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34화 (434/450)

EP.434

감가상각

선택.

일부 시청자들은 큰 기대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연자들도.'

드라마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천생연분의 짝을 여기서 찾는다.

도저히 현실적인 발상이 아니다.

정말 창작물에서나 가능하다.

<현준씨, 최종 선택 들어가겠습니다.>

마치 신데렐라처럼.

외모 좀 반반하다고 왕자님이 환장해서 데려간다.

'그런 일이 현실에 있겠냐고.'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왕자님들도 당연히 눈이 있다.

그리고 배경이 있다.

꼬추가 시킨다고 이경영처럼 진행시킬 수가 없다.

"저는 최종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마어마한 후폭풍.

집안의 반대는 드라마보다 현실이 훨씬 더 심하다.

금수저 치의사인 현준씨도 그럴 것이다.

강남 병원은 물론 의사가 된 과정까지.

'전부 부모님 돈일 거 아니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근본 없는 며느리 데리고 온다고 하면 뒤집어진다.

그나마 철없는 왕자님들은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이다.

보는 눈이 없으니까.

<승우씨 최종 선택 들어가겠습니다.>

그 철이 누구보다 잘 드는 직업.

사업가는 왕자님과 달리 현실 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도 최종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수씨도 무덤덤하게 할 말만 하고 뒤로 돌아선다.

두 명의 출연자가 선택을 하지 않았다.

"저는……, 한 분께 마음이 있었지만 이미 차여버려서 최종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최종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

표철씨와 승우씨도 뒤를 잇는다.

표철씨도 사업가고, 승우씨는 애시당초 흥미 본위로 참가했다.

'나랑 비슷한 목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출연자.

당초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시점에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었을 것이다.

"저는 최종 선택을……, 하겠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출연자 중 유일하게 비주얼파인 뮤지컬 배우 주호씨였다.

타박, 타박!

그 상대.

운명적이게도, 필연적이게도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수현에게 발걸음을 옮겨간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좀 드네.'

잘생긴 미남미녀가 함께 있으면 그림이 된다.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낀다.

수현과 주호는 그에 부합한다.

질투심이 들 만도 한 상황이지만.

"긴 촬영 동안 여러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호감을 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최종 선택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한 번 경험해보았다.

흔우만 해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다.

'그래서 더 즐길 거리가 되지.'

수현도 딱히 나올 생각은 없었다.

방송 후의 재미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을 뿐이다.

그렇게 남자 출연자 대부분의 차례가 끝난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제작진의 표정이.

<어, 어……, 찬욱씨 최종 선택 들어가겠습니다!>

당황으로 물들어있을 것은 눈에 훤하다.

구태여 세세하게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해피엔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다 할 성과가 있길 바란다.

두고 두고 회자가 될 수 있는 커플의 탄생 말이다.

방송의 이슈화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차후의 시청률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타박!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단기 이슈를 빨아 먹는다면 바라지 마지않는 바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터벅터벅 걸어나간다.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압박감이 쪼까 있네.'

여자들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다.

제작진도 카메라 너머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압박 면점이라도 받는 듯한 느낌.

온몸의 털이 바짝 서게 만드는 긴장감이다.

"저도 최종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기에 더 재미있는 장면이 될 것이다.

가벼운 목인사와 함께 등을 돌린다.

모든 남자 출연자들이 선택을 포기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

술렁이는 분위기.

한 마디 대화도 오가지 않음에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본방에서는 반드시 편집될 10초의 정적이 지나간다.

제작진이 강제로 차례를 진행시킨다

"저도……, 최종 선택은 하지 않겠습니다."

남자만 선택을 하는 게 아니다.

여자 출연자도 형식적으로는 하게 돼있다.

형식적으로.

순서가 남자 먼저라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최종 선택 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최종 선택은 하지 않는 걸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신데렐라, 콩쥐 팥쥐 다 마찬가지다.

바다의 요괴가 왕자와 결혼하는 흑어공주도.

'여자쪽에서 호감을 보인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왕자의 페티쉬가 특이해서 망정이지.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해괴망측하기만 하다.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동화는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 저……."

현실은 글자 그대로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동화가 아름다운 건 동화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꿈을 꾸고 있는 한 사람.

어수선한 분위기를 깨고 입을 연 건 낯익은 출연자였다.

"저는 사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설명 없이 끝나는 건 서로에게 좋은 결말 같지는 않아요."

송혜림씨.

두 번의 데이트를 했다.

착각을 하게 된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클럽에서도 그렇지.'

수많은 여자 중에 골라진다.

하룻밤 자고 나면 세상을 다 얻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혼과 연애, 그리고 원나잇을 제각각 허들이 다르니까.

"대답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찬욱씨."

"저랑 진지한 만남을 하고 싶다는 거죠?"

"그럼요. 당연하죠."

하물며 방송.

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학창 시절 옆자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는 짐작이 간다.

그녀의 생에서 이전에도, 이후로도 이런 기회는 없을 테니까.

"제 직업 기억하시죠? 저는 이성을 고르는 것도 투자처럼 신중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네, 기억하죠……. 저도 뭐 조건을 안 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판단한 겁니다."

""?!""

다른 여자 출연자들의 눈길도 느껴진다.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2차, 3차의 행렬이 이어질지 모른다.

'나를 꼭 나쁜 놈으로 만들려고 하네.'

의도치 않게 또 자기 PR 시간이 늘어났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슈화를 더 시킬 수 있다면 바라는 바다.

"현재 시점에서 혜림씨는 매력적인 여성이 틀림없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미래에도 그런 건 아니라서 문제죠."

"네?"

연애.

대중적인 관심사다.

하고 있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사실은 귀를 열고 있다.

그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얼핏 어려워 보이는 투자도 애인을 정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다.

"당신이 가진 매력은 지금이 가장 전성기입니다. 증권가 용어로 고점을 찍었다고 하는 현상이죠. 어느 투자자도 앞으로 감가상각만이 남은 자산을 사고 싶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저에게 있어 당신은 투자 대상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성적으로 따져본다면 그것이 당연하다.

감성적으로는 다를 수 있어서 문제.

머리를 얻어 맞기라도 한 듯이 벙찐다.

다른 출연자들도 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해석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뭐, 이해하기 싫을 테니까.'

안 그래도 불편한데 경제 용어까지 섞여있다.

머리가 이해를 거부한다.

그렇기에 더 회자가 될 수 있다.

커뮤니티를 타고 수많은 해석을 낳는다.

* * *

나는커플 8기.

그 마지막 화는 여러가지 의미로 세간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한국신문− 「나는커플 8기 역대 최초 0커플 탄생…"빈 수레가 요란했다"」

팩트뉴스− 「나는커플 찬욱 발언에…현모양처 꿈꾸던 솔로녀들 "눈물"」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다른 기수들과 달리 커플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선택의 과정도 논란이었다.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남자 출연자인 찬욱이.

─레쓰비님께서 1,000원 후원!

지금 손익좌 여초에서 개같이 까이는 중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보긴 했는데……, 감가상각이 생긴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긴 해요."

−공중파 예능에서 저런 용기를 낼 수 있다니

−저걸 내보낸 방송사도 레전드 ㅋㅋㅋㅋㅋㅋㅋ

−감가상각이 뭔데

−주식존예여신이 탄 자전거처럼?

폭탄 발언을 한 것이다.

그 의미를 이해할수록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게 된다.

'대충 알긴 알겠지만.'

소라도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아니,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질문이 쇄도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들을 일 없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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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가상각 (減價償却).

「명사」 경영 토지를 제외한 고정 자산에 생기는 가치의 소모를 셈하는 회계상의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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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1학년 때는 잘 알지 못했다.

이제는 기업 분석에도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외모는 나이와 함께 빛을 바랠 테고. 비서와 스튜어디스라는 직업도 오래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점을 낮잡아 일컬은 것 같아요. 아, 제가 한 말이 아니에요!"

−어머 쓰니야 지금 말 다 했어??

−저게 직역하면 저렇게 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 날먹할 생각하지 말라는 뼈아픈 조언

−40세는 그럼 상폐라도 된다는 거임?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람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일반 시청자들에게 논란이 될 만도 하다.

'평소처럼 섹스에 비유하는 것보다는 낫네.'

소라로서는 늘상 있는 일이다.

초면부터 실례되는 말만 해서 이제는 적응을 했다.

방송용 이미지만 보여줬으면 역으로 빡쳤을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새우장볶음밥님께서 1,000원 후원!

근데 소라님은 안 빡침? 여자 입장에서는 화날 만하지 않나

"음……, 글쎄요."

차라리 본색을 드러내는 게 낫다.

선배의 말은 하나하나가 뒷목 잡을 만큼 어이가 없어도.

'틀린 말은 하지 않으니까.'

결혼 하나 잘해서 인생 역전.

소라의 가치관과는 맞아 떨어지지 않는 발상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내심 싫었다.

자신의 노력이 부정 당하는 것 같다.

"시청자분들도 이번 기회에 정신 차리세요. 저 인간은 원래 저런 인간이고 앞으로도 저럴 인간이니까."

−ㄹㅇ 계산 칼 같으니까 주식하지

−괜히 디시 유명인이겠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 당해봤나 보네

−왜 이렇게 신나 보임?

선배가 일으킨 소란이 왠지 모르게 싫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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