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10장-천마신교
-다그닥 다그닥
"잠깐 정지!"
"에헤이 하루이틀 보는것도 아닌데 꼭 그렇게 검사를 빡빡하게 해야겠어요?"
"잔말말고 짐이나 풀고 물건이나 확인하지."
마교로 들어오는 물건들을 관리하는 곳.
상인은 여전히 바늘하나 안 들어갈 기세로 창을 들고있는 문지기를 상대로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제가 거래를 지금 몇년째 하고있는데 슬슬 좀 믿어줄때도 되지 않았어요? 매번 필요한것도 잘 구해드리고 있잖아요."
"싫다면 거래는 그만두지. 물론 위약금으로 목숨은 가져가겠지만."
"어휴 제가 언제 거래 그만 둔대요? 자자. 열어드릴테니 확인하세요. 아 그리고 소개해줄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불쑥
"안녕하세요?"
마차 안에서 튀어나온 사람을 보며 문지기는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이내 그가 내민 서신으로 눈을 옮기더니
"무면금귀라고 합니다. 초대받아서 왔습니다."
언젠가 한번 들어보았던 이름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 * *
"군사님! 군사님!"
"열려있으니 들어오게."
-벌컥!
군사는 다급하게 찾아온 사내를 바라보며 손으론 쓰고있던 서류를 마저 정리했다.
평소에도 유독 호들갑을 자주 떨던 이였기에 오늘도 생각한것보다는 별일 아닐거라..
"무면금귀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멈칫
직무유기중인 교주를 대신해 이 넓은 천마신교를 사실상 혼자서 관리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외워야할 사람의 이름도 수도없이 많았기에 누가 찾아왔다고 해도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리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무면금귀..?"
다행히 이 이름은 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것인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교주님이 찾으시던 점쟁이가 그런 별호를 가지고 있었지.'
그러나 섬서에서 출발했다던 소식이 온지 이제 3주정도밖에 안된 상황.
그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면 마차로는 절대 불가능한 시간이다.
'..무인에게 업혀왔나?'
듣기로는 무공 하나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라 했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짓이라 반쯤 농담이었지만.
어떻게 왔는지는 몰라도 일단 나쁠건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왔다면 좋으면 좋았지 싫은건 아니었으니까.
"교주님의 손님이니 불편하시지 않도록 대접하고 있게. 나는 잠시 교주님에게 다녀올테니."
"교주님의..! 알겠습니다!"
교주님이 처음으로 부르신 외부인이다.
가끔씩 행사에나 억지로 얼굴을 비출 뿐 활동이 전혀 없어 슬슬 교주님을 의심하는 교인들이 생겨나는 마당에 교주님이 외부인을 불렀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나쁘지 않겠지.
잠깐동안 중원 전체를 발칵 뒤집어놨던 그 무면금귀니 감히 교주님을 의심하던 이들도 무슨 연유로 그를 불렀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것이다.
정작 나조차도 교주님이 그를 부르신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예상가는게 하나 있긴 하군.'
그가 술을 즐긴다는 정보에 반응한것도 그렇고 술친구를 찾았다고 한것도 그렇고
설마 미래를 읽는다는 이를 불러서 원한다는게 정말 술잔을 나누는것 뿐일거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지만
평소 알고있던 교주님이라면 정말 그럴 가능성도 높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 *
"엄청 급하게 뛰어가네요. 올 줄 몰랐나?"
"제가 좀 서둘러서 오긴 했죠."
섬서부터 곤륜까지의 거리를 건너뛰어버렸으니 빠르긴 엄청 빠르게 왔을터
내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게 오히려 당연한거였다.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도 섬서에서 곤륜까지 하루만에 오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아무튼 무사히 도착 했네요. 수고했어요."
"에이 뭘요. 계약한건 당연히 지켜야죠."
원래 계약대로면 대가를 지불하는건 내가 돌아가는것까지 무사히 돌아간 뒤였지만
"일단 여기 받으세요."
-짤랑
나는 상인에게 금전 20개를 건넸다.
"손님..?"
"제가 3일동안 안돌아오거나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돌아가세요. 진짜 감금이라도 당하면 어차피 당신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넘어갔을테니까."
"손님.."
상인은 어딘가 감동스러운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알았어요..! 혹시 그렇게 되면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칠게요..!"
혹시 뺏어갈세라 그대로 품속 깊숙한 곳까지 집어넣었다.
"아니 좀 사양해도 될텐데."
"상인은 주는 돈은 마다하지 않거든요!"
"...혹시 못돌아오면 편지나 잘 전해주세요."
"물론이죠!"
혹시 못 돌아올때를 대비해 당아영이나 검후님, 여소천에게 전할 편지를 남겨뒀다.
혹시몰라 스승님이 계시는 산 위치랑 집 위치까지 적어뒀으니 만일 폐관수련을 끝내고 나오셔도 내 소식은 들으시겠지.
당아영에게 챙겨달라고도 부탁해놨으니 적어도 굶어죽진 않으실거다.
그 살인적인 자취실력을 알고있는 입장에서 차마 산속에 혼자 남겨둘수가 없었다.
'..보고싶네 갑자기.'
밉든 곱든 이 세계에서 10년동안 보살펴주고 길러주신 은인이자 유일한 가족인데 안본지 너무 오래됐다.
갑자기 3년이나 폐관수련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사실 산밖으로 나올일도 없고 그냥 둘이 계속 살았을텐데.
'...'
그순간 머릿속에 그 흉기에 가까운 몸매와 외모가 떠올랐다.
'내가 미쳤나.'
가족한테 못하는 상상이 없다.
아무리 매일같이 짜이다가 몇주동안 아무일 없어서 성욕이 쌓였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상상할게 따로 있지 그 쓸데없이 가슴만 큰 성격나쁜 여자의 어디가 좋..
..다고 해도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애초에 그 여자가 나한테 관심이 없을텐데.'
그래. 솔직히 말하면 가족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바라봤던적은 있었다.
사실 안 볼 수가 없다.
갑자기 이런 세상에 떨어져서 고생하고있을때 주워다가 도와준 사람인데 그런 외모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떤 남자가 여자로 안보겠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차피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다르다지만 그 어릴때부터 길러준 애를 남자로 볼 리가 없었고 이 세계에서 스승과 제자는 거의 부모와 자식에 준하는 관계다.
실제로 어릴때부터 길러준 부모자식이나 다름없는 관계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그리고 이미 볼꼴 못볼꼴 다 본 사이라 뭐 더 볼 것도 없다.
괜히 허구한날 구박하면서 성희롱이나 했던게 아니다.
'장가를 가라는건지 말라는건지.'
가족이니까 봐준거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신고했을 정도였다.
나를 남자로 봤으면 이런 짓도 안했겠지.
그냥 귀엽고 놀려먹는 맛 있는 제자 정도로 보니까 그런 짓이나 하는걸거다.
'쯧.'
어차피 나도 이제 여자로 안본다.
그 몸매나 외모때문에 조절 못하고 혼자서 몰래 해결했던것도 옛날이지 어느순간부턴 봐도 별 생각 안 들더라.
성욕이 쏙 뽑히기라도 한것처럼.
"슬슬 저기 돌아오고 있네요. 전 가볼게요."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상인을 뒤로하며 막간을 이용해 마저 trpg나 하려고 성녀님을 부르려했지만
"..성녀님?"
응답이 없었다.
평상시 감각대로 상점창을 열려고 해도 상점창이 훅 사라져버리기라도 한것처럼 아무런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
지금까지 이랬던적이 없었는데.
처음 느껴보는 상황에 절로 불안감이 샘솟았다.
24시간 스토킹중인 성녀님이 불러도 안나온다니.
'서,성녀님?'
...
'지, 지금 나오시면 계약서 써드릴 수 있어요?'
...정말 아무 반응도 없다.
평상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바로 달려들었을 조건을 걸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는건 정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지금 마교 안이라?'
설마 성녀님도 천마는 무서운걸까.
-삐질삐질
성녀님도 천마한테 쫄아서 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식은땀이 났다.
아니 물론 다른 사람이랑 함께 있을때는 혹시 몰라 잘 나오지 않는 성녀님이라지만 아직 만난것도 아니고 마교 안으로 들어온것뿐 아닌가.
근데 그것만으로 이렇게 조심스러워할 정도니..
'...진짜 천마는 안만났으면 좋겠다.'
속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제발 그냥 다른 인간이 부른거이길.
장로라던가 대주라던가 마교에 많이 있는 다른 고수들이길.
그리고 그런 내 바람은...
'시발시발시발시발.'
"말씀하셨던 점쟁이를 데려왔습니다 교주님."
"들어오거라."
-끼익
교주님이라는 호칭.
한참을 들어와야할 정도로 마교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장소.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느껴지는 공기의 떨림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진짜는 문을 열고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때부터였다.
"수고했네 흑풍대주. 이제 가보아도 좋네."
한눈에 들어오는 압도적인 미모.
스승님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인세를 벗어난 미와
눈이 마주친순간 마치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처럼 몸을 옥죄여오는 미지의 압박감.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인간의 겉모습을 지닌 무언가라고 생각하는게 더 자연스러운 인간.
이자가 바로
여소천이 두려워하고 검후님이 두려워했던 중원이 아닌곳의 하늘.
"어서오거라. 한번 만나보고 싶었느니라."
천마신교의 하늘. 천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