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250)

"으으읍!!"

"무, 무엇 하는 게냐!"

마지막 남은 옷가지마저 찢은 뒤 입을 벌렸다.

'어차피 끝이라면 한번만 이라도..!'

그러나 이런 마지막 발버둥도 금방 막혔다.

"소, 소연아!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네 스승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놔!! 이거 놔!!!"

입 한번, 손 한번 닿아보지 못하고 뒤를 점거 당해 팔이 구속 당했다.

-버둥버둥

"유성아!! 유성아아악!!!!"

"크, 크읏. 우선 자세한 상황은 나중에 듣고 진정부터 시켜야겠군!"

-툭

'아..'

점혈이 눌려지는 게 느껴졌다.

괜히 고수가 아니라는 것일까. 정확히 혈을 누르며 내공까지 섞어 전혀 반항조차 할 수 없이 그대로 눈앞이 암흑으로 물들어갔다.

'유성..아..'

천천히 감기는 눈 사이로 유성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두려워하며 지금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정신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

-콰직!

손가락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단순히 피가 나오는 수준을 넘어 이 끝으로 뼈가 느껴질 정도였다.

"아닛?!"

그가 당황하는 틈을 타 선천진기까지 끌어와 몸부림치자 팔 하나는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팔 하나는 여전히 붙잡혀 있는 상태.

별다른 고민할 것은 없었다.

손에 기를 두르고 그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선천진기까지 끌어 쓰는 내 모습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도 강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수.

그의 팔을 빼며 그 위치로 내 팔을 내밀었다.

그게 내가 노리던 것이었다.

-서걱!

피가 흩날렸다.

그가 주인을 잃은 내 한쪽 팔만 붙잡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격통이 몰려왔지만 참을 만 했다.

바로 몸을 돌려 유성이를 향해 달렸다.

아직 상황을 따라오지 못한 유성이의 표정이 드디어 더한 공포심에 물들기 시작했다.

팔을 내주고 약간 시간을 얻긴 했지만 결국 금방 잡힐 것이 뻔했다.

지금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몇 초.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

입 만이라면 첫 경험을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유성이가 평생 나를 잊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뭐가 있을까.

결론은 금방 나왔다.

-파악!

내 손이 유성이의 단전 위치에 올려졌다.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것일까

유성이가 몸부림쳤지만 그것보다 내가 더 빨랐다

-콰직!

"아아아아아아악!!!!!!!!!!!!!"

"지, 지금 무슨 짓을!!"

다시 뒤를 잡혔다.

한쪽 팔이 없는 만큼 이번에는 목과 배까지 휘감겼다.

"아아아악!!! 아악..!!"

"거, 거기 다른 사람 없느냐!! 위급 상황이다!! 약방 어르신을 모셔와라!! 빨리!!"

구속 당한 채로 남아있는 한쪽 팔을 유성이를 향해 뻗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도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특히 스승님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아마 스스로 참수를 하신다면 하시겠지 절대 봐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유성아.."

비록 내가 유성이를 더 만날 수는 없겠지만

"어디에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갈게.."

이렇게 하면

평생 유성이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수 있다.

비록 그가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설령 다른 여인에게 몸을 내주더라도

절대 나를 잊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나 잊으면 안돼..?"

만약 잊으면..

-싱긋

그땐 정말 죽여버릴 거야.

[오호라, 재밌는 아해로구나. 경지에 이르러 벽에 막힌 무인도 아니면서 심기체가 이렇게 일그러져 있다니. 혹시 여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

[천하를 가진다거나 온 무림이 네 발 아래에 깔리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밥은 굶기지 않겠느니라.]

* * *

오늘도 무사히 눈을 떠 어디 아픈 곳이 없나 몸을 살펴본 뒤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의 미래는 볼 수 있지만 나 자신의 미래는 볼 수 없는 점쟁이로서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스승님이 나오는 꿈을 꿨다.

이 세상에 영문도 모르고 거의 다 죽어가는 몸으로 빙의한 뒤 하루하루 연명하던 도중 만나게 된 특이한 사람이었다.

정말 누구나 돌아볼 정도로 예쁜데 주변에서 그녀를 쳐다보는 시선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처럼 아무도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은 것에는 그것도 크게 작용했었다.

딱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니까 최소한 굶지는 않겠구나.

하루하루 고통에 몸부림치며 먹을 것을 구하는 것으로도 삶을 이어나가기 바빴던 시기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잘하면 내 몸을 치료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아니, 애초에 같이 가자고 한 시점부터 살려주는 것은 거의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데리고 간 다음에 죽게 내버려 둘 거라면 데리고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실제로 덕분에 몸도 나아졌고 먹을 것도 제대로 줬으니까 스승님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은 컸었다.

아마 딱 3일 정도.

[앞으로 집안일은 네가 하거라.]

내 몸이 나아 어느 정도 운신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들은 말이었다.

그래도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접시에 얼룩이 아직도 남아있지 않느냐. 다시 씻어와라.]

[옷이 흐트러져 있구나. 다시 똑바로 접어서 놓지 못할까.]

[오늘은 간이 짜구나. 처음부터 다시 해오거라.]

하지만 그 잔소리의 향연을 10년 동안 듣고 있으면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지기 마련이다.

잔소리만 하면 모를까. 인신 공격, 성희롱, 정말 온갖 구박이란 구박은 다 들었다.

그러면서 또 강호로는 내보내 주지도 않고 평생 산 속에서 둘이서만 살게 될 지경이었으니 당연히 탈출 할 수밖에 없었다.

'어휴, 수련하러 들어간 데가 춥지는 않을려나 몰라.'

자기 입으로 3년 정도 있을 거라고 했으니 아마 그 정도는 안전할 거다.

나와 있을 때 뽕을 최대한 뽑고 돌아가기로 마음먹으며 옆자리를 바라봤다.

"..일어났나?"

-깜짝

검후님이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 먼저 일어나셨네요?"

"원래 무인은 잠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 아래에서 자겠다는 나를 억지로 침대 위로 눕혔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기운을 받긴 받았다지만 완전히 흡수될 때까지 충분하고 편안한 휴식은 필수라면서.

"..혹시 저 또 잠꼬대 하거나 하진 않았죠?"

"딱히 없었네. 곤히 자더군."

"휴.."

스승님에게 내 잠버릇이 꽤 고약하다고 들었기에 혹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을까 걱정했다.

"식사 하겠나? 오늘도 하루 종일 이동해야 밤이 될 때 쯤에 도착할 것 같으니 할 수 있을 때 미리 해두는 게 좋네."

"그러면 저는 할 게요. 검후님은요?"

"..흠. 그러고 보니 그 호칭도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비록 내 별호가 맞긴 하지만 밖에서도 나를 검후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나."

"...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러면 어떻게 부를까요? 전처럼 신 소저..."

말하다가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소저'가 아니었다.

정확한 나이는 몰라도 최소한 '소저'는 아니다.

"...뭐라고 불러야 하죠?"

"나는 소저라는 호칭도 괜찮다만."

"아니요.. 아무리 그래도 감히 검후님한테 소저라고 부를 수는 없죠."

"쿨럭."

어디선가 치명타가 터졌을 때 들리는 소리와 비슷한 것이 들린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괜찮은 호칭 없을까요?"

"괜찮은 호칭이라..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건 어떤가?"

"이름으로요? 유월님?"

"..."

검후님의 움직임이 다시 한번 멈췄다.

"아무래도 그 호칭은 안되겠군. 다른 호칭이 괜찮겠어."

"역시 불편하죠?"

"아니.. 그게.. 아무튼 안되네. 여러모로 위험하게 느껴지니."

"?"

뭐가 위험하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 다른 호칭을 찾기로 했다.

결국 결정된 호칭은 돌고 돌아서 소저였다.

그녀가 소저라고 불리는 것에 자존심 상해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녀가 부탁한 일이었기에 결정된 일이었다.

.

.

.

"딱 봐도 저 건물인가 보네요."

"..그렇군."

금란주점.

이름부터 황금알이라는 화려한 이름을 단 주점은 멀리서 봐도 그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라고 한다면

정말 크고 화려했다.

고작 주점 따위가 저렇게 크고 화려해도 될 까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등불과 화려한 장식들. 멀리 떨어져 있는 여기까지 느껴지는 열락의 향기.

확실히..

"엄청난 주점이네요.."

중원 최고의 주점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엄청 비쌀 것 같은데.."

"돈은 많으니 걱정 말게."

..근데 도사면 재물을 탐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그런 것 치고는 돈을 많이 들고 다니시는 것 같아 의외였다.

대충 이런 의문을 담아 질문하자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재물을 모으지 않으면 아무것도 사지 못하지 않나."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재물을 탐하는 것이 문제가 될 뿐.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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