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0
남미
아르헨티나의 음식.
기본적으로 서구식 식단과 큰 차이는 없다.
'나라의 역사 자체가.'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다르다.
유럽계 이민자들로 구성돼있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당시 굶주리던 유럽 사람들이 아르헨티나 드림을 안고 이곳에 건너왔지."
"아르헨티나 드림이요?"
"지금은 어색하겠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잘 사는 나라였다.
세계 5위의 경제 대국.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었다.
이제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은 웃픈 일이다.
「세계에는 네 가지 종류의 국가들이 있다. 선진국, 후진국, 일본, 그리고 아르헨티나다.」− 사이먼 쿠즈네츠 (197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경제학자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는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 된 사례로 거론된다.
"일본은 왜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 됐다고."
"아~."
"지금이라면 한국을 말했겠지."
당시에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은 개발도상국 정도가 아니라 망하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이미 여러 번 망했지.'
국가부도가 8번이나 일어났다.
한국으로 따지면 IMF를 8번 겪은 것이다.
아르헨티나 통화인 페소는 걸레짝이 된지 오래다.
화폐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타악!
하지만 먹는 것은 여전히 잘 먹는다.
웨이터가 식전 빵을 가지고 온다.
"빵을 뭘 이렇게 시켰어요?"
"그냥 주는 거야."
"이렇게 많이요?"
소라가 깜짝 놀랄 만도 하다.
한국에서는 밥보다 비싼 그 녀석이.
'바구니에 산처럼 담겨서 나오니까.'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게 일상이다.
빵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 때문이다.
빵은 원가의 99%가 인건비.
그 인건비도 싸고, 농산물은 더더욱 싸다.
"사실 한국이 미친 듯이 비싼 거지 빵은 전형적인 인간 사료 중 하나야."
"맛있는 사료네요."
소가 사람보다 많기로도 유명하다.
질 좋은 버터가 매우 저렴하게 널려있다.
우적!
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 먹는다.
그것만으로도 고소함과 감칠맛이 폭발한다.
'절대 실패할 수가 없는 조합이지.'
빵을 노릇하게 구워서 내주면 더 좋았겠지만 맛집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바랄 수는 없다.
"근데 여기 맛있는 곳 맞아요?"
"왜?"
"우리 말고는 손님이 아무도 없잖아요. 조금 희한할 정도로 없는데."
소라도 조금은 눈치라는 것이 생겼다.
이 식당의 특이한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멈출 수는 없다.
빵 다음에 나오는 것은 평범한 샐러드다.
"무슨 샐러드가 이래. 아무것도 안 뿌려졌네."
"올리브유랑 소금 뿌려서 먹는 거야."
"특이하네 이 식당."
양배추와 양파, 그리고 토마토가 섞여있다.
올리브유를 대충 두르고.
'부족하면 소금으로 간하고.'
글자 그대로 평범하게 먹는 샐러드다.
서구권 동네 식당들은 이렇게 많이 나온다.
타악!
곧이어 메인이 도착한다.
소가 많다는 것은 소고기도 흔해 빠졌다는 것이다.
"와 엄청 크다!"
"소고기가 매우 싸지."
"이 스테이크가 어떻게 만 원짜리야?"
소라의 말대로 매우 싸다.
그러면서도 품질을 인정 받은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각 나라마다 특징이 있지.'
소의 품종, 먹이, 사육 방법, 도축 방법 기타 등등.
고기의 맛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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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별 사육법』
한국 소: 좁은 축사+곡물 사료
일본 소: 좁은 축사+곡물 사료
미국 소: 넓은 축사+곡물 사료
호주 소: 넓은 축사+목초 (풀 뜯어 먹기)
아르헨티나 소: 넓은 축사+목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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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사료가 목초보다 마블링이 좋다.
누린내도 없어서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그럼 미국산이 호주산보다 좋은 거에요?"
"누가 더 낫다기 보다는 입맛 차이지."
"누린내가 입맛?"
그래서 수입 소고기 중 미국산 소고기의 평가가 높다.
하지만 품질 면에서.
'양고기가 누린내가 난다고 안 좋은 건 아니니까.'
서구권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마블링보다는 육질을 중요하게 여긴다.
써걱!
그럼에도 아르헨티나의 소는 고급품으로 여겨진다.
사육 방식 때문이 아닌.
"누린내 하나도 안 나는데?"
"그렇지."
"맛있는데요. 엄청 부드럽고."
소의 연령에 있다.
닭도 영계가 맛있는 것처럼 소도 어린 녀석이 더 맛있는 것이다.
'미경산 암소라고.'
아기를 낳지 않은 30개월 미만의 암소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동물은 암컷이 맛있다.
그런 미경산 암소가 가장 많이 도축된다.
아르헨티나의 소고기가 맛있는 이유다.
"너도 미경산 암소잖아."
"진짜 쥐어 박을까."
"맛있더라."
목초 사육의 단점을 상쇄시킨다.
마블링은 적어도 육질은 부드럽다.
숟가락으로 스테이크가 툭툭 썰린다.
주인장이 식재료를 보는 눈이 있다.
"근데 고기만 먹는 건 좀……."
"별로야?"
"목 맥혀서."
"그래서 한국인이 마블링을 선호하는 거지."
고기의 품질만 훌륭하다.
요리는 정말 현지인들이나 꾸역꾸역 먹을 수준이다.
꼴꼴꼴~!
그렇다면 현지인들처럼 먹으면 된다.
콜라에 진한 갈색의 음료를 넣는다.
"마셔봐."
"이게 뭐에요?"
"아르헨티나 국민술."
페르넷 브랑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술이다.
'민초파들이 환장할 만한 맛이지.'
진한 허브향과 약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시고 나면 은단 같은 화한 맛이 느껴진다.
간단하게 말하면 쌍화탕+민초맛이다.
생으로 마시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 이거 맛있는데요? 민초 콜라 같아서."
"너도 민초파구나."
"민초는 정의죠."
콜라랑 섞으면 잘 어울린다.
하이볼처럼 칵테일을 해서 마시는 것이다.
우적! 우적!
그 청량한 맛이 스테이크의 텁텀함을 덮는다.
나쁘지 않은 식사 자리다.
"손님분들~~ 식사는 맛있게 즐기고 계십니까?"
단 한 가지를 빼놓고.
스테이크를 거의 썰어갈 때가 되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평범한 일상복 차림의 껄렁껄렁한 타입.
음식점 직원일 수가 없다.
"음식 맛은 있는데."
"그거 참 다행이군요~."
"서비스가 개판이네요."
"호오……, 우리 직원들이 실례를 저질렀나 보군요."
사장도 아니다.
이곳 음식점의 주인장과는 면식이 있어서 알고 있다.
'보스를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음식점으로 치면 매니저급이 왔다.
손님을 대접할 마인드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오늘 식사는 무료입니다. 드링크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다 드셨으면 조용~히 나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공짜로 준다.
얼핏 여행을 와서 횡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래요?"
"서비스가 시원찮았다고 음식과 음료를 무료로 주시겠다고 하네."
"와, 진짜요?! 그럴 필요 없는데."
소라가 들뜰 만도 하다.
세상에 공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공짜 점심이 있겠냐만은.'
투자자라면 항상 상기해야 하는 격언.
몸에 배기지 않은 애새끼에 불과하지만.
"당신."
"무슨 볼 일이 남았을까요 손님?"
"우리 보스가 지금 당장 그 더러운 입을 다물지 않으면 이 가게를 엎어버리겠다는군."
"?"
외모만큼은 밀리지 않는다.
작은 얼굴과 오똑 선 콧날, 그에 반비례한 가슴은 거리감을 조성한다.
선뜻 말 걸 용기가 안 나는 기 센 누님이다.
옅은 태닝에 헤나까지 하자 조폭 마누라가 따로 없다.
꺼드럭대던 남자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선다.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 윽박지르려고 하는 걸.
"어이, 형씨. 장난이 아니야……."
"장난 따위 할 시간이 없지. 시간이 지체되면 우리 보스든, 페르난도든 어느 한쪽이 분명 경을 칠 테니까."
"페, 페르난도?!"
결정타를 먹인다.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며 찍소리도 늘어놓지 못한다.
기세와 위압감, 그리고 정보의 격차.
마피아 하나 어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뭐래요?"
"음식 조리 과정에 대해 주인분이 직접 나와서 설명해주실 거라고 하네."
"흐음……."
의아함을 느낀 소라가 남자를 째려보자 더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가슴만 뒤지게 큰 게 아니다.
'보스 이름을 아는 게 결정적이었겠지만.'
이곳은 마피아가 하는 식당이다.
아니, 직원 휴게소 겸 돈세탁용 위장 사업체다.
현지 주민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가끔씩 관광객들만이 멋 모르고 들린다.
"손님이 별로 안 와서 신경 쓰이시는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스테이크는 괜찮은데."
마피아 입장에서도 건들기가 좀 그렇다.
그래서 공짜로 먹이고 보내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지.'
소라로서는 즐거운 여행을 하면 된다.
볼 일이 있는 것은 나 뿐이니까.
조금 기다리자 도착한다.
멘도사 지역을 교두보로 삼고 있는 마피아의 보스다.
"부족한 부하 녀석이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에게 볼 일이 있으시다고요?"
40대 초반의 나이.
포마드를 떡칠이라도 한 듯한 검정색 올백머리가 인상적이다.
아까 전의 허세충과는 다르다.
살벌한 포스를 풍기는 진짜 마피아다.
'이 정도는 돼야지.'
아르헨티나는 무법지대나 다름없다.
이곳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보내드린 USB는 받아보셨습니까?"
"물론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손님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어 보이는데……, 나갈 이유도 말이죠."
믿음직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것은 마피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후진국에서 깡패짓 하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야.'
삥 뜯을 사람이 다 그지다.
뜯을 수 있는 돈도 휴지나 다름없는 아르헨티나 페소다.
사업성(?)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 곤란한 일 하나 없습니까?"
"곤란한 일이라니……, 손님이 아니고 저요?"
"예를 들어 화폐 가치가 폭락할 것 같다던가."
"?!"
약간의 협박쯤 개의치 않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페르난도는 인텔리한 타입의 마피아다.
말이 충분히 통한다.
그 정도를 넘어 이전 생에서는 협업까지 했던 사이다.
'사모펀드에 있었을 때.'
아르헨티나의 수출 품목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소고기와 와인 등이 그러하다.
그것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돈과 수입 관련 서류를 만드는 것만이 끝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당신을 어떻게 믿나요? 제가."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
"지켜보라는 거죠. 그 USB에 담긴 100만 달러 가량의 환헷지가 어떻게 될지."
현지 인맥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이 바로 마피아 계열이다.
워낙 범죄율이 높기 때문이다.
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이곳 남미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도 좋고.'
사모펀드를 나온 이후로도 요긴하게 활용했다.
이번 생에서도 인맥을 만들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