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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142화 (142/250)

[142화] 9장-부름

누군지 모르겠지만 살았다.

나는 잽싸게 살살 눈치를 보면서 소리가 들린 문 쪽을 가리켰다.

"저, 저기 누가 온 거 같은데요."

"...그게 뭐요."

"호, 혹시 급한 연락일 수도 있잖아요. 괜히 안 열어줬다가 강제로 열고 들어오면.."

"...쳇."

'누구처럼'이라는 말은 생략했지만 여소천도 딱히 할 말은 없었는지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뭔진 몰라도 빨리 확인하죠. 얼마나 급한 일인지는 몰라도 이것보다 급하진 않을 것 같지만."

'..급한 일이면 좋겠다.'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쪽을 고르던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지옥의 이지선다를 어떻게 선택한단 말인가.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좋을 여자 두명이 서로 자신을 선택하라는 상황은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판타지겠지만

'속지 마..'

나는 어느 쪽이라도 선택한다면 당분간 침대 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본처라면 본처라고 좋다고 짜이고, 첩이면 첩이라고 화내면서 짜이고. 당분간 섹스만 하다가 기절하고 깨어나고를 반복할 미래가 선명하게 눈 앞에 그려졌다.

"제가 나가볼게요. 일단은 집 주인이니까요."

"저도 같이 갈게요."

"...하긴. 혹시 당신을 찾아온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원래 당아영의 집이 이렇게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집이 아니었다.

예전에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자주 쓰는 집이 아니었다가 나랑 그런 사이가 되면서 계속 지내게 된 거니까.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반쯤 망가진 문을 연 뒤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지?"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헤헤."

10명에게 물어본다면 10명 모두 거지라고 대답할 모습의 사내였다.

"..지금 개방에 부탁한 정보는 없을텐데."

"어휴 거지라고 다 개방 소속이 아닙니다. 거지 중에서도 좀 유능하고 그런 일등 거지들이나 개방 소속이 되는 거지 저희 같은 거지들은.."

"그래서 볼일이 뭔데요?"

여소천이 거지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당아영에게 나이로 공격당한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지 목소리에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별일은 아니고.. 이 집에 편지를 전해달라고 하지 뭡니까."

"..편지요?"

"원래 거지들이 이런 일도 잘합니다. 돈만 주면 뭐든 합죠."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거지들은 돈만 주면 온갖 일을 다 하는 족속들이고 늘 같은 곳에서 지낸다는 특성상 사람을 찾거나 찾아서 소식을 전하는걸 요청하는 일은 사실상 거지들의 주업무나 다름 없었으니까.

"여기 있습니다."

거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말 당아영을 향해 편지를 내밀었다.

"혹시 위험한 거 아니에요? 혹시 폭탄 같은 거라도 심어져 있다거나.."

"그래 보이진 않네요. 독도 없는 것 같고."

내가 누굴 걱정한 걸까.

독과 암기가 주력인 사천당문의 여식한테 혹시 위험한 거 아니냐고 걱정하다니. 정말 걱정도 팔자였다.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뭐, 일단 알았어요. 편지를 보낼만한 사람이 누가 있으려나.."

"친구 많지 않아요?"

"꽤 많긴 한데요.. 먼저 편지까지 쓸 정도로 아쉬울 게 있는 얘들이 아니고.. 쓴다고 해도 표국을 이용하지.."

"신경 쓰지 말고 말하셔도 됩니다. 이런 으리으리한 집에 사시는 분의 친구분들이 뭐가 아쉬워서 거지한테 일을 시키겠습니까."

"..뭐. 그런 얘기에요."

'음..'

듣고 보니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저기.. 편지는 받으셨으니.. 그러면.."

-핑!

"아이고 감사합니다!"

눈치를 살살 보면서 손을 비비던 그는 당아영이 던져준 은전을 받고 잽싸게 돌아갔다.

"..무슨 편지일려나요."

"빨리 확인이나 하죠. 한창 바쁜 순간이었으니."

"..전 조금 늦게 확인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편지를 늦게 확인했으면 했지만 옆에서 재촉하는 여소천과 같은 마음이었는지 당아영이 편지를 풀었고

"..응? 이거 당신한테 온 건데요?"

"네?"

"무면금귀..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별호네요. 이거 당신한테 온 편지에요."

"어어.."

당아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편지를 건내줬다.

"저, 저한테 오는 편지가 왜 소저 집으로 와요?"

"뭐, 사실 알 사람은 다 알죠? 당신이 제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는 건. 당신이 섬서에서 지낸 날이 얼만데 낮말도 밤말도 다 듣는 거지들이 그걸 모르겠어요?"

"..그렇긴 하네요."

지구였다면 모를까 이 세계에서 주거지 이전 문제나 그런 건 신경 쓸 일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뭔가 점점 당아영한테 코를 꿰이고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마저 편지를 풀었다.

당아영의 말대로 내게 온 편지가 맞았다.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읽는 사이 여소천과 당아영은 다시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매일 시도 떄도 없이 정을 나눴다던데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거 아닌가 싶네요. 그러다가 기운이라도 상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 그게 뭐가 어때서요!"

"젊어서 혈기왕성한 건 알겠는데 그것도 적당해야 이해하죠! 하루에 10번이 뭐에요 하루에! 사람 잡으려고 작정했어요?!"

"오, 오히려 배려가 부족한 건 오히려 청뢰검님 아닌가 싶은데요! 저도 들은 바로는 심하게 몰아붙여서 기절까지 시켰다고 들었는데요!"

"기절은 당신도 매번 시키잖아요!"

"저는 적어도 다음날 후유증이 남을 정도 까지는 안 해요! 다음날도 해야 하니까!"

"..이건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편지의 내용이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내 표정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처, 청뢰검님은 4번이라고 했었었죠! 따지고 보면 겨우 4번에 기절까지 시켜버린 청뢰검님이 더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대체 얼마나 격렬하게 하셨으면 그랬겠어요!"

"크, 크흠.. 근데 그건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면 제가 당신보다 더 기분 좋았다는 거 아니겠어요?"

"...네?"

"당신은 10번. 저는 4번. 아마 둘 다 총 사정한 정..액의 양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은 평균적으로 저한테 당신보다 한번에 훨씬 더 많은 양을 사정했다는 거잖아요? 사정할 때 정액의 양이 쾌감에 비례한다는 건 상식이잖아요?"

"어... 어....?"

-부들부들

편지를 읽으며 눈을 계속 아래로 내릴수록 점점 내 손은 떨림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평상시였다면 모르는 척 하면서 들었을 여소천과 당아영의 대화도 귀로 흘러 들어오기만 할 뿐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그건 제가 평소에 몸에 좋은 걸로 챙겨 먹여줘서 정력이 좋은 상태라서 그런거에요!"

"아무리 잘 챙겨먹어도 단순 계산으로도 2.5배인데 그 정도로 차이가 나겠어요? 당신이 차려주는 밥 만큼은 아니겠지만 제가 굶기고 다닌 건 아니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여행하는 몇 주 동안 쌓인 건 생각 안 하나요? 그가 저 몰래 수음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혈기왕성한 나이에 몇 주 동안의 금욕이면.. 엄청 건강한 상태였지 않겠어요?"

"그, 그건.."

"방중술도 배웠다고 하던데.. 배워서 겨우 그 정도인가요? 그때 저는 처녀었었다고요?"

"아, 아니에요! 제가 일부러 그이의 몸을 생각해서 자제해서 그러는 거라고요! 청뢰검님은 강간이었잖아요! 그이의 상태가 어떻든 신경 안 쓰고 본인 욕망만 밀어붙였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실신까지 시켜 놓고 자랑인것처럼 말하시면 안되죠! 그렇게 따지면 저도 그 정도는 가능하거든요!"

"..크읏!"

"그리고 방중술을 배웠는데 고작 그 정도냐고 물었었죠? 오히려 배웠으니까 그런 거죠. 건강한 방중술이란 한쪽만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만족스럽고 건강한 교접을 위해 배우는 거니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고작 4번에 후유증까지 남을 정도로 격렬하게 겁탈당한 뒤 기절해버리는 교접과 긴 시간에 걸쳐 몇번씩이고 절정을 느끼다가 여운에 잠긴 채 잠드는 교접. 어느 쪽이 남성 쪽에게 더 이롭고 건강한 성생활이죠?"

"...저도 하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아니 10번이 뭐에요! 20번까지 가능하거든요!"

"하! 저라고 못할 줄 아세요? 제가 작정만 하면 저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요!"

뭔가 탁자를 통해 격렬한 진동이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내 정신은 그런데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그 정도로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이 텅 비워지고,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들 정도로.

"아.."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 한창 시끄럽게 싸우던 여소천과 당아영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혹시 협박 편지 같은 거에요? 뭘 들어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이런?"

"..근데 도사라는 분이 입이 상당히 거치시네요.."

"당신이야 모르겠지만 예전에 저 꽤 유명했어요. 전장에 먹구름과 푸른 번개가 나타나면 무슨 말을 들려와도 당황하지 말라고. 오히려 지금은 성질이 꽤 죽은편인걸요."

"그러고 보니 청뢰검님이 주로 활동하시던 시기에는 전 태어나기도 전이거나 갓난.."

"이 썅년이 아까부터 자꾸 나이얘기"

"저.."

입 밖으로 나온 내 목소리는 내 손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진짜 심각한 편지에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아는 누군가의 부고소식일지도.."

"그.. 그게 말이죠.."

-툭

결국 힘이 풀려버린 손이 편지를 떨어트리는 걸 막지 못한 채로 내 입이 열렸다.

"마, 마교에서 저를 부르는데요..?"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만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던.

절대 오지 않았으면 하던 그 말이 내게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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