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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62화 (162/250)

[162화] 10장-남겨진 자들

"와, 왔나?"

"자, 잘 데려다주고 오셨어요? 중간에 버리고 온거 아니죠?"

"..독봉 당신은 저를 뭐라고 생각하고 계시는거에요?"

여소천이 단유성을 마교로 출발하는것까지 배웅해주고 돌아온 뒤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검후와 당아영은 여소천에게 달려들어 그의 안부를 물었다.

"마교로 가는 상인한테 안내해주고 왔어요. 여기까지 했으면 도착하는것까진 무사히 하겠죠. 이 이상 뭐 해줄 수 있는것도 없고."

"상인이 나쁜사람이면 어떡해요."

"...그이가 무슨 수를 써놓은것 같으니까 별 일 없겠죠. 그이가 무슨 애도 아니고. 화술이나 처세술은 좋잖아요?"

"그래도 걱정되는걸요.."

여전히 안절부절 하고있는 당아영을 보며 여소천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 본인도 걱정하는 마음이 없는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어디서 구해온건지 모를 이상한 물건들 쓰는거 봤잖아요? 그 피풍의라던가. 그것들을 잘 쓰면 싸워도 웬만해선 그이가 이길걸요."

"...그이가요?"

어딘가 믿기지 않는듯한 표정.

평소 그의 허약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당아영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시선을 돌렸다.

"..왜 갑자기 얼굴을 붉히죠?"

"그,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래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가는게 무사하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못 돌아오면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어딘가 말을 돌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진짜 큰 고비는 마교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느냐였으니까.

"아마 무사히 돌아 오겠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것도 따로 없고."

"그..렇긴 하지만."

"우리 손을 떠난 얘기는 이쯤하고. 다른 할 얘기가 있으니 다들 앉아보세요. 거기 우물쭈물 아무말도 못하고있는 검후 당신도요."

"으, 응.."

아직 당아영과 대화하는게 익숙하지 않은 검후는 이미 서로 상당히 친해보이는 여소천과 당아영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여소천의 말을 듣고 다소곳이 자리에 앉았고

당아영은 뭔가 불만이 있어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검후님도 이미 앉은 마당에 자신만 앉지 않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기에

"..칫."

작게 혀를 차면서 자리에 앉았다.

"우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꽤 중요한 이야기에요. 과장을 보태지 않고도 중원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 치의 과장도 없이 말인가?"

"검후 당신은 제가 허언을 하는 걸 본 적 있나요?"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계속 하게."

"당신들도 혈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죠?"

"...!"

혈교라는 단어가 나오자 검후의 눈이 커졌다.

유한 성격의 그녀가 유일하게 세상에서 한치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는 대상이 바로 혈교였으니까.

과거에 전쟁을 치루면서 많은 희생을 치룬 것도 있지만

'소연아..'

최악의 방식으로 이별한 제자와 최악의 방식으로 재회하게 만든 것이 누구던가.

자신의 손으로 목을 베었던 제자가 되살아나 자신에게 증오심을 표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 게 누구였던가.

-꽈악

"과거의 망령이 감히.."

"상태를 보니 들어본 거 같네요. 거기 독봉은요?"

"네, 네? 저요?"

"제가 알기론 당신도 알고 있는 걸로 아는데."

"아, 네, 네. 예전에 토벌했던 적이 있어요. 처음엔 그냥 이상한 사공이나 마공을 익힌 괴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이미 전에 죽었던 사람이 강시로 되살아났던 거라고.."

"거기까지 알면 대화가 편하겠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새로 활동을 시작한 혈교는 우리가 기존에. 그러니까 20년 전에 싸웠던 그 혈교가 아니에요. 혈교의 이름만 뒤집어쓴 전혀 다른 무언가지."

여소천은 혼란스러워하고있는 당아영과 검후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과거 천마에 의해 거의 전멸하고 겨우 살아남은 혈교의 잔당이 혈교의 부흥을 위해 초대 혈마를 소환하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이 불러온 것은 그들이 원하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다른 세계에서 온 그것들은 본래 그것들이 있던 세계를 멸망으로 몰고 갔었고 중원으로 넘어온 그것들은 혈교의 잔당을 흡수하고 혈교의 탈을 뒤집어쓴 뒤 중원을 그들의 새로운 활동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인간의 피를 빠는 것을 즐겨하고 피를 이용해 이상한 주술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기존의 혈교와 다른 가장 큰 특성으로는 죽은 인간을 되살려서 그들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혈교도 강시를 즐겨 사용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고등의 술법이라고.

"더 궁금한 거 있어요?"

"..."

"뭐, 뭔가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믿기 힘든 이야기겠죠. 이해해요."

언제나와 같이 평화로운(?) 무림에 갑자기 이계의 괴물들이 혈교로 둔갑하고 나타났으며 그것들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고있다니

말하는 사람이 여소천이 아니었다면 미친사람이구나 하고 넘어갔을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을 한 사람은 여소천이었다.

곤륜의 도사이자 정파 최고의 고수중 한명이 저런 심각한 이야기를 농담삼아 할리도 없으니 거진 사실이라고 봐야했다.

"그러니까 그것들을 못막으면 중원이 멸망한다고요..?"

"뭐. 그렇죠. 어떻게 보면 20년 전의 혈교보다 더 과격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적어도 그들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허어.."

혈교에 관해선 반쯤 관심 밖에 두고 있던 당아영에게 있어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요즘 다시 활동한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20년 전에 거의 전멸했다고 들었고 들려오는 규모도 미미한 수준이었기에 마지막 발악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멸망이라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멸종 혹은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로 만드는 거요."

"으으.."

갑자기 골치아픈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당아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제 그냥 그이 스승님이 나오는 것만 기다리다가 혼인을 허락 받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상한 게 튀어나왔어요.."

"원래 인생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랍니다 독봉. 그리고 인생 계획을 완결 짓기엔 당신은 너무 젊고요."

"인생 선배라서 좋으시겠어요.."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요?"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웃는 표정으로 이마에 작게 균열이 난 여소천이었지만 당아영의 침울해있는 모습을 보고 참기로 했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그 혈교를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검후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나 말인가?"

"당신도 혈교라면 이가 갈리긴 마찬가지잖아요? 당신 성격 상 제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도와줬겠지만 처음부터 합을 맞추고 일을 진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니까요."

-멍

혈교의 소식을 듣고 말없이 상념에 잠겨있던 검후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여소천의 모습을 보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20년 전에는 전장 한복판의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웬만해선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던 게 그녀였거늘

"..그대도 제법 변했군."

"당신만 하겠나요."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그 사이 그녀에게 심경의 변화 또한 있었으리라.

그렇게 잠시 옛 전우끼리 눈빛을 교환하는 사이

"저, 저기.. 그러면 저도 싸워야 하나요?"

옆에서 당아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당신은 집에 있으세요."

"저, 저도 싸울 수 있는데요! 이래 보여도 절정인데!"

물론 당아영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평생 수련해도 절정의 벽도 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무인이 수두룩한 마당에 저 젊은 나이에 그 벽을 넘어섰다는 것은 후기지수 중에서는 그녀가 최상위권. 아마 사실상 최강에 가까울 거라는 판단을 내려도 충분했지만

"...당신은 집에서 그이랑 있으세요. 지켜줄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할 테니까."

여소천과 검후의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재능을 본다면 시간이 흘러 당아영이 그녀들 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 어쩌면 지금의 그녀들보다 강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지금 당장 중요한 전력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다.

어딘가 안도하면서도 침울해하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당아영의 표정을 보며 여소천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러고 보니 기왕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전력을 강화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웃는 표정과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

"...청뢰검님?"

"우리가 밖에 나가있을 때는 그이를 지켜줄 수 있는 게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앞으로 몇 주 정도 빡세게 훈련해보죠."

"ㄴ, 네?"

"절정의 벽을 넘은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벽을 넘는 건 무리겠지만.. 기왕 강기를 쓸 수 있게 됐으면 좀 더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겠죠?"

-파지직

"자, 잠깐만요 청뢰검님! 표정이 무서우신데요! 혹시 아까 말한 것 때문에 삐지신 거 아니죠?! 그렇죠?!"

"에이. 당신은 제가 그렇게 속이 좁은 인간으로 보이나요? 이게 다 당신과 그이를 위한거랍니다."

"꺄아악!"

단유성이 마교로 가는 동안 고생 길을 걷는 것은 혼자 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 * *

"으아아아악!!! 대체 어디 있는 건데!!!!"

-쾅! 쾅!

"어휴 저 처자 또 저러는 구만."

"아직 젊은 것 같은데 안타깝게 됐어.."

조상님이 남겼다는 팔미호의 흔적을 찾아 이 산속 마을로 온 것도 벌써 반년 하고도 몇 개월.

산 안쪽 곳곳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도저히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저 넓은 산을! 중턱 위로! 몇 번을 뒤졌는데! 아아악!!"

"그러고 보니 저 처자가 뭘 찾는다고 했더라?"

"사냥꾼 아니었던가? 무슨 꼬리가 여럿 달린 여우를 찾는다고 하던 거 같은데."

"약초꾼 아니었남? 전에 상점에서 약초로 흥정하고 있던 모습을 본 것 같은데."

"나는 포상금을 노리고 호랑이 잡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후우.. 후우.."

그 망할 여우를 찾으려다가 돈이 부족해면 약초고 캐고 호랑이도 잡았다.

그 정도로 그 망할 여우한테 공을 들이고 찾고 있는 건데 어떻게 이렇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추리를 잘못했나? 아닌데.. 요괴라면 보통 인간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산 깊숙한 곳에 숨어서..'

설마 인간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하는 요괴가 중턱도 되지 않는 위치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을 리가 없다.

그때였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아, 네.. 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이 난동을 부리면서 길을 막고 있던 탓에 지나가지 못하던 수레를 지고 있는 상인이 옆으로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저 상인도 굉장히 자주 본 것 같았다.

이 마을로 온 지 반년도 넘었는데 그동안 지치지도 않고 주기적으로 계속 수레를 지고 산 속..

"...어?"

"야. 넌 지치지도 않냐? 이제 그 짓도 얼마 뒤면 3년 째다 3년. 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그동안 못잊냐."

"아니 자네도 한번 보면 이해 할거라니까."

"자, 잠깐만요!"

-쾅!

"히익!"

잔뜩 흥분한 기세를 내뿜으며 수레를 붙잡았다.

"어디로 가시는건지좀 알 수 있을까요!"

요괴사냥꾼의 감이 번뜩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굉장한 시간낭비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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