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250)

"멈춰라!!"

그리고 그녀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순간 마르딘은 끌어안고 있는 인질을 그녀가 잘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으읍! 읍!"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허튼 수를 부리는 순간 이 녀석의 목숨은 없다!"

"...!"

피로 만든 단검을 그의 목에 겨누고 마법진이 가동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우우웅

'앞으로 5분.. 조금만 실랑이를 벌이면 충분히 끌 수 있는 시간이다.'

"네 녀석이 손 대지 않고 검을 다룰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검을 땅 속에 박아 놓고 두 손을 들어라!"

"혈교놈.. 끝까지 비겁하게.."

"정녕 피를 보고 싶은 거냐?"

-꾸욱

마르딘이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이 점쟁이의 목을 약간 파고들었다.

"으으읍!! 읍!!"

"..그와는 관계 없는 일 아니냐! 관계 없는 일반인을 인질로 삼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관계가 없기는. 함정으로 기어 들어왔을 때도 같이 데리고 올 정도면 제법 사이가 각별한 것 같던데?"

"크윽..!"

"자. 이대로 내 손에 힘이 조금만 들어가면 이 사내는 끝이다. 어서 시키는 대로 하시지."

마르딘은 말하면서도 정말 그녀가 그의 말을 따라줄지 반신반의했지만 이어진 그녀의 행동에 속으로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푸욱

그녀의 검이 손잡이도 겨우 보일 정도로 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양손을 든 그녀의 표정은 치욕과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 3분..'

"좋아.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조금만 있으면 원하는 대로 풀어줄테니 말이야."

"..어떻게 풀어준다는 거냐."

"네가 지금 이몸에게 질문을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허세였다.

그녀가 인질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절대 부릴 수 없는 허세.

하지만 적어도 인질이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가 우위에 있는 것이 맞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밤의 일족은 쉬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를 무사히 풀어주지 않으면 온 중원을 뒤져서라도 죽여버리겠다."

'저렇게 말할수록 오히려 정보를 넘겨주는 꼴인 것을..'

인질을 잡고 있는 쪽에서는 상대가 저렇게 반응할수록 이득이었다.

인질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증명하는 꼴이었으니.

'앞으로 2분..'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이 빛을 내면서 기운을 뿜고 있었다.

* * *

'시발시발시발시발.'

진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밤의 일족은 쉬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를 무사히 풀어주지 않으면 온 중원을 뒤져서라도 죽여버리겠다."

뒤에서 내 목에 핏빛 단검을 들이밀고 있는 뱀파이어와 신 소저가 살기를 뿜으며 대치 중이었다.

'나는 그냥 여행 온 것 뿐인데?!'

안휘에 여행하러 온 것 뿐인데 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걸까.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무리 하루하루를 아쉬움 없이 산다지만 그게 죽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으로도 살아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어, 어떡하지?'

그런데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힘의 차이도 명백하고 무엇보다 이미 내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상황.

반항해봤자 내가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그러면 이대로 죽어야 해..?'

아직 신 소저와 납치범(?)이 대치 중인 상황이었지만 안다.

이런 상황에서 인질이 정말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걸.

-우우웅

발 아래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목에 있는 칼 때문에 제대로 살펴보긴 어려웠지만 게임에서나 보던 판타지스러운 마법진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빛을 뿜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마법진이 절대 내게 좋게 작용하진 않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이 상황에서 납치법이 파티나 하자고 바닥에서 빛을 뿜고 있지는 않을테니까.

'이 망할 하늘새끼 평소에 그렇게 죽어도 내 미래는 안 보여주더니만 이렇게 보내려고 안 보여주고 있었구나.'

-우우웅..

'성격도 꽉꽉 막혀서 매번 점 볼 때마다 머리 아프게 만들고 사람 차별 하냐고 멱살까지 잡혀봤는데 도저히 그 꼬인 성격 고칠 기미가 안보이더니 끝까지 배배 꼬여서 이렇게 죽여버리다니.. 적어도 언제 죽을지는 알려줬으면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거 아니야 이게 뭐냐고.'

-우르릉

'천기누설이니 뭐니 하면서 맨날 지 기분 따라 정확한 기준도 없이 이상하게 내주고 말이야. 내가 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죽어서도 저주..'

-우르릉..!!

그 순간 깊은 지하까지 들릴 정도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지?"

"...이 소리는..?"

뱀파이어와 신 소저까지 당황할 정도로 커다란 소음.

나는 이 소리가 굉장히 익숙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부은 것처럼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싸늘한 감각이 온몸을 잠식했을 때 쯤

'..보호막!'

품 속에 넣어놓은 로자리오가 작동하며 내 몸 위로 반투명한 막이 생겨났고

"이 자식이 감히 수작을..!"

뱀파이어가 아예 목에 가져다 댔던 단검이 보호막을 무시하고 목을 찌르려는 순간

-콰지지지지직---!!!

시야가 푸른 번개로 물들었다.

"끄아아아아악!!!!!!!!!!!"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고통에 찬 뱀파이어의 비명 소리와

"유성아!!!"

말한 적 없는 내 이름을 부르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신 소저.

-우우우웅!!!

엄청난 빛을 내뿜고 있는 마법진.

그리고

-풍덩!

온 몸을 감싸는 시리도록 차가운 물의 감각이었다.

* * *

-이 시각 섬서에서는-

"흐응~ 흥~"

-보글보글

당아영이 콧노래를 부르며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는 병 안으로 약초를 집어넣었다.

사천당가의 후기지수답게 그녀만의 독을 연구하는 보기 좋은 자세라고 볼 수 있었지만

[(2배) (3배) (5배) (7배) (10배)]

그녀의 옆에 있는 상자에 쓰여진 문구의 의미를 안다면 쉽게 입을 열 수 없으리라.

그 외에도 각성, 회복, 지속, 미약, 최면 등등 온갖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의 문구들이 주변 약함에 쓰여져 있었고

[위험] [위험] [취급 주의] [붕괴 위험]

온갖 경고 문구가 쓰여져 있는 한 알은 상당히 섬뜩한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저, 저기 아가씨.. 저것도 쓰실 겁니까?"

"네? 아 저거요? 에이 저런 걸 왜 써요. 그냥 책에 있길래 한번 만들어본 거예요."

"그러면 그냥 폐기하시는 게.."

"재료 아깝잖아요? 그냥 두기만 하는 거예요. 저를 믿어주는 사람한테 저런 걸 쓸 리가 없잖아요?"

'...무슨 짓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배신하지 말아주세요.'

그 사내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그렇게 기도했다.

-풍덩!

순식간에 시야가 급변했다.

흡혈귀와 무면금귀에게 푸른 번개가 내려치고 흡혈귀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순간 그들에게 달려갔고 바닥에 그려진 이상한 진법이 빛을 내뿜은 것은 보았다.

찰나도 되지 않는 순간 동안 주변이 차가운 호수로 바뀌어 있었다.

-첨벙

"뭐, 뭐지?"

물 바깥으로 내민 머리를 돌리며 주변의 장면을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 있던 어두컴컴한 지하실이 아니라 울창한 나무들이 펼쳐져 있었다.

'환각..?'

진법의 종류 중에 안에 환각을 만들어 벗어나지 못하도록 헤매게 만드는 것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 몇 번 경험해 보기도 했고.

하지만..

'..이건 환각 같은 게 아니야.'

아무리 진법이 모르는 자들이 보기에는 기이하게 보인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규칙은 있다.

지금 상황은 옛 전우가 말해준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이해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있는 울창한 나무들을 보면 원래 있던 공간에서 몇 리나 떨어진 것인지 가늠도 잘 가지 않는다.

'..잠깐만.'

진법의 범위 안에 있던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 단유성!!"

서둘러 호수 안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

.

.

-타닥.. 탁..

"..."

근처에 있던 동굴에 모닥불을 피우고 쓰러져있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콜록.. 케헥.."

우선 마신 물은 대부분 빼낸 것 같지만 아직 감기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물을 먹었기 때문일까, 다시 증세가 도진 모양이었다.

-오들오들..

"쿠훅.. 켈록.."

"..하아..."

저런 상태에서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오히려 상태가 악화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세간에 여성과 남성의 정조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지만 원래 정조란 남녀를 불구하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

외간 처녀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안하네. 나중에 사과하겠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두기에는 그의 상태가 너무 위독했다.

하남에서 그를 간호하며 그의 몸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고 있는 입장에서 상태가 더 악화될걸 알면서도 이런 이유로 그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대로면 정말 목숨까지 위험하거나 평생 후유증을 달고 살지도 모르는 수준이었으니.

-스륵..

그의 옷을 벗기기 위해 피풍의를 잡자 신기하게도 물에 젖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죽인데 물을 흡수하지 않고 전부 흘려내는 것을 보면 확실히 보통 피풍의는 아닌 것 같았다.

-질척

"...역시나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피풍의 안쪽으로 손을 넣어봤지만 안에 입은 옷은 완전히 젖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벗긴 이후에 입힐 옷은 있다는 게 위안이었다.

-스륵 슥..

"...으읏.."

기절해있는 남성의 옷을 벗기다니.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는 전혀 상상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물에 젖은 탓에 그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향기가 더 강하게 코를 찔렀지만 애써 무시하고 그의 옷을 벗긴 뒤 나뭇잎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후우.."

물기를 다 닦아낸 뒤 그의 피풍의를 다시 덮었다.

다행히 보기보다 벗기기 쉬운 형태의 옷이었기에 망정이지 어려운 형태였다면 얼굴이 붉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펄럭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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