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 뒤에 있는 그를 향해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은 확인한 뒤였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그에게 검을 휘두르게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밝힌 이유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곳에 감히 천지신명님을 능멸한 건방진 점쟁이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
"감히 그분을 모욕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그 죄를 죽음으로 묻고 싶지만 그분께서 간단한 '교육' 정도만 원하셨기에 참은 겁니다."
"그게 무슨.."
하늘, 천지신명을 마치 별개의 인격을 가진 인물처럼 말하는 그녀를 보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하는 '하늘께서~', '천지신명께서~' 라는 묘사를 사용한다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개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그것을 신(神)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못 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군."
그녀쯤 되는 인물이 이상한 종교에 빠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인의 깨달음이란 다른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녀가 무엇을 깨달았건 내가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와 나의 깨달음은 같을 수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무엇을 깨달았건
-스릉
"그에게 위해를 끼치려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네."
그를 건드리게 둘 수는 없었다.
"..비키시죠 유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저를 막는다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네."
"하.. 뭐, 순순히 비켜주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예상 했어요. 그러면.."
[잠시만 자고 계세요.]
전음으로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각사각
무언가가 쓰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의식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 * *
'뭐, 뭐야 이게?!'
마차 제일 안쪽 구석으로 이동한 뒤 선명하게 느껴지는 힘의 파동에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었다.
'또 습격이야?!'
대체 이놈의 세상은 어떻게 돼먹은 세상인건지 어떻게 멀쩡히 있을 수 있는 날이 없다.
아무리 바깥 세상이 위험한 세상인지 알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위험한 세상일 줄 알았겠는가.
'다 싫어.. 그냥 돌아갈 거야..'
이렇게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일이 끊이질 않는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그냥 섬서로 돌아가는 대로 당아영한테 인사만 하고 바로 스승님과 지내던 산으로 돌아갈 거다.
돈은 있으니까 책이라도 잔뜩 사서 돌아가면 스승님이 나올 때까지 무료함은 달랠 수 있을 거다.
'그, 그래도 당장은 별 일 없을 거야.'
느껴지는 힘의 파동이 상당하지만 검후님이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정파의 최고 고수 중 한 명인 검후님이다.
그런 검후님이 있는데 겨우 이런 습격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그, 그래. 검후님을 믿자. 분명 나는 안전..'
두근거리는 심장을 두드리며 억지로 안심하던 그 순간
-툭
저 밖으로 검후님이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내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 상태에서 검후님과 검을 맞대고 있던, 이 습격의 장본인이 이쪽을 향해 오기 시작했다.
신비한 푸른색의 머리카락과 성인 여성이라고 하기엔 그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검후님과 비슷한 급의 미녀였지만
"안녕하세요? 당신이 단유성이죠?"
내 눈에는 나를 위협하는 사람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내, 내 이름을 알아?"
"네. 알죠. 모를 리가 있나요. 천지신명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도 모르고 항상 그분을 모욕하기만 하는 건방진 애송이를."
"...!"
그녀의 말을 듣자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인의 주변으로 느껴지는 막대한 천기.
천지신명과 보통 가까운 관계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도,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이유도 추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 사람을 보내는 게 어디 있어?!'
1000% 하늘과 관련이 있다.
그것도 그냥 그런 방향으로 운명을 유도한 것도 아니다.
아예 대놓고 내가 이쪽에 있으니까 혼내 달라고 보낸 거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보통 사람이 천지신명과 그렇게 소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다.
내가 모르는 그런 특별한.
'천지신명님?! 평소에 좀 놀렸다고 이러는 건 아니죠?!'
[...]
'야 이 나쁜놈아!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겨우 욕 좀 했다고 이렇게 보내버리려..'
"아."
-흠칫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여인이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봐주려고 했는데 더는 안되겠다.. 라고 하시네요."
"에..?"
뭐지 방금?
설마 실시간으로 하늘이랑 소통하고 있는 거야?
그런 게 가능해?
"부디 다음부터는 좀 더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길.."
그런 의문을 해결할 틈도 없이 내게 다가오는 여인을 보며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윽!"
"이제 반성하셨나요?"
"그러니까 내가 뭘.."
"아직도 멀었네요."
-짜악!
"악!"
볼기짝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 배가 그녀의 무릎에 얹어진 자세.
전생에서도 실제로 당한 적 없는 체벌에 자존심이 망가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건방진 애를 훈육할 때라면 모를까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억울한 건 난데.
잘 살고 있다가 멋대로 이런 세상에 빙의 당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 난데 왜 내가..
"당신이 알긴 알아?! 내가 당신이 말하는 그 하늘 때문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
억울함이 복받쳐오자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큰 소리가 나왔다.
-울먹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목소리에서 눈물기가 섞여 나왔다.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다.
내가 건방지게 군 거? 그래. 장난을 좀 쳤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 전에 본인이 내게 한 짓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을 멋대로 다 죽어가는 몸에 빙의 시키지 않나, 선심 쓰듯이 던져준 상점창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27년을 기다리거나 금 만냥을 구해오라고 하질 않나.
천기를 읽을 수 있게 해주긴 했지만 그것도 정작 중요한 내 미래는 못 읽는 반쪽짜리고
속 시원하게 다 알려주고 싶어도 천기누설로 입을 막아 놓고
"이 나쁜 놈아.."
이미 눈물샘은 터진 뒤였다.
-뚝 뚝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망토를 적시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무언가 반응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미안한 기색은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은혜도 모른다고 하는 거에요."
지금 까지 보다 더 차갑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당신은 천지신명님이 아니었으면 어떤 짓을 당할 운명이었을지 알기나 한가요?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차원의 영혼을 기껏 구해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는 못할망정 이런 건방진 말이나 하고 있으니 그분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도 알 것 같네요."
"자, 잠깐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 당신. 제가 다른 차원 출신인 걸 알아요?"
"네."
지금 눈앞의 여인이 내 출신을 안다는 것도 의문이었고
'나를 구해줘?'
천지신명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당할 운명이었다는 말도 거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에 내가 어떤 일을 당할 것 같은 예고 같은 건 없었다.
사고 같은 걸 당한 것도 아니고, 몸도 약하지 않았으며 주변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가 어떤 일을 당할 운명이었다는.."
"그건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말해드릴 수 없네요."
-빠직
"$#&$#&%#"
순간적으로 열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 시발
내가 그 망할 놈한테 기대한 게 잘못이지.
내가 뭐 무슨 짓을 당할 운명이었다느니 천지신명은 나를 도와준거라느니
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잠깐이나마 속을뻔했던 내가 병신이지.
그딴 성격 나쁜 놈한테 무슨 호의를 기대하겠다고.
야! 하늘 듣고 있냐!
직접 못 와서 이렇게 대신 사람이나 보내서 볼기짝이나 때리는 비겁한 놈아!
뭐! 왜! 꼽냐! 꼬우면 전처럼 번개나 쳐보던가!
못하지? 극진히 아끼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못하지?
그러면 직접 와보던가!
못 오겠지? 천하의 천지신명께서 겨우 점쟁이 하나가 욕한다고 이렇게 사람이나 보내는 것도 부끄러운 걸 알아야지 평소에 자기가 나한테 한 건 생각 안하고 이런..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어."
뭔진 모르겠지만
방금 굉장히 불길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끼기긱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자
"..."
푸른 빛을 내뿜고 있는 눈이 보였다.
주변으로 천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저기 혹시 방금."
"야."
-흠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