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24화 (424/450)

EP.424

신데렐라

나는커플.

고스펙자가 나오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어서가 아니다.

'나도 저 정도는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거지.'

지들만의 연애라면?

차라리 눈에 확 들어오는 외모 특집이 훨씬 낫다.

눈이 호강한다.

보는 맛이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고스펙자를 찾는 건.

"와……, 여기 분위기 좋네요."

"스태프 분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나 봐요."

그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 꿈을 꾼다면.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날지 꿈을 꾸거든.'

딱히 속물이라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상승혼'이 가능하다.

상위 신분인 사람과 결혼한다.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

『○○ 스테이크 하우스』

그것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

제작진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꿈을 파는 방송이니까.'

고급스러운 분위기 연출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격이다.

한 끼에 수십만을 호가한다.

코스 요리라는 복잡한 것이 나온다.

"그릴에 구운 쉬림프와 각종 치즈를 곁들인 신선한 샐러드입니다. 베이커리와 곁들이면 더욱 좋습니다."

차후에는 오마카세가 유행을 탄다.

현재는 스테이크 하우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것.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웨이터의 콩글리쉬에 숨이 턱턱 막힌다.

"와 맛있겠다……."

"필요하면 부를게요."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별 거 아니다.

새우 구이와 치즈 샐러드+빵을 최대한 어렵게 표현했을 뿐이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레스토랑은 그런 감이 있다.

외국 것이라고 특별히 고급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인식.

그에 부응하기 위해 일부러 혀를 굴리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데서 식사 많이 해보셨어요?"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역시 그러시구나……."

인스타 감성 물씬 나기도 한다.

평소에는 안 먹으면서 사진 속에서만 야단이다.

'이래서 서민들은.'

식사를 보여주기 위해 먹는 이상한 습관을 가졌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딸그락!

어색한 움직임.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친구랑 먹는 것이면 몰라도.

"혹시 저 먹는 거 어색하진 않죠?"

"밥 먹는데 어색하고 말고가 어딨어요."

"그러면 다행인데……."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상류층의 남성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그냥 대충 처먹으면 될 것이지.'

예의에 어긋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내 젓가락 끝은 4센티 이상 젖었지만, 노보다 씨는 1센티밖에 젖어있질 않다!!」− 맛의 달인 中

대충 매체에서 선입견을 심어준다.

그 나라의 식사 예절을 지켜야 한다.

한식에서는 안 지키면서 양식에서만 야단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꿀꺽!

그러한 꿈을 파는 것이 방송의 취지.

PD가 원하는 바를 모르지 않다.

"곁들여 나오는 와인을 같이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에요."

"오! 이거 샴페인이죠?"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취한다.

여성 시청자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잔술로 파는 거면……, 역시나 스푸만테네.'

그렇다고 너무 비싸서는 안된다.

한국 정서상 사치는 용납되지 않는다.

디너 기준 1인분에 20만 원 초반대.

와인도 그럭저럭인 것일 수밖에 없다.

"찬욱씨와 하는 식사라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에이, 너무 빈말로 하시네."

"정말인데."

감동도 그에 비례한 수준이다.

가격이 저렴하니 만족도도 저렴한 게 당연하다.

'하다 못해 프로세코 정도만 돼도 블랙타이거 새우의 살맛에 죽진 않을 텐데.'

샴페인과 비슷한 스파클링 와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싼 것을 쓰고 있다.

도저히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다.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니언 스프 나왔습니다. 뜨거울 때 드십시오."

그 차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을 뿐이다.

'대물에 박혀봐야 자지 맛을 깨닫는 것처럼.'

서양식 식사.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황홀함을 느껴보는 것 이상이 없다.

타악!

다소 열악한 조건이긴 하다.

그것이 최고의 식사를 즐기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시음부터 할게요."

"시음을……, 도와드릴까요?"

"화이트로 전부 내와 주세요."

소믈리에가 또 아무 생각 없이 와인을 따라주려 한다.

만 원대 화이트 와인을 대충.

'저가 소비뇽 블랑은 너무 무난해.'

산뜻한 미네랄리티를 느끼긴 좋다.

차라리 첫 접시와 페어링을 하면 나았을 것이다.

음식과의 조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이.

꿀꺽!

시음이다.

마음에 안 드는 소믈리에를 대신해 손님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을 최대한 찬 온도로 칠링해주세요."

"어……, 그럼 음용 온도에서 벗어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기본적으로 있는 불문율이다.

답답하니 직접 뛴다.

'내가 니보다 100배는 더 많이 마셔봤어.'

귀찮은 일이다.

유난스럽다고 생각될 수 있다.

차이가 나면 뭐 얼마나 난다고.

꼴꼴꼴~

굳이 시음까지 해가며 골라낸다.

그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을 때.

"어머!"

"입맛에 맞으세요?"

"엄청 꿀꺽! 맛있어요."

얼마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음식과 와인의 페어링은.

'셰프만큼이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거든.'

와인 좀 골라주는 게 뭐가 힘드냐?

소믈리에라는 직업까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물우물!

진득한 양파 스프 위에 치즈와 바게트가 올려져 있다.

그 자체로도 풍성한 맛이다.

하지만 조화롭지 못하다.

칠레의 뜨거운 태양빛을 온몸으로 맞고 자란 이 샤르도네라면.

"와인이랑 먹으니까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빈말이 아니네요."

"아, 네……. 정말로."

열대 과일의 풍미.

과실에 집중된 캐릭터가 느끼할 수 있었던 양파 스프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퍼즐처럼 딱 들어맞지.'

저가 와인들은 밸런스가 좋지 못하다.

반대로 밸런스가 좋으면 체급이 후달린다.

소믈리에가 추천한 것은 후자다.

단독으로 마시면 무난하게 괜찮을 것이다.

"아까보다 비싼 와인이라 그렇겠죠?"

"아마 가격은 비슷할 거에요."

"그래요? 훨씬 맛있던데."

전자는 단독으로 마시면 맛이 없다.

시고, 쨍하고 무엇보다 알코올이 너무 튄다.

차갑게 식혀서 뜨거운 양파 스프와 먹는다.

그것이 이 와인의 적절한 음용법이다.

타악!

메인디쉬가 나온다.

포터하우스 스테이크에 아스파라거스와 매쉬포테이토가 올라간 전통의 조합이다.

"이번에는 이걸로 부탁드릴게요."

"말씀하신 걸로 서빙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드 와인도 선택한다.

숙성된 소고기에 지지 않는 자기 주장을 가진 녀석으로 말이다.

꿀꺽!

입에 머금자 강한 바디감이 느껴진다.

씁쓸하리 만큼 진한 오크의 타닌감은.

"마시기가 꽤 힘드네요. 떫고……."

"스테이크와 함께 먹으면 달라질 거에요."

"어?"

쓰고 떫다.

오크를 훌륭하게 사용하지 못한 밸런스가 무너진 레드 와인이다.

하지만 음식과 함께 먹자 달라진다.

소고기의 맛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와인이 맛있어졌어요."

"착각이 아니에요."

"그렇죠?!"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라는 것은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니니까요."

+가 아닌 ×의 효과.

마리아주라는 녀석이다.

음식과 와인이 서로를 드높이다.

'그걸 위해 소믈리에가 있는 건데.'

다소 귀찮은 과정이 추가됐다.

그렇기에 더 괜찮은 그림이 나온다.

목적했던 것을 이루기에 충분할.

마리아주가 무엇인지 와 닿을 것이다.

"마리아주……, 들어는 봤는데."

"어떤 음식도, 어떤 와인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도."

"!!"

그 안에 담긴 의미 또한 말이다.

송혜림씨의 표정이 순간 변한다.

짧다면 짧은 시간.

낯빛에 어렸던 탐욕은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재밌어.'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딱히 눈썰미가 좋은 게 아니다.

애시당초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저도 사실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찾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어떤……, 걸요?"

"저와 마리아주를 이루어줄 수 있는 한 명의 여성을요."

신데렐라.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하는 건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여성들이라고 모르진 않다.

그 말도 안되는 상황에 개연성을 만들어줄.

'유리구두가 필요한 거지.'

가죽구두든 뭐든 마찬가지다.

대충 감성적으로 납득만 가면 된다.

그에 부합할 만한 메세지일 것이다.

최소한 착각 정도는 만들 수 있다.

꿀꺽!

술은 그 효과를 증폭시킨다.

벌써 세 잔이나 되는 와인을 비웠다.

"잘 마시네요."

"제가 사실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시진 않는데."

"엄청 잘 드시던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눈빛도 점점 노골적으로 변한다.

심보가 아주 정직하게 읽혀서.

'이번 생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데.'

연애 프로그램이라 다행이다.

나 자신에게 브레이크를 걸 수 있으니까.

"일 때문에……"

"일이요?"

"업무 특성상 컨디션을 유지해야 돼서 원래는 과음을 안 하거든요."

목적은 명확하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토독, 톡!

송혜림씨의 명함.

사업부를 보니 낯이 익다.

마침 핸드폰을 두들겨 보니.

'아 연락처 받아 놨네.'

키타야 전기의 JDM 건 이후로 알고 지내는 분이다.

다이렉트로 연락을 때린다.

"아, 사장님. 접니다. 네, 네 다름이 아니라……."

"?"

"비서분 잠깐 빌렸는데 내일 술 마시고 늦게 출근해도 이해 좀 해주세요."

"지금 저희 사장님한테 전화 건 거에요?!"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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