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250)

그녀는 홀로 3000명의 혈교인들을 바스러트리고

백명이 넘는 고수들이 펼쳤던 혈교의 합격진까지 홀로 돌파한 뒤

혈교의 교주가 자랑하던 주술까지 깨부수고 몸에 상처 하나 남기지 않고 그를 이 세상에서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문자 그대로 소멸 시켰다.

상식을 벗어난 강함.

절대고수라는 말이 모자란. 감히 인간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될까 두려운 초월자.

아무리 넓디 넓은 중원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품지 못할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 * *

"아아!"

천마에 의해 멸망했다고 알려진 혈교의 잔당들이 중원 변방 어딘가의 깊은 지하실에서 제단을 향해 절을 반복하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 앞에 선 여성.

전대 교주의 딸이자 지금은 혈교의 신녀인 그녀가 격양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선대 교주께서 이단의 손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시고 지난 시간이 무려 19년!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왔습니다!"

""""오오오오오오!!!!""""

붉게 물든 눈동자와 명백히 이성을 잃은 표정들.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혈교인들이라고 할 자들이 그 자리에 모여있었다.

"본교가 어째서 패배했겠습니까! 본교가 어째서 정파의 위선자들을 전부 핏더미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당시에 도망쳐야했겠습니까!!"

""""약했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약했습니다!! 선대 교주께서는 그 몸에 혈마님의 힘을 온전히 받지 못하셨고!! 그 때문에 우리가 패배했던 겁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스스로의 입으로 모욕하는 패륜을 저지르는 그녀였지만 그들에게 패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한다고 한들 결국 인간! 결국 혈마님께서 남겨두신 안배를 취하는 것에 급급한 어리석은 중생!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을 피로 물들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몸에 혈마님의 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혈마님을 이 땅에 재림 시켜야 한다는 것을!!!"

-쾅!!!

광기에 찬 신녀가 제단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자!! 혈마시여!! 부디 이 땅에 재림하소서!!!"

혈교가 패배하고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모았던 제물들이 제단 위에 놓여져 있었다.

온갖 사람과 짐승들의 심장 9999개.

그것이 신녀가 발견한 혈마를 재림 시키는 데 필요한 제물이었다.

-우웅!

불행히도 그들의 주술과 제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제단이 심장과 피를 빨아들이며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우우웅!!!

기운이 점점 더 커져 지하공간 전체로 퍼져나가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불길한 소리를 내뿜기 시작하던 그때

-콰아아아앙!!!!

제단이 폭발하며 그 자리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으윽.. 여기는.."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에 세로로 된 동공의 붉은 눈. 검은 망토를 두른 미남자가 머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분명 그 신의 탕녀에게.."

"아아아아!!! 혈마시여!!!!"

"뱀파이어..? 내가 뱀파이어가 맞기는.. 으으윽.."

중원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사내의 피부는 굉장히 창백했다.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그였지만 계속 앞에서 뭐라고 주절대고 있는 신녀를 보며 상황 파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와서 목을 내밀어라."

"아아!! 알겠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오히려 영광이라는 듯이 순순히 목을 내미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가 의아함을 품었지만 우선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다.

-콰득

신녀의 가녀린 목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쉽게 파고들어 갔고 그녀는 아프지도 않은지 오히려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꿀꺽

"흐음.. 맛이 꽤 괜찮군."

"하아.. 하아.. 감사합니다.."

여인에게서 빨아낸 피를 통해 기억을 읽은 사내.

죽지 않는 자들의 군단 제 3 군단장.

뱀파이어 로드 바르슈타인이 입을 열었다.

"시체가 필요하다."

이 세력으론 부족하다.

더 많은 부하를 불러올 필요가 있었다.

그와 함께 싸웠던 그의 권속. 뱀파이어들을.

다행히 신 소저와 나는 늦지 않게 상인들과의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내가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일 정도는 됐으니까.

"콜록 콜록.."

"대체 둘이 뭘 하면서 놀았길래 한쪽은 저렇게 죽어나가는 몰골이오?"

"예끼 이 사람아. 그런 건 물어보는 게 아닐세."

"..그런 거 아니네."

여전히 기침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운신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근데 소저..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가만히 있게."

거의 이불에 둘둘 말리다시피 한 채로 마차 구석에 박혀있는 모양새라 겉으로 보기에 영 좋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까칠해 보여도 참 아끼는구만."

"좋을 때지 좋을 때야.."

딱히 상인들도 불편한 기색은 없고 오히려 가끔씩 이쪽을 보면서 실실 웃기까지 했다.

'솔직히 웃긴 몰골이긴 해..'

점쟁이는 그 신비감이 생명인데 몰골이 영 말이 아니었다.

근데 그렇다고 똑바로 앉자니 신 소저의 바늘 하나 안 박힐 것 같은 단호한 태도에 빈번히 막혔다.

'챙겨주는 거니까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과한 거 아닌가 싶다.

.

.

.

결국 적당한 협상을 거쳐 우스꽝스러운 몰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몸이 아프다 싶으면 아까처럼 돌아가는 걸로.

"그렇게 제 건강이 신경 쓰이십니까?"

'같이 다니기로 했으니 내 건강이 신경 쓰이는 건가.'

신경 써주는 건 고맙지만 조금 과한 감이 있는 것 같아서 서두를 꺼내봤지만

"내가 그대를 이틀 동안 간호했는데 신경이 안 쓰이겠는가?"

"..죄송합니다."

차마 내가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안휘에 가서도 또 제 몸이 말썽이면 소저나 저나 또 며칠 동안 방에 둘이서만 지내야 할 테니 서로에게 좋을 게 없겠군요."

"엇."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최대한 몸을 신경 써보도록 하죠."

"아, 아니.. 생각해보니 사람의 몸이라는 게 갑자기 빨리 나으려고 해도 탈이 날 수 있.."

"아뇨. 기껏 신경 써주신 호의를 거절한 제가 잘못한 겁니다. 신 소저가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처럼 과한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다시 이불로 몸을 감쌌다.

"으으으.."

내가 무슨 말 실수라도 했는지 그녀가 머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왠지 더 그 주제로 말을 걸면 안될 것 같았다.

"아. 기왕 이렇게 시간이 난 거 또 점이라도 보지 않겠습니까?"

"..점이라면 저번에도 보지 않았는가."

"그때 본 점은 전체적인 운세였고 그 범위를 제대로 좁힌다면 다른 점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재물복이라던가 인물복이라던가 장수할지 단명할지 등등 웬만한 것들은 다 볼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상세하게 말인가?"

"문제 있습니까?"

"..아니네. 다 천지신명께서 뜻이 있으시겠지."

순간 도사들 특유의 잔소리가 시작되나 싶어 쫄았지만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역시 신 소저는 다른 도사들이랑 다르다니까.'

천기를 이용해 돈벌이에 쓰는 것은 옳지 않다니

천기를 너무 남발하면 세상에 혼란이 찾아온다니

내가 노력해서 얻은 내 능력인데 왜 지들이 쓰라 마라야?

내가 괴팍한 스승님 밑에서 10년 동안 고생해가면서 얻은 능력인데.

그나마 그 주체인 하늘도 워낙 변덕스러워서 제대로 쓰기도 힘든 걸.

"그러면 소저는 궁금하신 것 있으십니까? 얼마나 오래 사실지라도 봐드릴까요?"

"자, 잠깐만.."

제대로 보려고 하기도 전에 결과가 나왔다.

아니, 제대로 나온 건 아니었다.

"..어디 실수했나? 왜 측정 불능이.."

"하, 하하하하.. 수, 수명 보다는 다른 쪽에 더 흥미가 가는군."

"아니 원래 이런 식으로 나온 적이 한번도 없는데 한번 더 해보면 제대로 나올 테니까 한번만.."

-쿵!

-쩌적!

얼굴 바로 옆에 있는 나무판자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아, 알겠습니다."

왠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서 눈을 아래쪽으로 깔았다.

-스윽 슥

"그, 그러면 뭐가 궁금하십니까?"

갈 곳 잃은 손으로 목패를 만지작 거리며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자 했다.

"..말했다시피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 있네."

"어.. 그렇죠. 지금 안휘에 계시다고.."

"아니. 일단 정보를 듣고 안휘로 향하고는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네. 10년 동안 비슷한 자들을 한두 명 만난 게 아니었으니."

"아.."

생각해보니 아직 그녀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자세히 모른다.

그냥 10년 동안 빚을 갚기 위해 그 상대를 찾아다녔다는 점에서 어렸을 적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정확히 그 사이에 어떤 내막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이 찾던 그 사람인지 보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것보다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입술을 달싹이더니

"..아니네. 그냥 그렇게 부탁하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천지신명께서 자세히 알려주시기를 빌죠."

당연하지만 여기서 하늘께서 직접적으로 '걔가 걔가 맞다.' 라고 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성격 만큼 꼬인 상태의 답변을 주겠지.

이제 그걸 또 내가 개고생 해서 해석해야 하는 거고.

-탁탁탁탁

"자아.. 이 감각도 꽤 오랜만이네요."

수백 번은 더 해본 동작인 만큼 능숙하게 목패를 늘여 놓고 천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아아

하늘의 기록에 적힌 내용이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다.

인간들이 쓰는 언어와는 다른. 감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난해한 내용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자. 됐습니다."

하지만 이 짓도 한지 10년이 넘었다.

여차하면 이제 누워서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작업이었다.

-우르릉

..물론 그랬다가 우리의 변덕스러운 하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걸로!

"..어떻게 나왔나?"

"원래 천기를 읽는 일이 다 그렇지만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게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약간 경직된 표정의 그녀에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예. [기대하는 만남이 곧 찾아올 것이다.] 라고 나왔네요."

"오오.."

"그 만남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소저한테 달려있다고도 하고요."

"알았네. 참고하도록 하지."

감탄사가 섞인 반응과는 다르게 표정이 약간 경직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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