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방은 꼭 다른 걸로 써야지.'
마차를 쓰더라도 자면서 여소천을 향한 경계를 줄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몸을 떨었다.
"일단 돌아가기 전에 이 출구는 가리고 돌아가야 할 거 같은데요."
화재를 돌릴 겸 우리가 나온 출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쉽게도 열린 출구를 다시 닫는 기관까지는 없었고
그렇다고 이대로 그대로 두고 나갔다간 그 사이에 누가 발견할 수도 있는 노릇.
그러면 신투의 비고 그 자체를 이용하려는 우리의 목적에 어긋나게 된다.
"음.. 그러면 일단 저 멀리 물러나 있어봐요."
"출구를 부숴버리게요?"
"그것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하려고요."
그녀의 말에 따라 한참을 뒤로 물러선 뒤 다시 뒤를 돌았지만
"제가 점으로 보일 때까지 물러나요!"
"...절벽이라도 무너트리려고 그러나."
한참을 더 뒤로 물러서라는 말에 정말 여소천이 점으로 보일 정도로 뒤로 물러났고
그 뒤에 볼 수 있었다.
-콰르릉!
-우르르르르르!!
우리가 있던 출구 근처의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
-탓!
"이 정도면 걸리진 않겠죠. 자, 가죠."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사이 여소천은 태연하게 다가와서 내 팔을 잡았다.
"이거 자연 파괴 아니에요?"
"자연은 강하답니다. 비록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무너져 내리더라도 금방 푸른 빛을 되찾을 거에요."
"아니 그 재난을 그쪽이.."
"에이 뭐 죽어봤자 기껏해야 지룡이나 벌레들 정도에요. 자연에 차고 넘칠 만큼 많으니까 신경 쓰지 마요."
"그쪽 도사 아니에요?!"
"모든 것은 천지신명의 뜻대로.."
태연하게 말하는 여소천을 보면서 정말 이 세상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했다.
대체 이 세계는 무슨 잘못이 있어서 저런 여신이랑 성녀를 만난 걸까.
'..불쌍하다고 치면 내가 제일 불쌍하긴 하지만.'
구해줬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게 정말 생색까지 부릴 정도로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남은 평생을 종마로 사는 세계가 결코 좋은 세계는 아니지만..
'이 세계도 그렇게 좋은 세계는 아니란 말이야..'
중원에서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내 입장에선 거기서 거기였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아, 그러고 보니 약속 말인데요."
"네?"
여소천이 마치 내 생각을 끊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말을 걸었다.
갑자기 생각이 끊겨 당황하는 사이 여소천의 질문이 들어왔다.
"주점.. 갈 거에요?"
술.
그러고 보니 아까 그런 약속을 하긴 했었다.
어제 그런 일을 겪은 여자랑 단둘이 술을 마시는 게 마냥 좋은 짓은 아니지만
-추릅
이미 술이라는 단어를 들은 시점부터 내 입에는 침이 고이고 있었다.
4번째 전기자극 절정으로 단유성이 기절했을 때 당시
"어, 어떡해! 괘, 괜찮아요?! 죽은 거 아니죠?!"
여소천은 쓰러진 단유성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검으로 사람을 벤 적은 있어도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기절 시키는 것은 그녀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그르륵.."
"꺄, 꺄악! 정신 좀 차려봐요!"
눈을 뒤집고 입 밖으로 거품이 흘러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한번만 더 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것 때문에 지금 소중한 사람이 정신을 잃었으니 그녀로서는 패닉이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성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지식만 있을 뿐 그 깊이는 얕기에 자신이 지금 한 짓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으니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혹시 자신이 잘못해서 이대로 그가 다시는 꺠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가득했다.
-찰싹 찰싹
"어, 어떡해.."
쓰러진 그를 깨우기 위해 힘을 조절하면 뺨을 살짝씩 때렸지만 전혀 미동도 없었다.
이곳이 옛날의 전장이었다면 쓰러진 아군에게 전기 충격을 날려서 깨우는 것도 서슴지 않았겠지만 지금 그 전기 때문에 그가 기절한 상황.
아무리 상식이 없더라도 절대 그 짓을 다시 해선 안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 일단 침착하자.'
그동안 살아온 오랜 세월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여소천이 내공을 순환 시키며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그런 뒤 그녀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퐁
-주륵..
우선 아직 그녀의 질 안에 들어와 있던 자지를 빼는 것이었다.
허리를 들어 올리자 이미 완전히 쪼그라들어 아까의 위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의 자지가 힘없이 그의 배 위로 쓰러졌다.
자지와 그 주인이 모두 쓰러져있는 상황에 묘한 정복감이 올라왔지만 여소천은 그 감각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이상하게 조금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생각했을 뿐.
'일단 호흡이랑 심장 박동을.'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질 안쪽을 전부 채우다 못해 주변까지 정액이 빠져나온 상황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보지를 꽉 조여 정액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그의 가슴 부위로 얼굴을 가져갔다.
중앙에서 조금 왼쪽. 심장이 있는 부위에 귀를 가져다 대자 다행히 아직 심장이 건강하게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다음엔 그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호흡도 조금 흐트러져 있긴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의사가 아니라 무인.
자신의 판단만 믿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야, 약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여소천은 쓰러진 그를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눕힌 뒤 흰자를 드러내고 있는 눈을 닫아 편하게 눈을 감게(?) 만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약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대부분은 영약이겠지만 그 외에도 쓸모가 있는 약이 분명 있을 거다.
다른 곳도 아니라 신투의 비고니까.
원기 회복에 좋은 약 정도는 찾아보면 금방 있..
-우르르
"온통 영약밖에 없잖아?!"
지 않았다.
훔쳐도 비싼 것만 훔쳤는지 온갖 영약은 다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흔히 볼 수 있는 약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청석유, 천년 하수오, 만년설삼, 하나만 있어도 온갖 무림인들이 달려들 지고의 영약들이었지만 정작 지금 여소천에겐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금창약 하나의 가치도 없었다.
이미 그녀의 경지가 더 이상 영약 몇 개 더 먹는 것으로 다음 경지를 노려볼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단련된 무림인도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먹어야 하는 영약들을 단전이 망가진 일반인보다도 못한 그에게 먹이는 건 그냥 살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휙 휙
"이건 소림의 대환단.. 이건 영물 내단 같고.. 이건.. 빙궁에서만 나오는 건데 이거까지 훔쳤어?"
지고의 영약들이 땅에 그냥 굴러다니는 무림인이라면 크게 경을 칠 상황.
그러나 여소천은 그것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다리 사이로 정액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계속해서 약을 뒤적였고
"찾았다!"
어린 영물의 내단을 가공한 것 같은 물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어려서 품고 있는 기운이 너무 강하지도 않고 물약으로 가공된 만큼 쓰러져있는 상대에게도 쉽게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지금 상황에 딱 적합한 약.
무인이 사용할 영약으로 치면 1년치 내공도 못 올려주는 싸구려겠지만 일반인이 사용하기엔 이만한 약도 별로 없었다.
기력이 많이 쇠한 노인이나 병자들이 복용한다면 좋을 약.
서둘러 약을 들고 그에게 달려가 약을 먹이자 한층 편해진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비록 그 하얀 마녀의 세계에나 있는 신비한 물약처럼 단번에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진 못하겠지만 중원에서는 그에게 이보다 딱 맞는 약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마 약한 그에게 장기적으로 소소한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감기 때문에 목숨이 위험해져서 음양합일 치료란 명목으로 교접을 하게 되는 일은 앞으로 없지 않을까.
-화끈
'...'
아무튼 이걸로 한시름 놓았으니 이제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를 해소할 차례였다.
방금 워낙 격렬한 정사를 한 탓에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굳이 이 깊은 곳까지 온 이유는 그녀의 검을 찾기 위해서 였으니까.
검을 찾는데 특별한 힘을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 느낄 수 있었다.
-저벅 저벅
검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다가가자 아까 자신을 빠트렸던 함정이 보였다.
전에 가짜 검을 이용했던 함정이 2중으로 되어있었다면 이번에는 4중으로 되어있었다.
검을 뽑으려는 순간 발동된 함정.
그래도 3중 까지는 예상 했었는데 설마 그 다음이 있을지는 몰랐다.
결국 앞선 3개의 함정을 피한 뒤 마지막 함정에 걸려 그대로 구덩이로 떨어졌고 그 안에 준비되어있던 미약을 내공으로 막을 틈도 없이 흡입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망할 놈.'
그녀는 자신만을 저격한 이 함정을 설계한 뒤 자신이 함정에 걸렸을 때 일어날 일을 상상하며 히히덕 거렸을 신투를 생각하면서 이를 갈았다.
다른 녀석들도 자신을 놀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신투 그 새끼만 유독 심했다.
자신에게 무슨 원수라도 진 것처럼 마주칠 때마다 온갖 장난을 쳐 대는데..
-까드득
'진짜 전장만 아니었어도 죽여버렸을텐데.'
그곳이 손 하나하나가 귀중한 전장이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의 손에 찢겨 죽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석이 아무리 신출귀몰하다고 해도 시야 안에 있다면 잡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제 아무리 빨라봤자 번개보다 빠르진 않을테니까.
그리고 설마 전쟁이 끝난 마지막까지 이렇게 엿을 먹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이 끝난 날. 바로 그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새벽 동안 동료들의 애병을 훔쳐 달아나다니.
"...하아."
그때 현실을 부정하면서 동료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는 흑역사였다.
20년이나 지난 덕분에 그 동료들 대부분이 늙어 죽었다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
복잡한 감정을 품은 상태로 눈앞에 있는 자신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릉
검 손잡이를 잡은 순간부터 느껴지는 완벽하게 일체 되는 듯한 감각.
신검합일의 경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긴.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듯한 감각이었다.
-부르르
검을 완전히 들어 올리자 20년 만에 만난 애병이 오랜만이라는 듯이 그 끝을 떠는 것 같은 감각을 전해줬다.
꿈으로도 가끔씩 나왔던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
그러나 어쨰서일까.
왠지 엄청 감동적일 것 같던 애병과의 재회의 순간은 생각보다 큰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움찔움찔
-주륵
'...속옷을 입어야 하나?'
힘을 주더라도 계속 흘러나와 다리 사이를 더럽히고 있는 하얀 액체가 원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봤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병을 과연 이런 상태로 만나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복잡한 눈으로 검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덜컹!
천장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핫!"
-철퍽!
무언가가 떨어지는 기척을 느낀 순간 그곳에서 멀어졌다.
주머니처럼 보이는 무언가는 떨어지면서 자신이 원래 있던 곳 주변에 하얀 가루를 흩날렸는데
아까 자신이 구덩이 안에 떨어졌을 때 마신 미약과 똑같은 종류의 가루였다.
-파지직
"..이 새끼가 한번도 모자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