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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49화 (149/250)

[149화] 9장-변명

"그러면 결국 그렇게 결정 난거네요..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면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결국 모든 상황이 마교에 가는 것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도 안 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안 갔다가 정말 천마라도 튀어나오면 중원 전체에 폭탄이 떨어져 버리는 일이니..

"그렇게 걱정되면 같이 가줄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진짜."

애초에 초대를 받은 건 나 뿐이다.

동행을 데려오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미쳤다고 사천당가의 여식을 마교에 데려간단 말인가.

"저야 사실상 정파니 사파니 마교니 어디에도 안 속해있는 떠돌이니까 가능한 거지 소저가 가면 분명 무슨 일 일어나요."

"그치만.."

"괜히 갔다가 소저도 같이 감금되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건 괜찮을지도?"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나 하는 거 보면 여유는 있는 모양이었다.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그 어두컴컴하고 좁은 지하실에서 언제 풀어줄지 모르는 상태로 단둘이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진짜 같이 갈까요?"

"...눈이 뭔가 위험해 보이는데 잠깐 멀리 떨어지실래요."

"손만 잡고 잘테니까.."

"남들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진짜."

분명 처음 봤을 때는 그래도 좀 장난기가 있을 뿐이지 꽤 순진한 편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됐을까.

이쯤 되면 내가 이렇게 만든 거 아닐까 걱정될 수준이다.

괜히 전에 만난 당아영의 아버지가 나보고 빨리 책임지라면서 떠넘ㄱ..

"..저기 혹시 전에 무림맹에서 장인어른이랑 무슨 얘기 했어요?"

"ㄴ, 네? 가,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니 생각해보니까 그때 그분이 기겁을 하면서 저 보고 빨리 책임지라고 했던 거 보면 소저가 무슨 일을 저지르긴 한 것 같아서요."

"아..하하.. 예, 예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흠."

왠지 수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한테 이상한 말을 하진 않았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아무튼 당아영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고

"그래도 아직까지 제가 어디 소속된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만약 내가 정식으로 어딘가에 소속된 신세였다면 이런 초대가 왔을 때 상당히 곤란했으리라.

거절 하기도 뭐하고 가기도 뭐하고 자칫하면 세력간의 싸움으로도 불씨가 튈 수 있는 상황이니 이럴 때는 외톨이가 좋긴 좋다.

반대로 소속이 없어서 곤란했던 적도 꽤 있었으니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셈이겠지.

"저기.. 그런데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다만."

그렇게 나와 당아영의 대사가 잠시 멈춘 사이 검후님의 질문이 들어왔다.

"아,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 지금 하던 얘기와는 조금 다른 종류긴 한데.. 그러면 나도.."

-부들부들

검후님은 얼굴을 붉히고 어딘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간신히 입을 여셨다.

"서, 서방님이라고 부르면 되나?"

"푸흡!"

"아, 아닌가? 남성과 제대로 된 연을 나누어본 것은 처음이라.."

"푸흡.. 자, 잠시만요. 그게.."

제대로 사레에 들려버린 탓에 나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켁켁댔는데 다행히 당아영이 내 대신 수습해주고 있었다.

"검후님.. 저희가 아직 정식으로 혼인을 올린 건 아니라 서방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일러요.."

"그, 그런가?"

"사실 애인끼리 호칭을 정한다면 뭐든 안될 건 없죠. 당장 저도 그냥 당신이라고 부르는데."

"그, 그렇군. 아. 그러면 가가는 어떤가? 예전 내 친우가 그의 연인과 그렇게 부르는 것을 봤었.."

"...호칭 문제는 좀 더 생각해보는 걸로 할까요?"

"...알겠네."

당아영이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 분위기 만으로도 검후님은 충분히 그 의미를 짐작하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렇지.

검후님한테 가가는.. 음..

나는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조용히 속으로 삼켰다.

"그런데 특별히 혼인을 올리지 않고 있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보, 보통은 그런 일도 혼인을 올린 이후에 하지 않는가."

"...음. 우선 몸을 섞은 게 갑작스럽게 충동을 참지 못하고 일어난 일이기도 했고.. 다른 사정도 있긴 있어요."

"뭔가?"

"이건 당신이 직접 말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에?"

"뭔 에? 는 에? 에요. 당신 사정이니까 당신이 설명해야죠."

"...알았어요."

나는 아직도 체한 여파로 두근거리고 있는 심장을 두드리며 혼인을 미루고 있는 변명.. 아니 이유를 설명할 준비를 했다.

"제가 검후님에게도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산속에서 지내다 왔습니다."

"음... 그랬었지. 기억하고 있네."

"그리고 산속에서 혼자 지낸 게 아닙니다. 산으로 들어가기 전 몸이 많이 아프기도 했었고 나이도 많지 않았던 지라 그때 저를 도와주셨던 스승님이 계신데 그분이 지금 폐관수련중이시라.."

내 말이 길어질수록 점점 검후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순간 내 뻔한 변명이 들키기라도 한 건가 해서 가슴을 조마조마 하고 있었는데 정작 검후님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그런 느낌의 감정이 아니었다.

"...검후님?"

"...아, 아니네. 계속하게."

"그.. 래서 사실상 부모와도 같은 스승님이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스승님 모르게 혼인을 올리는 건 제자 된 도리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검후님의 상태가 점점 더 이상해졌다.

표정이 계속 일그러지더니 내 말이 끝나갈때 쯤엔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완전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보는 내가 다 걱정될 지경이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

걱정되는 마음에 검후님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지만

-휙

"헉..! 허억..!"

검후님은 빠른 몸놀림으로 몸을 뒤로 빼면서 내게서 멀어졌다.

표정은 여전히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괜찮으세요?"

"미, 미, 미, 미안하네. 결코 그대가 싫거나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 아뇨.. 그건 상관 없는데 상태가 안 좋아 보이셔서.."

눈이 있다면 지금 검후님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으리라.

동공은 좌우로 떨리고 있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는데 거기에 숨까지 몰아쉬고 있으니 빈말로도 상태가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무슨 말 실수라도.."

"아, 아무것도 아니네. 자, 잠시.. 으윽.."

"...검후님?"

"미, 미안하네. 잠시 실례하겠네."

검후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자리를 피하셨다.

-쿵!

"...무슨 일일까요."

"갑자기 인상이 급격히 나빠지셨는데.. 뭔가 급하게 해야 하는 일이 생각난 거 아닐까요?"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검후님의 상태를 걱정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으으.. 머리가.."

마침 정신을 차렸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고 있는 안내인 여성이 보였다.

"그냥 잠깐 좀 충격적인 걸 봐서 뇌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쓰러진 거니까 특별히 몸이 나쁜 건 아니네요. 어차피 무인이라 몸은 튼튼할테니 따로 드릴 말은 없을 거 같고요."

"아, 아.. 네.. 감사합니다."

"진료비는 은전 3개만 받을게요."

"네.. 잠시만요.. 전낭이.."

"아니 왜 여기서 장사를 하고 계세요."

나는 은근슬쩍 의사 행세를 하고 있는 여소천의 어깨를 잡고 뒤로 당겼다.

"아 부인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왜 방해하세요."

"은근슬쩍 부인이라고 하지 마세요. 아직 결혼도 안했으면서."

"어차피 곧 할 거잖아요."

"겁탈해서 억지로 결혼하는 주제에."

"당신이 먼저 겁탈해달라고 유혹했어요."

"칫."

당아영이나 여소천이나 계속 내가 먼저 유혹했다느니 내가 야한게 잘못이라느니 자꾸 내탓을 하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적이 없다.

아무런 문제될게 없는 평범한 언행들이었는데 자기들이 그렇게 받아들인거겠지.

내가 무슨 강간당하지 못해서 안달난것도 아니고 왜 강간해달라고 유혹한단 말인가.

그리고 정말 만약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유혹을 했다고 해도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깔아뭉개는건 지구 출신인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뭘 바래겠냐 이런 세상에.'

"하아."

아녀자가 옷을 야하게 입고다니면 강간해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뭘 바랄까.

특별한 무공의 수련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섹스=결혼이라는 원나잇,섹프의 개념이 없는 세상이니 내가 뭐 할 수 있는게 있을리가 없었다.

뭐 그냥 간혹 있는 쓰레기한테 일명 '먹버'를 당한 뒤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으면서 살다가 술집으로 들어가는 여자들보다는 형편이 좋은 편이었지만..

'..내가 꼭 자유시간은 보장받고 만다.'

평생 집안에서 밥,잠,섹스만 하는 삶은 절대 사양이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햇빛을 보여주지 않으면 나도 파업을 선언할거다.

막 원하는대로 안해주고 반항하고 발로차고 몸도 비틀고 그럴거다.

그러면 그정도는 보장해 주겠지.

"근데 그보다 의학 지식이 있었어요?"

어느새 정말 안내인으로부터 은전 3개를 건네받은 여소천이 동전을 짤랑거리면서 말했다.

"응급처치는 자주 해봤죠. 전쟁에서 사람 목숨 살리는건 속도가 생명이거든요. 그리고 거기 있는 무인들중 제일 빠른게 저였고요."

"..아."

괜한 말을 꺼낸것 같아서 잠시 마음이 숙연해졌다.

"뭐 신경쓸거 없어요. 그 인간들도 괜히 죽은것도 아니고. 세상을. 자기 가족, 친구, 동료들을 지키다 죽은거니 동정해주길 원하진 않을거에요."

"..그래도."

"괜히 산 사람이 죽은사람때문에 불편하게 지내면 그건 죽은사람들도 불편해 하거든요. 장례 제대로 치뤄줬으면 그걸로 산 사람들이 해줄 예우로는 끝. 그 이상 괜한건 서로에게 좋지 않아요. 각자 영역이 다르니까."

새삼스럽게 느끼는거지만

이 여자도 참 생긴건 애같아도 은근 신념이 뚜렷한 편이다.

당장 20년전에도 중원을 구한 영웅중 한명이고

그동안 혼자서 언데드들의 침입을 막아오기까지 했다고 했으니 생긴것처럼 애같은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나한테 조금 심술궂은 편이라서 그렇지.

"그런 의미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자들을 모욕하는 망할 시체놈들을 빨리 처리해야겠죠. 세번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말만 좀 예쁘게하면 참 좋을텐데."

"네? 뭐라고요?"

"아무말 안했어요."

그래도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부인들이 다 개성이 넘쳐서 적어도 결혼생활이 심심하진 않을것 같았다.

......자지에 물 마를 날만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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