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머리에 새겨지는 느낌.
그리고 나는 이 비슷한 감각이 굉장히 익숙했다.
점을 볼 때. 천기를 읽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저기 아니죠?"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불길한 감각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텁
-추르르르릅
"?!"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일이 일어났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의 입이 내 입을 덮고 있었고 그녀의 혀가 내 혀와 엉키고 있었다.
-추르릅 추릅 추르르릅
"으읍! 으으읍!!"
-툭 툭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평범한 키스가 아니었다.
얽히는 혀를 통해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의 쾌락이 올라왔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녀의 가슴을 두드렸지만 그래봤자 돌아오는 건 부드러운 감각 뿐.
이 상태에서 벗어날 힘은 내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츄르르릅
혀놀림이 더 거세졌다.
"으읍.. 읍.."
'머리가 이상해져엇..'
단순히 혀끼리 얽힐 때의 쾌감이 올라오는 게 아니었다.
-사각사각
"!!"
머리에 쾌락이 강제로 새겨졌다.
혀를 통해 뇌가 강간 당하는 느낌.
그 틈에 내 모자가 벗겨져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사실도 방금 깨달았을 정도로 머리가 이상해져 가고 있었다.
'아, 안대애..'
-움찔움찔
머리에 강제로 새겨지는 쾌감에 자지가 움찔 거리며 정액을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된다.
허접자지인 것도 정도가 있지 고작 키스 따위로 가버릴 수는 없..
-츄르릅
"응..으으응.."
안된다.
이건 내가 버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머리에 강제로 새겨지는 쾌감, 키스를 떠난, 애무 행위를 넘어선 무언가.
-움찔움찔
결국 몸도, 마음도 굴복한 상태로 자지가 정액을 내뱉으려던 순간
-파하
"엣..?"
그녀의 입이 내 입에서 멀어졌다.
머릿속에 새겨지던 쾌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움찔움찔
아직도 쾌락의 여운에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바닥을 짚고 서있자 그녀의 입이 열렸다.
"한번만 봐준다."
명백히 아까 그녀와는 다른 느낌.
"앞으론 적당히 까불어."
"네, 네에.."
차가운 박력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약간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두근두근
두근거리는 심장과 떨리는 몸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강제로 키스를 당한 상황이었지만 몸에 남아있는 쾌락의 여운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있었다.
손을 움직여 아직 온기와 물기가 남아있는 입술을 매만지자 머리가 하얘지는 쾌락과 별개로 부드러웠던 입술의 감촉이 떠올랐다.
그 상태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자 나를 내려다보는 차가운 눈빛이 느껴졌다.
그 상태에서도 빛나는 그녀의 얼굴은 안 그래도 신비한 그녀의 외모를 더욱 더 신비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외모.
'핫!'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스승님의 외모에 정신이 팍 들었다.
충분히 아름다운 외모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봤자 스승님에 비할 바는 아니다.
저런 짜리몽땅한 여자는 스승님의 폭력적인 몸매에 비하면..
'...생각보단 큰데?'
다시 보니까 저쪽도 은근 만만치 않았다.
비율 자체가 다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외모와 비교해 봤을 때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내가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도중
"핫?!"
여인의 눈빛이 처음 봤을 때처럼 돌아왔다.
그와 함께 주변을 둘러싼 막대한 천기도 모습을 감췄다.
"처, 천지신명님? 방금 무, 무슨.."
여인은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듯 몸을 더듬으로 하늘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더듬던 손길이 입에 닿았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안녕하세요?"
"꺄, 꺄악!"
여인이 얼굴을 잔뜩 붉히며 자신의 몸을 X자로 끌어안았다.
그녀의 팔에 짓눌려 존재감이 더욱 강조되는 특정 부위가 눈에 들어왔지만 괜한 트집이 잡힐까 서둘러 눈을 돌렸다.
"무,무,무, 뭐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쪽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으으으읏..!"
인격이 바뀌기 전에도 차가운 표정이었던 얼굴이 잔뜩 붉어지며 일그러졌다.
정말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인지 눈가에 눈물도 맺혀있었다.
"처, 처음이었단 말이에요!"
아. 처음이었구나.
"...한 건 그쪽인데요?"
근데 그걸 왜 저한테 따지세요.
누가 보면 내가 먼저 키스한 줄 알겠네.
"제, 제가 한 게 아니라 천지신명께서.."
"천지신명이요? 그분이 갑자기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으으읏.."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씩씩거리기만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생각했다.
'생각해보니까 이거 기회 아닌가?'
천지신명이 개입하긴 했지만 어쨌든 먼저 입을 겹친 건 저쪽이었다.
딱히 이쪽이 순결한 몸은 아니긴 하지만 순결하지 않은 몸이라고 멋대로 추행해도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너도 한번 당해봐라.'
키스는 둘째 치고 아까 볼기짝을 때린 복수를 하고자 마음먹었다.
-스륵
이미 벗겨진 모자를 정리해 오히려 얼굴이 전부 드러나게 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최대한 가녀린, 유약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이성의 입술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혀까지 얽다니.. 그게 천지신명님을 모신다는 자가 하는 일인가요?"
"그러니까 제가 한 게 아니.."
"당신이 하지 않았다고 하면 누가 한 거죠? 저는 당신의 혀가 제 입안을 무참히 유린하는 것을 직접 겪었는데요?"
"으그으읏.."
남자와 여자.
보통 상황에 비해 현재 상황이 성별이 반대가 된 것 같았지만 그딴 건 알 바 아니었다.
그저 상대를 엿 먹이려는 것 뿐.
"저, 저는 처음이었다고요! 당신은 처음도 아니었잖아요!"
"처음 아니면 멋대로 추행을 해도 되는 거에요?! 그게 도사가 할 말이에요?!"
근데 내가 처음이 아닌 건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도 천지신명이 알려줬겠거니 했다.
"으읏.. 으으읏.."
내 말에 할말이 없어진 것일까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러나오기 직전처럼 맺혀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놀렸나?'
아까 전까지 나를 위협하고 내 볼기짝을 때리던 여자가 저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 정도면 용서해 주자.
어차피 저쪽도 잠깐 몸을 빌려준 입장에 불과하고
여기서 괜히 더 놀렸다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알았어요 책임지면 되잖아요!!!"
....어.
잠깐만.
거기까지 원한 건 아니었는데.
"차, 착각하지 마세요! 책임진다는 의미는 제가 당신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비록 그렇게 싫어하는 당신이라고 해도..! 제 의사로 행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책임질 필요가 있으니까 이러는 거에요! 그분을 모시는 입장에서 그분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것 뿐이라고요!"
"아니 잠깐만요 지금 조금만 진정하고.."
"하지만 알아두세요..! 당신이 제 다른 것은 얻을 수 있다고 해도 마음만은 절대 얻을 수 없을 거예요! 저는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니까..!"
"아니아니아니 진정해 보라니까요."
"ㅈ, 자! 곤륜의 도사인 몸이라 공개적인 혼인은 불가능하겠지만 비공식적으로 하는 것 까지는 막을 수 없죠..! 어차피 저나 당신이나 상견례는 필요 없으니까 생략하고.."
틀렸다. 내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너무 놀려서 감정이 폭주한 상태인 것 같다.
그 와중에 패드립까지 하는 건 뭘까.
뭐, 상견례가 필요 없는 건 맞지만.
"이, 일단 예물부터 맞춰야겠죠? 괜한 장신구는 방해가 될 수 있으니 간단하게 반지로 하죠. 저는 비취색이 좋.."
-텁
"장난이었으니까 그만 하세요. 딱히 신경 안 쓸 테니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당황한 건 알겠지만 이건 좀 과했다.
이러다가 손주 이름까지 지을 기세였으니 말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녀의 외모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중원에서 손에 꼽히는 수준이라고 해도 강호에 나와있는 동안 그런 연을 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곧 산 속으로 돌아 가봐야 하는 몸. 그런 연을 쌓았다간 괜히 서로에게 안 좋을 뿐인데다
'이런 방식은 싫어.'
저런 마음에도 없는 혼인은 내 쪽에서 반대다.
나는 육체적인 사랑을 원하진 않는다.
마음까지 교감을 나누는 그런 사랑을 원하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저렇게 싫은 티를 팍팍 내는 상대와의 혼인은 차라리 안하니만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무슨 키스 한번으로 결혼까지 간단 말인가. 섹스까지 하고 없던 일로 한 사람도 옆에 있는 마당에.
..이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뭔가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지만 나는 억울했다.
두 번 모두 나는 전혀 선택권이 없던 상황에서 강제로 당한 짓이었으니까.
"...네?"
"장난이었다고요. 책임질 필요 없다고요."
"..."
그녀는 내 말을 들은 뒤 내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이익..!"
안 그래도 붉게 물들었던 그녀의 얼굴이 터지기라도 할 듯이 빨갛게 물들더니
"두, 두고 봐요!! 오늘의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아줄 테니까!!"
그대로 마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마차 밖으로 나간 그녀는 그대로 푸른 번개에 휩싸여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