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3
아르헨티나
시음.
수많은 와인들 중 내가 원하는 와인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클래식 라인입니다. 최하단의 벌크 라인을 제외하면 가장 기본적인 라인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와이너리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시작한다.
테이블 위에 수십 개의 와인잔이 있다.
꿀꺽!
하나하나 입에 가져가 댄다.
맛으로만 따진다면 어려울 게 없는 과정이지만.
'내가 마실 게 아니니까.'
와인 브로커로서는 복잡하다.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와인을 사야 한다.
한국의 와인 소비층.
본격적으로 즐기는 매니아층보다는 일반인층이 두텁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마시기 편한 음용성이고.
"뭔가 차이가 느껴져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다 고르는 기준이 있으니까 그렇지."
"그게 뭔데요?"
"평점 사이트."
"……."
다른 하나는 세간의 평가다.
음식점이나 영화만 해도 평점을 보고 들어간다.
'솔직히 다 따지잖아.'
3점대면 좀 그렇다.
4점대면 실패는 아니다.
5점 근처면 무조건 맛있겠네!
개인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근데 그게 무조건 맞는 게 아닐 텐데……."
"투자자들의 명작인 작전만 해도 개봉 당시에는 평가가 낮았지."
"아, 그랬어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평점은 대외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와인도 말이야.'
Vivino.
대표적인 와인 평점 사이트다.
일반 소비자들이 와인을 살 때 참고한다.
당연하게도 맛과 정확하게 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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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나 자파타 기본급 라인업』
아펠라시옹 라 컨설타 말벡− 4.0점
아펠라시옹 파라제 알타미라− 4.0점
아펠라시옹 비스타 플로어스 말벡− 4.1점
알라모스 셀렉시온 말벡− 3.7점
클래식 말벡− 4.0점
DV 카테나 말벡− 4.3점
세인트 펠리시엔 말벡− 4.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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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소비자한테 파는 사람이, 소비자 생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4점이면 얼마나 높은 거에요? 거의 다 4점인데."
"4.1점이 상위 2%야."
"뭐야. 엄청 높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하다.
말벡 품종의 와인은 묵직하면서도 편한 음용성 덕분에.
'비비노 점수가 높거든.'
좋은 와인이라고 인식시킬 수 있다.
와인 브로커 입장에서는 편한 부분이다.
꿀꺽!
하지만 와인 애호가.
평점 사이트를 이용할지언정 판단을 의탁하지는 않는다.
"DV 카테나 말벡과 파라제 알타미라 2018년 빈티지 고르고 싶네요."
"오~! 눈이 높으시네요. 저도 이번 빈티지에 기대가 꽤 높거든요."
와인은 빈티지별로 맛이 다르다.
신대륙은 구대륙에 비해서는 안정된 편이지만.
'대량으로 찍어내는 하위 라인업 중에서는 차이가 있지.'
비슷한 가격이면 당연히 맛있는 걸 고른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가격이 올라있기도 하다.
마치 주식처럼 말이다.
맛있는 술은 음식보다는 투자 자산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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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나 자파타 중급 라인업』
안젤리카 말벡− 4.6점
알타 말벡− 4.2점
까테나 자파타 루카 말벡− 4.3점
DV 카테나 말벡 니카시아 빈야드− 4.4점
DV 카테나 말벡 안드리아나 빈야드−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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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라인으로 갈수록 더 그렇게 된다.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워지면서 희소성이 올라간다.
"뭐가 달라서 가격도 오르고, 점수도 오르는 거에요?"
"좀 더 전문성을 띄게 된 거지."
"어떻게?"
"예를 들어 루카 말벡은 오래된 포도 나무로 만든 거고, 니카시아와 안드리아 빈야드는 기존의 DV 까테나 말벡에서 범위를 좁힌 거고."
잡다한 포도가 아닌 특정 포도만 사용했다.
와인이라는 것은 캐릭터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떼루아니 뭐니 그런 거 있잖아.'
대표적으로 프랑스 와인.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마을 단위와 그랑 크뤼가 있다.
마을 단위는 마을에 남는 포도를 대충 스깠다.
그랑 크뤼는 그 마을 최고의 포도밭이다.
"그렇게 등급이 나뉘어지는 거네요."
"그것을 의식하고 마셔보면 맛의 차이를 구별하기 쉬울 걸?"
"오."
이곳 와인도 그렇게 등급이 구별된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건 맛이지.'
그리고 점수.
가격까지 고려했을 때 선택할 와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안젤리카 말벡……, 방송에서 마셨던 그거죠?"
"그래."
"그때 2~3만 원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건 소매가고."
매우 저렴하게 공급 받을 수 있다.
1만 원이 안되는 파격적인 가격에 사들인다.
'고급 라인의 아르헨티노 말벡 같은 경우는.'
익히 유명하다.
신의 물방울에 나왔다는 건 그 이전부터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는 의미다.
즉, 마케팅이 필요 없다.
가격 책정에는 그런 부분까지 포함돼있는 것이다.
"얼마나 산 거에요?
"기본급 20만 병, 중급 5만 병, 고급 5천 병."
"?!! 다 해서 얼마에요 대체?"
"얼마 안돼."
신생 주류 회사라면 고생한다.
홍보는 둘째 치고 판매처를 만드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지.'
주류 업계는 폐쇄적이다.
물건을 떼온다고 무조건 팔아주는 게 아니다.
우리끼리 해먹는 게 있는데?
그 카르텔 안에 쉽게 끼어주지 않지만.
《아르헨티노 말벡이 3만 원도 안 해? 어우야……, 그러면 행사도 한 번 해볼 만하지.》
국내 최고의 판매처가 준비돼있다.
둘마트는 한국 와인 판매의 중심이다.
둘마트, 둘마트24, 트레이더스, 와앤모 등.
전국에 수천 개의 점포가 즐비하다.
"얼마에 팔 건데요?"
"아르헨티노 말벡이 국내에서 잘 사면 15만 원쯤 하지."
"몇 배를 남겨 먹는 거에요?!"
수많은 소매점에 배치하는 일.
미국이었다면 무협 소설 한 편 써야 했을 것이다.
'강도랑 절도가 일상이니까.'
어찌저찌 유통을 했다 해도 일이다.
소매상들이 툭 하면 털려서 파산하고 튄다.
한국은 그럴 일이 없다.
둘마트 분기 보고서에 범죄 피해 금액이 적혀져 나오지 않는다.
부우웅~!
한국에 도착하기만 하면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다.
의외로 유통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나라다.
차를 타고 몇 곳 더 둘러본다.
숨겨진 보석 같은 와이너리도 좋지만, 일단은 유명한 곳부터다.
"하루만에 VVIP 될 기세네요……."
"이 정도는 VIP 축에도 못 껴."
"수십만 병을 샀는데?!"
인지도가 있는 카테나 자파타와 트라피체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한다.
아무래도 아르헨티나 와인은.
'국내 인지도가 낮아서.'
주류는 규모의 경제가 기본이다.
마진을 남기는 것보다 소비층을 넓히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럴 만한 잠재력이 충분하다.
아르헨티나 말벡은 한국인의 입맛에 매우 잘 맞는 편이다.
둘마트 등 소매점들은 물론.
식당과 항공사에서도 서비스된다면 수백만 병씩 소모시킬 수 있다.
"출고되는데 시간이 걸려서……, 저희가 최대한 빨리 항구까지 운송한다고 해도 한 달은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2주 안에 해줘."
"2주요?"
"그건 좀……."
"한국엔 이런 말이 있지. 까라면 까라고."
거대한 사업이 될 수 있다.
페르난도의 패밀리도 그에 맞춰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술뿐만이 아니라.'
멘도사는 위치적으로도 훌륭하다.
밀수와 세탁을 하기에도 용이한 곳이다.
칠레가 바로 옆.
한국과 FTA가 체결돼있어 소고기와 유제품 등에 붙는 관세가 낮다.
"그런 악마적인 발상이……!"
"저 누님이 고안하신 사업이죠? 그렇죠?!"
"알면 똑바로 해 새끼들아."
""히익!""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사실상 섬나라.
한국은 육로로 연결돼있는 나라가 없다.
'동유럽이나 남미쪽에는 많아서.'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원산지 세탁이다.
유령 회사를 세운다.
현지의 회사와 합작해 원산지를 둔갑시키는 것이다.
"그건 진짜 범죄 아니에요?!"
"너 지구본에서 아르헨티나랑 칠레 위치 정확히 어디인지 알아?"
"정확히는 아니고……."
"그래, 모르잖아."
오히려 질적인 면에서는 아르헨티나가 낫다.
칠레산 소고기는 한국에 들어오고 있지만.
'딱히 찾아서 먹는 사람은 없잖아.'
저급 이미지다.
그에 반해 아르헨티나는 전세계에서 고급 소고기로 인식된다.
썩어도 준치.
선진국이었기 때문이다.
축산 노하우가 비교도 안되게 정립돼있다.
"수입위생조건도 칠레 기준으로 할 거고, 맛은 더 뛰어난데 뭐가 문제야?"
"그거야 그렇긴 한데……."
고품질의 소고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쁘기는 커녕 개이득이다.
'평소 먹던 맛과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니, 칠레산 소고기에 애착이 있는 한국인은 전체 국민의 0.01%도 안된다.
도의적인 문제도 없다.
딱 하나.
아르헨티나의 세금 수입이 적어진다.
정치인들과 개돼지들은 안타까울 것이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유령 회사를 차려 놓는 거지. 마피아는 잡을 수도 없으니 꼬리 밟힐 위험도 없고."
"혹시 해봤어요?"
그렇기에 의미를 가진다
나의 사업이 커질수록 아르헨티나의 국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 숏에 힘이 실린다.
치안도 나빠지면서 사업 확장이 편해진다.
'이번 생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몇 번쯤 더 파산시킬까…….'
정치인들의 욕심은 좋은 투자 기회가 된다.
* * *
칠레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탄다.
목적지로 향하는 곳은.
"여기가 어디에요?"
"티후아나."
"제가 아는 멕시코 도시는 멕시코시티 정도인데……."
소라가 어리둥절해 할 만도 하다.
멕시코의 수도도, 산업 중심지도 아니다.
인구 200만 명 남짓.
이렇다 할 관광 자원도 없는 그냥 평범한 도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지.'
이곳 남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긴 여행의 종착지로도 알맞다.
"아."
그 이유.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깨달았을 것이다.
소라의 눈앞에 펼쳐진다.
얇은 국경을 사이에 둔 멕시코와 미국의 도시는 극적으로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