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9장-참사
"ㅇ, 에, 에?"
부드럽게 밀어 넘어트려진 덕분에 격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느껴진 것은 여체 특유의 부드러운 느낌과 코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의 향기.
당아영과는 또 다른 느낌의 왠지 모를 성숙미가 느껴지는 여체의 감각이 온몸에서 느껴지면서 정신이 조금 아늑해지는 기분이 들었..
"ㅁ,ㅁ,ㅁ, 뭐 하는 거에요 지금!!!"
-덜컥!
잔뜩 당황한 당아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잠시 몽롱해졌던 정신이 팍 들었다.
"가, 갑자기 사람을 안아서 넘어 트리고 그러시면 안되죠! 뭐, 뭔진 모르겠지만 빠, 빨리 나오세요!"
당아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검후님을 나에게서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미 내 몸에 팔을 휘어감은 검후님은 쉽사리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이익! 당신은 뭐해요! 당신도 떼어내려고 해봐요!"
"...제가요?"
"..아."
당아영의 힘으로 안되는데 내 힘으로?
굳이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아영은 이미 충분히 내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실제로 나도 반항을 해보긴 했지만 1초만에 파악을 끝낸 뒤 포기한 상태였으니까.
당아영은 검후님의 몸을 붙잡은 채로 계속 당겨보려고 하고 있는 상태였고
안내인 여성은 입을 벌린 상태로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여소천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여소천의 모습을 본 걸까
"처, 청뢰검님! 이게 무슨 일이죠?! 이, 이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당아영은 여소천에게 따지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말 했잖아요.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상태가 안 좋다고 외간 남자를 덮쳐도 되는 건 아닐텐데요?!"
"뭐 굳이 따지자면 외간은 아니죠 이미 몸까지 섞은 사인데."
"예?!"
이어진 여소천의 폭탄선언.
전혀 사전에 이야기된 것 없는 상황이었기에 나도 당황하면서 여소천을 쳐다보는 사이 머릿속으로 여소천의 전음이 들려왔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봐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
[어차피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것도 아니었잖아요? 지금이 기회니까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봐요. 적당히 눈치 보고 말이나 맞춰주시고.]
나는 여소천의 말을 듣고 뭐라도 말하려고 어버버거리던 입을 다물었다.
이미 열차는 떠난 뒤였다.
이제 와서 얼버무릴 수도 없으니 여소천을 믿어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사이
"그, 그,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몸을 섞어요? 검후님이랑? 그이가? 네? 언제? 왜?"
"일단 진정하세요. 그럴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으니까."
"어떻게 진정해요!! 당신 하나만 해도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제 와서 하나가 더 튀어나왔.."
"그게 그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해도요?"
"에?"
감정을 격양시키면서 길길이 날뛰던 당아영이 순식간에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여소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검후와 그가 함께 여행을 다녔었다는 건 알고 있죠? 그 여행 도중에 사고가 좀 있었어요."
"사고..요?"
"혈교의 습격 때문에 그가 기운이 크게 상한 뒤 쓰러졌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선뜻 음양합일을 통해 자신의 기운을 넘겨준 게 검후에요."
"네..?"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몸을 섞었다는 사실에 정신 팔려서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앞에 저런 사정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기껏 소중한 첫경험까지 내주면서 날 치료해준 생명의 은인한테 없던 일로 하자는 말을..
'와 진짜 개쓰레기였네.'
내가 검후님이었다면 호감도가 바닥을 치다 못해 지반까지 뚫고 내려가도 이상하지 않은 짓이었다.
그때의 나는 대체 얼마나 간이 부어있었으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그 자리에서 목숨이라도 건 게 아니었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아영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약간 노기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음양합일이라면.."
"교접이죠. 뭐 일반적인 교접보단 좀 더 다른 의도가 포함되어있긴 하지만요. 특수한 무공의 수련이라던가. 이런 경우처럼 치료라던가."
"..."
당아영은 한참 동안 고민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왜 말 안 했어요?"
-움찔!
약간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선 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차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고 내 입으로 말할 자신이 없어서 입을 떨고 있는 사이 여소천이 나 대신 대답했다.
"저 인간은 그때 제대로 쓰러져있던 상태라 뭔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었거든요. 아마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다 끝나있었을걸요? 아니면 아예 기억도 못하거나."
"...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어요?"
"괜히 음양합일까지 했겠어요? 그때 그거라도 안했으면 정말 죽었어요. 당신도 저 인간 몸이 얼마나 허약한지 알잖아요."
"음.."
...조금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정신을 제대로 차렸을 때는 이미 다 끝난 뒤였었다.
아픈 상태라서 그랬는지 음양합일의 과정은 어렴풋이 기억이 남아있는 정도지 내가 제대로 정신을 차린 건 그 뒤였다.
..당아영한테 말 안 한 이유가 그거 때문은 아니었지만.
"...으으으음.."
당아영은 팔짱을 끼고 한참 동안 침음성을 흘리더니
"...하.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죠. 제가 졌어요 졌어."
한숨을 내뱉으면서 두 손을 들었다.
"뭔가 놀아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사정이면 어쩔 수 없잖아요. 기껏 살려준 사람한테 왜 살렸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기 상 그때 검후님이 아니었으면 아예 지금 이런 관계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저랑 헤어지고 여행을 갔던 도중에 그런 일이 있었던.. 거니.... 까......."
어딘가 체념한 목소리로 말하던 당아영이 갑자기 말끝을 흐리더니
"...그러면 제가 처음 아니었어요?!"
"..당신이 처음인 줄 알고 있었던 거에요?"
"아, 아니.. 평생 산 속에서 살았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제가 처음이라고.."
"........후훗. 아쉽게 됐네요. 당신이 처음이 아니라."
여소천의 목소리에서 묘하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냥 검후님에게 몸을 맡긴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행히 검후님은 나를 껴안기만 하고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는지 어느새 내 망토는 벗겨지고 상의가 풀어져서 가슴팍이 드러나있..
"어?"
"가만히 있게.. 어차피 꿈속 아닌가. 꿈이라면 조금 욕심을 부려도 괜찮겠지."
"자, 잠깐만요 검후님! 검후님?! 여기 꿈속 아닌데요?!"
대체 양팔로 끌어안은 상태에서 어떻게 벗긴 건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위험한 상황까지 와버리자 최대한 몸을 비틀면서 당아영과 여소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 저기요! 지, 지금 검후님 상태가 이상한데요! 이대로면 큰일 날 것 같은데요! 저기요?!"
"새, 생각해보면 어쩐지 처음 치고는 너무 잘한다 싶었어요. 애무도 잘 해주고.. 그냥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동정이 아니었던 거일 줄은.."
"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우리가 아까 하던 얘기도 다시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네..?"
"아까 당신이 처음이라는 걸로 저를 꽤 밀어붙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의미가 중요한 건 처음이지 두번째랑 세번째는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독봉?"
"그..으..읏...."
"지금 그거 가지고 싸울 때에요?!"
아니 그게 저 둘한테는 중요한 문제겠지만!
아니 엄청 중요한 문제가 맞긴 하겠지만!
"지금 제가 그럴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저기요?!"
"후우.."
"가, 간지러우니까 바람 불어넣지 마요! 아, 아니 그리고 검후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요?!"
못 본 사이에 사람이 바꼈는데?!
원래 상냥하고 듬직한 여고수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뭐에 취한 것처럼 아무리 꿈이 아니라고 말해줘도 점점 몸을 비비적거리는 게
솔직히 말하자면 발정난 암캐같다.
암캐라고 해봐야 지금 나는 그 팔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세지만.
-핥짝.. 핥짝..
"으읏.."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검후님은 내 목덜미를 혀로 핥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까지 오니 나도 애써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검후님의 몸에 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 감싸기도 힘든 크기의 가슴이 내 몸에 짓눌려서 옷 너머로 부드러운 감촉을 전해주고 있었다.
당아영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당아영이 젊고 탱탱한 느낌이라면 좀 더 성숙하고 농밀한 느낌?
-물컹
하필 이 세계는 브래지어같은 것도 없는 시대라 당아영처럼 가슴에 붕대라도 감고 있지 않는 한 옷 너머로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는데 검후님은 자연파셨는지 얇은 옷 너머로 가슴 한가운데에 있는 돌기의 감촉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검후님이 내 위에 올라탄 자세상 내 다리가 검후님의 다리 사이에 위치한 상태였는데 검후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이 믿기 힘든 무언가를 느꼈다.
"..."
없다.
브래지어가 없는 거지 팬티정도는 있는 시대인데 그것마저 없다.
무릎에서 느껴진 감촉으로 판단한 거라 아닐 수도 있지만..
"저.. 저기 검후님."
-핥짝..
"호, 혹시 속곳은 어디 두셨나요?"
"..."
-스윽
다행히 내 질문을 듣긴 들었는지 검후님이 내 목덜미를 핥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한가운데서 정욕이 불타오르는 가운데 순수한 의문으로 물든 눈동자.
"..굳이 입어야 하는가?"
나는 검후님의 대답을 듣고 벌려진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