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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65화 (165/250)

[165화] 10장-술벗

지구에서도 그랬지만 중원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과 술을 마시는 게 그렇게 까지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서로 성별이 다를 때는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처음 만난 사이에 친해지기 위해 술잔을 나누는 것 정도는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고

해가 지고 나면 특별히 할 것도 없는 세상인 만큼 하루가 끝난 뒤 객잔에 모여서 시끌벅적 떠드는 게 삶의 낙 중 하나인 세상이니 더욱 그랬다.

나도 점집 운영할 때 말이 잘 통하는 손님하곤 자연스럽게 술 한잔 하고 그랬었다.

술이 식기 전에 적장 모가지도 따고 오는 세상인데 뭐.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천마와의 술자리는..

-알딸딸

'아으 취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있던 술자리 중 제일 좋았다.

우선 술 맛.

이건 말할 것도 없다.

무려 그 천마가 주는 술인데 안 좋을 리가 있나.

하나같이 중원에선 이름도 못 들어 봤거나 듣더라도 정말 이름만 들어보고 실물은 보지도 못해본 그런 술들 뿐이었다.

술 맛은 합격이고 그러면 분위기는?

이것도 제법 괜찮았다.

술을 즐긴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기본적으로 어두운 방이었지만 조명이라던가 장식이 적당히 보기 좋았다.

그리고 일단은 같이 마시는 상대도 절세미인 아닌가.

그 정체가 천마라는 게 문제지 술 맛도 좋고 눈도 즐거우니 마시는 맛이 훨씬 살았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예쁘긴 하네.'

아까 처음 보자마자 예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아까보다 더 예뻐 보였다.

중원에 나와서 예쁜 여자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그래도 스승님에 비하면 조금 부족했는데 이 여자는 정말 스승님이랑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준이었다.

얼굴 말고 스승님의 그 흉기를 비교해보면..

-힐끔

'...다행이네요 스승님.'

아무리 천마라도 스승님을 이기진 못했다.

말도 안될 정도로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중원 밖으로 나와서 본 여자들 중에 한 명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줄이야.

새삼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혹시 눈치챌까봐 바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얼굴 안쪽이 안보이지만 천마쯤 되는 사람의 감이면..

"어떤가. 입맛에 맞나?"

-화들짝!

"예, 예?!"

"안주 말이다. 입맛에 맞지 않다면 다른 걸 준비해오라고 하지."

"아, 아닙니다!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순간 무례한 생각이 들킨 줄 알고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설마 생각까지 들키진 않겠지만 그래도 가슴을 봤던 건 사실이니까.

'아니 근데 그러면 옷을 좀 멀쩡히 입던가..'

아까는 워낙 겁먹어서 잘 못 봤는데 이제 보니 옷차림이 꽤 위험했다.

가슴골은 기본적으로 훤히 드러나고 옷들이 전체적으로 헐렁헐렁한데 몸을 잘 가리고 있지도 않아서 조금 흐트러지면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복장으로 손님 맞이를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물론 지금은 얌전히 정좌로 앉아있는 상태라 살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대참사가 일어나는 복장이다.

'그렇다고 물어볼 생각은 없지만.'

미쳤다고 천마한테 옷을 왜 그따구로 입었냐고 할까?

그냥 자기 방이니까 편하게 입었다고 생각할 거다.

뭐 나를 유혹하려고 입었을 리도 없으니까.

"제가 원래 안주보다는 술에만 집중하는 편이라서 그럽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적절한 안주가 있으면 술 맛을 더 살려준다곤 하지만.. 그러면 술 본연의 맛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냥 술만 마시는 게 좋습니다."

뭐 실제로 안주로 갖다준 고기완자를 제대로 먹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천마의 앞이라는 분위기가 살짝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저 말도 맞았다.

'그러는 자기도 다 안 먹었으면서.'

나에게 입맛에 맞지 않냐고 물은 것 치곤 정작 본인도 얼마 먹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입 밖으로 말할 자신감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는데

"본녀와 비슷하구나."

"...예?"

"본녀도 안주보다는 술을 선호하는 편이니라. 옛적에는 좀 먹었지만.. 결국 안주는 금방 질리더구나. 술은 마셔도 마셔도 질리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더니 내 빈 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자. 본녀가 부어주었으니 그대도 부어주거라. 오늘은 이 이후로 자작(自酌)을 허락하지 않겠느니라."

-찰랑

거의 넘치기 직전까지 따라진 술잔.

"이번에도 한번에 마시겠나?"

한 손에는 자신의 술잔을.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특유의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술 같이 마실 사람으로서는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최고라고.

* * *

"짠-!"

서로 술을 따라준 뒤 잔을 부딪히고 그대로 원샷.

주변에 널부러진 술병들이 늘어날 때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별도 하나씩 늘어난다.

-빙글빙글

진짜 이렇게 마신 게 얼마만일까.

아무리 마셔도 거의 안 취하는 이 몸으로 이 정도 까지 몰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전에 검후님이랑 주점에 갔을 때 미친 듯이 마시다가 완전히 필름이 끊겼던 적이 있는데 그때 말고는 필름 끊긴 일이 없을 정도로 미친듯한 주량을 자랑하는 몸이다.

술 만으로는 무공을 익힌 당아영도 이길 자신이 있는 몸뚱아리인데..

-어질

'어우.'

어차피 앉아있는데 균형을 잡기 위해 탁자에 손을 올려놔야 할 정도였다.

금방 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태.

"왜 그러나? 잠시 쉴텐가?"

그런 내 모습과 달리 천마는 전혀 취한 기색 따위 없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창백한 색 그대로였다.

심지어 나보다 2배 이상은 마셨는데도.

'나도 진짜 술 쎈편인데.'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이미 뻗어서 쓰러지고도 남았을 정도로 마셨는데 이 정도 격차다.

아무리 무인들이 내공을 이용해 술기운을 날려버릴 수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천마쯤 되는 사람이면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오히려 취하는 게 상상이 안되는 외모와 분위기라 취하면 그건 그것대로 어색할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안 취하면 이쪽이 더 감사하다.

'괜히 취했다가 한대 얻어 맞기라도 하면 바로 이승 하직이야.'

원래 사람은 취해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는 거라 지금 이렇게 정신 멀쩡할 때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굳이 다른 모습을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다.

자칭 술꾼으로서의 자존심은 뭐..

'부릴 사람한테 부려야지.'

이대로 자존심 부리다가 정말 필름이라도 끊기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었기에 얌전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열이 올라와서.. 잠시만 쉬겠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쉬어도 좋다고 말한 적이 없다만?"

-흠칫!

"농이다. 좀 가라앉을 때까지 창밖의 경치라도 구경하고 있거라."

"가, 감사합니다."

순간 진짜 겁먹었다.

농담으로라도 저런 말은 심장에 안 좋으니까 좀 안 해줬으면 좋겠다.

벌렁거리는 심장 부위를 잡고 그녀의 말대로 창가로 향해 바람을 쐬었다.

"후우.."

-펄럭펄럭

술 때문에 몸에 올라온 열을 털어내려 망토의 앞섬을 잡고 펄럭였다.

밤의 차가운 공기가 안쪽으로 들어오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얼굴과 몸을 식혀준다.

얼굴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에 나도 모르게 모자에 손을 댔다가 흠칫 하며 다시 손을 내렸다.

'큰일날뻔 했네.'

스승님이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고만 알려주었을 땐 왜 가리고 다녀야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여자들을 홀리는 외모라서 그렇다고.

'이런 외모가 뭐가 좋다고 그러는 건진 모르겠는데..'

사실 나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아영이나 여소천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안전(?)하게 가리고 다니는 게 낫지.

괜히 얼굴을 드러내서 천마를 자극했다가 무슨 꼴을 보려고.

"하아아.."

아래에서 올라오는 술기운을 한숨으로 뱉어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

"경치는 좀 마음에 드느냐?"

"분위기가 상당히 좋군요."

"삶에서 즐길 낙이라곤 주도밖에 없으니 조금이라도 더 즐기려고 하게 되더구나. 이것도 한참을 봤더니 슬슬 질려가는 참이지만."

"그렇습니까.."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몇 년째 보고 있으면 질릴만도 하지.

방 안을 비추는 달빛을 바라보며 새삼 내가 진짜 위험한 곳까지 왔구나 생각하고 있던 도중 다시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괜찮다면 재밌는 이야기를 좀 부탁하고 싶다만."

"...예?"

"아까 듣기론 중원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사람들의 점을 봐주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이야깃거리도 꽤 많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차고 넘칠 만큼 많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이 있고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서 이딴 사람도 세상에 존재하는구나 라는 걸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꺼낼 이야기도 많지만

"이곳에서 듣는 이야기는 한계가 있어서 말이야. 군사에게 시켜서 좀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것도 영 시원찮고.. 같이 술을 나누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그대도 원한다면 내 이야기도 해주지. 하루 종일 이 안에만 있는 탓에 그다지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탁자에 몸을 기댔다.

고정되어있지 않고 사실상 덮고 있는 수준의 천이 몸을 기울이면서 각도에 따라 흘러내렸고..

'와우.'

"어떤가? 흥미가 있나?"

새하얀 색의 골반이 그대로 드러났다.

머리가 바쁜 상황에서도 그런 장면은 놓칠 수 없는 건 남자라는 생물의 슬픈 본능이었다.

"물론 강요는 아니네. 그대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러면.."

혹시 괜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가 그녀가 중원에 관심을 가지고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그런 일은 막으려고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하려고 했지만..

"하지만 본녀는 그대에게 조금 실망하게 될거야."

-오싹!

순간적으로 술의 열기가 싹 달아날 정도로 몸이 차갑게 얼어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잠깐 사이의 여파로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릴 정도.

'뭐, 뭐지?'

그녀가 뭔갈 한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잠깐이라 뭐가 지나갔는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진실이 어떻던 간에

"수락할텐가?"

내가 눈앞에서 요염하면서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여인을 보며 내릴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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