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250)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수북히 쌓여있는 금덩이들과

-반짝

그 중앙에 꽂혀 푸른색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검이었다.

검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생긴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검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여소천이 여기 온 이유 중에 하나가 검을 찾으러..'

그리고 그 사실을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앙!

여소천이 땅을 박차면서 금 무더기와 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말릴 틈도 없었다.

솔직히 누가 봐도 수상하고 함정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소천은 이미 빠른 속도로 복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여소천의 앞길을 막는 함정들이 발동했다.

-우우웅

기관들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벽에서 망치가 튀어나오고 돌덩이들이 쏟아지고 어딘가에서 발사된 화살이 여소천의 등을 노렸다.

내가 경고할 틈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콰직! 콰직! 펑!

-카드득!

전부 그녀의 몸에 닿지도 못하거나 별 타격도 주지 못하고 사라졌으니까.

망치들은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그냥 나무 조각이 되어 바닥에 흩뿌려 졌고 돌덩이들은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벽으로 튕겨나갔으며 화살은 부러진 상태로 허공에 흩날렸다.

정말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게임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실제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보기만 해도 살벌한 함정들을 방해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순식간에 전부 쪼개버리는 그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정들을 전부 파훼한 여소천이 어느새 검 앞에 도착해 폴짝 뛰어올라 검을 손에 잡던 그 순간에도 함정은 남아있던 모양이었다.

-덜컹!

금덩이들과 검이 있던 곳의 바닥이 열리면서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런 함정들도 모자라서 마지막까지 함정을 준비해 놓은 치밀함도 놀라웠지만

그것을 대처한 여소천이 모습은 더 놀라웠는데

-탓!

검은 손에 잡고 그대로 추락이 진행 중인 한 주먹 만한 금덩이를 밟고 뛰어오르면서 공중에서 한 바퀴를 굴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안전한 바닥으로 발을 딛..

-덜컹!

-쿵!

"악!"

으려던 순간 정확히 여소천이 밟으려던 바닥이 열리더니 여소천을 그 아래로 추락 시켰다.

"괘, 괜찮아요?!"

방금 전까지 그녀의 모습을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그곳에 생긴 구멍으로 달려갔다.

큰 구덩이가 아니라 딱 작은 사람 하나 정도 크기. 여소천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기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여소천의 상태를 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저 아래에 창이라도 박혀 있다면..

-오싹

그런 불길한 상상을 하면서 그곳으로 다가가자

"아야야.."

구덩이 안에서 무사히 앉아있는 여소천의 모습이 보였다.

"괘, 괜찮아요? 다치진 않았어요?"

"네, 네.. 다행히 여기에는 날붙이가 없었네요. 그래도 호신강기를 둘러서 괜찮긴 했겠지만.."

'그 순간에 둘렀어?'

아무리 인간의 탈을 쓴 인간을 벗어난 영역의 괴물이라지만 경악스러울 정도의 반응 속도였다.

"이, 일단 나오세요. 손이라도 빌려드릴까요?"

"...고마워요."

혹시 그냥 혼자서 뛰어서 나오면 기껏 내민 손이 곤란해질뻔 했는데 다행히 여소천이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이이익.."

"ㅈ, 저 안 무겁거든요?!"

그러나 워낙 이 몸이 약한 탓에 내가 여소천을 끌어올릴 수는 없었고 그냥 여소천이 내 팔을 잡기만 하고 알아서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헤엑.. 헥.."

"빠져나온 건 전데 왜 당신이 힘들어해요?!"

"저라고 이렇게 약하고 싶어서 약한 게 아니에요.."

"몸이 저렇게 약해서 나중에 어떻게 써먹을려고.."

여소천의 명치를 때리는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여소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는 당신은 왜 마지막에는 대처 못했어요? 영웅이라면서 그것도 못해요? 다른 건 다 반응 했으면서."

"그, 그건.."

여소천의 얼굴이 붉어졌다.

"애, 애초에 함정이 이상했다니까요! 정확히 제 사각에서 발동한 함정이에요! 이건 분명히 저를 잘 아는 그 자식이 저를 놀리려고 세밀하게 계산해서 제작한 함정이라고요!"

여소천의 말을 들어도 또 일리가 있었다.

정확히 여소천이 착지하는 그 각도의 땅에 구덩이가 생기는 걸 대체 어떻게 계산하고 계획했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ㅎ, 하. 뭐, 그래도 여기 검은 찾았으니까 그나마 다행.."

여소천이 그 상태에서도 놓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푸른 검을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툭

-띠딩..  

검의 중간부분이 갈라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

"..."

여소천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면서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며 귀를 막았고

"이, 이 망할 새끼가아아!!!!"

부러진 검.. 정확히는 가짜 검을 붙잡고 여소천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복도로 퍼져나갔다.

"지, 진정해요. 자. 심호흡 하고.."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그 망할 자식한테 농락 당한 거라고요?! 제가 이 검에 집착하는 걸 알면서.. 아아악!!"

-쾅! 쾅! 쾅!

부러진 검만으로 유적의 벽을 가루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벽이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원래 사람은 때때로 적절한 화의 발산이 필요한 법.

절대 내가 겁나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음음.

-카앙! 캉!

샤샤샥 뒷걸음질을 친 뒤 여소천이 화를 푸는 모습을 지켜본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후우. 이제야 분이 좀 풀리네요."

여소천이 손등으로 머리를 훑으며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풀린 거 맞죠?"

"네, 뭐.. 이렇게 대놓고 있던 함정을 눈치 못 챈 제 잘못도 있죠. 그 자식도 분명 제가 제 검을 보면 눈이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배치했던 거겠지만.. 조금만 제대로 생각해봐도 겨우 이런 곳에 제 검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그렇게 귀한 검이에요?"

생긴 것부터가 범상치 않아 보이긴 했지만 사실 검을 볼 줄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판타지 세계라면 모를까 솔직히 무협 세계의 검이 차이가 있어봐야 날이 잘 들고 녹이 잘 안 쓸고 내구도가 좋은 것 정도가 전부 아닌가.

사실 여소천급의 경지에 무기가 크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특별한 추억이라도 있는 검인 건가 했는데 다른 특별한 부분도 있는 모양이었다.

"네. 굳이 알기 쉽게 말하자면.. 제 힘을 증폭 시켜주는 검이에요. 천지신명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검이거든요."

"아.."

누가 성녀 아니랄까봐 검까지 선물로 받는다.

'..근데 성검이면 성녀가 아니라 용사 아닌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뭐 성녀의 역할이 신이 지상에 강림할 때 몸을 빌릴 화신체의 역할을 해서 성녀라고 했었으니 굳이 그것까지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근데 그런 검을 어쩌다가.."

"네! 제가 멍청해서 도둑맞았네요! 그래서 이제야 찾게 됐네요! 10년 만에! 그것도 가짜를!"

"...네."

괜히 입만 열었다가 손해 봤다.

그런 내가 깨갱하는 모습을 본 것인지 여소천이 한숨을 쉬더니 반쪽만 남은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됐어요. 어차피 끝까지 가면 있을 테니까. 계속 가기나 하죠.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저기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요?"

"저기 있는 금들은 진짜에요?"

나는 처음 검들과 함께 있던 금덩이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어두운 유적 안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는 황금의 덩어리들.

-꿀꺽

내 시선은 아까부터 거기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저걸 가져다 팔면 다 얼마란 말인가.

못 옮기겠다 싶으면 포인트로 바꿔도 꽤 많은 양의 포인트가 수중에 떨어질 것 같았다.

금화가 되니까 금덩이도 되겠지.

'술도 마시고.. 평소 먹고 싶었던 것도 먹고.. 집도 좀 안전하고 큰 걸로 하나..'

벌써부터 금의 산에 누워있는 상상을 하면서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버킷리스트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내 가슴은 지금 두근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그게 궁금해요?"

"돈은 중요하니까요!"

"하아.. 잠깐만요. 한번 봐볼게요."

여소천이 구덩이로 다가가 금 하나를 잡고 들어 올리더니 무게를 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내 기대에는 순식간에 찬물이 부어졌다.

"도금이에요."

"네?!"

"진짜 금 아니라고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아아.."

-털썩

갑자기 몰려온 허탈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예요. 그렇게 기대했어요?"

"제가 살면서 본 금 중 제일 많은 금이었단 말이에요.."

"흠.. 근데 그렇게 기대하면 꽤 실망할지도 모르는데요."

"네?"

여소천의 입에서 나온 불길한 말에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설마 여기서 더 뭐가 있어..?'

그리고 이어진 여소천의 말은

"신투요.. 의외로 현물은 많이 안 훔쳤거든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금의 산을 기대했던 나의 상상을 완전히 부숴버리는 말이었다.

"왜, 왜요?! 이것저것 엄청 많이 훔쳤다고 하지 않았어요?!"

"글쎄요? 평범하게 돈을 훔치는 건 그냥 좀도둑이랑 다름이 없다고 말했던 걸 듣긴 했는데.. 말했잖아요. 괴짜라고요. 그래봤자 결국 도둑이면서 뭐 그런 걸 따지는지."

도둑 주제에 뭐 저딴 신념이 있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신투니까 돈도 꽤 쌓여있긴 하겠지만.. 당신이 기대할 정도는 아닐 거에요. 대신 다른 문파들의 보물이나 비급 같은 건 많으니까 그거를 가져다 팔면.."

"끌려가겠죠..?"

"잘 알고 있네요."

"..하아."

아무리 주된 목적은 내 소문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신투의 비고인데. 그 유명한 신투의 비고를 터는 건데 당연히 기대를 많이 했었다.

던전을 공략하고 보물을 찾는 건 모든 남자의 로망 아니겠는가.

"돈 필요하면 말 하시지 그래요? 제가 아니더라도 당장 당신이랑 동거 중인 당아영도 돈은 엄청 많잖아요? 당신이 달라고 하면 달라는 대로 줄텐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거랑 이거는 달라요.."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채로 한숨을 쉬면서 다시 지도를 펼쳤다.

어차피 이 탐사도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끝이었다.

대충 거리를 재보니까..

'오늘은 자고.. 내일쯤에 도착하겠다.'

어느새 이 지루한 탐사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보물이 있는 곳에 도착할 거고 그 뒤에는 왔던 길로 돌아가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다.

설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테니까.

'혹시 단전을 고칠 수 있는 약은 없으려나.'

신투의 비고니까 어쩌면 그런 약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지도를 덮고 다시 탐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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