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48화 (448/450)

EP.448

설거지

와인.

"와인 행사하고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와인 구입해가세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이다.

위스키, 데킬라 등과 달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선물용으로 주고 받기 때문이다.

젊은 층은 소주와 맥주 다음으로 자주 마신다.

"와, 와인 판대!"

"와인?"

"우리 삼겹살 사다 둔 거 있잖아? 주말에 삽겹살에 와인 한 잔 하면 딱이겠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인 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30대 주부 최지해는 속으로 한숨을 쉰다.

'이번 달 빠듯한데.'

전세자금 대출, 자동차 할부금, 애들 교육비 등등.

빠져나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그런데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한다.

그럴 때 최우선적으로 줄이는 것은 당연히 식비다.

"소주 마셔."

"가끔은 와인도 좀 마셔야지. 이러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 건데~."

"나도 일하거든?"

둘마트에 온 이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아오 이 왠수.'

철없는 남편은 쇼핑이라도 나온 줄 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잠이나 자게 둘 걸.

호다닥!

뭐가 그리 신났는지 주류 코너에서 와인을 한 병 가지고 온다.

몰래 카트 안에 밀어 넣는다.

"자기야. 뒤질래?"

"아니, 안 비싸~."

"자기 월급만큼?"

"그 정도로 안 비싸더라."

평소에도 종종 있는 일이다.

같이 계산하려고 할 때 손등을 꼬집고 빼버린다.

오늘만큼은 한 소리 해주고 싶다.

자신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는 상황에.

'누군 명품 안 사고 싶은 줄 아나.'

사치품을 사려고 한다.

철없는 남편을 따끔하게 혼내줄 기회일지도 모른다.

『DV 카테나 말벡』− 9,900원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다.

와인의 가격.

자신의 생각과는 자릿수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어? 만 원도 안 해?"

"그치? 싸다니까!"

"뭐, 괜찮네……."

"한 병 더 살까? 너 주량 세잖아."

"이 화상아!"

"아!"

심리적 마지노선.

사치품과 비사치품을 가르는 경계선에 있었다.

한 병쯤 사볼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야레야레, 이래서 서민타치는.'

와인 애호가 이충섭은 작금의 상황에 개탄할 수밖에 없다.

종종 있는 일이다.

와인 세일!

와인 대란!

실상은 저렴한 와인을 팔아보려는 쇼에 불과하다.

"와인 행사하고 있거든요~ 시음이라도 해보시겠어요?"

"어디 와인이지?"

"네?"

"어디 대륙의 와인이냐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강매를 하는 것이다.

와인을 모르는 서민들은 속아 넘어갈 만하다.

'내가, 이 내가 살 것 같애?'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각 나라의 와인을 전부 마셔본 베테랑 of 베테랑이다.

이런 저렴한 와인.

대부분 신대륙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이 들어맞는다.

"남미의 프랑스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진 와인입니다~."

"웃기는군. 그래봤자 후진국 아닌가?"

"아, 네……."

그쪽 지역의 와인 중 칠레의 것은 한국에도 수입된다.

테이스팅 해본 적도 있다.

'기껏해야 데일리 수준이지.'

미들 클래스의 것도 그닥이었다.

1만 원대의 하위 라인업은 맛 볼 가치도 없었다.

꼴꼴꼴~

그래도 예의상 마셔준다.

충섭은 주류 담당 매니저가 건네준 일회용 소주잔을 손에 든다.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은 어두운 자주색의 액체다.

일반적인 레드 와인보다 상당히 짙다.

꿀꺽!

집중해서 맛을 본다.

대개 이런 저렴한 와인들은 바디감부터가 물 같기 마련인데.

'어?'

생각보다 짙다.

과실향과 오크 배럴의 풍미가 느껴진다.

제법 본격적인 와인이다.

아니,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컬렉션 중에 이보다 부족한 것은 없음이다.

"이게 얼마라고?"

"네, 손님. 행사가 9,900원에 드리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한 병 어떠실까요?"

"박스째로 사겠다."

하지만 그것은 5만 원 이상의 고가 와인.

만 원도 안되는 와인과 같은 선상에 놓일 게 아니다.

'데일리로 손색이 없겠군.'

한 명의 와인 애호가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라고 항상 비판적인 게 아니다.

화를 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값싼 와인들을 별의별 문구로 포장해 판매하기 때문이다.

『1초에 1병씩 팔리는 와인!』

『경축☆ 100만 병 팔린 와인!』

『속 시원한 반값 가성비 와인!』

와인이 아니다.

와인 호소인이다.

소주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퀄리티다.

실제로 말이다.

저질 와인은 장기 숙성이 불가능해서 산화방지제를 잔뜩 넣는다.

'와인 마신 다음날 대가리 깨지는 게 그래서고.'

싼 게 비지떡인 것이다.

최소한의 퀄리티를 갖추지 못했다.

이것은 가지고 있다.

2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 맛이라고 확신한다.

〔주류 갤러리〕

─와인 수입사 대표가 이찬욱인데?

─나는커플에 나온 와인 정식 수입됐네 ㄷㄷ

─이번 둘마트 와인 싸구려 절대 아님

─주와리) DV 카테나 말벡 리뷰

그러한 와인.

주류 애호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

─주와리) DV 카테나 말벡 리뷰

[와인과 와인잔 사진.jpg]

- 아르헨티나 > 멘도사

- 품종: 말벡 100%

- 양조: 프렌치 오크에서 18개월

향: 바닐라, 블랙베리, 다크 초콜릿

맛: 미디엄 바디, 적절한 탄닌과 산미

끝: 매운 후추가 스파이시한 여운을 선사

둘마트 신규 와인입니다

9,900원이라 큰 기대 없이 마셨는데 보물을 찾은 기분이네요

└풀매수각??

글쓴이− 저라면 박스째로 삽니다 ㅎ

└가격 괜찮네 맛도 좋으면 살 만한 듯

└바이럴 같은디

술은 특히 그러하다.

가격과 맛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싸고 맛있는 걸 찾아다닌다.

바이럴 마케팅인 경우도 있지만.

─이번 둘마트 와인 싸구려 절대 아님

[Vivino 화면 캡처.jpg]

비비노 평점 4.3점

해외가도 최저가가 10유로로 잡힘

국내 홍보용으로 싸게 풀 때 쟁여둬라

└국내가가 더 쌀 수가 있다고??

└비비노 평점 4점만 넘어도 좋은 거잖아

└아니 ㅅㅂ 내가 10만 원에 산 샤또 딸보가 4.2점이던데

└새로운 주갤픽은 언제나 환영이야!

정말로 좋은 경우.

애호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난다.

인지도가 생기는것이다.

이미 국내에서 파다한 것도 있었다.

─나는커플에 나온 와인 정식 수입됐네 ㄷㄷ

[통관된 수입 주류 품목.jpg]

지금 둘마트에 풀린 거 말고

안젤리카 말벡이랑 아르헨티노 말벡도 풀릴 예정인 듯?

└와 ㅅㅂ 저게 풀린다고? ㅋㅋㅋㅋㅋㅋ

└샤또 딸보랑 동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기대되게 만드네 ㄷㄷ

└병행수입이 5, 6만 원 해서 사기 좀 그렇던데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 *

와인 판매.

단순히 해외의 와인을 사서 국내에 파는 사업만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건 병행수입인데.'

글자 그대로 해외에서 물건을 떼오는 것이다.

정식 수입과는 여러가지가 다르다.

---------------------------------------------+

『병행수입』

1. 해외 도매업자에게 구입

2. 상대적으로 소량

3. 비정기적인 거래

+---------------------------------------------

한 마디로 직구의 엄청난 버전이다.

아르헨티나 와인은 그렇게 수입이 됐지만.

"와, 엄청 싸다!"

"비비노 4.3점인데 1만 원 이하가 될 수 있다니……."

"상위 라인업들도 상당한데?"

와인 페스티벌.

국내 애호가들의 반응이 좋을 만도 하다.

기존보다 훨씬 저렴해졌다.

'그게 정식 수입의 장점이지.'

유통 단계가 줄어든다.

와이너리에게서 직접 물건을 받아오기 때문이다.

"안젤리카 말벡을 2만 원대에 맞춰 놨어요?"

"네."

"아르헨티노는 7만 원대가 맞고……."

"표기가 된 그대로의 가격입니다."

더 낮은 단가.

더 많은 물량.

그렇게 장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많이 팔아야 하거든.'

많은 양을 정기적으로 사줘야만 한다.

그러한 신뢰가 바탕될 필요성이 있다.

페르난도를 통해 얻은 구입 루트.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참 놀랐습니다. 방송에서 드신 와인을 직접 수입하실 생각을 하다니……."

"그래서입니다."

"어, 네?"

"제가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데 국내 와인은 라인업과 가격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마어마한 양을 팔아야 한다.

그것도 한 번 반짝이 아닌 지속적으로 말이다.

'무릇 대중이란.'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귀족이 왕족을, 서민이 귀족을 흉내 내는 것처럼.

현대의 마케팅은 그와 맥을 같이 한다.

연예인, 인플루언서가 광고를 받는 이유다.

"현지 협력사를 통해 유통 구조를 개선했습니다.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국에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오오!""

"안젤리카 말벡을 제외한 다른 와인들도 전부 직접 테이스팅한 것들이니 부디 맛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와인계에는 없다.

소비자들이 와인을 살 기준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이슈가 됐으면 이용을 해야지.'

그러한 생각.

가지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와인 업계 전체에서 원하고 있는 바다.

한국은 인구와 소비력 대비 와인 소비량이 적은 편이다.

즉, 성장할 잠재력이 많이 남아있다.

"이건 기삿거리가 되겠는데?"

"나는커플 찬욱, 방송 속 와인 직접 수입하다!"

"순수하게 코스트 퍼포먼스만 따져도 수준이 높아."

업계 관계자들이 흥미를 가진다.

스토리만 놓고 봐도 이슈가 될 포인트는 명확하다.

'맛과 가격은 두 말하면 입 아프고.'

중요한 부분.

주류 업계는 폐쇄적이다.

신규 사업자를 경쟁 대상으로 본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한.

정말 박스떼기로 해가도 아쉽지 않을 가격이다.

"언제 봐도 말은 참 잘한단 말이야."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없으니까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원가를 모른다면 말이다.

와인 업계의 유통 구조는 업계인조차 모르는 구석이 많다.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면.'

이만한 가격이 가능하다.

물론 암만 가격이 싸고, 맛이 좋아도 판매처가 없으면 안된다.

"내가 정말 자네 얼굴 봐서 특별히 허락한 거야."

"그러믄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둘마트.

한국 최대의 유통사다.

동시에 와인 수입 업체이기도 하다.

나의 와인을 팔아준다는 건?

자신들의 와인이 안 팔린다의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이무리 전체 시장이 늘어난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서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기 힘들다.

그래서 발품을 팔게 되었다.

"반응은 어때?"

"업계인분들도, 애호가분들도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퍼지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호……."

내가 모델이 하기로 했다.

와인 페스티벌에 둘마트 부스 대표로 나와있는 이유다.

둘마트의 강무열 회장.

그도 한 명의 주류 애호가로서 이 와인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 영향력의 의미도 알고 있고.'

둘마트에 더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일종의 미끼 상품 역할도 하는 것이다.

빼앗는 효과도 생긴다.

본래라면 꼴데몰에 가야 할 손님들이 둘마트를 찾는다.

위이잉~♪

여러가지 설계를 해두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반드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꼴데몰 주변 상권의 유동 인구가 점점 압박을 받게 된다.

대어가 미끼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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