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했던 무사를 취소했다는 건 또 뭡니까."
"뭐긴 뭐야. 원래 당신한테 점을 보러 오기 전에 고용했던 무사들을 취소했었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듣자 듣자 하니까 보통 미친 새끼가 아니었다.
"당신들이 무사들을 고용했던 시점에서 상행이 무사한 거라고 했지 그걸 취소하면 어떻게 합니까?!"
상행에서 무사의 유무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어차피 습격 안 받으면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다.
존재 자체 만으로 도적떼나 맹수들이 겁을 먹고 건드리지 않고 보내는 경우가 있는게 무사들이다.
무사 없이 상행을 나간 거면 그냥 '우리 무방비하니까 덮쳐주세요.'라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 없는 거다.
물론 운이 좋으면 무사 없이도 상행을 마칠 수 있기야 하겠지만..
"하.. 이 무슨.."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설마 이런 경우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지금 상행이 실패한 게 내 잘못이라고?"
"그러면 뭐 제 잘못입니까?"
이래서야 미안하던 마음까지 사라진다.
진짜 매번 말한다. 제발 맹신하지 말라고.
근데 그걸 무시하고 '와 우리 성공한대!' 라면서 안일하게 이미 고용한 무사들까지 취소하고 그 돈으로 상품을 더 산 욕심 가득한 돼지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이익.."
사내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해지기 시작했다.
'..아. 맞다.'
"이 망할 새끼가!!"
-쿠당탕!
사내가 내게 달려들었다.
참고로 내가 뭐 힘을 숨기고 있다거나 이런 건 진짜 없다.
진짜 하늘에 맹세코 일반인도 하나 못 이긴다.
'일반인 여자는 이길 수 있을지도..?'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운트 포지션을 취한 사내가 금방이라도 내게 내려칠 기세로 주먹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이건 아프겠는데.'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며 눈을 질끈 감자
-푹!
"끄아아아악!!!"
타격음이 아니라 사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지만 그 남자 위에 올라타고 싶은 건 저라서요."
"그렇게 말하면 오해합니다."
"어머? 오해하면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감히 사천당가의 여식의 혼삿길을 막은 책임을 요구할 수도 있겠는데요."
"무서운 소리 하지 마십쇼."
누가 보면 연인끼리 할만한 대사지만 실제론 아무 관계도 아니다.
친구와 비지니스 관계 그 사이의 어딘가?
"제가 조금 아까울 것 같긴 하지만 그 능력을 당가가 독점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교환일 것 같은데요?"
"..일단 이 사람 좀 어떻게 해주시죠."
"끄으으윽..! 내 손..!"
사내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손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에 비수가 박혀있었다.
아주 깔끔하게 손바닥 정 중앙을 관통한 상태로.
"공짜로요?"
"..원하시는 정보 하나 봐드려요?"
"좋아요. 뭐든지요?"
"아 얼굴은 안됩니다."
"..쳇."
그 잠깐 사이에 수작을 부리려 했다.
역시 사천당가. 암살자 집안.
방심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는 사이 당아영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내에게 다가갔다.
분명 움직임은 가벼워 보이는데 발걸음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저기요? 제 말 들리세요?"
"끄으윽..! 흐윽..!"
"대답 안하면 반대 손도 똑같이 만들어 드릴 거예요?"
"드, 들려! 들린다고!"
내가 온 힘을 다해도 못이길 것 같던 사내가 그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여인에게 덜덜 떨고 있었다.
이게 무공이었다.
나는 가질 수 없는.
"잠깐 따끔할 수 있어도 참아요?"
"자, 잠깐만.. 지금 무슨.."
-푸슛!
"끄아아악!!!"
당아영이 사내의 손에 박혀있던 암기를 단번에 뺴버렸다.
'어우..'
순간적으로 피도 같이 튄 게 심장에 좋지 않았다.
"자. 여기 천. 깨끗한 거니까 안심하고 두르세요."
"흐끅.. 흐끅.."
"오늘 당신은 어쩌다 다쳤었죠?"
"..식사를.. 하다가.. 실수로.."
"옳지 잘한다~"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평소에 밝고 상냥한 모습만 봐서 몰랐는데 적한테는 가차 없는 모양이다.
"오늘 당신은 이 점집에 온 적이 있다 없다?"
"없다.."
"네. 이제 가보셔도 돼요."
"으으으으.."
사내가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손에 감은 천을 꽉 감싸며 입구로 달려갔다.
"어디 가서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말 안 해도 알죠?"
"히, 히익!"
사내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내쫓았어요. 이제 됐죠?"
"..고맙습니다 당아영 소저."
"뭘요.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바닥에 묻은 피를 닦기 위해 걸레를 찾았다.
"그나저나 당신 정말 약한 거 맞나 보네요? 저런 거 하나 못이기고."
"말 하지 않았습니까.. 무공도 못 익힌다고.."
"그래도 몸을 지킬 수단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죠."
'몸을 지킬 수단..'
당아영의 말에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비싸.'
아직도 한참 남았다.
일렁이는 반투명한 무언가를 휘저으며 허리를 숙여 바닥에 묻은 피를 닦았다.
"뭐라도 알려줄까요?"
"..무공은 못 익히는데요?"
"아뇨. 어차피 무공은 가문 거라 함부로 남한테 알려줄 수도 없어요. 대신 금나수법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지만."
금나수법.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무공 보다는 무공을 보조하는 기술 쪽에 가깝다.
"무인은 못 이겨도 적어도 앞으로도 장사 하려면 저런 일반인 정도는 이길 수 있어야죠. 유명해지면 시비 걸러 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닐텐데. 제가 하루 종일 지켜드릴 수는 없잖아요."
"..하루 종일 지켜주시면 안돼요?"
"네?"
"농담입니다."
금나수법을 배워보는 건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
무공이 아니니까 단전이 망가졌어도 배울 수 있고 무인은 못이기더라도 적어도 저 정도 사내는 이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엔 백 번 공감한다.
겨우 금나수법 정도로 눈에 띄게 강해지지도 않을 거고.
"배우겠습니다."
결국 배워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
"당 소저?"
"핫."
당아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흠흠. 그러면 가게를 닫은 뒤에. 술시에 제가 찾아올게요."
"아. 그냥 안 배울게요."
"왜요?!"
"그땐 주점 가야 해서."
짧은 육체의 대화(?) 끝에 결국 당아영이 오후 중 시간을 내서 오는 걸로 결정됐다.
처음엔 그냥 조금 흥미가 가는 사람이었다.
그 유명한 남궁세가의 망나니가 사실상 고개 숙여 부탁하는 수준의 편지를 보내왔길래 조금 놀라긴 했었다.
그가 아직 학관에서 재학할 당시 봤던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가 남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고작 한 사람이 섬서에서 가게를 잘 운영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내용이라는 건 더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점집을.
[그나마 섬서에 연이 있는 인물은 대부분 그 버릇이 나빠서 생각나는 사람이 소저 밖에 없었소.]
사실 인연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인연이긴 하지만 적어도 모르는 사이는 아니니까.
전에 비무에서 힘 조절을 잘못해 그를 기절 시켜버린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이 정도 부탁 정도는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때 이후로 안 그래도 낮은 그의 평판이 더욱 낮아졌었으니.
'그래도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봐야지.'
혹시 그 때의 일에 앙금을 가지고 나에게 해를 끼치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수상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당아영 소저라고 부르면 될까요?"
온몸을 둘러싼 피풍의는 어떤 체형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고 빛이 어떤 각도에 존재하더라도 얼굴 안쪽은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 또한 일반적인 사람의 목소리와 다르게 기묘하게 들려 남성인지 여성인지조차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나마 겉으로 드러나는 보폭이 남자 특유의 것이었기에 남성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을 뿐
만일 그가 여성이라고 주장한다면 여성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혹시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성별이 어떻게 되시는지.."
"아. 남성입니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냥 순전히 믿어주기에 그의 외형이 너무 수상했다.
이름, 나이, 외모, 성격, 그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없는 상대에게 함부로 손을 빌려줘도 좋을 만큼 내 위치는 가볍지 않다.
애초에 이런 외형을 가지고 소개장 한 장으로 큰 도움을 바란다면 그것부터 이상한 일이겠지.
"좋아요. 뭘 원하시는지는 알았어요."
일단 그의 말과 남궁진의 편지의 내용에 딱히 어긋나는 내용은 없었다.
정말 솔직하게 거짓말 없는 실제 상황이거나. 아니면 미리 말을 맞추고 왔거나.
사실 작정하고 속이러 온 거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니 의심을 크게 덜어주지는 못하지만.
"그런데 혹시 남궁진이랑 제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는 아시나요?"
"..그냥 소개장만 받은 거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저에게 고백했다가 차면서 친구로 지내자고 했었죠. 친구가 맞긴 하네요. 그 이후에 바로 자퇴해 버렸지만."
그래서 조금 시험해 보려고 했다.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당연하지만 그는 실제로 고백을 한 적이 없다.
아무리 망나니라고 해도 설마 비무에서 그렇게 창피를 본 여인에게 고백을 하고 싶을까.
'어떻게 반응하실려나.'
당황?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