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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84화 (184/250)

[184화] 10장-아쉬움

신투의 비고가 있다고 알려진 곳에는 이미 수많은 무림인들이 모여있었고 이후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치고 아직 이렇다 할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신투의 비고의 입구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이곳에 신투의 비고가 있다는 소식에 다들 헐레벌떡 달려오긴 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는' 입구가 발견되지 않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미리 뒤집어 놓길 잘했어.'

아무리 곤륜 안에서 지낸 시간이 길다 하더라도 여소천도 강호에 닳고 닳은 무림인이었다.

이 혈기 왕성한 무림인들이 비고의 입구가 떡하니 있는데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있을 거라고는 단 1푼 만큼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번 일을 일으키기 전 미리 주변을 한번 뒤집어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놨다.

모인 이들이 입구를 찾겠다고 삽을 들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건 막을 수 없지만 크게 뒤집어 놨으니 적어도 2주 정도는 파헤치지 않으면 입구가 드러날 일은 없을 거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신투의 비고를 미끼로 혈교를 끌어들이는 것이지 비고를 두고 무림인들끼리 칼부림을 일으키게 두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혈교를 상대로 같이 싸워줘도 모자랄 마당에 자기들 손으로 수를 줄이게 두는 건 최악의 악수였다.

혈교만 제대로 정리하는데 성공한다면 그 이후엔 비고 때문에 치고 박고 싸우던 칼부림이 나던 알 바 아니었다.

원래 중원은 그런 세상이었고 신투의 비고도 어차피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운명이었으니 자신이 필요에 의해 조금 앞당겼을 뿐

중원에서 좀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피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기존의 혈교와의 전쟁 이후 뒷수습 때문에 조금 평화로웠던 감이 있던 거지 그녀가 한참 젊었을 시절엔..

"여소천. 거기 있나?"

"알면서 왜 물어봐요."

"그래도 예의라는 게 있지 않나."

"뭐, 됐으니까 들어와요."

여소천이 옛날 생각을 하던 도중에 마침 그녀와 동시대의 인물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가 서로의 기감을 한참 전에 느껴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을 것 같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건?"

"한잔 할래요? 마침 혼자 마시려니까 조금 심심했는데."

검후가 여소천의 손에 들려있던 물건을 지적하자 그녀가 웃으면서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들었다.

"그대가 술을 즐겨하는지는 몰랐는데."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마는 정도에요. 근데 요즘은 누구 때문에 자주 마시다 보니 맛이 꽤 괜찮더라고요?"

"...취하지도 않을 테니 괜찮겠지."

어차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일어나더라도 술기운 따위 순식간에 흩어버릴 수 있는 그들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잔을 받아 들었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피식

"그때 헤어질 땐 이렇게 만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요. 어쩌다 그런 남자한테 홀려 가지고.."

"아직도 그런 감정이 남아있을 줄은 나도 몰랐네. 젊었을 때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이제 와서 느끼게 될 줄이야."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부군에 대한 화재로 넘어갔다.

"그래도 당신 정도면 들이대는 남정네는 제법 있었을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 놈이 한 명도 없었어요? 옛날 용봉지회때 당신이 모습 드러내는 것만 기다리던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리고 그대는 화산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여기는 건가. 그런 일 따위 없었네."

"하긴, 도사라는 게 그럴 땐 편하긴 해요. 그쵸?"

"딱히 그걸 원하고 이 길을 걸은 건 아니다만.."

여소천이나 검후나 서로 이렇게 마음을 트고 옛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이제 세상에 한 명 밖에 없었다.

검을 휘두를 줄만 알지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그나마 친구라고 할 수 있는 20년 전의 전우들도 지금은 다들 흙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그러는 그대야말로 그때 시선이란 시선은 다 받아가지 않았던가. 웬 어린애가 나왔다고."

"딱히 나이를 속인 적은 없어요? 멋대로 상대가 어리다고 착각하고 수를 양보해준 거지. 그중엔 실제론 오히려 저보다 어린 놈도 있었는데 말이죠."

"덕분에 평생 외형만으로 상대를 파악하진 않게 됐겠지. 인생의 교훈 값으로는 싸겠군."

"글쎄요.. 그 뒤로 검을 다시 잡았을련지.."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상대를 절대 봐주는 성격의 그녀가 아니었기에 상대가 적지 않은 굴욕을 당했을 거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기왕 옛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요."

"뭔가?"

"당신 섬서에서 떠나기 전에 하려던 말이 당신 제자에 대한 거였죠? 돌아오면 당신 제자가 했던 일에 대해 고백하겠다고."

"...!"

검후는 여소천의 말을 듣고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 알고 있었군."

"뭐 그런 능력이니까요."

"혹시 그에게도 말 했나?"

"아뇨. 당신이 직접 얘기하려는 거 같아서 말 안 했어요."

사실 딱히 말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기도 하다.

그가 딱히 옛날에 있던 일을 궁금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안다고 해도 그의 성격 상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의 감상만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냥 딱 궁금증이 해결된 정도.

단전이 망가진 건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직접 당한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 덕분에 그 여자의 손에 거두어져서 치료도 받고 나름의 재주도 배웠으니 어쩌면 나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멀쩡한 단전이 다치지 않았더라도 그가 그 외모와 허약한 몸으로 중원에서 무사히 살았을지는..

'뭐 다른 천기 이야기는 이쯤하고.'

자신이 속한 천기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가능성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그 시점에 자신은 애초에 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걸 생각해서 뭐하겠는가.

"...고맙네. 내가 직접 말할 기회를 남겨줘서."

"뭘요. 당연히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인걸요."

그런데 저 고지식한 여자의 착각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이다.

본인은 본인이 제자 간수를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심지어 그 충격으로 기억상실증까지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 그녀의 제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도 못했을 거고 애초에 기억상실증도 아니다.

'그렇다고 겉 껍데기만 똑같은 거라고 말할 수도 없고.'

원래 그 몸의 주인이었던 소년이 어떻게 됐는지는 그분이 알려주지 않으셔서 자신도 모르지만 그가 지구라는 이세계에서 와 그 몸에 안착하게 된 이방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문제는 이걸 검후에게 알려주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천기를 읽어봐도 가능성이 너무 여러가지라 그중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직접 실행해보기 전엔 모른다.

그런 도박을 할 바에 그냥 계속 모르는 채로 두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심정이라 당장 진실을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괜히 진실을 말했다가 주화입마에 걸릴 가능성도 절대 낮지 않은 편이었으니까.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 망할 제자라는 년을 어떻게든 데려와서 깔끔하게 삼자대면을 한번 시키는 거지만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

여러가지 감정이 쌓인 탓에 이제 사제관계라는 말보다 철천지 원수라는 관계가 더 와 닿는 상황까지 됐다.

이미 흡혈귀 쪽으로 완전히 넘어간 제자 쪽은 기회만 된다면 스승의 목에 칼을 꽂아버릴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 찬 상황.

구름으로 정보를 얻는 건 끊긴지 오래였지만 그 미친년에게 그 사이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리는 없으니 아마 예전에 봤을 때 그대로라고 생각해도 문제 없을 거다.

그러면 스승 쪽은..

"...아직 아쉽긴 하죠?"

"뭐가 말인가."

"당신 제자요. 어떻게든 잡아서 그이 앞에 무릎 꿇리고 사과 시키고 싶은 마음 아니에요?"

"..."

아마 이쪽일 거다.

이 여자는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그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그 죗값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악인을 토벌할 때도 그렇게 행동해서 옛날에 이 여자한테 토벌 당한 다음 죗값을 치루고 새출발에 성공한 사람도 제법 많았다.

이 여자가 망설임 없이 목을 벨 때는 상대가 반성할 기미가 없거나 도저히 갱생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정도.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이 목을 베었지만 되살아난 제자를 보고 옛날에 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으리라.

그리고 아무리 고지식하다곤 하지만 결국 이 여자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어릴 때부터 자식처럼 여기며 키웠던 제자를 다시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을 거다.

갱생 시킬 수 있다면 시키고 싶겠지.

지금 상태로 그게 힘들 뿐.

"...왜 아니겠나. 저번에 만났을 때도 제압한 뒤에 어떻게든 시도해볼 생각이었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죠? 빛이 번쩍 하면서."

"아마 혈교의 수법이겠지. 사람을 다른 장소로 이동 시키는 이상한 진법은 그 전에도 본 적 있었네."

'쯧.'

그때 얌전히 제압 됐었으면 지금 이렇게 곤란해질 것도 없었을텐데.

"...혹시 내가 마음이 약해질 걸 걱정한다면 걱정하지 말게. 만일 소연이가 이번 전장에 나타난다고 해도 마음이 약해지진 않을 테니까. 이 정도로 중요한 장소에서 일의 순서를 혼동할 정도로 내 경험은 얕지 않네."

"...알았어요."

원래 제자 얘기를 하려던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화의 흐름이 이쪽으로 향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어서야 원래 하려던 말도 못한다.

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마침 누군가 다급하게 천막을 두드렸다.

"처, 청뢰검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사, 사파 놈들이!"

"...하아."

하여간 이놈의 무림인들은 하루도 얌전할 날이 없다.

절로 머리가 아파오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탈출하기엔 딱 좋은 화재였다.

"저는 저 사고뭉치한테들 좀 갔다 올게요."

"...그러면 나도 슬슬 돌아가 보겠네."

"그리고 혹시 뭐 고민거리 생기면 숨기지 말고 털어놓으세요.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신경 써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거 같으니까."

어색한 분위기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방치해둘 순 없었다.

괜히 상대하기 힘들다고 방치해뒀다가 더 큰 폭탄으로 변할 수도 있는 노릇.

앞으로도 한참은 더 봐야 할 사이이니 미리미리 관리해주는 게 좋았다.

-피식

"옛날엔 그대가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던 것 같은데. 이런 걸 두고 격세지감이라고 하는 건가?"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낸 건 그대가 먼저였네."

"...에잇!"

-펄럭!

특별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천막 문을 거세게 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괜히 걱정했네.'

상태가 불안정해 보여서 신경 좀 써주려고 했더니 아주 멀쩡하다.

그러니까 이 분함은 그 큰일 났다는 놈들한테 해소해야겠다.

사파 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든 정파 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든

'일단 다들 엎드릴 준비부터 해라.'

-파직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명령을 귓등으로 듣는 놈들은 우선 혼 좀 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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