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41화 (441/450)

EP.441

아르헨티나

페르난도에게 준 USB.

그 내용물은 다름 아닌 비트코인이다.

'아르헨티나니까.'

한국과는 다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정상적인 거래가 불가능하다.

국민들조차 하루에 200달러밖에 환전을 못한다.

즉, 나머지 금액은.

"오……, 환헷지가 걸려있군요? 그것도 비트코인으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인 일이죠."

불법적인 방법을 통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비트코인이다.

'거래 증거가 안 남잖아.'

콜드월렛.

암호화폐를 넣고 다닐 수 있는 지갑을 의미한다.

코인을 USB에 넣는 것이다.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실물로 주고 받는다.

"이런 거래법을 알 만한 연륜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그쪽 누님의 작품인가요?"

"상상에 맡기죠."

"후후."

"?"

노트북으로 내용물을 확인한 후 미소 짓는다.

페르난도는 마피아이기는 해도.

'이해타산을 따질 머리가 있는 사람이니까.'

결코 우둔하지는 않다.

오히려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40대 초의 나이.

그가 태어난 이후로 이 아르헨티나라는 나라는.

"좋습니다. 좋아요. 저도 관심이 있는 거래니까요."

"네."

"하지만……, 당신이 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잃어버린 30년의 일본과도 비교가 안되는 롤러코스터다.

'그 안에서 발버둥 친 페로난도의 인생도.'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이 나라가 굴러가는 구조에 대해 말이다.

"확실히……, 우리나라는 문제가 많아요. 국민들은 멍청하고, 정치인들은 그 멍청이들에게 인기를 얻을 생각밖에 안 합니다. 그로 인해 희생하는 건 이 나라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죠."

아르헨티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건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국민들이 복지를 원한다!

정치인들은 포퓰리즘을 한다!

그들이 흥청망청 쓰고 있는 돈은.

"식사는 맛있게 즐기셨다고 했죠?"

"솔직히 구성은 변변찮았습니다만 재료의 질은 제법 좋더군요."

"후후, 당신과는 이야기를 나누는 보람이 있네요."

하나는 빌려온 것.

다른 하나는 이 나라에서 자라고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다.

'일반적인 나라라면.'

그렇게 품질이 좋은 소고기는 수출한다.

호주산 소고기만 해도 그러하다.

현지에서는 맛이 없다.

퍽퍽하기를 넘어 질긴 가죽 같은 것을 스테이크라고 부른다.

"그것이……, 일반적이겠죠."

"수출품은 대개 신경을 씁니다. 품질은 물론이고, 수출 대상국 입맛에 맞춰 세심한 가공을 거쳐요."

한국인 입맛에 안 맞는다.

품질 좋은 소들만 선별해 도축 전에 사료를 먹인다.

'미국산 소도 그렇고.'

초이스 등급이면 안 좋은 거 아님?

사실은 8개의 등급 중 상위 2번째에 속한다.

그중에서 좋은 것들만 한국에 수입된다.

그 정도는 돼야 글로벌 경쟁력이 생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상등품을 자국민이 소비하고 있죠. 경제 여건이 훌륭한 나라라면 몰라도……."

"사료 같은 거죠."

"네?"

"멍청한 국민들이 지금의 생활에 만족할 수 있게 만드는 사료 말입니다."

훌륭한 수출품이 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그럴 만한 경쟁력이 차고 넘치지만.

'포퓰리즘에 써야 하거든.'

자국민들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뿌린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일반적으로는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여러 혜택을 줍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역으로 수출세를 내고 있죠. 직접적으로 수출 금지를 때리기도 하고."

"맞습니다. 그런 나라입니다."

법과 규정을 손 본다.

썩어 빠진 정치인도 그 나라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페르난도가 조국을 증오하는 이유.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버린 뒷사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

밑바닥을 경험한 것은 인생 최고의 기연이었다.

체제라는 이름의 챗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치인이 기업들을 쥐어 짠다면?

그 수익을 가로채는 것은 훌륭한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시대는 다시 아르헨티나에 웃어주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환율도 안정되고 있죠. 설마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그가 멘도사에 자리 잡은 이유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주 멀찍이 떨어져 있다.

정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치외법권.

그러면서도 경쟁력 있는 산업이 많다.

페르난도는 지능적인 마피아다.

'세계 경제의 흐름에도 식견이 밝지.'

현재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안정돼있다.

국내외에 여러가지 호재가 생긴 덕분이다.

데일리뉴스− 「아르헨티나, 中에 대두박 수출길 열려…미중 무역전쟁 반사이익」

수출품이 잘 팔린다.

삔또가 상한 중국이 미국산 대신 아르헨티나산을 사주는 것이다.

그 이전에 너무 폭락해 있기도 하다.

이 정도면 개잡주도 저점인가 싶어서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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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D/ARS - 미국 달러 아르헨티나 페소』

59.5474 ▲56.3968 (+1890.03%)

[2008년부터 밑도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는 그래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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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한 나라의 화폐.

경쟁력이 없는 나라면 모를까.

아르헨티나는 세계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안타까워한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고치면 된다.

상식적인 선에서만 국정을 운영하면 반드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다.

"처음에 말했던 대로입니다."

"지켜보라는 겁니까?"

"먼 길을 선택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

그것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사실은 안다.

스스로의 입으로 꺼내는 것이 안타깝고 쓰라릴 뿐이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은 만족하고 있다.

배부른 돼지들에게 내일의 해가 맑은지 흐린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는 아버지처럼 국가에게 살해 당하지 않을 겁니다."

결연한 눈빛으로 무어라 중얼거린다.

소라는 가게에 손님이 안 와서 한탄하는 것인 줄 알고 있지만.

'그럴 만하지.'

나로서는 이해한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배경과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해먹을 수가 없다.

어떠한 변명이 있어도 마피아는 마피아, 엄연한 범죄다.

"글쎄요. 어쩌면 그것이 국가를 위한 길일 수도 있죠."

"제 일이요?"

"아르헨티나의 수출품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면 그것만큼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겠죠."

하지만 시장 원리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오히려 자연스럽다.

법과 규제로 억지로 틀어막으면.

'물길을 막으면 옆으로 새기 마련이잖아.'

어떤 식으로든 우회로가 생긴다.

합법적인 꼼수는 물론 불법적인 사태로도 삐져 나온다.

기업들로서도 원하는 바.

자신들이 애써 만든 제품을 헐값에 떨이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아르헨티나는 참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아르헨티나인으로서 동의합니다."

정규 루트로 수출하면?

정부에서 떼먹지 못해 안달이다.

환율도 기준 환율을 따라야 한다.

'실제로 거래되는 환율이랑 정부에서 규정한 환율이랑 다르거든.'

우회 루트를 통하는 것이 훨씬 이윤이 남는다.

불법 조직들에게 마진을 떼줘도 남는 장사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자.

정치인들과 개돼지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타악!

페르난도와 손을 마주 잡는다.

털이 듬성듬성 나있는 그의 두터운 손은 믿음직한 신뢰를 준다.

"앞으로 행선지가 어떻게 되십니까?"

"멘도사에 왔으니 와이너리 방문은 빼놓을 수 없겠죠."

"오, 와이너리라면 제가 도움을 줄 수 있겠군요. 부하 둘과 차량을 붙여드릴 테니 안심하고 투어를 즐기시죠."

의기투합한다.

아르헨티나의 질 좋은 소고기, 유제품, 와인 등을 합리적인 가격에 수입할 교두보를 마련한다.

* * *

아르헨티나.

외부에서 봤을 때는 지옥이다.

정작 국민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구조 때문인 거지."

"미친놈아!"

소라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레스토랑에서 나오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가슴만 뒤지게 커가지고.'

직원분들 아니었어?

뒤늦게 눈치를 챘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말이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누가 봐도 마피아잖아!"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

"뭐 이 새끼야?"

"강해 보인다구."

""…….""

페르난도가 붙여준 부하들도 그럴 것이다.

헤나를 한 기 센 누님이 소리를 지르면.

'부하분들이 무서워 하잖아.'

덕분에 협상은 잘되었다.

사실 그를 꼬드기는 것은 하품이 나올 만큼 쉬운 일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가치관이라는 면에서도 통하는 바가 있다.

"근데 그런 일을 해도 되는 거에요?"

"안될 게 뭐 있어."

"마피아랑 얽히는 건 좀……."

"글로벌 기업들도 다 저지르는 일인데?"

불법적인 생산물.

업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후진국에 엄청난 자원이 있으면.

'그걸로 돈 벌려는 토착 세력이 반드시 생기거든.'

신장 위구르와 아프리카 자원 부국들이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의 카르텔이 철저하게 통제한다.

유통 과정을 세탁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값싸고 질 좋은 원자재를 글로벌 기업들이 사들이는 것이다.

"딱히 불법도 아니야. 잘 세탁돼서 올 거니까."

"정말 사고방식이 다르네요."

"그래야 더 벌지."

아마존, 구글, BMW, 벤츠, 유니클로, 나이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기업들은 다 속해있다.

오성, 헬지 같은 한국 기업들도 포함된다.

소비자들은 알지 못하는 기업들만의 어두운 뒷세계다.

끼익−!

그와 달리 누군가를 핍박하는 것도 아니다.

거래하는 사업체들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부하 직원들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도착한다.

멘도사의 와이너리들이 밀집된 고산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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