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5
신데렐라
스펙 특집.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와~ 치즈가 엄청 눅진하네요.>
<저희가 평소에 먹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데요?>
−호텔 셰프가 만든 거라
−개맛있겠다……
−느끼할 거 같은데 ㅋㅋ
−저런 곳은 한 끼에 얼마함?
그사세를 느껴보고 싶다.
제작진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다.
데이트 장소.
고오급 레스토랑으로 선택한 이유지만.
달그락!
서연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녀는 프리랜서 바이올리니스트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겉보기에는 품위 있고 고상한 직업이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
한국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자분들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시지 않아요?"
"저는 평소에 파스타 자주 먹어요."
"어, 그러세요?"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끽해야 음악 강사나 오케스트라의 헬프를 하는 정도다.
'취집해야 하는데.'
고정비는 또 엄청나게 나간다.
악기만 해도 보통 비싼 게 아니다.
최소 수백만 원이다.
그것이 기본.
업계 수준을 따라가고, 관리까지 한다면.
"저희 병원 직원분들이 좋아해서 저도 자주 먹게 되거든요."
"아……, 간호사분들."
"메뉴 선택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피치 못하게."
"이해해요."
어지간한 직장인 월급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인맥까지 상시 관리해야 한다.
음악 업계의 특성 때문이다.
사회 생활이 인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의 헬프 하나도 말이다.
그조차 못하면 커리어가 끊기는 악순환.
꿀꺽!
취집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좋은 남자를 잡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 최대 시샘거리다.
'의사면 직업도 안정적이고, 돈도 많이 벌겠지?'
서연이 나는커플에 나온 이유.
스펙 트집이라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는 더 간절해졌다.
기대 이상이다.
남자 출연자들 하나하나가 고스펙, 고연봉자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타악!
적당히 비위를 맞춰준다.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해도 괜찮다.
최소 주위 사람들 소개만 받아도.
"친구분들은 다 결혼하셨어요?"
"대부분 아직은 생각이 없죠."
"어, 왜요?"
"저는 사실 자리를 일찍 잡은 편인데 친구들은 아직 레지 과정 밟고 있어 가지고."
강남 사모님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인생 역전의 찬스가 찾아온 것이다.
'아오, 초반에 체면 좀 구기긴 했는데.'
서연과 함께 하고 있는 남자.
치과의인 현준도 노리는 바는 따로 있다.
그는 알아주는 엘리트다.
31살의 나이에 전문의 자격을 따고 개원까지 했다는 건.
"제가 이번 기수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아니에요. 전혀 많지 않아요."
"전문의 자격을 따다 보니까."
업계에서도 극히 드문 일이다.
아버지의 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병원을 물려준 건 물론이고, 군대까지 면제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이른 나이에.
'내가 왜 무시를 당해야 하냐고.'
당연히 화제가 될 줄 알았다.
세상에 이런 금수저와 엄친아가 있구나!
지난 기수의 영웅이 이상이다.
최고의 능력남으로 인기를 독차지한다.
"꿈을 일찍 이루신 거네요."
"네……, 뭐. 다른 출연자분들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데 저만 멈춰버리고 말았네요."
"아니에요. 대단하신 거죠."
이미 보증을 받았다.
결정사에 가면 트리플A를 받는 초특급 우량 신랑감이다.
'그래, 나랑 결혼해서 하고 싶어서 안달 났잖아.'
여성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업가가 멋있어 보이는 건 사업이 잘될 때 뿐이다.
사업이 삐끗하면?
손실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쫄딱 망해서 알거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저는 서연씨가 데이트 신청을 해줬을 때 기뻤어요."
"정말요?"
"제가 예술 쪽에 관심이 많거든요."
병원은 한 번 자리 잡으면 끝이다.
그것을 물려 받기까지 했으니 설명이 필요 없다.
'내가 얼마나 선망 받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자랑하려고 나온 건데.'
자신의 가치.
모를 거라 생각한다면 코웃음이 나온다.
의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병원에서만 해도 간호사들이 아주 호시탐탐 노린다.
어떻게든 썸 하나라도 엮어보려고.
꼴꼴꼴~
넘볼 만한 나무가 아니다.
격이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와인도 진짜 맛있어요!"
"이거 제가 좋아하는 와인인데."
"현준씨 와인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이 말이 나오길 학수고대했다.
집에 둔 와인셀러만 해도 한 방을 가득 채웠다.
'내 컬렉션만 일반인 연봉의 몇 배는 될 걸?'
수백, 수천 병의 와인을 마셔봤다.
지금 레스토랑에서 시킨 와인도 마셔본 것.
『샤또 딸보 2017』
10만 원 대의 레드 와인이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4등급으로 그럭저럭 괜찮다.
"4등급이요?"
"4등급이라고 하면 격이 낮아 보일 수 있는데 프랑스 보르도산 와인 자체가 워낙 고급이라서요."
"그렇구나……."
1등급은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5대 샤또가 그것이다.
자신의 셀러에 수십 병씩이나 잠자고 있다.
그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지만.
꿀꺽!
와인이란 무엇인가?
논하기에는 충분한 한 병이다.
대중들에게도 어필이 됐을 것이다.
'이 정도 가볍게 마시는 사람이거든.'
이상한 놈들이 나와서 계획이 꼬였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깨닫게 된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상위 0.1% 상류층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저 와인 비싼 거 아니에요?>
<저도 와인 잘은 모르지만 샤또 붙은 것들은 대개 비싸더라고요.>
−검색해보니 10만 원 넘음!
−부자라서 소주 안 마시고 와인 마시네 ㄷㄷ
−샤또가 한국의 시처럼 프랑스의 지역 단위라고 들었는데
−사또밥도 비쌈?
제작진이 의도했던 그림이기도 하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네모의꿈」
1일 전。
#나는커플#현준#서연
현준이 말 없는 범생이 타입인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말 존나 많네……
「정복자」
1일 전。
#나는커플#현준
의사가 확실히 엄청 버는구나
나는 점심도 만 원 넘으면 고민하는데
10만 원짜리 술을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것 보고 현타 옴
「완숙이」
1일 전。
#나는커플#현준#재수#밥맛
손님 입 냄새 맡는 게 직업이라 와인 냄새 맡는 것도 잘하나 보네 ㅋ
.
.
.
그 말이 좋은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반발 심리가 생기게 된다.
부자.
대중 매체에서 악인으로 그려지는 건 시청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결과다.
'역시 쉽게 되지는 않네.'
드라마라면 연출이 가능하다.
그냥 심플하게 주인공이 매우 잘생기면 먹힌다.
적어도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리얼리티 예능인 나는커플은.
"그냥 평범한 데이트를 하는 게 나았을까?"
"그게 그렇지도 않습니다."
"?"
컨트롤하는 것이 여간 쉽지 않다.
PD인 임성현은 약간의 후회를 곱씹고 있었지만.
타악!
다음 커플.
찬욱과 혜림을 보면서 달라지게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급이란.
'오……, 이건.'
우러러보게 함에 있다.
동경이란 감정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게 만든다.
연출이 아닌 몸에 밴 행동거지.
들고 있는 와인이 싸구려일지언정.
<마리아주가 정확히 어떤 거에요?>
<치킨에 맥주가 어울리는 것처럼 와인도 와인마다 어울리는 것들이 다르다고 하거든요.>
−검색해보니 2만 원 짜리임
−와인 잘 알면 저런 것도 가능함?
−진짜 맛있게 먹네
−마리아주 아시는구나! 혹시 모르시는 분들에 위해 설명해드리자면 음식과 와인의 상호작용으로 진·짜·겁·나·맛·있·습·니·다
느껴지는 기품은 진짜다.
그의 행동과 선택을 장난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김연수」
1일 전。
#나는커플#찬욱#혜림
혜림이 반응이 찐텐이던데
마리아주 하면 진짜로 맛있어짐?
「개복치」
1일 전。
#나는커플#현준#찬욱
현준이는 걍 졸부 느낌인데
찬욱이는 진짜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 같네 ㄷㄷ
「복이모」
1일 전。
#나는커플#찬욱
표현 되게 닭살 돋으면서도 로맨틱하다
마리아주를 이루어줄 한 명의 여성을 찾고 있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오히려 몰입하게 된다.
동경하는 세계에 다가가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단순한 느낌만이 아니었다.
찬욱이 어떠한 사람인지 와 닿게 만드는 한 장면이.
<오성전자 사장님이랑 전화하고 싶으면 전화할 수 있는 거에요?>
<보통은……, 안되겠죠.>
<우리 소속사 사장님도 내 전화 안 받는데!>
−자기 전화 안 받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다
−인맥도 쩌나 보네 ㄷㄷ
−혜림이 찐으로 반한 느낌
폭발적인 반응을 낳고 있다.
순간 시청률이 기존 고점을 넘으며 스태프들까지 놀라게 만든다.
"특히 여초에서 난리 났습니다."
"그렇겠지."
"이거 후폭풍이 잔잔할 수가 없겠는데요?"
방송사의 조작이 아니냐?
그런 이야기까지 나올 만큼 역대급의 화제가 조성된다.
'조작은 무슨!'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임성현은 진심으로 감탄을 내뱉는다.
자신의 눈이 맞았다.
진짜배기.
그의 분량을 늘린 것은 최고의 판단이었다.
* * *
공중파 예능.
그 영향력은 일개 유튜브나 커뮤니티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여기가 나는커플 나온 곳 맞지?"
"방송이랑 똑같은데……."
그것을 알고 있다.
방송에 나오는 음식점은 십중팔구가 PPL이다.
일반인들도 이제는 안다.
옛날처럼 화제가 되어 방문하진 않지만.
"여기 얼마 전에 방송 촬영 있었던 거 맞죠?"
"나는커플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한 곳만큼은 유독 예외가 되고 있다.
스테이크 하우스에 사람이 붐빈다.
손님들이 원하는 바는 하나.
음식점측은 그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한다.
꼴꼴꼴~
방송에서 나온 메뉴를 판다.
1년 365일 서비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이게 마리아주야?"
"와 진짜 더 맛있어진 거 같은데."
"사진 찍어! 사진 찍어!"
"대박이다. 와인 하나로 맛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단 한 가지의 변화만으로 충분하다.
찬욱이 갔다 온 레스토랑이 성지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