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250)

-스릅

그가 요염하게 입가를 핥았다.

"한번 더 해도 괜찮아요?"

"..."

하찮은 유혹이었다.

방금은 특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던 것 뿐.

화산의 가르침을 받은 도사로서 과하게 색을 탐하는 것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철썩!

"..그러고 보니 아직 기운이 모자란 것 같군."

이건 결코 욕망에 몸을 맡긴 것이 아니었다.

.

.

.

그 뒤로 2번의 치료행위를 마친 뒤 그는 편안한 모습으로 잠에 들었다.

자는 동안 가끔씩 잠꼬대도 하는 것이 정말 곤히 잠든 모양이었다.

다른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그가 잠든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히 단유성이 맞았다.

10년 전에 봤던 그 얼굴이 거의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학도 되지 않은 소년에서 겨우 지학 정도 되는 소년이 된 것에 의아한 느낌이 들었지만 성장이 느린 것일거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일어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 되는 군.'

서로 합의(?)를 한 치료는 무사히 마쳤으니 문제될게 없었지만 그에게 내 정체를 밝히는 것이 고민 되었다.

그가 나에게 몸을 허락했던 이유는 내가 '신유월 소저'여서 였을 것이다.

그의 원수인 한소연의 스승인 검후가 아니라.

"...그래도 밝혀야겠지."

언제 까지고 감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빚을 갚기 위해 10년 동안 찾아다닌 것이었으니까.

"으음.."

마침 몽롱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침상에서 일어난 그를 바라보며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자 했다.

'욕을 먹을 것을 각오해라. 그가 원한다면 매를 맞아도 괜찮다. 이 사과를 전할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다.'

...그리고 그를 향한 마음은 잠시 접어라.

-툭 툭

심장을 두드리며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단유성."

"...?"

그가 한층 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마 내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그렇겠지.

"이제 와서 정말 늦은 것 같지만.. 밝힐 사실이 있네."

"...네?"

"갑작스럽겠지만.. 들어주게. 그대에게도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까."

-후우.. 후우..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신유월.. 검후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검화 한소연의 스승이라네."

곧 이어질 그의 반응을 상상하며 이를 악 물었다.

어떻게 반응할까?

비명을 지를까? 욕을 할까? 손을 휘두를까?

어떤 반응이 오더라도 괜찮다.

미리 각오한 일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플 수는 있어도 버틸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그를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자 와라.

무슨 반응이더라도 전부 내 업보이니 받아낼..

"...한소연이 누구죠?"

...어?

'...한소연이 누구냐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순간 소연이가 당시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면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 서로 통성명 한번 했다고 방방 뛰면서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으니까.

아무리 10년의 세월이 짧은 시간이 아니라지만 그의 인생을 망쳐버린 원수 같은 여자를 잊었을 리가 없다.

믿었던 여인에게 배신 당한 아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하기도 했었고 저번의 잠꼬대를 통해 그가 단전이 망가진 것에 대해 큰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당연히 한소연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화산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가본 적도 없고.."

"..."

그는 정말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아니, 잠깐만.

"화산에 가본 적이 없다..?"

단순히 한소연을 모르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화산에 들러본 적이 없다는 건 그는 그의 과거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억 상실..?'

들어본 적은 있다.

정신에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이 특정 부분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

만약 그가 소연이의, 아니 화산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잊어버린 것이라면 그 시기는 아마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하남과 있었을 때부터 과거 여인에게 배신 당했다는 아픔을 계속 드러낸 그였으니까.

그 이후에 그가 기억을 잃을 정도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면..

'..기절해있는 동안?'

안휘에서밖에 없었다.

혹시 혈교놈들에게 모진 일을 당한 것은 아닐까?

내가 구출하러 가기 전에 심한 고문에 시달렸다면?

그래서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방금 전 육체적 쾌락을 갈구했던 거라면?

"...아.."

비약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너무나도 높았다.

과거 혈교에게 끌려간 이들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기억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들의 고문은 감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노는데 능숙한 그들이기에 큰 육체적 상처 없이 정신을 망가트려버릴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 끌려갔던 절정의 고수가 일주일만에 그들의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일화는 유명한 일이었다.

그런 고문을 겨우 일반인인 그가 당한 것이라면.. 기억을 잃고 육체적 쾌락을 갈구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 나는 그런 것을 좋다고..'

다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과 혐오감이 다시 올라오..

"저기.. 표정이 안 좋은데 괜찮으세요?"

"아.."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멀뚱멀뚱

나는 잠에서 깨어난 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약이나 침 같은 게 보이는 걸 보면 의원인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아도 그 지하실에서 무사히 탈출하는데는 성공한 것 같지만..

'아까 그건 뭐였지.'

치료라는 이름의 섹스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지구에서 가끔 음양합일을 통해 경지에 오르거나 병을 치료하는 무협소설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었지만 설마 그런 걸 당하게 될지는 몰랐다.

그리고 더 당황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

마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감각이었다.

정신이 몽롱해서 명령을 제대로 내리지도 못하는데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그런 감각.

'당아영때도 그랬던 거 같은데.'

알 수 없는 오묘한 감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어색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단유성."

"...?'

신 소저가 밝힌 적 없는 내 이름을 불러왔다.

"이제 와서 정말 늦은 것 같지만.. 밝힐 사실이 있네."

"...네?"

뭘 밝히려고 저러는 걸까.

많이 밝히기 힘든 사실인가 본지 심호흡까지 한 뒤에야 그녀의 입이 열렸다.

"내 이름은 신유월.. 검후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검화 한소연의 스승이라네."

"...?"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자기소개는 왜 하는 걸까.

아니 근데 검후?

제자까지 있어?

'..이 사람 몇 살이지.'

최소한 겉으로 보이는 나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겠다.

스승님이랑 10년 동안 살면서 조금도 안 늙으시는 걸 보고 역시 무림이구나 싶기는 했지만 설마 그런 사람을 밖에서도 만날 줄이야.

반로환동이라고 불리는 경지가 절대 쉬운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한소연이 누구죠?"

그녀가 무슨 이유로 입을 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뒤에서 말한 한소연이라는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기에 일단 그렇게 되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이상하게 듣는 순간 몸이 약간 서늘해지긴 했지만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녀의 제자라면 아마 화산의 사람일거라 생각해 화산에 가본 적도, 아는 사람도 없다고 덧붙이자

"화산에 가본 적이 없다..?"

그녀는 한층 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를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고 있는 건가?'

이름을 밝힌 적은 없었지만 어쩌면 내가 기절해있는 사이 밝혔을 수도 있었다.

어렴풋이 내가 쓰러진 채로 그녀에게 간호 받고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를 듯 말듯 하고 있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다.

'아니 그보다 지금 사고 친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일단 목적도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고 내 쪽에서도 본의 아니게(?) 즐겨버렸으니 강간이라고 하기엔 뭐했다.

거의 유혹하듯이 해 놓고 이제 와서 따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까.

'솔직히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얼굴 예쁘지, 성격 좋지, 강하지, 신분도 좋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상위 0.몇 퍼샌트로 표시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중원에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2년 안에 스승님에게 돌아가 봐야 하는 몸. 여기서 살림을 차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현대 지구 출신인 입장에서 물론 첫 경험이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인생을 결정지을 중요할 문제까지 얽매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냥 작은 해프닝으로 남겨두자..'

그녀와 잘 얘기해 보려고 했다.

어차피 그녀도 내게 큰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리라. 그동안 같이 다니면서 어느 정도 호감이 쌓이긴 했었어도 사랑에 빠질 정도의 일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기꺼이 한 몸 내주어 치료를 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녀에게도 나 못지 않게 사정이 있을텐데 첫 경험이라는 족쇄를 서로에게 채워봐야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평생 책임지라고 하진 않겠지.

애초에 내가 그녀를 책임진 다기 보다는 그녀가 나를 키우는 쪽으로 가겠지만.

'..나이 차이도 어마어마 하고.'

..설마 책임 지라고 하겠어.

내가 이렇게 마음을 먹은 뒤 그녀를 바라보자 상태가 꽤 안 좋아 보였다.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게 아무리 좋게 말해도 상태가 좋아 보인다고 하지 못할 정도였다.

"저기.. 표정이 안 좋은데 괜찮으세요?"

"아.."

그녀가 나를 보고 손을 치우자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감정을 진정 시켜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읏차.."

그녀의 머리를 당겨 내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 상태로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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