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9장-심각성
마교.
또 다른 이름은 천마신교로 천마라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는 일종의 종교세력이다.
정확히는 정식 명칭이 천마신교이고 마교라는 호칭은 그들을 제외한 중원에서 그들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의미를 담은 호칭이라 그들 앞에서 마교라고 말하는 것은 본인의 무력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좋은 선택은 아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번에 무림맹에 이어 나를 부르는 또 다른 집단이 생겼고
그곳이 하필 그 악명 높은 마교라는 것.
"..우선 사태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한번 생각해보죠."
우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서로 살벌한 설전을 벌이던 당아영과 여소천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는지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편지 내용이 정확히 뭐였는데요? 그래도 부를 때 명분 같은 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냥.. 요즘 중원에 제 소문이 자자한 것 같아서 한번 본교에도 방문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간단명료한 용건이네요."
최근에 여자 문제로 탈이 많아서 그렇지 이래 보여도 나는 꽤 유명한 점쟁이였다.
아니 보통 유명한 수준이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있던 일 때문에 사실상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점쟁이가 나일 테니까.
그걸 생각하면 마교에서 나를 부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결국 여소천 당신 때문이잖아요?!"
"아하하하... 우, 우리 지나간 일은 잊는 게 어떨까요? 과, 과거에 사로잡히는것보다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대비하는 게 더 인생에 이로운 방법이라고요?"
"맞는 말이지만 잘못한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죄송합니다."
-넙죽
여소천은 본인도 할 말이 없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마음 같아서는 도게자라도 시키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그녀의 말은 맞는 말이었기에
"...하아. 네. 일단 일어난 거 다음 일이나 생각해보죠."
머리를 짚으면서 우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야 할까요?"
사실상 결론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가느냐 마느냐.
중간 따위 없는 완벽한 이지선다.
"미쳤어요? 당연히 가면 안되죠."
당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최근에는 별 일이 없다고 하지만 그 마교잖아요. 지난 수백 년 동안 계속 중원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그 마교. 거기서 당신을 순순한 의도로 부르겠어요?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에요."
"음.."
실제 내 생각과 어느 정도 비슷했다.
아무리 최근 몇십 년 동안 별일이 없었다고 하지만 상대는 그 마교다.
정말 순수하게 내가 점을 한두 번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렀을 수도 있지만 설마 마교가 그렇게 순진할까.
막말로 나를 감금한 뒤 내게 점을 보는 것을 요구하면 수십, 수백번이고 볼 수 있을텐데 중원을 정복하겠다는 마교가 그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눈앞에서 떠나게 둔다?
냉정하게 본다면 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확률은 너무 낮았다.
"청뢰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위험하겠죠?"
"...당신 말대로 마교의 교주.. 그러니까 천마가 이번 대 교주가 된 이후로 마교가 특별히 중원에 야욕을 드러내고 있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마교는 마교니 경계해서 나쁠 게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면.."
"근데.. 그래서 오히려 문제에요."
"네?"
여소천이 보기 드물게 진심으로 골치 아파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라도 이 일을 계기로 마교가 중원으로 그 발걸음을 옮길 수도 있다고요."
"..."
당아영과 나는 여소천의 말을 듣고 숨을 삼켰다.
여소천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정마대전.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중원 정복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던 마교를 자극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최악의 경우를 말한 것 뿐이에요. 설마 그거 한번 거절 당했다고 마교 전체가 갑자기 들고 일어나서 중원으로 쳐들어오지는 않겠죠."
"그, 그렇겠죠. 제가 뭐라고 그렇게 까지 하겠어요."
"마, 맞아요. 차라리 납치를 하면 했지 중원 정복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고. 아무리 마교가 강하다고 하지만 정파도 약하진 않잖아요? 겨우 그 정도 명분으로 서로 엄청난 피를 볼 전쟁이 시작될 리가.."
"쉬워요."
"...네?"
너무나 담백한 목소리에 당아영과 나 모두 여소천이 뭐가 쉽다고 말한 건지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을 때
"천마. 지금 마교에 드러누워 있는 그 괴물이 나서기만 한다면 마교의 중원 정복은 시간문제라고요."
우리는 벌려진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아, 아니 그 정도에요? 그 정도로 강하다고요? 천마가?"
"당신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20년 전 혈교와의 전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이 다른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정파인들처럼 우리가 혈마와 혈교의 힘을 다 빼놨을 때 나타난 천마가 마무리만 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라고 믿어요 독봉."
"무, 물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긴 했지만.."
혈교와의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당시 갑작스럽게 나타난 천마가 홀로 혈마와 수많은 혈교인들을 갈아버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정파에서는 자신들이 패배한 혈교를 천마는 홀로 처리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여소천이 말했던 것과 같은 선전이 있었고.
하지만 그 자리에 직접 있던 게 아닌 나와 당아영으로서는 그 일화만으로 천마가 얼마나 강한지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도 그냥 그녀가 정말 드럽게 강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진짜 그 정도라고요?"
"네에. 정파. 아니 사파와 연합한다고 해도 중원이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해요. 지난 세월 중원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나타났던 중원 곳곳에 숨어있을 은둔고수들이라는 변수까지 포함해서요."
"...허."
이제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자존심 높은 여소천이 저렇게 담백하게 인정할 정도라는 건
그 천마라는 인간은 정말 규격외의 괴물이라는 소리였다.
아니, 여소천 본인도 천마를 괴물이라고 칭할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뭐, 이 얘기는 그만하죠. 지금은 다른 신경 쓸 것도 많은데 괜히 그 괴물까지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지 않거든요. 어차피 이제 와서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 거 같지도 않고."
"그, 그래요. 아, 근데 그러면 편지에 누가 불렀는지는 안 써져 있어요? 보통 누가 부르는지도 써주지 않나요?"
"..없던데요?"
"뭐 별호라던가 그런 것도 없었어요?"
"네. 그냥 오라는 말 정도만 있었어요."
"..골치아프네요."
우리는 그 말 이후로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고민에 잠긴 상태로 있었다.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은 어색한 분위기.
"에, 에이. 뭐 설마 천마가 저를 부르기라도 했겠어요? 기껏 해봐야 마교에 있는 대주 그 정도 되겠지 저 같은 게 뭐라고 그 정도 되는 사람이 부르겠어요."
"그, 그렇겠죠? 들어보니까 바깥 세상에 별로 관심도 없는 분..? 같던데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수도 있어요? 그렇죠 청뢰검님?"
"..그럴 수도 있긴 한데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괜히 갔다가 감금이라도 당하게 되면 누군가 구해주기 전까지 계속 그곳에서 점만 봐야 하는 신세가 될 거고
그렇다고 안가자니 마교에서 어떻게 나올지 걱정되고.
자칫 잘못하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 수 있었으니까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가 한참 고민하는 사이 여소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마침 일이 이렇게 됐으니 말해야겠네요. 아직 제가 오늘 찾아온 이유도 말 안 했었죠?"
"..아. 그랬었죠."
생각해보니 여소천이 아직 왜 찾아왔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아영이 아침부터 나를 착정하는 사이 아무도 여소천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참다 못한 여소천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가 우리의 모습을 목격한 뒤로 상황이 이어져서 이렇게 된 거였으니까.
"이런 일을 결정하려면 의견은 많을수록 좋겠죠. 마교라면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신경 쓰고 있던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도 데려와 보자고요. 마침 당신 도움도 필요하고."
"..그게 누군데요?"
"검후요."
"....아!"
생각해보니 20년 전 전장에 있던 건 여소천뿐만이 아니었다.
검후님 또한 그 자리에서 천마의 압도적인 위용을 본 인물 중 한명이었고
그분의 성격 상 여소천보다 훨씬 더 마교와 천마에 신경 쓰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분이 부른다고 그렇게 바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부를 수 있는 분이었나요?"
"아. 저번에 혹시 찾아올 일 있으면 쓰라고 받아둔 게 있어요. 화산에 가서 보여주면 아마 안내 해주겠죠."
"그런 건 또 언제 받았대.."
당아영이 말끝을 흐리다가 뭔가 의문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청뢰검님 정도면 검후님을 만나는데 도움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오히려 검후님과의 친분은 나보다는 여소천이 더 깊을 것 같은데 검후님을 만나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
"..아. 그게 말이죠."
여소천이 골치 아파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 그 여자 상태가 꽤 안 좋은 거 같아서요."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