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50)

돌아올 반응을 기대하며 살짝 혀를 핥았다.

그리고 돌아온 반응은

".....네?"

잔뜩 수상한 외형에 비해 제법 귀여운 반응이었다.

* * *

대망의 시험 날.

내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 점쟁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명나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체가 뭐지?'

총 30문제 중 20문제 적중.

나머지 10문제 마저도 거의 비슷한 문제였다.

문제가 유출됐을 가능성은 없다.

설령 개방이나 하오문이라도 이 학관의 시험 문제 정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야 무림맹주께서 직접 출제하시고 몸에 지니고 다니시다가 시험 당일에 공개하시는 문제를 그 누가 어떤 수로 알아낸단 말인가.

'진짜 미래를 보는 건가..?'

점성술.

순 사이비라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이 정도의 예언에 가까운 예지가 점으로 가능하다면 무당파나 곤륜파가 이미 중원을 차지했어야 정상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적중률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정말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그 점쟁이가 대충 지어낸 문제가 그대로 나왔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미 두 번.'

그에겐 남궁진의 목숨을 살렸다는 전적도 있다.

한번은 우연이다. 두 번 까지도 우연이라고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더 이상 우연의 영역이 아니다.

'지켜봐야겠어.'

만약 저 점쟁이의 예언에 가까운 예지가 정말 그의 능력이라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한다. 항상 시야 안에 넣어둬야 한다.

지금은 겨우 시험 문제지만 만약 그 범위가 중원의 정세, 황실의 움직임, 숨겨진 신투의 보고, 마교의 움직임 같은 거대한 규모까지 가능하다면 그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만약에 그 능력을 당문에서 독점할 수 있다면?

'...'

조금 위험한 생각이지만

어쩌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균형이 망가질지도 모른다.

* * *

그에 대한 일은 아직 가문에 보고하지 않았다.

갑자기 점집 여는 걸 도와준다고 하는 게 수상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정도는 그냥 아는 사람의 지인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장사 첫날이네요. 긴장되세요?"

"안된다면 거짓이겠죠..?"

여전히 신기하게도 안쪽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가 유명해진다면 별호에 무면(無面)은 반드시 붙어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조금 불안하긴 한데.'

그의 능력이 중원 전체에 퍼져나간다면 그때 와서 그의 능력을 독점하는 건 힘들 거다.

하지만 아직 그의 능력과 성격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

지금은 그가 원하는 대로 도와주고 빚을 지워두면서 옆에서 지켜보는 게 최선이다.

"첫날엔 같이 있어줄 테니 긴장 푸세요. 혹시 무뢰배가 오더라도 그 정도는 막아 줄게요."

"어.. 학관은요?"

"하루쯤 빠진다고 뭐."

나중에 시간 내서 채우면 그만이다.

"근데.. 은 2냥이면 좀 비싸지 않을까요?"

"아뇨. 그 정도도 오히려 싸요.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그가 장사할 때도 그떄와 같은 적중률을 보여준다면 은 2냥이면 오히려 싼 게 맞다.

물론 아직 소문이 덜 났고 오늘 막 시작한 만큼 초반엔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겠지만 나중에는..

-똑똑

"저.. 혹시.."

-팟!

밖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마자 몸을 숨겼다.

손님은 나이가 이립에 가까워 보이는 여성이었다.

"어서 오세요! 뭘 봐드릴까요? 사주팔자, 연애운, 자식 복, 뭐든지 가능합니다!"

"그.. 저희 아들이 곧 화산파에 제자로 들어가는 시험을 보는데.. 혹시 이것도 볼 수 있을까요?"

"아이고 물론이죠 여기 수험생 어머니 분이셨네. 자자. 편하게 앉으세요. 저도 천지신명님한테 한번 기도해볼 테니까 어머님도 기도.. 아 혹시 믿는 분이라도 계시나?"

..어째 하는 말이 점쟁이보단 무당 같았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화산파 좋지요. 도사들이라 점잖고 정의로운 사람들도 많고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 속이라 자연의 정기도 맑으니 들어가기만 하면 큰 사람 될 겁니다."

-탁 탁 탁 탁

그가 탁자에 목패 8개를 꺼내 놓았다.

"원래 대리로 점 보러 오는 건 제가 힘들어서 잘 안 받는데 어머님 마음 이해 하는 데다 개점 직후 첫 손님이기도 하니 특별히 힘 좀 써 드리죠."

그의 입이 열리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아이고 그래도 장사 잘 끝났네요."

"..잘 끝난 거 맞아요?"

"첫 손님을 그렇게 말아 먹고도 손님을 3명이나 받았으니 잘 끝난 거죠."

그는 손에 든 은자 6개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잘그락 거리고 있었다.

첫 손님은 그의 대답을 듣더니 고함을 지르면서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가게를 나가버렸다.

당연히 돈 또한 주지 않았고.

"처음부터 선불로 받을걸 그랬나 봐요. 그랬으면 은자 2개는 더 버는 거였는데."

그나마 그 뒤론 은자를 선불로 받게 되어 6개라도 건질 수 있었다.

"그냥 합격한다고 말해줬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첫 손님이요?"

"네."

어차피 그런 부류는 정말 자신의 미래가 알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안도감을 얻기 위해. 주변에서 위로를 받으며 두려움을 짓누르기 위해서 온 걸 거다.

아마 그 여인도 그것을 위해 은자 2개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러 왔을 거고.

"그러다 불합격하면 또 저한테 따지러 올걸요? 어차피 욕먹을 거. 점이라도 제대로 봐서 적중률이라도 높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

저렇게 생각하니까 또 맞는 말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죠. 미래를 보러 왔으면서 정작 불길한 미래를 말해주면 저주한다고 뭐라 해요. 전 제가 본 그대로를 말해줄 뿐인데."

"뭐.. 불길한 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저는 그 미래를 피하라고 기껏 조언해 주는 건데 말이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첫 손님의 실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 당 소저. 장사도 끝났겠다 같이 식사나 하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사죠."

"..뭐. 그러죠."

아마 다른 사람이 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 내가 남이. 그것도 남자가 신청한 식사 요청을 그 자리에서 수락하다니.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데 괜한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지켜봐야 하니까.'

애초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내다.

그의 능력에 관심이 있을 뿐 이성적인 관심은 생기려고 해도 생길 수가 없다.

아직 섬서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을 텐데 과연 어디로 안내하나 싶어 잠자코 따라가 보자

"어이고 형씨 오늘도 왔어? 나야 좋지만 너무 먹다가 위장에 구멍 뚫려도 난 몰라?"

"하하. 술 마시다 죽는 거면 오히려 환영이죠."

"어휴 저거 제대로 주당이야. 그런데 오늘은 다른 사람도 데려왔네? 심지어 여자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점에 들어와 있었다.

'..어?'

"왜 그러세요 소저? 술 안 좋아하세요?"

"아, 아니.. 그.."

정신을 차려보니까 주점 안이었다.

물론 술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히 즐길 줄은 안다.

그런데 혼자서 즐기는 술이랑 다른 사람. 그것도 남자와 같이 마시는 술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남궁진이 보낸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됐다.

말 몇 마디로 여자를 주점으로 데려오다니.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어떡하지.'

원래 성격대로 였으면.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자리까지 올 일도 없었고 만약 오더라도 단호하게 거절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단호하게 거절하기 조금 껄끄러운 상대였다.

만약 이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가 그의 기분이 상하게 된다면 그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거다.

지금 당장은 그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이고 그도 나에게 빚이 있으니 큰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아직 그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와의 관계를 악화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의 미래를 보는 능력은 탐나는 종류였다.

'차라리 능력이 정말 예언이 맞다면.'

그의 능력이 예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바로 이 한 몸 바쳐서 그를 데릴사위로 당가에 귀속시켜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다.

아무리 내가 현 후기지수 중 가장 촉망받는 인재 중 하나라지만 그래봐야 절정의 벽도 뚫지 못한 일류.

이 나이에 그 정도도 충분히 천재라고 하지만 당장 당가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언은 다르다.

당장은 물론이요 언제라도 웬만한 초절정의 고수보다 그 가치가 더 뛰어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으으으음..'

내면에서 수많은 가능성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소저? 안 드십니까? 섬서에 있는 주당들이 손 모아서 추천했던 주점입니다. 술 맛이 아주 일품이라고요?"

이미 혼자서 병 하나를 해치웠다.

..이 남자.

이제 보니 나한테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시선부터가 내 쪽이 아니라 술에만 향해있었다.

"..저기 혹시 여기 왜 온 거에요?"

"네? 주점이니까 당연히 술 마시러 왔죠?"

"아.. 그렇죠.."

가끔 정말 주당이라는 사람들은 다른 것보다 오직 술에만 관심 있다고 하던데 이 점쟁이도 이런 부류였나 보다.

"술 좋아하세요?"

"요즘 술 덕분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얼굴이 가려져 있음에도 진심이 10할 담겨있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 당가에도 유명한 술 많은데."

실제로 당가의 술은 나름 유명한 편이다.

독을 다루다 보니 새로운 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끔씩 술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것들이 제법 인기를 끈 걸로 안다.

사실 독은 핑계고 그냥 처음부터 술을 만들던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그거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습니까?"

"뭐어.. 당가 사람이 되면 환영의 의미로 몇 병 정도 구해다 드릴 수도.."

"어떻게 하면 됩니까. 계약서라도 씁니까?"

그냥 한번 떠본 거였는데 저쪽은 상당히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생각났다.

'아. 이 사람 산에 있다 나왔다고 했지.'

그래도 주워들은 게 있는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정도는 아는 모양이었지만 세세한 세상 물정은 잘 모르는 듯 싶었다.

이건 기회다.

아직 잘 모르는 그를 속여서 당가에 귀속..

"..농담이에요. 밖에 내다 팔기도 하는걸요. 나중에 구해다 드릴게요."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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