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문파를 잘못 찾아온 것 아닐까 싶은 아이였다.
몸은 강하기는 커녕 오히려 또래에 비해 훨씬 약해 보였고 키 또한 작았다.
솔직히 입산 시험은 어떻게 통과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무공을 익히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진 외모를 다른 쪽으로 살렸다면 후일 중원에서 크게 이름을 떨칠 수 있어 보였다.
흔히 크면 여자 여럿 울릴 외모라고 하는 그런 외모였다.
지금은 그저 귀여울 뿐이었지만.
"그나저나 아무래도 수련 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나름 수련 하고자 바위를 밀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저러면 오히려 몸이 상할 뿐이다.
흔히 사람의 몸이 철과 같아서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그럴 회복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저 나이에 저 몸으로 바위를 가지고 수련했다간 독일 뿐이다.
"무엇 하느냐. 가서 바로잡아 주지 않고."
"네, 넷?!"
"같은 화산의 이름 아래에서 수학하는 아이이지 않느냐. 잘못된 것이 있다면 네가 선배로서 알려주어야지 방관하고 있으면 안된다."
"...! 다녀오겠습니다!"
검화는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경공까지 펼쳐가며 달려갔다.
'..저번보다 많이 빨라졌구나.'
분명 그때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제자의 성장에 기뻐하는 사이 그녀가 금방 소년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소년은 경계심이 없는 성격이었는지 금방 웃으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니면 한눈에 봐도 속가제자의 것과는 다른 그녀의 옷을 봤을 수도 있고.
'어련히 알아서 돌아오겠지.'
제자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제자에게 더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
.
.
제자는 그 소년과 금방 친해진 모양이었다.
"이름은 단유성이라고 합니다. 화산에 들어온 계기는 원래 부모 없이 정 많은 노인의 밑에서 자랐는데 그 노인이 그만 별세하셔서 그 유언이라도 들어드리고자 화산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사정이 딱한 아이로구나. 그나저나 대체 무슨 유언인게냐."
"화산의 매화향을 한번 맡아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정말 화산에 피는 매화꽃을 말하는 건지 화산의 검을 말하는 건지 불분명한 말이었다.
그래도
"..네가 잘 지도해 주거라."
"..! 그러면.."
"늦게라도 들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저 정도 소원은 들어주는 게 도리에 맞겠지.
기왕이면 그와 연관이 있는 그 소년에게 직접 들려 보내는 게 좋을 것이다.
"근골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네가 옆에서 지도해 준다면 실마리는 금방 잡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고 아직 그 아이가 익히지 않은 무공을 알려줄 때는 심사숙고해 본 뒤에 결정하거라."
"아, 알겠습니다! 제가 옆에 꼭 붙어서..!"
"아니 그렇게 까지는.."
이후로도 검화와 유성은 금방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검화가 그를 만나지 않는 날이 없었고 그녀는 그녀의 스승에게 매일같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검후는 그저 웃으면서 그녀의 제자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후는 그녀의 제자를 불렀다.
"아무래도 며칠 간 수련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최근 얻은 깨달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구나."
"알겠습니다! 이 제자는 걱정 마시고 꼭 원하시는 것을 얻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끝으로 검후는 수련을 하러 떠났고
그 일이 일어난 건 그녀가 밖으로 나온 뒤였다.
* * *
"..."
수련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검후를 반긴 것은 그녀의 제자가 뇌옥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오면서 들은 그녀의 죄명은 아무리 그녀라도 믿기 힘든 것이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네 입으로 말해라.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어차피 오면서 다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 그대로 입니다."
"..."
검후는 손짓으로 뒤에서 그녀의 제자를 감시하고 있던 자를 밖으로 내보냈다.
"말해라."
"..."
"말해라!!!!"
그녀가 수련에 들어갔던 사이
그녀의 제자가 한 소년을 억지로 겁탈 하려다 반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에 그 소년의 단전이 망가졌다.
그리고 그 소년은 화산을 떠났다.
그녀가 나오자마자 들은 소식이었다.
"네가 그러고도 감히 도사더냐!! 네가 그러고도 감히 사람의 탈을 쓴 인간이더냐!!!!!!"
자식처럼 키운 제자였다.
어릴 때부터 직접 거두었고, 자라는 모습을 직접 봐오며 무공을 처음 익힐 때부터, 비무 대회에 나갈 때까지 전부 옆에서 지켜본 제자였다.
"네가!! 네가 어떻게!!!!"
어떻게 싫다는 상대를 억지로 겁탈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신보다 10살은 어린. 아직 지학도 오지 않은 소년을 상대로 욕정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너에게 입이 있다면 말해봐라!!!! 대체!!! 대체 왜!!!"
"..먼저 유혹한 건 그 아이입니다."
"..무어라?"
"그 아이가 먼저 그 순진한 눈망울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에게 누나라고 불렀습니다. 저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저에게 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낮게 가라앉은 제자의 목소리에 검후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그 몸을 저에게 들이댔습니다. 손을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저를 보면서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게 유혹이 아니라면 무엇을 유혹이라고 부릅니까?"
망가진 감정.
탁하게 물든 눈동자.
검화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건 무공을 배우는 입장에서 당연한 것 아니더냐..?"
호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공을 가르쳐 주니까 고맙다고.
다음 지도를 기다렸다고.
보고 싶었다고.
자세를 봐 달라고.
그리고 수련을 했으니 당연히 얼굴이 붉게 물들 수밖에 없다.
"너 때문에 그 아이는 단전을 잃었다. 지금까지 익힌 건 물론이고 앞으로도 익힐 수 없는 몸이란 말이다. 너 때문에. 그 아이가 그렇게 믿고 따르던 네년 때문에 그렇게 됐단 말이다."
"..하핫."
"찾아라. 중원 전체를 뒤져서라도 그 아이를 찾아와라. 그리고 내 눈 앞에서 그 아이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라. 네가 책임지고 그 아이의 단전을 고ㅊ.."
"제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어째서 그래야 합니까?"
검화의 눈에서는 이미 한 점의 빛도 찾을 수 없었다.
"설령 제가 그렇게 한다 한들, 제가 단전을 고쳐 놓는다 한들, 제가 그 아이를 제 손에 넣을 수 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다른 여자의 손에 들어갈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어째서 그래야 합니까?"
"..지금 뭐라"
"아아.. 그러고 보니 혹시 스승님도 관심 있으시던 겁니까? 저에게 유독 그 아이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던 것도 그 이유였던 겁니까? 미리 말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스승님이라면 한번 쯤은 나누어 드릴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듣자 듣자 하니 정말 가관이었다.
설마 그녀의 제자가 이렇게 망가져 버릴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아.. 이제 그 아이는 바깥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겠죠. 저를 유혹했던 것처럼 다른 여인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마음과 재산을 착취하면서 보내겠죠."
"헛소리하지 마라..! 그 아이가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
"그래도 그가 앞으로 어떤 여인을 만나더라도 저를 잊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싹
등골에 오한이 올라왔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너.. 혹시 일부러.."
"..아핫! 아하하하핫!!!"
검화가 미친 것처럼 웃었다.
아니, 그녀는 이미 미쳐있었다.
"제가 그의 몸에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그는 그 상처를 보고 저를 떠올리겠지요. "
"네가.. 네가 정녕 미쳤구나.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그동안 온갖 악인이란 악인을 경험한 검후로서도 제자의 광기 어린 모습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상황까지 오자 검후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인생을 지탱해온. 그녀를 유지하는 정의가 그녀에게 선택을 종용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제자는 그녀가 세운 기준에서 명백한 '구제할 수 없는 악' 이었다.
이미 준 한번의 기회도 내다 찬.
"..미안하구나."
검후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서걱!
단칼에 보내준 것은 사죄의 의미였다.
스승으로서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사죄.
그리고 속죄해야 할 상대는 한 명 더 있었다.
"..그 아이를 찾아라. 중원 전체를 뒤져서라도. 반드시 데려오거라."
그 아이에게도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못난 제자를 둔 스승으로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내 심장이 무사히 뛰고 있는 지부터 확인한다.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병 나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건 아니다.
그저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남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주제에 정작 자기 자신의 미래는 한 치 앞도 알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라
당장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내가 무사히 눈을 뜰 수 있을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점쟁이로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짐을 다 제대로 싸 뒀었나.'
오늘이 당아영을 따라 그 흡혈귀라는 괴인을 토벌하러 가는 날이었다.
일정을 듣기로는 오고 가는 도중에 각각 한 번 씩은 야영을 해야 할 거라고 했으니 아마 오랜 시간 동안 마차를 타고 가야 할 터.
사람과의 대화도 좋지만 그 정도로 대화할 소재가 넘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식량은 저쪽에서 준비한다고 해서 나는 소소한 간식과 시간을 때울 책 정도만 준비했다.
혹시 몰라서 암기도 품속에 넣어 놨고.
'이게 통할려나 모르겠네.'
상점창에서 비싼 포인트 주고 가진 걸 다 털어서 사긴 했지만 이게 정말 무인들 상대로 통할 지가 의문이었다.
그냥 포인트 값은 할 거라고 믿는 수밖에.
-끼익
보따리에 싸둔 짐을 들고 객잔 1층으로 내려가자 당아영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직 집합 시간까지는 한참 남은 걸로 아는데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려는 모양이다.
"일찍 오셨네요? 아직 한참 남은 걸로 아는데."
"가기 전에 할 얘기도 있고 같이 식사나 하려고 그랬죠. 앞으로 당분간 보존식을 먹어야 한다고요?"
"..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모처럼 그동안 속세의 맛있는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지냈는데 보존식이라니
그래도 산 속에서 먹던 풀떼기 보다는 맛있겠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앉아요. 당신은 우육면이면 되죠? 전에 보니까 맛있게 먹던데."
"..사주시게요?"
"당신 그날 번 돈 그날 다 쓰느라 아침에는 돈 없잖아요? 있어봐야 소면 하나밖에 못 사지 않아요?"
"소저는 저에 대해서 너무 잘 압니다."
아마 스승님을 제외하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일거다.
당아영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점소이를 바라봤다.
"아침부터 술은 좀 그럴.."
"소저. 저는 피에 알코올이 흐르지 않으면 손이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