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250)

"손님! 무사하시죠?! 그 사이에 다른 종업원들이 손 안 댔겠죠?!"

"돌리지 마요.. 어지러워요.."

부점장은 옆에서 그녀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때

-딸랑

"..여기 점장 있나?"

가게의 문이 열리며 망토를 눌러 쓴 여인이 가게에 방문했다.

"점장님. 점장님을 찾으시는 분이.."

"하아.. 하아.. 진짜 중독될 것 같아.. 진짜 한번만 따먹어 보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

"...후우."

부점장은 한숨을 쉬며 대신 여인에게 향했다.

"안녕하세요 부점장입니다. 혹시 무슨 이유로 점장님을 찾으시는.."

-싸아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싹한 기운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살기가 가게 입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팟!

부점장과 점장 모두 살기를 느끼고 그녀에게서 멀어졌을 때,  망토를 눌러 쓴 여인의 입이 열렸다.

"...유성아?"

듣기만 해도 뼈가 시릴 혹한과도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이, 이제 다 왔습니다. 여기 골목을 나가기만 하면 바로 앞에.."

"그래 수고했어."

-푸슉!

길을 안내해준 사내를 처리하고 주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되게 크고 화려하네.'

겨우 주점 따위가 이렇게 커도 되는 걸까.

주변 다른 문파나 관에서 간섭이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원래 하오문 소속이었다는 말을 듣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림과 그 바깥의 대부분의 정보를 손에 쥐고 다루는 그들의 힘이라면 크게 문제되는 것도 아니겠지.

그들이 왜 독립을 선택했는지 그런 세세한 속사정까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요청 받은 대로 그들에게 경고를 한 뒤에 돌아가 유성이에 대한 정보를 받으면 그만이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여자들을 유혹하며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에게 당한 충격 때문에 여자들을 멀리하고 혼자 살고 있을까?

후자면 굉장히 기분 좋을 것 같다.

그게 비록 부정적인 감정일지라도 나를 기억해서 다른 여자들을 멀리했다는 것 아닌가.

상상만 해도 기특해서 끌어안아 주고 싶은 가정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정이 굉장히 낮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어린 나이의 소년이 단전이 망가진 상태로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마 굉장히 낮을 거라고 생각한다.

길에서 구걸만 하고 산다고 하더라도 그 외모를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가만히 둘까?

그럴 리가 없다.

당장 겁탈하진 않더라도 키운 뒤에 수작을 부리려고 데려갈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남창으로 팔려갔을 수도 있다.

-덜컹

가슴 속에 무거운 쇳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남창으로 팔려가..?'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유성이의 몸에 다른 여자들의 더러운 손길이 닿고, 유성이는 처음에는 몸부림치며 거부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점점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직접 여성에게 봉사를 하는..

'우욱!'

안된다.

그럴 수는 없다.

한 명 한테만 더럽혀 졌어도 끔찍한데 여러 명한테..?

이름도 모르는 년들한테..?

그럴 수는 없다.

그딴 년들한테 유성이가 수십, 수백 번은 굴려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빨개지며 살의가 올라왔다.

만약 유성이가 남창이 되거나 그런 비슷하게 살고 있다면..

우선 유성이를 안고 있는 여자부터 죽인다.

아니, 쉽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죽기 전까지. 최대한 고통스럽게. 살아있는 걸 저주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최대한 살려서 고문하다가 최대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할 거다.

-고오오

'아.'

주변을 둘러보자 무의식적으로 내뿜은 살기 때문에 다들 거리를 벌리며 나를 피하고 있었다.

딱히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어차피 주점에 경고를 하러 온 입장이니 기선제압 측면에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경고를 하러 온 것이지 칼부림으로 싸움을 일으키려고 온 게 아닌 만큼 살기를 조금 줄이고 입구로 다가갔다.

아까 분명 창녀같이 생긴 여자들이 입구에 있던 것 같은데 내 살기 때문에 도망간 모양이었다.

'안에 들어가서 물어봐야 하나.'

-딸랑

"..여기 점장 있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여자가 숨을 거세게 쉬며 망토를 입은 누군가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여자도 있던 것 같았지만 그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민감해진 감각을 따라 사내에게서 나는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엄청난 술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그것보다 더한 체취가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 체취가 정말 익숙했다.

10년 전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전혀 약해지지 않은 여성을 유혹하는 그 향기가.

-싸아아

커다란 망토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고작 얼굴이, 몸집이 보이지 않는다고 몰라볼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유성이를.

그런데.

"...유성아?"

그 여자는 누구야?

몸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는 뭐고?

차가운 살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내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낀 탓일까. 나에게 다가왔던 여인도 무언가 준비를 하는 자세를 취했다.

-까드득

나는 이미 지금 상황에 대해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린 뒤였다.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지는 몰라도 유성이가 저렇게 만취한 채로 품에 안겨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분명 저 여자가 억지로 술을 유성이에게 먹인 것이리라.

아마 그 다음에는..

'용서 못해.'

감히 유성이에게 술을 먹인 그 손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자른 뒤에 유성이의 늘어진 목소리를 들었을 귀도 자른다.

유성이의 몸을 훑어보며 음탕한 생각을 했을 눈도 뽑아버릴 거다.

절대절대절대절대 용서 못해.

감히 나의 유성이를. 나의 소중한 유성이를 탐해?

살아있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야.

네가 유성이를 탐한 만큼 너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겠어.

-두근

되살아난 이후로 뛰지 않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 * *

'다행이야.. 내가 먼저 찾아서..'

일부러 그 여자를 손님이 없을 것 같은 쪽으로 보낸 보람이 있었다.

설마 우리 부점장이 데려올 줄이야.

부점장의 공훈(?)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은 이 손님을 감추.. 아니 선수를 치는 게 우선이었다.

언제 그 여자가 낌새를 느끼고 이쪽으로 올 지 모르는 일이니 서둘러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한입 해야겠지.

-추릅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눈 앞에 이런 극상의 과실을 놔두고 고작 그걸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못 먹으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방으로 데려가서..'

행복한 상상을 하며 침을 삼키는 순간

-싸아아

-흠칫!

바로 근처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느껴졌다.

마치 평생의 원수라도 본듯한 엄청난 살기.

'뭐, 뭐야?

황급히 살기가 느껴진 쪽을 바라보자 웬 망토를 뒤집어 쓴 여자가 이쪽을 향해서 거대한 입구를 가득 메울 정도의 살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더 놀란 사실은

'왜 하필 나야?!'

그 가공할만한 살기의 대상이 나라는 사실이었다.

-싸아아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마법을 시전해 몸을 감쌀 커다란 방패를 만들어냈다.

-카가가각!

"허억..!"

검이 순식간에 방패를 가르려다 바로 코앞에서 검이 멈춰섰다.

"[터, 터져라!]"

-펑!

그 상태로 방패를 폭발 시키자 방패의 파편인 피의 가시가 괴한 쪽으로 날아갔다.

폭발의 반동으로 괴한이 밀려나는 동안 생각했다.

'어, 어쩌지? 왜 날 노리는 거지?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솔직히 짚이는 게 너무 많았다.

이 주점이 처음부터 내 것도 아니었고 전 주인을 처리한 뒤에 적당히 차지한 뒤 주변 상인들과의 마찰도 일방적으로 짓밟으며 해결해낸 탓에 원한을 가진 자가 자객을 보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힐끔

한 팔로 안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근데 왜 하필 지금!!'

하루만. 아니 2시간만 늦게 왔어도 충분히 즐길 건 즐길 수 있었을텐데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세상에 신이 있다면 이럴 수가 없다.

어떻게 타이밍이 이렇게 된단 말인가.

-아득

선택을 내려야 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품 안에 안겨있는 사내는 이 상황에서는 짐밖에 안됐다.

괴한이 내 목숨을 노리고 있는 걸 안 이상 이 사내를 안고 싸울 수는 없었다.

싸움에서 한 팔의 부재는 큰 약점이니까.

'으으으으..'

결정을 내리고도 계속 망설여졌다.

빨리 저 괴한을 처리한 뒤에 다시 안으면 그만인 일이지만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었다.

이미 그 정도로 이 몸이 주는 향기와 감촉에 매료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냥 이대로 안고 싸울..'

최후의 선택을 망설이는 사이 괴한의 망토가 흩날리며 눈이 마주쳤다.

새빨갛게 붉은 눈.

이글이글 타오르는 동시에 차갑게 식어있는 모순된 그 눈동자를 보고 느낀 것은 어마어마한 공포였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생물을 보는 것에서 오는 원초적인 공포.

-팟!

"부, 부점장! 이분 잘 모셔!"

"예?!"

그를 부점장이 있는 쪽으로 던지며 괴한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조금의 빈틈이라도 내주면 바로..

-타닷!

"유성아!!!!"

'..응?'

괴한이 내가 아닌 그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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