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니까 은근 도사도 편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도사긴 하지만 화산은 도교 계열 중에서도 유독 속세에 물든 경향이 큰 문파다.
다른 도교 계열 문파. 특히 곤륜파는 정말 제대로 된 도사들이라 아예 산 밖으로 나오는 것도 잘 보지 못할 정도니까.
'그러니까 나 같은 점쟁이도 무사히 있을 수 있는 거고.'
만약 지금 옆에 있는 게 곤륜의 도사였다?
상상하기도 싫었다.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굉장히 귀찮은 일이 될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들어가 보지."
"넵."
그녀와 나란히 주점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척 보기에도 선정적인 옷을 입은 미녀들이 입구에 서있었다.
복장도 복장이지만 몸매 때문에 그것이 더욱 부각되어서 상당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현대 출신이 보기에도 선정적으로 느껴질 정도인데 중원 사람들의 기준에선 어떨까.
"어서 오세요~ 처음 오시나요?"
"무, 무, 무, 무, 무슨.."
신 소저는 내 예상대로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고 있었다.
-출렁
그녀들의 움직임에 따라 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보통 남자들이었다면 이 장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쳐다보고 있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처음이에요."
"어머?"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래봤자 스승님 만큼은 아니야..'
이미 10년 동안 스승님의 외모에 익숙해진 몸.
일정 수준 이하의 외모는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눈의 소유자가 바로 나였다.
[..웃옷은 대체 어디에 내다 버리셨습니까?]
[여름이라 덥지 않더냐. 어차피 나와 너밖에 없는데 속곳만 입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게 있느냐?]
[하아..]
-질끈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던 장면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주점의 직원으로 보이는 여인들이 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협..?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그 존안을 볼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한 여인이 내게 몸을 밀착 시키며 손 끝으로 가슴팍을 꾹 찔렀다.
두 살덩이가 뭉개지며 만들어내는 감각이 전해져 왔다.
내가 거절할 것도 없었다.
"지, 지금 뭐하는 겐가!"
-탁
"꺄앗."
이미 신 소저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그녀들을 내게서 쳐냈으니까.
"그, 그저 술만 마시러 왔을 뿐이네! 이 주점이 그런 주점인 줄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걸세!"
"어머.. 후훗. 이거 저희가 실례했네요. 일행분과 그런 사이인 줄은 모르고 있었어요. 지금이라도 사과드립니다."
"흐, 흥! 다시 방금과 같은 수작을 부린다면 아무리 이 주점이 좋다고 하더라도 바로 떠날걸세."
"후훗..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점장님께 말씀드려 더 좋은 술을 대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분이서 조용한 자리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희의 사과를 받아주시겠어요?"
신 소저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 있는 것 같았지만 결국 우리는 그녀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씰룩
선정적인 모습의 여인들이 우리들의 앞에서 걸으며 그 둔부를 흔들고 있었다.
"..그대가 내 뒤에서 걷게."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는 장면이었지만 신 소저는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역시 도사는 도사인 모양이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나한테 까지 이런 장면을 제한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가 보면 우리가 애인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그녀들에게 안내를 받으며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아, 아무리 주점이라지만 저렇게 망측한 옷이라니..'
정말 가려야 할 중요한 부위만 가렸을 뿐 옷이 얇아서 몸매가 그대로 부각될 뿐더러 오히려 옷에 짓눌려 더 강조되는 면도 있었다.
모르고 입었다고 하더라도 기겁할 일인데 저 여인들은 오히려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오히려 몸을 흔들고 있으니..
'어, 어찌 여인이..'
절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설마 중원 최고의 주점이라는 의미가 이런 의미였던 것인가?
여인들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외설적인 짓을 하는..
-화끈
'으으으..'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지만 설마 실제로 찾아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괜히 전혀 관계가 없는 나까지 부끄러울 장면인데 이런 대접이 평범한 것으로 보여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나보다는 그 쪽이 더 걱정이었다.
여인인 나는 그녀들의 유혹이 아무 영향도 없지만 그는 한창 혈기왕성한 사내.
애초에 그녀들의 유혹도 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향하는 것이리라.
설령 이곳에서 일하면서 생긴 습관이라고 할지라도 감히 그를 유혹하려는 마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득
'감히 누구를..'
그 발칙한 짓에 이를 갈았다.
내가 옆에 있는데 감히 그를 유혹하다니.
나는 그와..
그와..
'...무슨 관계지?'
정을 나눈 사이?
처음을 서로에게 건네준 사이?
하지만..
'..없던 일로 하기로 했지.'
그가 먼저 요청한 일이었다.
어차피 치료 목적으로 했던 일이고 아무리 첫 경험이 소중한 것이라지만 서로 마음도 없으면서 그것에 얽매이면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니 없던 일로 하자고.
그가 먼저 요청했고 내가 수락한 일이었다.
그러면.. 나와 그는..
'..무슨 관계지?'
친구? 동료? 보호자?
무엇도 딱히 이 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없던 일로 한다고 그날의 기억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그는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혈교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내게 순순히 몸을 내주었고 오히려 스스로 쾌락을 갈구하는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었다.
바로 다음날 없던 일로 하자는 그의 말을 들어버렸지만 나는 그에게 내 정체를 밝히고 미움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
그가 그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여인으로서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였으니까.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지도.'
아무리 천천히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결국에 이 주점을 들른 다음에는 섬서로 출발할 테니 그와 계속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 주점에 들렀으니 그에게 술을 잔뜩 먹여서 취하게 만든다면?
그날의 기억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물론 잘 하면..
-화끈
'저, 정신 차려라! 너는 도사다!'
이미 우화등선은 그른 것 같다고 하더라도 가르침을 완전히 져버릴 셈이더냐!
검을 휘둘러 머릿속에 떠오른 그날의 기억들을 흐트러트렸다.
"후훗. 도착했습니다. 이 안으로 드시지요."
'핫.'
상념에 정신이 팔려있던 사이 어느새 여인들의 안내가 끝나있었다.
여인들이 안내한 곳은 그녀들이 말한 대로 둘이서 조용한 자리를 가지기 좋은 공간이었다.
주변은 막혀있어 다른 사람이 엿보거나 방해할 가능성도 없었고 은은한 조명과 묘하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듯한 향로는..
..잠깐만.
"저기 이 향로는.."
"아아.. 손님들의 '분위기'가 잘 유지되도록 돕는 향이에요. '건강'에도 좋답니다?"
"..."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 향이 어떤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내공을 이용하면 이런 수작쯤은 아무 영향도 없이 해독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였다.
만약 그가 향의 효과를 받는다면..
"혹시 향이 맘에 안 드신다면 치워드릴까요?"
"..아니네. 그냥 두게."
"후훗. 알겠습니다."
의외로 괜찮은 주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와 함께 있는 다른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몸은 밀착하고 있었지만..
"일단 이거랑.. 이거랑.. 안주는 적당히 만두로 주시고.. 아 채소도 주세요."
"네, 넵. 알겠습니다."
진지하게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옆에서 진땀을 빼며 주문을 돕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정말 술에만 관심이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원래 소연이에게 당했던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기억을 잃었는데 그 아픔도 여전할까?
궁금하긴 했지만 괜히 물어보았다가 기억이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그만두자.'
그가 나를 향해 혐오의 감정을 보내는 환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주, 주문하신 술들을 가져왔습니다."
"이것밖에 없어요?"
"지, 지금 준비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이거라도 마시고 있죠 뭐."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인이 아까의 요염한 모습과 다르게 약간 초췌해진 몰골로 상을 차리고 물러갔다.
중원 최고의 주점이라길래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종업원의 상태가 별로였다.
겨우 12년 전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술 좀 주문했다고 그것도 모를 줄이야.
가짓수도 그렇게 많지 않던데 자기 가게에 파는 술 이름 정도는 다 외워두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보다 종업원들 상태는 별로네요. 중원 최고라길래 조금 기대했는데."
"..아마 그녀들도 그대 같은 유형의 손님을 받아본 경험은 별로 없을걸세."
"하, 설령 절세미녀가 따라준다고 하더라도 술 맛이 없으면 바로 그 주점은 떠날 겁니다."
눈이 스승님에게 익숙해져서 웬만한 미녀로는 꼼짝도 안 하는 것도 있지만 원래 종업원의 외모만 믿고 맛도 없는 술을 파는 주점은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친해진 노름꾼이 추천해준 곳으로 갔더니 웬 여자 둘이 달라붙어 옆에서 계속 술도 못 마시게 방해하고 말을 걸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 그랬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은 술을 좋아하실려나
딱히 마시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왠지 분위기 상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돌아가면 술이나 한잔 해보자고 해볼까 싶었다.
"그래서 술 맛이 과연 어떤지나 한번 보죠. 나름 목록 자체는 화려했는데.."
-후룩
잔을 들어 입에 흘려 넣자 마자 느꼈다.
-꿀꺽꿀꺽꿀꺽
"크으-!"
의외로 술 맛이 제대로였다.
아까 욕했던 걸 취소한다.
종업원의 외모만 믿는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중원 최고의 주점이었다.
"..그렇게 맛이 좋나?"
"예.. 종업원들만 예쁜 줄 알았는데 술 맛도 좋네요.."
"..그대는 저런 여자들이 취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