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9장-시장
"닭꼬치 하나.. 아니 두 개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다 뒤 화려한 조명이 눈에 띄는 마차로 와 꼬치를 주문했다.
특유의 고기 구워지는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침샘을 자극했다.
"두 개나 먹게요?"
"아뇨?"
"그런데 왜 두 개나 시켜요?"
"하나는 그쪽 건데요."
"어머."
눈에 띄는 푸른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피풍의를 입은 여소천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말도 안 했는데 제 것까지 주문하다니. 이제 곧 부인 될 사람이라고 상냥하게 대해주시는.."
"여기 있습니다 손님."
"계산은 이쪽이 할게요."
"넵."
"어?"
나는 닭꼬치 2개를 양손에 들고 계산은 여소천에게 맡긴 뒤 시장을 더 둘러보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마침 오늘이 장날이었는지 평소보다 가게들이 많이 들어선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냠냠
방금 샀던 닭꼬치는 과연 냄새 만큼이나 맛도 좋았다.
타지 않으면서 부드러움과 동시에 바삭함까지 살려서 잘 구운 데다가 양념도 과하지 않고 딱 좋았다.
'다음은 야채나 좀 먹어볼..'
"기껏 좀 감동하나 싶었는데 그러기에요?! 거기서 왜 저한테 계산을.."
"소리 지르지 말고 이거나 먹어요."
"읍."
나는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아직 입도 안댄 꼬치를 조심스럽게 여소천의 입으로 넣었다.
"먹어봤더니 맛있더라고요."
"...으브으브."
"먹고 말해요 먹고."
"..."
-우물우물
다행히 꼬치는 여소천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밉든 곱든 외형 만큼은 소녀에 가까운 여소천이 말없이 오물오물 거리는 모습은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그 성격을 생각하면 그런 마음도 순식간에 달아나기 마련이지만.
"..뭐에요. 왜 그렇게 봐요."
"아뇨. 귀엽다고요."
"하, 이제 와서 아부해도 안 통하거든요?"
여소천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손으로 바람을 펄럭였다.
"아니 그리고 아무리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고 제가 당신보다 돈도 많다지만 거기서 저한테 계산을 떠넘기고 먼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지갑을 안 들고 나와서."
"보통 그런 건 시장에 가기 전에 말하지 않아요?!"
"어차피 부부잖아요. 제 돈이 제 돈이고 그쪽 돈이 제 돈인데 뭘요."
"...뭔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기분 탓이에요."
어느새 하나를 전부 해치운 여소천을에게 아직 반 정도 남은 내 꼬치를 건네주고 주변을 둘러봤다.
"목 마르면 마실 거라도 사드릴까요?"
"술이요?"
"..당신에게 마실 건 술밖에 없죠?"
"에이 농담이죠."
내가 아무리 술을 좋아한다지만 당장 집에서 당아영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술을 마실 정도로 간이 크진 않았다.
섹스하다 늦게 온 것도 모자라서 몸에서 술 냄새까지 풍긴다?
'오늘 진짜 죽어..'
"그냥 얌전히 물이나 마시세요. 수분이 부족하다고 뭐라 하시더니."
"네.."
나는 아쉬운 대로 여소천이 사온 물병 입구를 열고 입에 가져다 댔다.
-벌컥벌컥
"음.. 으음.."
아. 기분 좋다.
시원한 물이 입을 채우고 식도에 흐르는 이 감각.
수분은 왕창 뽑힌 직후라 그런지 물이 천상의 진미처럼 느껴졌다.
"헤읍.."
한 방울도 흘리기 싫은 마음에 아예 입구를 입 안에 넣고 빨았다.
-꿀꺽
목이 너무 말랐던 탓인지 물을 마시는데 정신 팔려 주변의 감각이 옅어졌다.
무인에게 있다는 무아지경과 비슷한 정도로 물을 마시다가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됐다 느꼈을때
"파하.."
물병을 입에서 뱉어내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산소가 머리에 공급되며 자연스럽게 축소됐던 감각이 돌아왔고
"..."
"..."
"..."
"...뭐야."
원래 소란스러웠던 주변 사람들의 소음이 싹 사라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 게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내가 뭔갈 잘못했나 싶은 상황.
그 적막을 깬 것은 여소천이었다.
"뭘 봐요! 다들 구경 났어요?! 다들 그쪽 할 거나 해요! 남 신경 쓰지 말고!"
-깜짝!
"가, 갑세."
"그, 그러죠."
여소천의 일갈과 함께 집중됐던 시선과 함께 사람들이 다시 흩어졌다.
"당신은.. 어휴 정말.."
"...뭔 일 있었어요?"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길 빌게요."
....음.
'...내가 물을 요란스럽게 마시기라도 했나?'
굳이 짚인다면 그것밖에 없다.
딱히 물을 마시면서 소리를 냈던 것 같지는 않지만 한거라곤 물 마신 것밖에 없으니까.
"...됐어요. 딱 봐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니까."
"저 지금 모자 쓰고 있는데요?"
"안보여도 그 정도는 느껴지네요."
얼굴이 보이지 않을텐데도 표정을 읽다니
그 와중에 맞다는 게 분했다.
"...물 마실래요? 아직 조금 남았는데."
"...그걸 마시라고요?"
-물끄럼
나는 내가 마셨던 물병을 내려다봤다.
왜 저런 반응일까.
'아.'
그러고 보니 그러면 간접키스구나.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이건 눈치챌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방금 말은 취소.."
"아뇨 주세요! 아니 내놔요!"
-홱!
그렇게 말하더니 내 손에서 물병을 가로채갔다.
'...불편한 거 아니었나?'
간접키스라서 불편해 하는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할짝할짝
"...왜 달콤한 맛이 나는 거 같지."
"아 탕후루나 먹을까요."
"이젠 후식이에요?"
달다는 여소천의 말에 갑자기 후식이 땡겨서 탕후루를 찾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사람들이 들고 오는 거 보면 저쪽에 있을 거 같은데."
"그러면 저쪽으로 가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여소천의 팔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여소천도 그걸 깨달았는지 팔을 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지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요? 마침 둘 다 복장도 비슷한데."
아깐 몰랐는데 이제 보니 꽤 신나 보이는 표정이었다.
둘이서 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마음에 든 걸까.
그러고 보니 이 여자도 이런 데이트는 처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데이트좀 자주 해 놓을까.'
데이트에 맛 들리면 알아서 자주 집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는 여소천의 질문은..
"...어른들 몰래 시장에 놀러나온 어린애들로 보이지 않을까요."
"..."
현실적으로 대답해줬다.
내 망토는 그나마 체형을 상당 부분 가려주는 편이긴 하지만 혼자 있을 때면 모를까 옆에 여소천과 같이 있으면 나도 그렇게 키가 큰 편은 아니라는 게 눈에 보였다.
여소천의 망토는 내 것처럼 특별한 망토가 아니었으니까.
"부부나 애인으로 보이진 않을까요?"
"이 키로요?"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여소천과 나 사이로 번갈아가며 저었다.
그런 내 제스쳐가 꽤 타격이 컸던 걸까
"이익.. 당신이랑 다르게 저는 어른처럼 보일 여지가 있거든요!"
여소천은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피고 가슴을 내밀었다.
...확실히.
허리를 피니 망토 너머로도 드러나는 굴곡을 보면 그냥 좀 키가 작나 보구나 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잊으신 것 같은데 제가 당신보다 키는 커요!"
"손톱 두께만큼 큰 거 가지고 유세 부리지 마세요."
"하! 아무리 조금이어도 제가 당신보다 큰 건 안 변하네요!"
"....쳇."
내가 이런 허약한 몸으로 빙의 되기 전이었으면 한마디도 못했을 주제에.
지구에 있을 때 나는..
'...또 기억 안 나네.'
뭔가 지구에 있을 때의 기억을 세세하게 되짚어보려고 하면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제대로 기억나지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나 지식 같은 건 잘만 나오는 걸 보면 내가 지구에서 온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냥 오래돼서 그런가 보지.'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1만 포인트를 모으기 전에는 귀환이고 뭐고 없다.
만약 1만 포인트를 모은다고 해도 이미 부인 3명이 확정된 상황에서 혼자 지구로 돌아가는 것도 못할 짓이고
...당장은 옆에 있는 파란 머리 꼬맹이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당아영에게나 신경 써야 했다.
계속 걸어 어느새 탕후루를 파는 곳을 발견하고 이번에도 여소천 돈으로 2개를 사서 하나씩 먹었다.
-할짝
-할짝
키 작은 꼬맹이 2명이 나란히 서서 사탕을 핥짝이는 모습이라
누가 봐도 부부나 연인으로 봐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당아영에게 사다 줄 만두도 사 놨고 이 정도면 조금이지만 체력도 조금 회복 됐으니까..
'죽진 않겠지..'
-할짝
뇌에 당분을 공급하며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이따가 이 입으로 쓴 약물이 들어올 예정일 테니까.
-덜덜덜
벌써부터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는 것 같아서 절로 몸이 떨렸다.
"그렇게 무서우면 도와줄까요?"
"뭘 어떻게요."
"뭐 어려울 게 있나요. 제가 독봉에게 조금 강하게 하지 말라고 하면 독봉도 당신을 건드리진 못할텐데."
"..."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저게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당아영은 무력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소천을 못 이긴다.
그러니 여소천이 마음먹으면 당아영도 억제할 수 있다는 것.
"...아뇨. 됐어요."
그러면 당아영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그렇게 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할짝
"뭐 어차피 그렇게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요."
"알면서 왜 물어봐요."
"계속 떨길래 진짜 무서워서 그러나 했죠. 어차피 지금도 무서워하는 척 하면서 속으론 기대중인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누가 뭘 기대한다는.."
-쿵!
여소천이 팔을 뻗어 내 옆의 벽을 짚었다.
키가 비슷한 만큼 비슷한 눈높이로 바로 앞에 여소천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기대 안 했어요?"
"...그러니까 뭐가요."
"사실 이렇게 여자한테 밀어 붙여지는 거 좋아하잖아요."
-스륵
여소천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만졌다.
망토 안쪽으로 보이는 신비한 빛의 푸른 머리카락은 여소천의 외모를 한층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고
어느새 천천히 다가오는 여소천의 얼굴을 제지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와장창!
-콰광!
-서걱!
"꺄아악!"
"아악!
"다들 피해!!!"
"..."
"..."
"...서둘러 가보도록 하죠.."
-아득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무림인들이 싸워 난동을 부리는 것 같은 소음과 결국 아무일 없이 멀어진 여소천의 표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늘 못해도 무덤 두 개는 생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