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천의 검을 포함한 동료들의 애병을 훔치고 사라졌다.
"괜히 무림공적으로 지정된 게 아니에요. 우리 애병은 물론이고 온갖 문파나 가문의 보물을 훔치다 잠적했으니.. 그 비고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온 중원이 난리가 날 거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럴 것 같네요."
"일단 당신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저한테 먼저 상담한 건 정말 칭찬할만한 일이에요. 만약 당신이 생각 없이 일을 저질렀다면 죽다 만 시체들이 활개치기 좋은 상황이 펼쳐졌을텐데.. 이러면 오히려 역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검 찾아야 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요?"
"시끄러워요!"
조금 분위기 잡는 척을 하더니 순식간에 다시 평소의 여소천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자 절로 실소가 나왔다.
"그, 그 검이 얼마나 귀한 검인지 알아요! 그게 있어야 제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다고요! 익숙하지도 않은 검으로 제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데.."
"..근데 지금 우세요?"
"아, 안 울거든요! 절대 서운한 거 아니거든요!"
여소천의 눈가에 작게 맺힌 눈물이 현재 그녀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거 좀 조금 딴지 걸었다고 서운할 정도라니.
정말 아끼는 검이었던 모양이다.
.
.
.
당연하지만 이런 지하 유적에서 시간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지구나 판타지 세계라면 모를까 중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간편한 시계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밖에 있을 때도 해의 위치를 보면서 대략적인 시간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지하에서 해가 보일 리가 없었고 결국 시간은 생체 시계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식사 때는 그냥 배가 고플 때.
그러면 잘 때는?
-꾸벅.. 꾸벅..
"..지금 졸려요?"
"핫?!"
"졸리면 말 하라고 했잖아요. 저는 며칠 밤을 새도 끄떡 없어서 자는 시간은 당신한테 맞춰야 한다고요."
"네에.."
무거운 눈꺼풀을 느끼며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자존심 때문에 조금은 버텨보려고 했는데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배는 안 고파요? 자기 전에 뭐 안 먹어도 되겠어요?"
"자기 전에 뭐 먹으면 살쪄요.."
"당신이 살 걱정을 할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 아무튼 그냥 빨리 자는 게 좋겠네요. 헛소리 하는 걸 보니 많이 졸려 보여요."
"Zzz.."
"서서 자지 말고 누워서 자라니까요! 침낭 꺼내요!"
"!"
여소천의 목소리가 귀로 파고들어 정신이 잠깐 든 사이에 손을 움직여 짐을 뒤적였다.
그런데..
"..침낭 없는데요."
"안 챙겼어요?"
"챙긴 것 같긴 한데에.. 마차에서 두고 내린 것 같기도오.."
"..많이 졸려 보이네요. 아무튼 알았어요. 자, 그냥 제 꺼 쓰세요. 어차피 체형은 비슷하니까 불편하진 않겠죠. 넉넉한 크기로 가져오기도 했고."
"고맙습니다아.."
여소천이 건넨 침낭을 받아 들고 푸는 사이 얌전히 바닥에 앉아있는 여소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요? 뭘 봐요?"
"안 주무실 거에요..?"
"뭐 침낭도 없고. 그렇다고 굳이 바닥에 엎드려서 자고 싶지도 않고. 그냥 새면 돼요. 운기행공 몇 번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가니까 괜히 심심할까 걱정은 안 해도 되고요."
"아.."
여소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펼쳐진 침낭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넉넉한 크기로 가져왔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었는지 내가 들어오고도 공간이 한참 남아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에헤.."
푹신한 침낭 안에 들어가 애벌레처럼 몸을 말자 포근한 감정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기분.
그러나 그렇게 기분 좋게 잠에 들려던 순간 옆에 앉아있는 여소천과 눈을 마주쳤다.
"으응.."
내가 잠시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하다가 입 밖으로 꺼낸 말.
"같이 쓸래요..?"
"네?!"
내 말에 여소천이 얼굴을 붉히면서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 무, 무, 무슨 소리에요! 당신 미쳤어요?!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는 해요?!"
"뭐가요..?"
"가, 같이 잔다니.. 도, 도, 동침이잖아요!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요 이 색마! 검후랑 당아영도 모자라서 이제 저까지 탐하시려고!"
"에.."
"그,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비록 여러 일이 있기는 했지만 저는 그분을 모시는 몸..! 당신에게 쉽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요! 아무리 당신의 외모가 뛰어나고 몸에서 계속 맡고 싶은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하지만 저는 겨우 그런 거에 넘어가지 않아요!"
"...에에."
졸려서 무슨 말인지 잘 듣진 못했지만 왠지 기분이 나빴다.
들으면 안될걸 들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 아무튼 방금 제안은 못들은 걸로 할게요. 남녀가 이런 공간에 단둘이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대, 대놓고 말하다니.. 정말 색마가 따로 없네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녀가 지금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제 화를 낼 기운도 없었기에 그냥 졸린 목소리로 오해를 정정했다.
"그런 거 아니라 정말 같이 자자는 건데요.."
"...네?"
"어차피 침낭도 큰 거 같고.. 우리 둘 체형이면 둘이서도 충분히 쓸 거 같아서.. 그래서 그런 건데.."
내 말을 들은 여소천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표정 변화가 다채로워서 보는 맛이 있었다.
간신히 들어올려서 입가를 가린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다른 손은 갈 곳을 잃은 채로 우왕자왕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시간이 한참 지나도 저 상태일 것 같아서 그냥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자. 들어와도 돼요. 푹신하다구요."
침낭 바깥으로 팔을 빼서 여소천을 향해 양 팔을 벌렸다.
"그, 그게.."
"저도 밤에 혼자 자려니까 추워서 그래요."
"그, 그래요?"
뭐 어차피 이미 딥키스도 했던 사이인데 같은 침낭을 쓰는 것 정도야 큰 의미는 없을 거다.
"흐, 흥. 당신이 외롭고 춥다고 하니 어쩔 수 없겠네요. 제가 도와주는 수밖에 없겠어요. 하여간 애라니까요."
혼자서 멋대로 오해하고 아무 말도 못하던 게 누구였나 싶기도 했지만 그냥 빨리 자고 싶었기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소천이 내 쪽으로 다가와 침낭 안쪽으로 몸을 넣었다.
"봐요. 별로 안 좁죠?"
"그, 그러네요."
예상했던 대로 둘 다 몸집이 작아서 그렇게 답답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그러면 이제 뭘 하는.."
그리고 여소천이 들어온 걸 확인하는 순간이 이미 내 한계였다.
"잘 자요.."
"에?"
"Zzz.."
"자, 잠깐만요? 진짜 자요? 에?"
어딘가 당황하는 것 같은 여소천의 목소리를 들으며 깊은 수마로 빠져들었다.
그래도 확실히 옆에 사람이 있으니까
따뜻한 기운이 느껴져서 기분 좋았다.
"저, 저기 진짜 자요..?"
-새액.. 새액..
"지, 진짜 그냥 자요..?"
여소천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자고 있는 그를 보면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설마 정말 그 상태로 잠에 들 줄이야.
하늘에 맹세코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이렇게 잠들어버리니 오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고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여소천 본인도 본인의 외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긴 했지만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은 어느 정도 있었다.
대외 활동도 거의 없고 일년에 다른 사람과 대화한 횟수가 10번이 넘는지 확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적었기에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었다.
그 10번도 되지 않는 대화마저 곤륜의 늙은 도사들과의 대화 뿐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검후같은 여자가 취향인가?'
그러고 보니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여성을 대하는 것 보다는 편한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기껏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필요 없다고 하고..
'..나도 가슴은 큰데.'
왠지 기분이 침울해졌다.
아무리 여자로 안 본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설마 이렇게 숨이 닿는 거리에서 같이 자자고 한다니.
분명 유혹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으으..'
속았다.
원래 이런 인간인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가.
원래 별 생각도 없이 다른 사람의 심장에 무리를 주는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인 건 알고 있어도 정작 들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성으로서의 본능을 자극하는 행동이라고 해야 하나.
분명 알고 있음에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유혹..
'핫?!'
정신이 퍼뜩 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마음은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그냥 조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뿐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에잇."
-포옥
괜히 심술이 나서 곤히 잠들어있는 그의 머리를 껴안아 가슴 사이로 끌어당겼다.
옷 너머로 그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가슴 부분이 조금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자는 사람은 깰 수도 있으니 함부로 건드는 게 아니지만
"에잇. 에잇."
어차피 그가 한번 잠들면 웬만해선 깨지 않는 체질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각도를 이리저리 바꾸며 그의 얼굴을 내 가슴 쪽에 문질렀다.
"맨날 키 작다고 놀렸었죠? 이래도 작다고 할 수 있어요?"
잠든 그의 귓가로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자는 사이에 별 짓을 다 당해도 안 깨는 사람인데.
기왕 이렇게 기회를 얻은 거 복수 겸 해서 잔뜩 가지고 놀아야겠다.
비록 키 때문에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의 얼굴을 파묻을 정도는 되었다.
그 괴물 같은 여자한테는 상대가 안되겠지만.
"어차피 파묻혀서 자는 건 익숙하잖아요. 변태."
그의 귀를 손으로 만져보고 말랑말랑한 볼을 꼬집는 등 잠든 그의 얼굴을 가지고 놀았다.
가끔씩 잠꼬대인지 몸을 조금씩 비틀 때는 팔에 더 힘을 줘서 끌어안고 다리로 다리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자 답답한지 신음을 흘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후훗. 마음에 안 들면 어쩔 건데요.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는 주제에."
어차피 앞으로 아침 시간이 되려면 한참 남았으니 얌전히 제 장난감이 되어 주..
-할짝
"읏?"
그가 옷 너머로 내 가슴을 핥았다.
옷이 두껍지 않은 탓에 그의 부드러운 혀의 감촉이 거의 그대로 전해졌다.
-할짝.. 할짝..
"자, 잠깐만요. 지금 무슨.."
마치 어미의 젖을 탐하는 아이처럼 그의 혀가 천천히 유방을 따라 그 첨단부로 향했고
-쭙
"힛?!"
금방 내 유두로 그 혀 끝이 도달했다.
옷 너머라서 강렬한 감각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민감한 부위에 부드러운 혀가 닿으니 절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 그만하죠.. 이 이상 가면 위험.."
-할짝.. 할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