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계속 옆방에 있을 생각인가?"
"네? 네. 그렇죠."
"하남에 여행하러 온 것 아니었나?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그랬는데."
"뭐.. 원래 그런 계획이었긴 했지만.. 소저가 아파 보이는데 어떻게 혼자 놀러 가겠습니까?"
'혼자 가기 무서워.'
하남도 치안이 좋은 곳이긴 하지만 심심하다 싶으면 객잔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 곳이 중원이다.
언제 어딜 가도 방심해선 안된다.
어차피 상인들과 약속한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으니까 하루쯤 날려 먹어도 괜찮다.
대신 호감도를 더 올려서 안휘에서 같이 다니자고 하면 되니까.
"..원래 가려던 곳이 어딘가?"
"아..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호수가 있는데 거기 영물 물고기가 산다고 하더군요. 생긴 게 굉장히 예뻐 많이들 구경 온다고 합니다. 배까지 있다고.."
무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전통 관광지다.
뭐, 영물 앞에서 고백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느니 그런 소문도 있어서 커플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쪽엔 관심 없다.
"..같이 가지."
"예? 괜찮겠습니까?"
"정말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게. 내 몸 상태는 내가 잘 아니까."
"뭐..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어째서인지 눈동자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촤악!
붉은색과 하얀색이 섞인 비늘을 가진 거대한 물고기가 호수를 헤엄치고 있었다.
"오오오..!"
사람을 수십 명은 거뜬히 태울 수 있는 거대한 선박 위에서 인파에 섞여 물고기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신비한 광경이었다.
카메라만 있었으면 찍고 싶었을 정도로.
"소저, 저 물고기가 정말 영물입니까? 물고기 중에도 유명한 영물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런 종류입니까?"
"만년화리를 말하는 거라면 저것은 그 정도는 아니네. 정말 만년화리라면 이렇게 관상용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진작에 온갖 세력에서 잡으려 들었겠지."
"아."
생각해 보니까 그랬다.
나는 그 가치를 잘 모르지만 최소한 그게 어마어마하게 귀한 영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맛있을까?'
-추릅
그 가치가 대부분 내단 때문인 건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귀한 영물인데 맛도 있지 않을까?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술안주로 삼아보고 싶다.
"그래도 크기를 보면 영물 반열에 들기는 할거네. 이미 수십 년 동안 살아있다는 점에서 보통 물고기는 아닐테니까."
내 침묵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여인이 말을 이었다.
"근데 그러면 저 물고기도 맛있.. 아니 내단 같은 게 있는 겁니까?"
"내단이라.."
여인이 고개를 돌려 물고기쪽을 쳐다봤다.
어째선지 물고기가 급하게 물 속 깊숙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군. 그리고 만약 생긴다고 해도 이렇게 인간과 가까이 산 영물의 내단은 가치가 별로 없을거네. 탁기가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을 테니."
"그러면 오래 살겠군요."
"마냥 그렇다고 보긴 힘들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니."
-절레절레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과연 저 물고기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과연 내가 산 속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에도 살아 있을 수 있을지.
.
.
.
"아오 점이나 좀 봐주려고 했더니."
나는 물고기를 욕하면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미물이지만 내가 그 천기를 읽는 건 가능하니까 언제까지 살아있을까 궁금해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더니 나한테 물대포를 쐈다.
하필 정확히 비어있는 얼굴 부분을 향해서 쏜 탓에 안쪽으로 옷이 전부 젖었다.
지가 무슨 포X몬인줄 아나.
'이거 세탁하려면 힘든데.'
은둔자의 망토는 방수 효과가 있어서 젖지 않지만 안쪽에 입은 옷이 젖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하아.."
"선원에게 물어보는 건 어떤가? 여분의 옷이 몇 벌은 있을텐데."
"여분의 옷이요.."
"많이 젖지 않았다면 괜찮겠지만 혹시 젖은 옷을 입었다가 괜히 몸살이 날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몸이 워낙 약해서 감기 몸살 한번 심하게 걸리면 며칠을 앓아 누워야 한다.
괜히 고집 부리는 것보다 그냥 양해를 구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정말 감기라도 걸리면 일정이 상당히 꼬일테니까.
"여분의 옷 말입니까? 당장 한 벌이 있긴 합니다."
-찰락
"제 옷이 마를 때 까지만 조금 빌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어차피 좋은 옷도 아니니 아예 가지셔도 됩니다. 그냥 천 쪼가리니까요."
선원에게 은전 몇 개를 건네주고 옷을 받아왔다.
확실히 뱃사람들이 입는 옷 답게 거칠고 투박해 보였지만 어차피 망토를 겉에 입을 거니까 외형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덩치가 큰 뱃사람들의 옷 답게 사이즈가 나한테는 너무 컸다.
"소저 밖에 계십니까..?"
"있으니까 걱정 말게."
그리고 지금 선박에 사용 중인 사람이 없고 바깥과 밀폐된 공간이 하부의 어두컴컴한 창고밖에 없어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다.
어두운 창고 안에서 선원에게 받은 옷을 펼쳐두고 고민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하지.'
길이야 많이 접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바지가 자꾸 흘러내린다.
그렇다고 내가 변태도 아니고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망토만 입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노출될 걱정이 없다지만 그건 다른 문제다.
뭔가 존엄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해야하나.
'하아.'
차라리 바깥이었으면 불이라도 피워서 옷을 말리기라도 하지 선박에서 불을 피울 수도 없으니 말리려면 자연 건조밖에 답이 없다.
고민과 고민이 꼬리를 물어 이어지던 중 선박 위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쿵! 쿵!
-꺄아아아악!!
명백히 불길하게 느껴지는 소리.
"..."
나는 비명소리로 추정되는 것을 듣고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문 하나를 밖에 두고 있는 여인은 그와 정반대였다.
"..잠시 갔다 오지. 위험할지도 모르니 여기 있게."
"자, 잠깐만요. 저 혼자.."
-팟!
"두고.."
순식간에 기척이 사라졌다.
-쿵! 쿵! 쿵!
-으아아악!!
-꺄아아아악!!!
잠깐의 소란이 아닌 모양인지 위쪽에서 들리는 소음과 비명소리는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좀 바깥 세상 좀 즐겨 보려고 했더니 또 난리다.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냥 중원에 흔하디 흔한 무림인들간의 갈등이라면 금방 끝나겠지만 만약 영화에서나 나오는 그런 테러 상황이라면?
'..그냥 여기 있어야 하나..?'
괜히 뒤늦게라도 여인을 따라가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설마 이런 창고에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할 테니까 아마 생존 확률은 높을 거다.
최상의 경우에는 저 여인이 무슨 상황이든 빨리 해결하고 돌아오는 것이지만..
-쾅! 쾅!
'히익..'
계속 커지는 불길한 소리에 숨을 죽이고 입을 틀어 막았다.
-덜덜덜덜
뭐든지 좋으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 * *
경공까지 펼쳐가며 서둘러 올라온 선박 위의 모습은 아수라장이나 다름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콰득!
"으아아아악!!"
"사, 살려줘!!"
눈이 새빨간 사내가 이성을 잃은 상태로 다른 승객들을 습격하며 목을 물어 뜯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물어 뜯는 게 아니라 이빨을 박아 넣고 있었다.
"저, 저 사람 이상해요! 사람 목에 이빨을 박아 넣고 피를 빨아요!"
검을 찬 모습을 보았는지 떨고 있는 다른 승객이 정보를 알려주었다.
"...피?"
"네, 네! 그 소문의 흡혈귀인 것 같아요!"
"..피를 빠는 귀신이라."
-스으..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번쩍!
-툭! 툭!
검광이 작게 번뜩임과 동시에 괴인의 양 손이 잘려나갔다.
"크아아아아악!!!"
그가 손으로 잡고 있던 승객이 쓰러지는 것을 부축해 멀리 떨어트렸다.
괴인은 손을 잃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뻗으며 이쪽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서걱!
"어디에 그 더러운 이빨을 들이미느냐."
그의 이빨이 잘려나갔다.
-서걱!
그 다음엔 다리.
-서걱!
그 다음엔 팔.
"끄으으윽!! 끄어어억!!!!"
이 정도 수준의 상대에게는 특별한 깨달음을 담을 가치도 없다.
그냥 무감정하게 검을 휘두를 뿐.
"적을 잘못 정한 탓에 스스로 파멸한 옛 시대의 망령이 어째서 부활했느냐."
"크아아악!!"
"어차피 겨우 최하급 교인 수준인 그대가 아는 것은 없겠지만."
-서걱!
괴인의 목이 잘려나갔다.
혈교인에게 베풀 두 번째 기회는 없다.
20년 전에 그렇게 당하고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으니.
"괜찮은가?"
20년 만에 부활한 혈교의 흔적에 머리가 아팠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다.
괴인에게 목을 물리고 쓰러져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
"으으..?"
-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