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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64화 (164/250)

[164화] 10장-점쟁이

-삐질삐질

나는 눈앞에서 흥미롭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여인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중원의 진짜 최강자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긴장했나?"

-깜짝!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저쪽에서 먼저 입을 열자 절로 몸이 떨리며 그러고 보니 먼저 인사도 안했다는 걸 깨달았다.

"미, 미천한 점쟁이가 천마신교의 교주님을 뵙습니다."

"아아. 괜찮다. 본교의 교인이 아닌 이에게까지 그 호칭을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아니 니가 그걸 사양하면 어떡해.'

쓸데없이 친절하다.

오히려 이쪽이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

"아하하.. 그러면.."

-삐질삐질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고 눈을 돌리다가 천마와 눈을 마주쳤다.

이쪽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저 묘한 눈동자가 심하게 부담스럽다.

지루함, 무료함. 그리고 기대감이 섞인 작은 혼돈이 담겨있는 눈동자를 마주보자 나도 모르게 살짝 눈을 피해버렸을 정도로.

그러는 와중에도 머리를 계속 굴려 적당한 호칭을 생각한다.

마음 같아선 그냥 나도 교주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이미 저쪽에서 괜찮다고 하지 않았던가.

'천마라고 부르면 싫어하겠지?'

내가 잘 모르긴 몰라도 천마신교의 교주=천마 가 아닌 걸로 안다.

중원에선 편의상 둘을 동일시해서 부르는 것 같았지만 신교 안에서는 꽤 엄격하게 분리하는 걸로 알고 있으니..

'뭐라고 불러야 해 그러면?!'

천마도 안돼. 교주님은 괜찮대.

천마 외에는 딱히 별호 같은 것도 없으니 호칭이 정말 애매해진다.

굳이 따지자면 대협 정도가 적당..

'아.'

그 순간 머리 속에 적당한 호칭이 스쳐 지나갔다.

-꿀꺽

"그러면.. 신교의 하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천마신교의 가장 높이 있는 인물이자 중원에선 천마로 불리는 사람이니 적당한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신교의 하늘이라.."

천마는 눈을 감고 자신의 팔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더니

"나쁘지 않은 울림이구나."

'휴.'

다행히 청신호를 보내줬다.

이걸로 우선 호칭 문제는 해결이었다.

이제 막 방금 만난 사이에서 호칭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호칭 문제를 해결하고 안도하고 있는 사이 다시 귓가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대를 부른 이유는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흠칫

'...부른 이유?'

순간 흠칫했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천마쯤 되는 사람이 점쟁이를 불렀으면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소인이 미천한 몸인지라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건 점을 칠 수 있는 소소한 재주밖에 없습니다."

괜한 기대감을 심어주기 싫어 좀 과할 정도로 겸손하게 점을 봐주겠다고 했지만..

"...점?"

순간 천마의 표정에 의문으로 보이는 감정이 피어올랐다가

"..아아. 그랬었지. 음."

다시 아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순간 왜 그런 반응을 보인 건지 나도 궁금했지만 우선 할 말은 마저 하기로 했다.

"무엇이 궁금하신지 말해 주신다면 한번 소소하게 재주를 부려보겠지만.. 이것도 천기를 읽는 일인지라 천기누설에 영향을 받으니 조금 불명확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까지 조심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본녀도 그대의 말을 맹신할 생각은 없으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못 믿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다.

제발 그렇게 맹신하지 말라고 말해도 내가 용하다는 소문 때문에 내 말만 믿고 행동하다 뭔 일 생기고 나서야 찾아오는 손님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은 그래도 비교적 평범한 점집 손님들이기라도 했지 천마한테 괜히 그런 일이라도 생겼다간..

-부들부들

'제발 믿지 말아주세요.'

오히려 이쪽에서 빌고 싶다.

아니 맹신을 안 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아예 흘려들었으면 좋겠다.

괜히 무슨 일 났다가 내 잘못이라고 하면 정말 좆되는거니까.

그럴 바에 차라리 그냥 원래는 점 같은 거 안 믿는데 주변에서 계속 얘기가 들리니까 어쩔 수 없이 한번 불러본 거인 게 더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지긋이

'왜!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저 호기심이 넘치는 눈동자가 아까부터 계속 이쪽을 향하고 있다.

대체 왠진 몰라도 지금 기대감이 1000%란 말이다.

'어차피 얼굴도 안 보일텐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신기한 피풍의구나. 분명 정면에서 보는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니."

'...아.'

그래서 쳐다봤구나.

아무리 별에 별걸 다 봤을 천마라지만 이건 신기했던 모양이다.

"진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녀의 눈을 속일 정도의 진법이라.."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죠. 저도 힘들게 구한 겁니다."

"알겠다."

말은 순순히 알겠다고 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내 얼굴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탐나나?'

나는 혹시 자기도 하나 달라고 할 까봐 한 손으로 망토를 끌어안으며 점을 볼 준비를 시작했다.

혹시 달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미리 걱정하면서.

* * *

"...만족하셨습니까?"

"음. 잘 들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으니 보수는 제대로 챙겨주라고 전해두지."

"아, 아닙니다. 굳이 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무얼. 받았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사양할 필요 없다."

"..그러시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적당히 천마신교의 점을 봐주고 목패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처음엔 엄청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친절해서 걱정이 조금 덜어졌다고 해야 하나

'천마 맞나?'

막 엄청 친절하다거나 착하다거나 그런 것까진 아니지만 천마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성격이 제법 좋았다.

적당히 대꾸도 해주고 추임새도 넣어주는데 특별히 무시하거나 깔보는 느낌도 없으니 걱정했던 것보다 꽤 편하게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빤히

'저 시선만 어떻게 좀 됐으면 좋을텐데..!'

아까부터 계속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문제지.

대체 보이지도 않는 망토 안쪽이 뭐가 볼 게 있다고 저렇게 뚫어져라 쳐다본단 말인가.

이러다 시선만으로 망토가 찢어질 기세였다.

실제로 마음만 먹으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하하.. 그,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이었.."

계속해서 이 망토에 흥미를 가지는 모습에 정말 뺏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며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아. 잠깐."

-흠칫

일어나는 나를 만류하는 목소리에 절로 몸이 굳어버렸다.

내가 그녀를 상대로 너무 긴장해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무슨 수를 쓰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그대가 괜찮다면 하나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 그런가요?"

"물론 그만큼 보수는 더 챙겨주라고 전해두지."

"뭐든지 말씀해주십쇼."

핫.

나도 모르게 대답해버렸다.

이제 돈이 부족한 처지는 아닌데 무면금귀 시절의 버릇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일단 대답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차마 천마를 상대로 뱉은 말을 취소할 깜냥은 안됐다.

원래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건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지는 교훈 아니던가.

'뭔진 몰라도 빨리 해결하고 튀자.'

그렇게 생각하며 천마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점을 더 봐 달라는 걸까.

아니면 뭐 중원의 정보라도 원하는 걸까.

어쩌면 나 때문에 얌전히 마교에 머무르고 있던 그녀가 중원으로 발걸음을 옮길지도 모른다는 여소천의 말이 떠올라 불안감이 절로 샘솟았다.

'..나쁜 거면 어떡하지?'

혹시 모른다. 정말 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일일지.

아무리 지금 좀 친절해 보인다지만 무려 마교의 우두머리 아니던가.

지금까지 편안한 모습을 보였던 건 이때를 위해 마음을 편하게 먹게 하기 위한 계힉이었을지도 모르..

"혹시 술 한잔 하지 않겠나?"

"예?"

순간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분명 귀를 통해서 뇌까지 문장이 들어왔는데 그 문장이 머리 안으로 들어가는 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술 말씀이십니까?"

이해가 된 다음에도 다시 되물어야 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본녀가 주도를 즐기는 취미가 있어서 말이야. 괜찮다면 그대에게도 한잔 권해보고 싶은데."

"..."

술이라.

내가 술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긴 하지만 적어도 떄와 장소 정도는 가린다.

아무리 그래도 마교 한복판에서 그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이랑 사이좋게 잔을 나눌 정도로 술을 좋아하..

-추릅

아. 침 나왔다.

"...그.."

"그대도 중원에서 제법 주당으로 이름이 자자한 모양이던데.. 아닌가?"

...누가 했는지 몰라도 꽤 열심히 조사한 모양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검후님 사건 이후라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까지 그렇게 넓게 퍼지진 않았을텐데.

'혹시 술 때문에 부른 건 아니겠지?'

왠지 점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어쩌면 이쪽이 본래 목적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아무리 지금 천마가 우습게 보여도 그렇지 그 정도일까.

그냥 점 보려고 불렀다가 생각난 정도겠지.

머리로는 위험하니 지금이라도 뒤로 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몸은 이미 군침이 돌고 있다.

천마가 본인 입으로 술을 즐긴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주는 술은 대체 어떤 맛일까.

웬만큼 비싼 술들도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좋은 술일 게 분명했다.

[미쳤어! 아무리 지금까지 편해보인다고 해도 그렇지 그 천마랑 잔을 나누겠다고? 뭐가 들었을 줄 어떻게 알고 그래!]

[그치만 천마가 나한테 뭘 먹일 거였으면 굳이 술에 넣을 필요도 없는데?]

[아 그러네?]

머릿속의 천사와 악마의 대립도 순식간에 한쪽이 납득해버렸고

그래도 차마 마교에서 그래도 될까 라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고 있을 때 그녀의 입에서 결정타가 흘러나왔다.

"본교에는 그대가 중원에서 맛보지 못했을 만한 그런 종류의 술들도 아주 많지. 그대 혹시 서역의 술은 마셔 봤나?"

"..."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잠깐 들어 올렸던 다리를 다시 바닥에 붙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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