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50)

조금만 힘을 줘도 금방 부서질 것 같은 가느다란 목.

"켁.. 케헥.."

"그 년이 누군데 누나라고 불러. 그렇게 친한 사이야? 언제부터 만났어? 전부터 알던 사이였어? 나 몰래? 응? 대답 좀 해봐 유성아. 누나 지금 미칠 것 같으니까 빨리 대답 좀 해보라고."

나한테만 누나라고 불러야지.

가족이라면서.

다른 사람은 누나라고 부르면 안되는 거잖아.

"그, 그 누나의 의미가 아니라.. 케헥.. 잠깐만 손 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전에 그랬잖아. 나보고 가족이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다른 여자한테도 누나라는 호칭을 써?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데? 나 가지고 논거야? 응?"

이미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누나한테도 가족이라고 한 적은 없.."

-파악!

유성이의 근처에 있던 풀들이 유형화된 살기에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뭐라고 했어?"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목을 기울였다.

"누나가 지금 너무 흥분해서 유성이 말을 잘 못 들은 것 같거든. 방금 뭐라고 했어?"

-꿀꺽

잠깐 느슨해진 손가락 사이로 목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유성이의 흑요석같은 눈동자 사이로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아 빛을 잃은 눈이 유성이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잠시 후, 유성이의 입이 열렸다.

"..저한테 가족은 누나밖에 없어요."

"그치? 우리 유성이 착하다. 쓰담쓰담."

한 손으로 유성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한 손은 여전히 유성이의 목에 올려져 있었다.

유성이의 표정에 안도감이 서린 것이 보였지만

"그래서 그 여자는 누구야?"

"히끅!"

아까보다 더 강해진 살기에 다시 눈가에 눈물을 맺기 시작했다.

"그, 그 누.."

"누?"

"..그 년..."

유성이의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비속어.

하지만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렇게 불러야지. 잘 들어 유성아. 누나 빼고 다른 여자들은 전부 년이야 년. 알았지?"

"..."

"대답 안해?"

"ㄴ, 네!"

"자, 계속 말해봐. 그래서 그 년이 왜?"

"누,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년이 갑자기 다가와서.. 누굴 기다리냐고 그래서.. 수련을 도와주는 누나가 안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얘기 했더니.. 그러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그래.. 그랬구나.. 그 년이 먼저 다가왔구나.."

웃는 얼굴로 유성이의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었다.

"유성이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누나가 괜히 오해했다. 그렇지?"

"마, 맞아요. 저는 잘못한 거 없.."

"없긴 뭐가 없어."

-꽈악

"크흡!"

괴로움에 일그러지고 있는 유성이의 얼굴 바로 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서로의 호흡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럴 때는 애인이 있다고 하고 내쳐야지. 왜 그걸 가만히 받아주고 있었어."

"켁, 케헥.."

"억울하다는 표정이네? 누나가 지금 유성이한테 억지 부리는 거 같아?"

"아, 아니요.. 제가.. 잘못.. 했어요.."

"뭘 잘못했는데?"

"누나.. 놔두고 다른 년이랑 히히덕거렸어요.."

"그렇지? 유성이가 잘못한 거지? 누나가 억지 부리는 거 아니지?"

"네에.. 다.. 히끅.. 제 잘못이에요.."

유성이가 겁먹은 토끼처럼 몸을 말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렇지..? 유성이가 잘못한 거니까 벌을 받아야지?"

"버, 벌이요?"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잖아? 화산의 제자가 그것도 몰라?"

"흐윽.. 흑.."

-꽈악

이번엔 목이 아니라 유성이의 볼을 잡아 모으며 말했다.

"한번만 더 울면서 대답 안 하기만 해봐. 그냥 입 막아버리고 다 내 마음대로 해버릴 거니까."

-덜덜덜덜

얼굴에 피어오른 공포심이 더 강해진 유성이였지만 내 말을 알아 듣긴 들었는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 알아요.. 벌.. 받을 테니까.. 흑.. 기, 기운이라도 조금만.. 줄여주.."

"아무래도 유성이가 아직 까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네."

살기를 더욱 더 끌어올렸다.

"누나는 지금 유성이랑 협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

"흐윽.. 으으윽.."

금방 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정색했던 표정을 다시 웃는 표정으로 되돌리고 유성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아프지도 않을 거고 무섭지도 않을 거야. 오히려 기분이 좋으면 좋겠지 나쁘진 않을 거야. 유성이는 남자니까.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지?"

"네.. 흑.. 견딜 수 있어요.."

"그래. 착하지."

유성이는 드디어 학습을 완료했는지 내가 원하는 대답만 내뱉었다.

당연히 앞으로 자기가 당할 일을 제대로 알고서 저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렇게 대답하는 게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저렇게 대답하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앞으로 할 일은..

"벗어."

"...네?"

"말대답?"

"버, 벗을게요!"

이 극상의 육체를 탐하는 것이었다.

아니, 탐한다고 하는 건 이상했다.

유성이와 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니까 합의 하에 가지는 교접일 뿐

색에 눈이 멀어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유성이가 허겁지겁 옷을 벗기 시작했다.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망설임 없이 벗는 것을 보면 그쪽 지식은 없는 게 분명했다.

-스륵

그의 몸을 감싸던 옷가지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 살갗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그렇게 수련을 했는데도 근육 하나 없이 얇은 가느다란 몸.

그동안 같이 지낸 세월이 있는데 체형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스릅

정신을 차렸을 땐 입에 침이 고여있었다.

"버, 벗었어요."

"안에 입는 옷까지. 전부."

"네..?"

유성이는 거기까지 가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주춤

유성이가 뒷걸음질을 쳤다.

이후에 유성이가 보일 행동은 너무나 뻔히 보이는 것이었다.

-타닷

도망치는 것.

그래도 토끼는 맹수를 보면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굳어 죽음을 기다린다고 하던데 토끼보다는 나은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결과는 달라지는 게 없겠지만.

-팍

"유성아.. 도망가면 안되지..?'

"놔, 놔! 이거 놔!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젠 존댓말마저 때려친 공포에 질린 모습.

평소에 유성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고 생각했던가?

아니었다.

'아아아..'

정말 아름다웠다.

고통에 일그러지는 모습. 공포에 떠는 모습.

살면서 본 그 어떤 광경보다 아름다웠다.

스승님과 함께 보러 갔던 석양보다도 아름다웠다.

"유성아.. 유성아.. 유성아.. 유성아.."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일어날 때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어나고 싶고

너의 체액으로 목을 축이고 싶어.

너의 모습을 눈 안에 담아두고 하루 종일 보고 싶어.

"이, 이거 놔!!"

그런데 왜 도망가는 거야.

너도 좋다고 했잖아.

처음이라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내가 싫어서 도망가는 걸 리가 없잖아.

오늘은 뜻 깊은 날이니까 그런 재롱 정도는 용서해 줄게. 자, 얼마든지 발버둥 쳐봐.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누구라도 좀..!"

-콰악

"아, 이건 곤란해."

혼자 힘으로 달려 도망치는 건 괜찮지만 남을 부르는 건 안돼.

그건 반칙이니까.

"으으읍!! 으으으으읍!!!!!"

유성이의 입을 틀어 막고 다른 손으로 남아있는 옷까지 찢기 시작했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유성이의 억눌린 비명 소리가 어울려 내 귀엔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선율로 들리고 있었다.

"흥~ 흐흥~"

나도 콧노래를 부르며 그 합주에 참여하고 어느새 남은 천이 마지막 한 곳만 남았을 때

"..거기 누구 있나?"

-흠칫!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왜 하필!'

스승님과 함께 자주 인사를 드리러 갔던 스승님의 후배 분.

스승님한테나 후배이지 객관적으로 화산에서의 위치는 장로 거의 밑 선이었다.

당연히 경지도 나보다 훨씬 높았다.

상대가 전혀 안 될 정도로.

'어떡하지?'

이미 목소리가 들릴 정도면 당연히 우리의 기를 느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도망치기엔 늦었다.

"으읍!! 으으으읍!!"

당연히 이 상태로 아직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제자들간의 밀회로 위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연이 아니더냐? 네가 여기서 무엇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의 행동은 굉장히 빨랐다.

-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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