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250)

손으로 얼굴에 바람을 부치며 얼굴에 올라온 열을 식혔다.

본의 아니게 봐버린 그의 알몸이 계속 눈앞에 그려졌다.

그동안 의심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작고 연약한 몸이었다. 나이로 치면 지학 정도에서 더 자라지 않은 것 같은 몸.

몸에 근육이라곤 전혀 없고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는 보는 여인으로 하여금 보호욕구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부위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아으으으...'

그 장면은 의식 밑바닥의 밑바닥에 봉인했다.

-타닥.. 탁..

머리를 휘저으며 삼매진화로 피워둔 모닥불에 장작을 던져 넣었다.

"콜록.."

그를 불 옆으로 옮겨 온기를 잘 느낄 수 있게 하며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오기 바로 전에 있던 곳은 지하긴 했지만 그래도 도시의 지하였다.

그리고 주변에 자욱한 나무를 보면 도시로부터 상당히 먼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선 사람의 흔적을 찾아봐야겠지.'

물가는 주변에 사는 야생 동물들이 많이 들르는 장소인 만큼 사냥꾼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만약 이 부근이 사냥꾼의 영역이라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그를 혼자 두고 멀리 나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다른 야생 동물이 접근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동굴의 주인이던 맹수를 쫓아내고 차지한 동굴이니 어지간한 야생 동물은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네."

"케헥.."

그의 힘없는 기침소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저벅저벅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있는 모양이야.'

다행히 한때 사냥꾼이 거처로 쓰던 것 같은 공간을 발견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지 않고 방치 당한 모양새였지만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을 거라는 소중한 단서였다.

아무리 사냥꾼이라도 도구 정비는 해야 하니까.

"몸 상태는 어떻.."

혹시나 그가 일어났을까 기대하며 동굴로 들어왔지만

"괘, 괜찮나?!"

-오들오들오들오들

"쿨럭.."

몸을 말고 입을 막은 채로 온몸을 떨고 있는 그를 보고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열이 심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상당한 열이 느껴졌다.

-꼬옥

"스승님.. 스승님.."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밀착한 나에게 그가 매달렸다.

양팔을 내 몸에 감고 덜덜 떨고 있는 그를 나는 내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안을 수밖에 없었다.

"모, 몸이 너무 추워요.."

'나를 스승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가..'

전에도 그렇고 그의 스승이라는 사람은 정말 좋은 스승이었던 것 같다.

[스승님?]

-울컥

순간 소연이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 역겨운 감정이 올라왔지만

-토닥.. 토닥..

"괜찮다.. 내가 도와줄 테니.. 조금만 버티거라.."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아까 느낀 것처럼 연약한 몸이 옷 너머로 느껴졌다.

그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인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쿨.."

그가 잠든 것이 느껴졌다.

원래 감기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충분한 수면이기에 속으로 안도하며 그를 다시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꽈악

"..."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이 내 허리를 붙잡고 있는 손에 한숨을 쉬며 마저 그의 등을 쓸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단유성이라고 사실상 확정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확정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름을 물어본 것도 아니었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것을 확인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가 잠들어있는 지금. 잠깐 그의 모자만 내려 얼굴만 확인하면 된다.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만일 그가 깨어있을 때 부탁해서 확인한다고 하면.. 그땐 내 감정을 조절할 시간이 없다. 그도 내가 어째서 자신을 찾고 있었는지 궁금해 할 테니까.

그러니 그가 잠들어있는 지금. 지금 확인해야 내가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팔을 움직여 그의 모자를 잡았다.

천천히 모자를 뒤쪽으로 끌어 당기자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알 수 없는 저항감이 모자가 벗겨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연일지, 아니면 이것도 피풍의의 기능일지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내게 마지막 남은 기회였다.

그리고 내 선택은

-스륵

저항감을 뚫고 억지로 그의 모자를 내리는 것이었다.

내려간 모자 사이로 그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체형과 어울리는 어리고 귀여운 얼굴.

여성의 보호 욕구를 자극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

그리고

"아.. 아아.."

내가 10년 동안 찾아 헤맸던 얼굴이었다.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사칭범이 만일 단유성이 10년 동안 자랐을 때 그가 변했을 것 같은 외모였다면 이건 거의 변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던 그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아아.."

내가 이 세상에 남긴 가장 큰 죄악이 눈앞에 있었다.

무려 10년 동안 찾아 헤맸던. 내가 평생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아이.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아이인데..

"왜.."

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감격해서라고 믿고 싶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왜.. 하필..."

왜 하필 난생 처음으로 마음을 품은 사내가 그란 말인가.

왜 하필.. 마음을 품어버린 자가 내 인생 최악의 죄악이란 말인가.

"아아아아...!!"

혐오감이 올라왔다. 역겨움이 올라왔다.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이.

빚을 갚겠다고 한 주제에. 평생 속죄하겠다고 한 주제에.

감히. 감히.. 감히... 감히....

"아.. 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저히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제자 때문에. 그녀의 뒤틀린 사랑 때문에 그에게 평생 남을 상처를 새겨 놓고서 그에게 똑같은 감정을 품어버리다니.

감히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짓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콜록.."

"..."

혼란에 잠식되어가는 정신 사이로 그의 기침 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확 들었다.

'우선 살려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던 간에 우선 그를 살려야 했다.

사과를 하던 속죄를 하던 사랑을 하던 무엇을 하던 그가 살아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불에 말려 놓은 그의 옷에 물기가 다 마른 것을 확인한 뒤 서둘러 그에게 다시 입혔다.

여기서 내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 봐도 그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보장은 없었다.

마을을 찾고. 의사를 찾아야 한다.

쓰러진 그를 등에 업고 아까 찾은 사람의 흔적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살려야 했다.

반드시.

"이보게! 잠시 길 좀 묻겠네! 혹시 이 근처에 의원이 있나?!"

"의, 의원 말입니까? 저쪽 방향으로 가면.."

"고맙네!"

"아, 아니 근데.."

사람이 사는 마을을 발견한 뒤, 바로 의원부터 찾아갔다.

얼핏 보기에 작은 마을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의원이 있는 모양이었다.

"주인장! 계신가!"

"그, 급한 환자분이신가요? 우선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에서 나온 사람은 생각 외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의원의 딸이거나 그를 보조하는 사람인가 했지만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 이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대 혼자 운영하는 곳인가?"

"아.. 네. 제가 의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녀의 실력에 의심을 품었을 법도 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

이 근처에 다른 의원이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이 젊은 의원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다.

"혹시 경험이 없어 보이더라도 이래 보여도 실력에는 자신 있습니다."

"..아니네. 의원을 믿어야지 그러면 누굴 믿겠나."

그녀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차피 나는 여자 의원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콜록.."

"일단 환자분은 여기에 내려놔 주세요. 숨소리를 들으니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방에 깔려있는 천 위로 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숨을 내쉬었다.

이 마을에 의원이 없었다면 곤란할뻔 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그녀가 보인 행동에 나는 기겁하며 그녀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만! 뭐하는겐가!"

"예..? 진료를 보려면 당연히 피풍의를 벗겨야.."

"그..으.."

맞는 말이었다.

그의 피풍의는 특별해 모자 안쪽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으니 확실히 진료를 보려면 벗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얼굴을 안보고 진료는.."

"..힘들..겠죠..?"

"...그렇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솜씨 좋은 의원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얼굴이 어둠에 뒤덮여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진료를 볼 수는 없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얼굴도 보지 않고 진료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의원은 아니라.."

"..아니네. 말도 안되는 억지였지. 내가 미안하네."

그가 어째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진 못했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얼굴을 가린 상태로는 진료를 보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그래도 목숨이 더 소중하겠지.'

-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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