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250)

최우선 과제는 유성이를 만나는 것.

한시라도 낭비할 순 없었다.

어차피 안내만 받은 뒤에 죽일 생각이지만.

"이, 이미 그런 관계시라고요?"

"그렇게 놀랄 일인가. 다 큰 남녀 둘이 사랑을 나누는 일이."

"그, 그럴 리가요 후훗.."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이미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니.

심지어 서로 처음이라니.

성적으로 보수적인 면이 있는 이 세상에서는 상당한 이점이 있는 관계였다.

저쪽이 조금만 더 이런 종류의 싸움에 능숙했더라면 정말 힘든 싸움이 될뻔 했다.

"왜 그런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인데."

"아, 아닙니다.. 그냥.. 제 상상 이상으로 손님분들께서 깊은 관계시라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후훗.."

"그런 관계인 걸 알았으면 슬슬 물러나 주는 건 어떤가?"

"어머.. 그렇지만 손님께서 아까 딱히 애인 관계는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분명 특별한 관계는 아니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크읏."

나름의 비장의 한 수였던 것 같지만 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제대로 느껴졌다.

스스로의 말에 발목 잡히다니. 처음부터 섹스도 해봤고 애인이라고 강하게 나섰으면 이쪽에선 아무것도 못했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이미 첫 경험까지 교환한 애인 사이에 끼어든다?

저쪽에서 나한테 검을 휘둘러도 할 말이 없다.

'그나저나 동정처녀교환섹스는 했는데 애인은 아니라..'

이쪽 세계에선 흔치 않은 관계였다.

이전 세계였다면 섹스프렌드라도 되겠거니 싶을 수 있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그러면 이 여자는 이 남자랑 자 본 적이 있다는 말인데..

-꿀꺽

'얼마나 맛있었으면 이렇게 까지 견제를..'

맛집에 괜히 손님이 계속 생기는 게 아니라고 절로 꼭 한번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손님. 잠시 허례허식은 제쳐두고 솔직한 대화를 나눠보시지 않으시겠어요?"

"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들어나 보지."

"맛있으셨나요?"

-츄릅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입 안에 침이 고여있었다.

"..일단 그 손을 풀면 대답해 주도록 하지."

"네? 손이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더듬더듬

"가, 간지러어.."

나도 모르게 손으로 내 품에 안긴 그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진짜 한번만 따먹어 보면 소원이 없을텐데.'

아무리 만취했다지만 이 본능적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몸짓이라던가 저절로 몸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향기라던가 정말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몸이었다.

오히려 그가 이런 이상한 망토까지 뒤집어 써가며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도 납득이 갔다.

만약 대놓고 드러내고 다녔으면 이미 큰 화를 당했을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잠깐만.'

혹시..

"..손님. 두 분의 관계에 합의가 있던 건 맞겠죠..?"

"..."

"손님..?"

"무, 물론이네. 설마 한쪽이 겁탈이라도 했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뭔가 굉장히 수상했지만 일단 믿기로 했다.

뭐, 정말 강간이었다면 같이 술을 마시러 오지도 않았겠지.

"그러면 대답 좀 해주시죠. 맛있었나요?"

지금 품 속의 사내가 쾌락에 물들어 흐느적 거리며 신음 소리를 내는 장면을 상상했다.

-주륵

입에 고인 침이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 * *

'...맛있었냐는 게 뭐지?'

우선 그를 더듬고 있는 저 파렴치한 손길부터 떼어 놔야 한다고 생각해 대답해 준다고 했지만 정확한 의미가 뭔지를 몰랐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상황에서 음식이 맛있었냐는 건 아닐 거다.

그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맛있었냐는 것을 지금 상황에 대입해보면..

-화끈

'요, 요즘은 이런 말을 쓴단 말인가?'

아마 기분이 좋았냐, 대충 이런 의미일 것이다.

한창 전쟁 때문에 황폐해졌을 때 부랑배들끼리 누구를 따먹었는데 맛이 어땠느니 이런 말을 들어봤던 것 같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후우..'

빨리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진정 시키며 내공으로 머리를 맑게 만들었다.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

여유롭다는 듯이. 이미 깊은 관계인 것처럼.

"아주 맛있었지. 지금까지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인생을 손해 봤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하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참았다.

"호, 혹시 자지 크기는 어느 정도였는지.."

'자, 자지?'

저런 미인의 입에서 나온 단어라고는 믿기 힘든 단어였다.

'아, 아무리 주점에서 일하는 여인이라도 저런 말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은..'

"내가 그걸 말해줘야 할 이유가 있나?"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연기하며 여유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서히 승기가 내 쪽으로 넘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 부탁 드릴게요. 질문 몇 개만 대답해 주시면 순순히 포기할 테니까.."

"크, 크흠. 그렇다면 알려주지."

탁자와 손을 이용해 당시 봤던 그의 양물의 크기를 묘사했다.

"그, 그 정도에요?"

"그렇다네."

"몸집은 작아 보였는데 의외로 굉장한.."

-스릅

여인이 혀로 입술을 적시는 장면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것이 그라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싶었지만

'..후우.'

생각만 했다고 검을 뽑을 수는 없는 노릇.

아직도 술에 취해 헤롱거리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

"...그런데 그는 어디 갔나?"

"네? 지금 제 옆에.."

없었다.

"어, 어?! 어디 갔지?!"

"그대가 안고 있지 않았나?!"

"소, 손님이 말 들으려면 떼어 놓으시라면서요! 그래서 잠깐 내려놨는데 그 사이에 어디로 가셨지?!"

술상을 치우는 것도 미루고 우리 둘 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찾기 시작했다.

* * *

"히끅."

두 여인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단유성은 자리를 벗어나 주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몸이 무겁고 균형 감각도 망가져 있었지만 누가 봐도 '나 취했어요'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 것처럼 비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손님? 혹시 뭐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어? 직원이다. 히히."

"마, 많이 취하셨나 보네요 손님."

"아 찾는 거요? 있어요."

커다란 망토에 가려져 체형도, 얼굴도 가려졌지만 만취 상태가 되어 튀어나오는 언행과 평소보다 더욱 강해진 체향에 종업원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변소가 어디에요?"

단유성은 뭐가 마려운 것처럼 다리를 모으고 몸을 꼰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여인은 순간적으로 다른 걸 뽑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야! 너 거기서 뭐해! 빨리 안 가져와?!"

"아, 알았어요.."

그녀의 선배가 호통을 치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변소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변소를 다녀온 뒤, 원래 바로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내가 어디서 왔었더라.."

그가 어디서 나왔는지 조차 까먹은 탓에 주점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저기 누나. 이거 한 모금만 마셔도 돼요?"

"으, 응? 그, 그래. 마시렴."

"와아아.."

종업원들의 정신을 현혹하는 것은 물론

"뭐야? 술 안 따라? 왜 저쪽을 쳐다보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다른 손님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기 시작해 종업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뭐야? 다들 왜 그러고 있어?"

"부, 부점장님!"

점장을 대신해 가게의 업무를 끝마친 부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다른 종업원들에게 한 손님이 가게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하아. 점장님은 이럴 때에 또 어디로 가신 건지.."

한숨을 쉬면서 그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손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 그것도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던 것이, 그가 가게를 헤집고 다니던 중 다른 손님과 시비가 걸렸고 평소의 단유성이었다면 금방 무릎 꿇고 사죄하며 상황을 무마했겠지만 지금은 양쪽이 모두 크게 취해있던 탓에

"이 망할 놈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꺄악!"

거구의 사내가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고

-텁

"손님. 저희 가게에서 폭력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딱 그때 그들을 발견한 부점장이 사내의 팔을 가볍게 막았다.

"넌 또 뭐야?"

"본 가게의 부점장입니다."

"부점장 주제에 손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손님은 왕인 거 몰라?!"

"손님."

원래 흑색이던 여인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저희 가게에서 폭력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있다면 대화로 풀어주시길."

"이, 이익! 에잇! 술 맛 떨어지게."

그녀의 싸늘한 분위기를 본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려 가게를 떠나기 시작했다.

"후우."

부점장은 고개를 돌려 문제의 그 손님을 바라봤다.

-꼬옥

"와아.. 짱 멋져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에 두 팔이 감겨져 있었다.

"..."

평소 그녀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만일 다른 남성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금방이라도 코뼈가 부러졌겠지만

"손님. 혹시 일행분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일행이여..?"

그녀 답지 않게 그를 허리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가게에 혼자 오셨습니까? 어디서 마시셨는지 기억 나시나요?"

"어.. 일행이 있었고.. 아! 점장이라는 누나도 왔었어요!"

"점장님..?"

그녀는 그제서야 이 손님이 아까 점장이 말한 그 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를 다시 그 자리로 안내하기 위해 가게 입구로 돌아갔다.

검후와 흩어져서 그를 찾고 있었던 점장은 그를 발견하자 마자 부점장에게서 그를 빼앗고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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