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250)

..왜?

설마 둘이 아는 사이인가?

-팟!

"으엑!"

"아아.. 유성아.. 유성아..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으에에.."

당황해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사이 괴한이 그를 낚아 챘다.

그를 한 팔로 끌어안고 척 봐도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몰골로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다.

'설마 저 여자도..'

나를 향한 엄청난 살의.

그러나 그를 품에서 내려놓자 바로 그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은 모습.

그리고 오랜만에 본다, 보고 싶었다 라는 언급.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였다.

'대체 얼마나 여자를 홀리고 다녔으면 저런 미친년까지 끌고 와?!'

그에게 홀린 여자 중 한명이라는걸.

아무튼 잘됐다.

어차피 그녀나 나나 비슷한 처지.

잘 설득해 한번씩 나눠 먹자고 해보면 나도 기회를..

"유성아..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누나가 금방 저 걸레년은 처리하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괴한이 그를 자신의 뒤로 감추며 다시 이쪽으로 칼을 내밀었다.

-꿀꺽

협상을 제안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를 뺏어가고도 나를 향한 가공할만한 살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삐질삐질

'어, 어쩌지?'

저 정도의 살기를 내뿜는 인물을 상대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이

-피잉!

한 자루의 검이 날아왔다.

던진 것처럼 날아온 것이 아니라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날아와서..

-파앙!

"꺄악!"

괴한을 칼등으로 쳐 날려 보냈다.

그녀가 날라가기 전, 검에서 어떤 기운이 폭발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타닷!

"이게 무슨 소린인가!"

검이 날아온 방향에서 아까 전까지 그를 두고 경쟁하던 여인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

"괜찮나?! 저자가 무슨 짓을 하진 않았는가?!"

"어지러어.."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를 붙잡고 뭐라 말하는 사이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방금 뭘 본거지?'

단순히 검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검으로 기를 폭발 시켜?

이전 세게에서 소드마스터들도 못 쓰던 기술이었다.

근데 그걸 겨우 소드 유저밖에 안 돼 보이는 여자가 쓰는..

'..정말 소드 유저인가?'

검사들의 경지 중에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밖으로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아 오히려 기운이 낮아 보이는 경지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과 비슷한 거라면..

"다행이네.. 그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나는 정말.."

-오싹

어쩌면 말도 안되는 사람에게 덤비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 벽에 쳐박힌 괴한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스승..님...?"

-부들부들

배를 붙잡고 팔을 그쪽으로 뻗었다.

방금 전 충돌로 인해 기운이 꼬여 고통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지금 상황이 더 중요했다.

"다행이네.. 그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나는 정말.."

스승님이 유성이를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미 반로환동의 경지에 오르신 분. 10년이 지났더라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조금 변했다고 해도 몰라볼 리는 없었다.

사실상 부모님처럼 따르던 분이었으니까.

"아아.. 정말 다행이야.."

그런 스승님이 유성이를 품에 끌어안고 쓰다듬고 있었다.

...왜?

왜 스승님이 유성이를..?

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거지..?

나이 차이가 차이라지만 엄연한 이성인데 끌어안는 것에 너무 거부감이 없었다.

이미 서로 긴밀한 관계라는 증거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스승님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스승님이다.

그 올곧고 정의로우신 분이 자신의 제자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아이와 그런 관계를 쌓을 리가 없었다.

분명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 쓰다듬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실 분인데..

'왜..?'

지금 눈앞의 상황은 그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유성이를 꽉 껴안고 있었고 유성이도 그에 저항하는 기색이 없었다.

절대 평범한 관계에서 보일 수 있는 반응이 아니었다.

내가 유성이에게 저지른 일이 있는데.

스승님도, 유성이도 그걸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을텐데.

그 둘이 저런 반응을 보여?

'아, 아니야. 진정하자.'

그 사이에 있던 시간이 무려 10년이다.

강산도 변할 수 있는 시간인데.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어 화해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근데..

'껴안는 건 다른 문제잖아!!!!!!'

감히! 감히! 감히!!

나를 죽여 놓고!! 차가운 죽음으로 나를 유성이와 갈라 놓고!!!!

그 사이에 유성이를 껴안아?!

-까득

아무리 스승님이라고 해도 용서 못한다.

아무리 내 부모님과도 같은 분이라도 용서 못한다.

나 이외에 유성이의 몸에 손 끝 하나라도 대는 여자는 전부 적이다.

-채앵!

"으아아아아!!!!!"

분노, 증오, 배신감. 지금 느껴지는 모든 감정을 검에 실어 스승님에게 달려들었다.

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 살아 생전의 경지가 절정.

내가 100명이 달려들어도 스승님의 검에 스치기라도 할 수 있다면 기적이다.

"..감히 누구의 뒤를 노리는 것이냐!"

-파앙!

"크윽!"

스승님이 검을 뽑아들 필요도 없이 팔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뒤로 밀려났다.

그 정도로 전력의 차이는 압도적..

-우득

"..용서 못해."

억지로 힘을 주어 관절을 비틀었다.

일반적인 인간으로서는 나올 수 없는 각도.

하지만 이걸로 검을 한번 더 휘두를 수 있는 기회는 얻었다.

"?!"

스승님의 얼굴에서도 당황이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 상태로 나는 스승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내가 생전에 익힌 무공 중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잘 다루었던

다름 아닌 눈 앞에 계신 스승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스승님의 무공이 스승님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무슨?!"

-채앵!

검과 검이 부딪히며 주변으로 매화향이 퍼져나갔다.

-펄럭

풍압에 의해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피풍의가 벗겨지며 내 얼굴이 드러났다.

스승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그를 찾기 위해 점장이 알려준 곳을 전부 돌아다녔지만 애꿎은 자들에게 민페만 끼치고 있다가 가게 입구에서 느껴지는 소음에 서둘러 그쪽으로 달려가..

-멈칫

다가 금방 다리가 멈춰 섰다.

그 순간 멈춰선 이유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직 그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이유로 걸음을 멈췄다는 걸 깨달았을 때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허구한 날 싸움이 벌어지는 중원이라지만 가만히 놔뒀다간 주변의 죄 없는 민간인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소란이 들리면 바로 달려갔던 것인데 그를 찾기 위해 이를 망설여?

-오싹

자신이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려운 감정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은 자아 성찰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소음의 종류로 파악해 봤을 때 분명 무인들의 충돌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려가야 죄 없는 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또한 그쪽에 있을 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서둘러 소음이 들린 쪽으로 달려가자 주점의 입구가 어떤 소란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크게 더럽혀져 있었고

-까득

"..감히."

망토를 덮어쓴 괴한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그것 만으로도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은 충분했다.

-피잉!

이기어검에 발경의 묘리를 실어 괴인을 타격해 날려 보냈다.

아마 내부의 기가 꼬여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터.

"이게 무슨 소란인가!"

괴한과 대치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장에게 잠깐 눈길을 보내며 바로 그에게 달려갔다.

-흔들흔들

"괜찮나?! 저자가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는가?!"

"어지러어.."

다행히 의식은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그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나는 정말.."

그를 품 안에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이 소란 속에서 다친 곳은 없나 살펴보기 위한 행위였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

그를 살펴보고 있는 사이 괴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그걸 생각할 틈은 없었다.

지금 당장 그녀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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