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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58화 (158/250)

[158화] 10장-출발!

"보자.. 짐은 다 쌌고.."

불안하긴 하더라도 괜히 안 갔다가 더 큰 화를 불러올지도 모르니 일단 마교에 가자는 결정을 내린 뒤

나는 지금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실제로 섬서에서 마교까지의 거리는 짐을 싸는 정도로 해결이 안될 정도로 멀리 있는 편이었지만 실제로 내 짐은 생각보다 조촐한 편이었다.

기껏해야 옷가지 몇 벌, 비상식량, 비상금 정도밖에 없었는데 필요한 건 현지에서 조달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그건 조금 있다가 얘기하기로 하고..

"이것들도 잘 챙겨둬야지."

중요도가 덜한 짐들은 보따리에 싸 놓고 상점창에서 사뒀던 물건들을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품속에 넣어뒀다.

쓰기에 따라서 목숨도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니까.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

당아영에게 줄 선물로 상점창에서 샀던 암기는 얼마 전에 타이밍을 봐서 전해줬다.

다만 내가 처음으로 준 선물이 당아영을 얼마나 흥분 시킬지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결과..

-부르르

당아영이 내 선물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는 걸 밤새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상점창에 있는 온갖 마법들이 달린 무기들에 비하면 특별한 능력도 없는 무기지만 오히려 당아영에겐 이 정도가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무공이랑은 또 다른 이상한 요술이 달린 무기를 줘봤자 오히려 더 못 쓸 가능성도 있고

사실 그런 것들은 살 포인트도 없었다.

그런 물건들을 사려면 앞으로 또 한참은 기다려야 한다.

근데 다음엔 선물 안 할 거다.

선물할 때마다 생사경을 헤매고 싶지는 않으니까.

-똑똑

"준비 다 됐어요?"

"아 네! 나갈게요!"

내가 준비가 끝났는지 확인하는 당아영의 말에 싸둔 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는 예비(?) 부인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휴 몸에 먼지 묻었네요. 떠나는 날까지 정말."

-탁탁

넥타이 대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당아영.

"자, 잘 갔다오게."

-탁탁

약간 어색한 목소리로 옆에서 따라서 먼지를 털어주는 검후님.

그리고..

"짐은 다 쌌어요? 간소하게 챙기라니까 꽤 오래 걸렸네요."

"..별로 안 걸렸거든요."

예전에 봤던 그 순한 성격은 어디 갔는지 다시 괜히 틱틱대는 성격의 여소천이 있었다.

참고로 검후님은 아직도 화산에 계신다.

내가 오늘 떠난다는 걸 알고 급하게 시간을 내서 오신 거지 여소천처럼 당아영의 집에서 사는 게 아니다.

안 그래도 당아영이 제안은 했지만 그건 조금 생각해 보시겠다고.

"자, 곧 출발할 거니까 헤어지기 전에 할 말 있으면 해두세요."

여소천은 해를 보면서 대충 시간을 보더니 당아영과 검후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다.

하필 그걸 여소천이 말하는 이유는 내가 마교까지 가기로 한 방법 때문이었다.

섬서에서 마교까지의 거리는 왕복으로 최소 몇 달은 잡아야 하는 너무 먼 거리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우리에게 그 정도 시간 손실은 조금 뼈아팠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여소천을 이용하는 것.

곤륜과 마교는 제법 가까이 있는 위치였고 섬서에서 마교로 출발하는 것보다 곤륜에서 마교로 가는 게 훨씬 적게 걸린다.

그리고 여소천이 최대한 속도를 내면 섬서에서 곤륜까지 한나절이면 간다고 하니 거기에 따라가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

물론 아무리 나를 업고 간다고 해도 내가 그 속도를 견디는 것은 무리다.

여소천이 조절을 한다고 해도 한나절 내내 업혀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온 최종 계획은..

"없으면 누우세요. 기절은 안 아프게 시켜드릴 테니까."

...이불로 나를 감싼 뒤 그 상태로 들고 가는 것.

나는 잠시 의식을 잃고 있으면 눈을 떴을 때는 곤륜에 도착해있을 거라는 계획이었다.

"자, 잠깐만요! 아직 할 말 남았어요!"

"알았어요. 빨리 하세요."

"저, 전에도 말했지만 혹시 거기서 뭐 나쁜 짓 시키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해요. 괜히 다른 사람 생각한다고 거부하고 그러다가 해코지 당하지 말고.. 혹시 여자들이 막 나쁜 요구해도 우리 생각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해 달라는 대로 해주고요. 알았죠?"

"...소저. 저 남자에요."

"당신 본 여자들은 그럴 수도 있다니까요!"

...아무리 내 주변에 이상하게 여자 고수들이 많다고 하지만 이 세계의 성별에 따른 역할은 지구에서와 같았다.

무공을 익힌 특이한 경우라면 모를까 일반적으론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강한 세상.

당장 저번에 본 무림맹주도 남자였지 않은가.

"...뭐. 알았어요."

"꼭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있어야 해요!"

"아니 저 죽으러 가는 거 아니라니까요?!"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내가 감금될 거라고 반쯤 확신하면서 말하는 건데?!

물..론 상대가 그 마교라서 나도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은가.

"...하아. 검후님은 뭐 할 말 없으세요?"

"나, 나 말인가?"

"네. 아마 그래도 한 달 정도는 못 볼텐데."

시간이 많이 단축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마 그 정도는 걸릴 거다.

중원 땅이 오죽 넓어야지.

물론 저것도 내가 무사히 돌아온다는 가정 하이지만.

"으음..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해둔 게 있다만.."

"뭔데요?"

"혹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이름을 팔아도 좋네."

"...?"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가 잠시 뒤에 그 의미를 깨달았다.

"검후님의 이름을 걸라고요?"

"이래 보여도 천하십대고수 하면 과분하게도 매번 이름이 올라있는 몸이고.. 내 특별히 지금의 마교에 원한을 살 일을 한 적이 없으니 걸어도 괜찬을걸세.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대의 편의를 봐주는 대신 내 목을 노릴 수 있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일 테지."

"...말을 살벌하게 하시네요."

그러니까 그 말 아닌가.

혹시 나한테 무슨 일 생길 거 같으면 나 대신 검후님을 팔라고.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워, 원래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하지 않던가. 비록 아직 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

"아, 아무튼! 내 할 말은 끝났네! 부디 무사히 돌아오게!"

얼굴을 붉히고 수줍은 듯이 말하는 검후님의 모습에 잠시 몸이 굳어있는 사이.

"좋아 보이네요 아주. 아예 입이 귀에 걸리겠어요."

"아야야야."

"자. 안 아프게 기절 시켜드릴테니 눈 감고 계세요. 아마 눈 뜨면 곤륜에 있을 거에요."

여소천이 내 머리 양쪽에 손을 올렸다.

여소천의 말대로 눈을 감기 전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당아영과 검후님의 모습이 보였고

나도 눈을 감으며 따라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일어났어요?"

"어우 씨 뭐야."

진짜로 주변 풍경이 바뀌어있었다.

"어디 아프거나 하진 않죠? 제대로 조절하긴 했는데 혹시 몰라서."

"어.. 지, 진짜 도착한 거에요?"

"네. 여기가 곤륜이에요."

"전 눈을 감기 전까지만 해도 섬서에 있었거든요..?"

"그러면 제대로 됐나보네요. 아파 보이지도 않고."

나는 아직도 기분이 어버버한 상태였다.

아니 정말 곤륜이라고?

잠깐 눈 감았다 뜨니까?

마차로 한두달은 다녀야 하는 거리를 이렇게 쉽게?

"...빠르긴 진짜 빠르네요."

"진짜 우뢰에 비하면 훨씬 느리지만요."

"...인간이 그거랑 비교가 되는 시점부터 이상하다고요."

번개의 속도가 아마 빛의 속도랑 비슷할텐데 그러면 지구를 1초에 7바퀴 반이나 도는 속도다.

저렇게 태연하게 진짜 번개에 비하면 느리다고 말해봤자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뭐, 정신도 차렸고 어디 아픈 곳도 없는지 확인 했으면 따라오세요. 마교까지 가는 방법도 알려드릴 테니까."

"오. 준비했어요?"

"당신 혼자 보냈다가 무슨 봉변이 일어날 줄 알고요. 그 먼 거리를."

처음엔 3명중 한 사람과 마교 근처까지 동행하는 것도 생각해 봤었는데 하필 셋 모두 정파의 유명인이라 그 의견은 금방 기각됐다.

마교에서 별 말이 없다고 해도 괜히 남의 눈과 귀에 들어가면 이후에 골치가 아파진다.

아무리 마교가 최근엔 얌전히 있다고 해도 수백 년 동안 쌓인 대중적인 인식이 어디에 가는 건 아니니까.

심할 경우에는 마교와 내통 했다고 몰려서 쫓겨날 수도 있다.

그에 비해 나는?

정파 쪽 사람들이랑 연을 많이 맺고 있을 뿐이지 나 자체는 정,사,마 어느 쪽 사람도 아니다.

그냥 돈 받고 점 봐주는 점쟁이이자 장사꾼인데 손님이 불러서 간 게 뭐 잘못인가.

아무리 깐깐한 정파라지만 그거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저번에 무림맹에서 나한테 실컷 무공 발전의 실마리를 얻어간 건 그 인간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정파가 워낙 내로남불이 심한 만큼 그거 가지고 트집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겠지만 명분은 이쪽이 앞선다.

명분도 이쪽이 앞서는데 하필 정파 최고의 고수 중 2명이 이쪽 편이다?

별일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슨 방법인데요?"

"이 근처에서 활동하는 마교와 거래하는 상인을 찾아 놨으니 그 사람한테 얻어 타서 가세요."

"오.."

이건 예상 못했다.

"그런데 설득은 당신이 해야 해요. 제가 미리 해놨으면 좋았겠지만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도 없는 일인데다 알다시피 저는 너무 눈에 띄어서.."

"뭐, 그 정도는 간단하죠."

"멀리서 지켜보다가 혹시 위험하면 난입할 테니까 잘 설득해 보세요."

요즘 워낙 섹스에 찌든 삶만 보내느라 잊었을 수도 있지만 이래 보여도 본업은 점쟁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자신 있다.

그러니까..

-스륵

품속에서 과거 상점창에서 샀던 밧줄을 손에 쥐었다.

자고로 무림에서 대화란 안전이 갖춰진 상태에서 해야 하는 것.

그러니까 우선 나를 공격하지 못하게 제압부터 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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