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250)

"쿨럭."

한방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여인에게 비웃음을 지으며 품 속에 끌어안은 사내의 모자에 손을 올렸다.

이대로 분위기를 타 그 얼굴을 한번 보려는 생각이었지만..

-덜컥

"...응?"

마치 무언가에 걸리기라도 한 듯 중간에 멈춰서 더 이상 모자가 올라가질 않았다.

'..뭐지?'

마법이 없는 미개한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모자를 내려뒀다.

"머하세요..?"

"아니에요 손님. 잠시 먼지가 묻어서 털어드렸어요."

"..그에게 함부로 손대지 말게."

그 사이에 상처를 회복했는지 다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푸흡.'

정말 보면 볼수록 비웃음만 나왔다.

외모도 어디 가서 전혀 꿇릴 정도는 아니었고 망토에 가려져서 그렇지 몸매도 상당히 괜찮았다.

저런 몸이 있으면 몸으로 밀어 붙어야지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 혹시 오늘 기회를 봤던 거라면 안타깝게 됐다.

평범한 여자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스륵

"손님.. 혹시 졸리지 않으세요?"

"졸려요오.."

"본 금란주점은 과음한 손님분들을 위해 작지만 숙박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손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오늘은.."

그의 망토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고 손끝으로 몸을 쓸었다.

배를 간지럽히다가 조금 내려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었다.

"으응.."

약간 들뜬 그의 목소리를 음미하며 귓가에 대고 요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손님. 기분 좋으신가요?"

그리고 그 순간

"아, 안대!"

-탁

귀여운 목소리와 함께 내 손이 튕겨져 나왔다.

살짝 당황해 그를 쳐다보자 손으로 몸을 X자로 감싸고 내게서 떨어져 있었다.

"야한 건 안대요.."

-뚝

머리 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건 유혹이다.

얼굴이 안 보이긴 하지만 몸에서 저렇게 맛있는 향이 나는데 얼굴이 못 생겼을 리가 없다.

저렇게 까지 가리고 다니는 걸 보면 분명 볼만한 얼굴일 거다.

-스릅

"손님. 특별히 손님한테는 저만의 특별한 대접을 해드리죠.."

"아.. 안대애.."

조금씩 그에게 다가가 뒤로 몸을 빼고 있는 그를 넘어 트리고 그 위에 올라타려는 순간

-피잉!

"..그쯤 하지."

눈 앞의 벽에 칼이 박히며 나를 막아섰다.

* * *

'하아..'

눈 앞에서 그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는 점장이라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샘솟고 있었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처음 겪어보는 부류의 불쾌하고 끈적한 감정.

금방 이 감정의 정체가 질투라는걸 알 수 있었다.

'질투라..'

그동안 살면서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검만 휘두르며 살아왔기에 만약 질투를 느낀다고 해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었겠지만 내 동년배는 물론이고 몇 살 위로 차이 나는 사형, 사매들까지 금방 제치고 올라간 나였기에 질투를 받는 것이라면 모를까 직접 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더욱 더 낯설었다.

설마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질투라는 감정이 이런 부류일 줄이야.

"손님. 자, 제가 직접 먹여드릴게요. 아-"

"아-"

-빠직

손에 잡고있던 젓가락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러진 나무 조각이 피부를 긁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훤히 임자가 있어 보이는 사내를 상대로 저런 짓이라니..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물론 그와 내가 연인 관계인 것은 아니지만 외인이 보기에는 척 보더라도 그에 준하는 관계로 보이지 않겠는가.

야밤에 남녀 둘이서 주점에 들어오는 관계가 보통 관계는 아닐 테니.

그런데. 다른 손님이라면 또 모를까. 점장이라는 작자가 이런 무례를 저질러?

'상당한 악취미로다..'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닐 것이다.

못해도 여러 번 이런 짓을 저질러 왔겠지.

-후룩

내 몫으로 따라둔 술을 홀짝이며 차갑게 식은 눈으로 여인과 그를 바라봤다.

"이히히.. 맛있어요.."

만취해버린 탓일까, 그는 평소보다 훨씬 늘어지고 요염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쨘-!"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그가 상대를 유혹하고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후훗, 손님. 제 대접은 마음에 드시나요?"

"마음에 들어여.."

"저 역시도 이렇게 멋진 손님 분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두근거리네요. 혹시.."

둘 사이의 분위가가 계속 무르익어갈때쯤

-쨍그랑!

"..이런. 실수했군."

나도 모르게 접시를 깨뜨렸다.

여인이 깜짝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변상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하던 일 마저 하게나."

이후로도 여인이 그에게 수작을 부리는 것을 어디까지 하나 계속 지켜봤다.

벌레를 핑계로 순진한 척 그를 품에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심기 불편했다.

"나이도 적지 않은 여인인 것 같은데 별로 당당하다고 하긴 뭐한 습관이군."

여인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여인의 얼굴은 굉장히 아름다운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젊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나이로 보면 20대 후반은 돼 보이는 미인.

하는 행동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이에 관해선 내가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외모로 보이는 나이는 이쪽이 훨씬 젊었다.

어차피 저 여인이 내 실제 나이를 알 방법은 없지 않은가.

-후룩

한방 먹였다고 생각해 잠깐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려던 중

"어머.. 의외네요. 손님도 말투만 들으면 나이가 적지 않아 보이는데.. 노파들이나 쓸법한 말투예요?"

"쿨럭."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발목을 잡혔다.

설마 말투로 지적 받을 줄이야.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기왕 반로환동도 했겠다 좀 더 젊어 보이는 말투를 쓸 걸 그랬나?

하지만 이제 와서 말투를 바꾸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질텐데..

'에이잇!'

다시 상념을 끊어내며 정신을 차려 현실로 돌아오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손님. 특별히 손님한테는 저만의 특별한 대접을 해드리죠.."

"아.. 안대애.."

쓰러진 그의 위로 여인이 올라타려고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입을 여는 것보다 검이 더 빠르게 나갔다.

-피잉!

"..그쯤 하지."

검이 벽에 박혀 그녀를 막아 서자 여인이 이쪽으로 불쾌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정말 불쾌해야할 사람은 나다.

-빠직

한참 좋을 때. 극상의 과실을 취하기 직전에 방해 당한 탓에 내 기분은 굉장히 상해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죠 손님?"

"방금 전 그대가 한 짓은 뭐였지?"

"후후.. 제가 무슨 짓을 했었죠? 저는 그저 점장으로서 손님에게 대접을 해드리려고 했던 것 뿐인데요."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여기서 나도 따라서 무력을 휘두르거나 비속어를 꺼내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진정한 고수는 항상 여유를 잃지 않아야 하는 법.

"그런가? 내 눈에는 단순한 '대접'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았다만. 아. 혹시 그대는 그런 수준의 '대접'을 여러 번 해보아서 일상적인 것인가? 그렇다면 실례했군."

'이 망할년이..?'

대놓고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창녀, 갈보, 걸레. 대충 이런 말과 같은 말이었다.

그런 천한 것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은 굉장히 불쾌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돈을 받고 몸을 팔거나 쾌락에 중독되어 사리 분별을 못하는 것이지만 내가 하는 것은 엄연한 포식이었다.

"후..훗.. 그럴 리가요.."

찡그려지는 이마를 의식하며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파지직

만약 시선에 물리력이 있었다면 이미 서로 어디 한 군데는 다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살벌한 눈빛 교환이었다.

금방이라도 사단이 일어날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무, 무서워.."

-덜덜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차가운 분위기를 느낀 탓일까, 그의 몸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침착해라 로젤리아.

어차피 저쪽에서 먼저 검을 꺼내든 이상 지금 승기는 내 쪽에 있다.

방금도 내 쪽에서 먼저 덮치려고(?) 한 책임은 있었으니까.

"어멋! 손님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깜짝 놀랐다는 듯이 그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기 시작했다.

"뭐, 뭣?!"

"손님! 매장 안에서 검을 함부로 뽑으시면 안되죠!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아, 아니.. 그대가.."

당황하는 반응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사내의 몸을 아까처럼 끌어안았다.

또 벗어날 수 있으니 이번엔 다리끼리 얽어서 한번에 벗어나지 못하게 구속했다.

맞은편 탁자에서는 각도상 잘 보이지 않겠지만.

"손님. 괜찮으시죠? 저는 이런 식으로 사람한테 함부로 검을 뽑는 사람은 무서운데.. 손님은 무섭지 않으세요?"

"무서워요.."

"후훗. 손님도 그렇죠?"

-까득

맞은편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꾸욱

내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그의 얼굴을 가슴에 짓누르며 여유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벽에 박힌 검을 뽑아 건넸다.

"앞으로는 주의해 주세요."

-까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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