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250)

"유성ㅇ..!"

하루 만에 보지만 샘솟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볼 수 있었다.

유성이의 옆에 다른 사람이

아니 여자가 서있는 것을.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다른 여자가 유성이와 함께 있는 거지?

친구? 아는 사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유성이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저렇게 정답게 이야기를 나눌 리가 없어. 분명 저 여자가 유성이의 모습을 보고 접근해서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마음 약한 유성이가 차마 그걸 거부하지 못하고 재밌지도 않은 대화를 억지로 이어나가는 걸 거야.

그렇지 유성아?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저런 해충은 금방 처리해줄게. 잠깐만 눈을 감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도 신경 쓰지 말고 있으면 아무것도 없을거야..

물론 유성이도 지조 없이 감히 누나 말고 다른 여자랑 대화를 나눈 벌은 받아야겠지만 유성이가 일부러 그랬을 리가 없잖아?

다 저 여자가 나쁜 거니까 유성이는 조금만 천장의 무늬를 세고 있으면 될 거야. 다른 건 다 누나가 알아서 해줄..

"안녕히 가세요!"

잠시 검을 들어 올리고 있는 사이 유성이와 해충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순수해 보이는 유성이의 표정에 비해 해충의 표정은 역겨움 그 자체였다.

누가 봐도 불순한 의도가 가득해 보이는 표정.

이 먼 거리에서도 그녀가 유성이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안된다.

유성이는 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줄 수 없다.

내 손에 있어야만 한다.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갈 거라면 차라리..

'핫.'

또 다시 이상한 생각을 할뻔 했다.

이런 상상은 하지도 않는 게 나았다.

유성이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갈 리가 없으니까.

"후우.."

내공을 순환시켜 감정을 진정 시킨 뒤 유성이에게 다가갔다.

보법을 펼치면서 접근해서 그런지 유성이는 아직 내가 그에게 다가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유성아..?"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유성이를 부르자 화들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려는 것이 보였다.

-텁

손으로 그의 양 어깨를 잡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 뒤에 품으로 끌어안았다.

내 팔목이 그의 목을 감싸는 자세로 유성이는 균형을 잃고 내 몸에 기대고 있었다.

"누, 누나?"

"방금 그 여자 누구야..?"

설마 처음 보는 사이라거나 그냥 아는 사이라는 상투적인 답변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처,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아.."

그렇구나.. 처음 보는 사람이구나..

"정말..?"

"ㄴ, 네..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에요."

"와.."

너무 설득력이 있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걸?

"우리 유성이는.. 다른 사람들한테 원래 그렇게 친절해?"

"ㄴ, 네?"

"처음 보는 여자한테도 그렇게 상냥하게 웃으면서 인사해줄 정도로 친절한 거야..?"

감정이 폭주하고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은 이미 저편으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은 나였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다른 여자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뺏기지 않으려면 미리 손에 넣어둬야 한다.

나니까 간신히 참고 있는 거지 다른 여자들이었다면 범죄고 뭐고 진작에 선을 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이제 굳이 참지 않고..

-꿀꺽

어디선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저, 저는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

"와, 와아아.. 누나 최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상냥한 누나.."

"풉."

이후에 들린 유성이의 귀여운 말에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핫, 누나 풀어주려고 그러는 거야?"

"기,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알았어. 누나가 유성이는 잘못한 거 없는데 괜히 몹쓸 짓을 했네. 누나가 미안해."

유성이의 몸을 감고 있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폭주했던 감정이 천천히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유성아."

"네..?"

"혹시 유성이는 누나를.."

...

"아니야."

입을 열려다 말았다.

이렇게 어리고 순수한 아이가 뭘 알겠다고 이런 말을 하겠는가.

"누나가 오늘은 미안했어.. 혹시 뭐 가지고 싶은 거라도 있어?"

"가지고 싶은 거요..?"

"응. 새 무공이라도 알려줄까? 유성이가 익힐 수 있을지가 걱정이긴 하지만 알고 있는 무공 자체는 많으니까 뭐든지 말해."

-꿀꺽

다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싶었던 걸까?

'아직 매화권도 다 못 익혔는데..'

우선 매화권을 수련 하며 다른 무공을 익힐 근골부터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유성이가 정 원한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괜히 다른 무공도 익히려고 했다가 오히려 둘 다 성취가 떨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뒤라면 모를까 초기에는 한 무공부터 대성한 후에 다른 무공을 익히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너무 상승 무공을 바라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유성이가 어떤 말을 할지 걱정하며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자

"..간식 먹고 싶어요."

"..응?"

"당과라던가.. 속세의 단 간식이 먹고 싶어요.. 입산한 뒤에는 구할 방법이 없어서.."

자세히 보니 입에 침이 고여있었다.

'..하긴.'

한참 간식을 좋아할 나이였다.

그렇다고 밖으로 함부로 나갈 수도 없을 속가제자가 단 간식을 구할 방도도 없을 테니 그의 상황도 이해가 되었다.

"아유 귀여워."

"네..?"

"알았어 다음에 구해다 줄게."

진짜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대체 천지신명께서 만드실 때 뭘로 이 아이를 만드셨으면 이런 아이가 탄생했을까 궁금할 정도다.

* * *

그로부터 또 시간이 꽤 흘렀고 오늘도 신나서 스승님에게 유성이와 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묵묵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입을 여셨다.

"그래.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내게도 한번 데려 오거라."

"..."

스승님이 왜요?

순간적으로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간신히 참았다.

순간 스승님에게 무례한 언행을 할뻔 했다.

'..아니지.'

그러고 보니 스승님이 왜 그 유성이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거지?

혹시 스승님도 유성이를..?

"하나 뿐인 제자가 가르치는 아이인데 어떤 아이인지는 나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

"아.."

"녀석,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멋쩍게 웃으며 대화를 마저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의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아무래도 며칠 간 수련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최근 얻은 깨달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구나."

...어?

"그 말씀은.."

"며칠 동안만 혼자 지내야 할 것 같다. 물론 소연이 네가 수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겠지."

-두근두근

알 수 없는 이유로 뛰기 시작하는 심장에 내색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이 제자는 걱정 마시고 꼭 원하시는 것을 얻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뭔가 평소보다 훨씬 공손한 것 같구나?"

"스승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데 어찌 제자로서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노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놀거라. 알겠느냐?"

"넵!"

스승님이 수련을 하러 떠나시고 앞으로 며칠 간 혼자 지내야 하게 된 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뭐라 말로 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귀엽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자랐다.

그렇게 귀여우면 부모님은 어째서 나를 버리셨을까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분들을 크게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분들에게도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분들이 물려주신 외모 덕분에 어떻게든 살 수 있었다.

나야 내 모습을 잘 모르겠지만 주변 어른들의 반응을 통해 내 외모가 상당히 귀여운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주변 어른들에게 애교나 심부름 몇 번으로 용돈이나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유성아.. 잘 가고.. 내일도 꼭 와야 해..?"

"아.. 내일은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자, 잠깐만! 용돈 두 배로 줄게!"

"앗. 그러면 내일 또 올게요!"

심부름이라고 해도 별거 없었다.

재롱을 부리거나 말동무를 해주거나 몸이 아프시다고 해서 안마를 해드린 다거나 하는 정도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유독 누나들이 다음에 또 오라며 용돈을 얹어 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동생처럼 생각하시는 건가?'

두둑히 받은 용돈을 품에 안고 싱글벙글 웃으며 할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갔다.

이 정도면 오늘은 오랜만에 고기도 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장으로 가서 오늘 당장 먹을 수 있을만한 음식들과 쌀을 보충했다.

여기서도 주로 젊은 여자. 누나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가면 덤을 두둑히 받을 수 있다.

"할아버지!"

"쿨럭.. 쿨럭.."

먹을걸 싸 들고 문을 열자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마른 기침 소리를 내고 계셨다.

"요즘 기침을 너무 자주 하시는 것 같아요. 식사는 하셨어요?"

밖에 나가기 전 해 놓은 음식을 보자 입에 댄 흔적도 없이 차갑게 식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입맛이 없으셔도 식사를 하셔야 빨리 나으시죠. 오늘은 모처럼 고기도 사왔으니까.."

"유성아.."

탁자에 사온 음식들을 내려놓자 할아버지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날 따라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

"..할아버지?"

"미안.. 하구나.. 이 할애비가 못나서 너를.. 쿨럭!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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