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10장-탐색
"..운명의 상대 말인가?"
"네. 운명의 상대 말입니다."
천마는 내 말을 듣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운명의 상대라면 반려를 말하는 건가?"
"꼭 반려에 한정된 건 아닙니다. 평생을 함께할 친우가 될 수도 있고.. 동료가 될 수도 있고 스승과 제자 등등 인생에 있어서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까이 지내게 될 인물 말입니다."
"호오.."
아무래도 흥미를 끄는 덴 성공한 것 같았다.
솔직히 어떤 사람이 안 궁금할 수 있을까.
아무리 천마라고 해도 운명의 상대라고 하면 궁금할 수밖에.
"그래도 절반 이상은 반려가 나타나긴 합니다. 보통 가장 가까운 상대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반려니까요."
"그러면 내 반려가 누군지 알려주는 건가?"
"누군지 정확하게 말씀드리는 건 어렵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외형이나 단편적인 정보 정도라.. 뭐 사는 지역 정도는 추측할 수 있겠죠."
"그건 조금 아쉽구나."
"뭐 천기를 읽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운명의 상대가 누군지 완벽히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알려주면 천기누설이 되니 운명이 망가져 버린다.
그 운명의 상대를 만나러 간다고 해도 정말 사이가 잘 되진 않을 거라는 말이다.
어차피 확정된 미래라는 건 없으니 완벽히 알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노릇이지만.
'그나저나 말하고 나니까 나도 궁금하네.'
천마의 운명의 상대?
그게 반려든 친구든 궁금하긴 하다.
척 보니까 친한 사람도 별로 없는.. 솔직히 말해서 히키코모리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라 과연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기는 할지 의문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 아무도 안 나타난 사람은 없었으니까.
'상대가 아예 없으면 어떻게 나오는 거지.'
이 시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적어도 한명쯤 나올 사람이 있던 것 같은데 이런 경우엔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제대로 나오면 좋겠는데.'
누구라도 일단 나와야 내가 할 말이 생기지 않는가.
혹시 아무도 안 나오면 '운명의 상대가 안 계시네요. 안타깝게 됐습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
-부들부들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천마 앞에서 대놓고 평생 솔로로 살 운명이라고 말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무사하길 바랄 리가 있을까.
혹시 정말 아무도 안 뜨면 적당히 변명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품속에서 구슬을 꺼냈다.
간단히 점을 보는 것 정도는 목패로도 되지만 이런 건 구슬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받아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발동시킬 때 빛을 내는 것 때문에 비싼 야명주라고 오해 받을 까봐 가급적 잘 쓰진 않지만 천마가 고작 야명주 하나를 탐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주변에 대충 떨어져있는 천마의 것으로 추정되는 긴 머리카락을 집어 구슬 위에 올려놓고 천기를 읽을 준비를 했다.
"천기를 읽는 동안 제 의식은 이 구슬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현실과 대화는 가능하겠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식이 구슬 안으로 들어간다?"
"몸은 현실에 남겨두는 만큼 연결을 통해 말하고 듣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것 외에는 불가능해집니다. 사실상 무방비해진다고 봐야죠."
"호오.."
...표정이 뭔가 불안하다.
설마 의식이 없는 사이에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은 아니겠지.
"..혹시 현실의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주화입마가 올 수도 있으니 조심해주세요."
"그런가.."
내가 의식이 없는 사이에 그대로 묶어서 납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블러핑을 쳤다.
이러면 무슨 짓을 하지는 않겠지.
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천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픽.
'...?'
뭐지. 고장났나.
구슬에서 빛이 나오다 말고 픽 꺼지는 모습을 보며 구슬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러면 안되는데.'
적어도 뭐라도 보여주는 게 있어야 변명이라도 할 거 아닌가.
이렇게 그냥 빛만 조금 나다가 픽 꺼지면 변명을 잘 해도 커버를 못 친다.
'힘 좀 내봐 구슬아.'
-툭 툭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처음 겪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구슬을 건드리며 계속해서 접속을 시도했고
-부들부들
작은 떨림과 함께 빛이 돌아오는 구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번쩍!
'..빛이 좀 큰 거 아닌가?'
평상시보다 비정상적으로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는 것.
나는 질끈 감은 눈 사이로 푸른 섬광이 눈을 찌르며 그대로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걸 걸 느꼈다.
* * *
-우우웅
'아. 들어왔다.'
혹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내 걱정과 달리 무사히 구슬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천기와 구슬의 힘을 이용해 만들어진 가상 공간.
내가 읽고자 하는 미래의 천기가 구현된 공간으로 이 안에서 나는 유령과 같은 존재라 이 안에 있는 사람과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
이 공간을 탐색해 정보를 얻는 것 정도만 가능하다는 의미지만 대신 목패로 읽을 때보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때에 따라 사용하곤 한다.
언제는 당아영이 이걸로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무공 발전의 단서를 얻는 것도 가능한 거 아니냐고 하긴 했었는데..
'내가 뭘 알아야지.'
정작 그 중간에 있는 내가 무공의 ㅁ도 모르는 사람인데 뭘 전달해줄 수 있단 말인가.
상호작용이 안되니 미래의 당아영에게 말을 걸지도 못해서 내 기준에서 뭘 보고 전해주는 것밖에 안된다.
그냥 암기를 빠르게 던졌다 정도밖에 안 보이는 내 기준으로.
'아 빨리 살펴봐야지.'
잠깐 딴 길로 샜던 상념을 다시 현실로 돌려와 주변을 살피자 꽤 큰 집이 보였다.
천마의 운명의 상대를 찾기 위해 구현된 공간이니 이 집 안에 그 대상이 있을 거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여소천이 무슨 말을 했던 거 같은데.'
헤어지기 전에 여소천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았었나?
분명 천마 관련해서 어떤 얘기를 했던 거 같은데..
'...아.'
기억났다.
가급적이면 천마의 천기는 읽지 말라고 했었지.
"....."
에이 뭐 별일 없겠지.
이미 들어왔는데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데.
가급적이면 읽지 말라고 했던 거지 절대 읽지 말라고 했던 건 아니었잖아?
'괜찮을거야. 응.'
기껏해야 천기를 읽는 것 만으로 내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거다.
적어도 미래의 기록이 현재에 영향을 끼치진 않으니까.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구슬 안으로 들어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천마라고 해야 하나.
거의 가문이 사는 집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넓은 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운명의 상대가 누구길래.'
-쿵!
집이 넓은 만큼 찾기 힘들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도중 큰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아야!!!"
"꺄아악! 오라버니 살려주세요!!!"
"너 언니가 방에 몰래 들어오지 말라고 그랬지!!"
"물건만 찾으러 잠깐 들어갔던거야!"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가보자 남매처럼 똑 닮은 4명이 대치 중이었다.
소아라고 불린 여자애는 맏오빠로 추정되는 애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고 그보단 어려 보이는 여자애가 화난 모습으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남은 남자 1명은 '또 시작이네' 라는 표정으로 옆에서 방관 중이었다.
"니가 좀 참아.. 그래도 언니가 돼서 매번 막내한테 그렇게 화를 내야겠니."
"오빠가 매번 그렇게 막내라고 오냐오냐 하니까 소아가 점점 대범해지는 거잖아!"
"좀 참아. 너도 어릴 때 그랬어. 소아도 철 들면 바뀌겠지."
"오라버니.."
-글썽글썽
정황 상 말리는 오빠쪽이 첫째. 뒤에 숨어있는 여자애가 막내. 화를 내는 언니 쪽이 둘쨰나 셋째인 모양인데 외모가 딱 봐도 천마의 자식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외모였다.
아직 다들 어려서 그런지 싸우는 게 귀여워 보이긴 했지만 다들 크면 이성 뺨따구좀 여러 번 후려칠게 눈에 훤했다.
'아니 후려치면 안되지.'
쟤네 엄마가 누군데 뺨 잘못 후려치면 죽을 수도 있다.
부디 힘 조절은 제대로 해주길.
'아직 다들 어리구만.'
천마의 자식들이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인지 싸우는 게 참 현실적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공간에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계속 애들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자리를 떠 그 남편을 찾아보기로 했다.
"봐봐! 저거 생긴것만 어리지 완전 여우라니까! 오빠 안 보이게 나한테 방금 혀 내밀었다고!"
"또 그 소리냐. 넌 매번 소아한테 왜 그러니 진짜. 소아야. 정말 그랬니?"
"난 안그랬어 오빠.."
"봐봐. 안했다잖아."
"아악!!"
'...막내가 꽤 영악한가보네.'
나중에 커서 뭘 하려고 어릴 때부터 저렇게 영악한 건지.
뭐 내 자식도 아니고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자식 걱정은 부모가 해야지.
그렇게 남매들을 뒤로 하고 집 어딘가에 있을 천마의 운명의 상대이자 남매들의 아빠로 추정되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딨지?'
있는 방을 전부 뒤졌는데 남편은 물론이고 천마 본인도 보이지 않았다.
천마의 운명의 상대를 찾아 들어온 공간에 둘 중 한 명도 안 보이는 건 말이 안됐다.
저택이 아니라 그 근처에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봐도 구슬 속 공간 안에 사람이 있을만한 곳은 이 저택 안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비밀방..?'
저택에 일반적으론 찾을 수 없는 방이 있고 그 안에 내가 찾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천마쯤 되는 사람의 집에 비밀방이 하나도 없으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정말 그렇다면 아무리 유령같은 몸이라도 단서 하나 없이 찾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밖에서 천마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니 얼마나 꽁꽁 숨겨져 있을지 모를 비밀방을 직접 찾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 천기를 운용했다.
만들기 힘들고 귀찮아서 웬만해선 아끼는 부적이지만 이럴 때 써야지 별 수 있겠는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부적을 따라 어떤 방으로 들어간 뒤
나는 깊숙한 지하로 통하는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