 먹고 지내면서 생긴 정은 있지만 정은 어디까지나 정.
언제 서로 자는 사이에 칼침을 놔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서로 격식을 차리는 일은 없었다.
"3할 정도 줄었다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왜 줄었는데?"
"요즘 근처에 무림인들이 많이 지나다닌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괜히 눈에 띄어서 시비라도 걸릴 까봐 조심하다 보니 몇몇 구역은 수금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다른 애들은 그래서 지금 밖에 나가있고요."
"그 새끼들은 할 것도 없나 왜 이런 시골을 지나다닌대.."
-뻑뻑
겉으로 보기엔 상당한 덩치와 근육을 자랑했지만 실상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조금씩 병들어가고있는 몸.
사내 본인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걸 끊을 생각은 없었다.
'끊고 오래 살 바에 그냥 좆대로 살다가 일찍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한참 잘나가는 무인들과 다르게 언제 잘못 걸려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생이다.
그냥 하루하루를 제대로 즐기다 가는 게 사내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었다.
"아 문주님. 그러고 보니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신투라는 양반의 비고가 발견됐다던데 아마 그거 때문에 무인들이 많이 이동하는 모양입니다."
"아서라. 우리는 가봤자 콩고물도 못한 먼지도 못 주워 먹어."
"누가 가자고 했습니까. 저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압니다. 큰일 날 소리를."
"그래. 내가 늘 말했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가서 제대로 살아남을 실력도 없는 주제에 괜히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겠다고 그런 델 가는 건 그냥 개죽음이다.
삶에 의욕이 별로 없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사내는 이미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으니 딱히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난 들어가 있을 테니까 혹시 웬 여자가 찾아오면 내 방으로 들여보내라."
"또 창녀 부르셨어요?"
"이번에 쌔끈한년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길래 한번 불러봤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 양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아주 잘 빠진.."
-벌컥!
"여기가 철혈문인가?"
사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한 여성이 그들의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긴 흑발에 어딘가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는 붉은 눈.
기품 있어 보이면서도 중원의 것처럼은 느껴지지 않는 이색적인 복장.
눈이 잠깐 닿은 순간 잠시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의 절세의 미인이었다.
두 사내는 대화를 멈추고 여인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서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미쳤는데요? 저런 여자가 왜 몸을 판답니까? 어디 아가씨 아닙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뭐 집안이 몰락했다거나 그런 거 아닐까?"
"가격은 똑같은 거 맞죠? 보통 창녀들보다 3배는 받겠는데."
"똑같던데? 신입이라서 싸게 해줬나 보다."
사내들은 여인을 그들이 불러서 온 창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여인이 이런 곳을 올 일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오해였다.
하물며 저렇게 예쁜 여자가 몸을 팔러 온 게 아니라면 소문도 뒤성성하고 사내밖에 없는 이곳에 무슨 이유로 들어오겠는가.
"가슴이 작은 게 조금 아쉽네요. 저 정도면 작은 게 아니라 아예 없는 수준.."
"아까부터 무슨 대화를 그렇게 속닥대는 것이냐. 손님이 왔는데 바로 나와서 대접하진 못할망정."
여인은 부채를 펼치며 인상을 찡그렸다.
"오늘은 저런 설정입니까?"
"나는 따로 요청한 적은 없는데.. 그 양반이 교육한 건가?"
그 모습을 보고 사내들의 오해는 더 쌓여갔고 잠시 후 문주라고 불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인에게 다가왔다.
"이봐. 덕춘이가 보내서 온 거 맞지? 돈은 이미 내놨으니까 바로 방으로 가자고."
"...뭐냐 그 촌스러운 이름은."
"응? 몸 팔러 온 거 아니었어?"
"몸을 판다라.."
여인은 잠시 동안 머리 속에서 자신이 중원 말을 제대로 공부했던 게 맞나 고민했고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의미가 맞다는 걸 깨닫자 웃음을 터뜨렸다.
"풉.. 푸흡..아하하하!"
"뭐, 뭐야 갑자기 왜 웃어?"
"재밌구나. 이 몸을 창녀 취급할 줄이야. 재밌어 보여서 여인의 몸으로 변해보긴 했지만 설마 이런 취급을 받아볼 줄은.."
'뭐지? 미친년인가?'
창녀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곤 혼잣말을 하는 여인을 보며 사내의 머릿속에 한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원래 부잣집 아가씨였는데 집안이 몰락해서 몸이나 파는 신세로 전락하고 자기 신세가 안 믿겨서 정신이 나갔다고.
'아직 젊고 얼굴도 예쁜 년이 안타깝게 쯧쯧.'
동정심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돈은 이미 낸 상황.
기왕이면 오랜만에 처녀나 좀 따먹게 처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여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서걱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이 몸에게 손을 대는 것이냐."
"어..?"
순식간에 잘려나간 다섯 손가락 보자 뒤늦게 올라온 고통에 손을 부여잡았다.
"으아아아아악!!!!"
"혀, 형님?!"
"시끄럽다. 손바닥은 남겨주지 않았느냐. 목청은 좋은 게 나보단 2군단장이 더 잘 써먹었겠어."
"이, 이 씨발년이!"
"호오."
-싸아
사내는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긴 했지만 상대는 순식간에 자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손가락만 날려버릴 정도의 고수였다.
그리고 그런 이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는 건 생존엔 전혀 도움이 안됐다.
"사, 살려주십쇼.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드리겠습니다."
힘 만으로 이런 작은 사파 문파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아니다.
머리는 나쁘더라도 생존 본능에서 기인하는 눈치와 상황 파악 하나 만큼은 일류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흠. 최소한의 눈치는 있구나. 보통은 눈이 돌아가서 주먹을 휘두르던데."
"제, 제가 먼저 귀한 분을 몰라뵙고 실례하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원래 시귀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네게는 피를 주지."
"예?"
사내가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사이 그의 입 속으로 여인의 피가 몇 방울 들어왔다.
이번에도 그가 인지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입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 이변은 찾아왔다.
-빠득! 빠드득!!
"끄아아아아악!!!!"
"버틸 수 있다면 네놈도 흡혈귀가 되겠지만 못 버티면 피 웅덩이로 변하겠지. 잘 해 보거라."
여인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멀쩡히 살아서 돌아온 한 장난감을 생각하며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감히 이 몸을 창녀 취급한 것은 괘씸해서 말이야."
"끄으으으아아아아아악!!!!!"
"여인으로서의 쾌락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몸은 눈이 조금 높거든."
사내가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여인은 어느새 오줌까지 지리고 덜덜 떨고 있는 다른 한 명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덜덜덜덜
"으..아아.."
"두려워하지 말거라. 아직 네놈에겐 쓸모가 있으니."
사내는 공포에 질려 여인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에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눈이 붉게 변해있었다.
"크르르.."
"생각해보니 시귀를 만드는 것도 꽤 오랜만이구나. 말은 할 수 있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흠. 다행히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모양이야."
여인은 그렇게 말하곤 뒤를 돌아 어느새 비명이 그친 사내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사내는 온데간데 없고 어마어마한 양의 피웅덩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흠. 이 세계의 인간이 특이한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고."
혹시나 해서 지금까지 오면서 들른 다른 문파에서도 똑같이 피를 먹였었는데 결과는 전부 똑같았다.
아무래도 그 계집이 특별했던 게 맞는 모양이었다.
바르슈타인은 잠시 피 웅덩이 앞에 쪼그려 앉아 피를 찍어 먹어보더니 맛이 별로였는지 곧바로 뱉었고
"자, 네놈이 아는 다른 문파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이 몸도 빨리 끝내고 쉬고 싶으니."
"알겠..습니다.."
"다른 곳은 그래도 10명 정도는 있었는데 겨우 2명이라니 이래서야 걸어온 시간이 아깝군."
시귀로 변한 사내를 데리고 피웅덩이가 남아있는 철혈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