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420화 (420/450)

EP.420

능력자 배틀물

자신의 지위.

늘여놓고, 자랑하는 것은 여성들이 원하는 게 아니다.

"매출 500억이면."

"그 정도 기업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코스닥 개잡주 정도 되는군요."

"……네?"

낮춰줘야 한다.

끌어내려야 한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다고.

'착각을 해야 연애 대상으로 보일 거 아니야.'

때문에 밉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현실을 자각시키는 타입의 출연자는.

"개잡주……."

"주식 용어 같은데."

"500억 회사면 개잡준가?"

여성 출연진도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터지는 키득거리는 소리에서 알 수 있다.

신이수씨의 얼굴이 뻘개진다.

역린이라도 건드린 듯 진지하게 화를 낸다.

"개잡주……, 라고요. 제 회사가?"

"실례했습니다."

"아니, 말이 좀 심하신 거 같은데."

"제가 주식을 하다 보니 그쪽 단어가 몸에 익어서 실수를 했네요."

그것이 맞다.

화가 날 만하다.

하지만 사회 생활이라는 게.

'화를 내는 쪽이 지게 돼있어.'

이런 자리는 특히 말이다.

화를 내는 쪽을 바보로 만드는 처세술이 필요하다.

스태프와 출연진의 만류.

애시당초 말싸움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유야무야 넘어간다.

이윽고 나의 차례가 온다.

방금의 상황을 발판으로 삼을.

"94년생 25살입니다. 일종의 프리랜서로 사업도 몇 곳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소개만으로 이목이 쏠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5살이면 엄청 젊으신데……, 사업을 하고 계세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일단 나이.

여자 출연자 중에도 94년생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게 아니고.'

군대를 다녀온다.

서른이 넘었으면 모를까.

20대의 2년은 체감적으로도 엄청나다.

"하시는 사업이 어떻게 되세요?"

"요식업이랑 부동산 임대업인데 메인은 아닙니다."

대답은 딱히 구체적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애매하게 하는 편이.

'잘 먹히거든.'

미팅에서도 쓰이는 기본적인 수법이다.

신비주의는 여성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물론 양날의 검.

시크한 게 아니라 무심한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저기……."

방금 전 사고에 연류된 입장이다.

500억 매출의 CEO와 실랑이를 한 것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관심을 끌지.'

대체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할까?

무슨 일을 하길래 저렇게 간이 클까?

주식.

난감하기 그지없는 화제다.

일반인들이 멀리하는 그것이 먼저 꺼내진다.

"주식에 조예가 깊으신 거 같은데 하시는 일과 연관이 있나요?"

"개인 투자하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요?"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코로나 이전인 현재는 특히 더 그러했다.

'그 이전에.'

여성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탈락일 수도 있지만.

"아!"

""?""

"혹시 TV 나오신 적 있으세요?"

"TV?"

"어디 방송하시는 분인가?"

액수에 따라서는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어느 분야든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그것을 눈치챈 한 사람.

자신을 프리랜서 바이올리니스트라 소개한 여성이었다.

"가끔씩 자문이 들어왔을 때 출연을 하기도 합니다."

"자문이요?"

"주가 관련해서 불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주식판.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인지도는 별개의 문제다.

연예인 이름, 기업인 이름은 알아도.

'한국 3대 증권사 회장 이름 물으면 모르잖아.'

애초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돈 많고, 돈 많이 버는 건 아는데 나랑 관계가 없어.

주식판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초대형 사건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에게는 안 알려진다.

"불매운동 한창일 때 봤던 것 같은데."

"그때 코스피가 많이 폭락해 가지고 투자자분들이 불안에 떠셨거든요."

""오~!""

빌드업을 한 보람이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투자자라는 사실도 말이다.

이는 다 대 다 미팅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이성이 6명씩이나 되는데.'

한 명, 한 명 기억할 수가 없다.

주식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논리다.

"그러고 보니 기억나."

"주식 전문가라던 사람이다!"

"한국대 식품 오너라고도 들었는데……."

급등주.

주가가 갑자기 몇십%씩 치솟는 이유는 그 회사에 호재가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켓몬빵 같은 거지.'

본래의 가치보다 높게 평가 받는다.

나라면 2배를 주고도 사먹겠다.

3배, 4배, 5배……, 10배씩도 마구 뛴다.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그러면 주식으로 돈도 많이 버셨겠네요?"

"예, 어느 정도는."

"사업도 하고 계시고."

"사업은 제가 관리하진 않고, 경영을 맡으신 분들이 따로 계십니다."

""아~!""

모두가 다 원하니까.

여성 출연진 전부 나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진다.

'그렇게 주가가 오르게 되면.'

모든 것이 호재로 해석되는 현상이 생긴다.

뭔가 고급져 보인다.

나의 직업, 인성 등이 보정 받는다.

마치 시비라고 생각되었던 실랑이도.

"그렇게 주식을 업으로 삼다 보니 직업병 같은 게 있어서요.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 네……."

"소형주라고도 하는데 개잡주라는 말이 뭔가 입에 감긴달까."

""하하하!""

해프닝이 돼버린다.

미묘하게 남아있던 어색했던 기류가 바람에 훌훌 날려져 버린다.

'꼬리를 내렸으니까.'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이름이 가진 무게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다이렉트로 말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어떤 배우자가 이상형이세요?"

스펙.

중요한 부분이다.

안 따지는 사람은 없다.

애시당초 프로그램의 특성이다.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포도가 돼버리면 관심을 가질 이유 자체가 사라지잖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이유와 희망이 필요하다.

그것이 설사 망상에 불과해도 말이다.

「나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재벌 2세(병신)

한국의 재벌 2세를 마조히스트화시킨 클리셰가 괜히 탄생한 게 아니다.

먹히니까.

"처음에 제가 프리랜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제 직업을 숨기려던 의도는 아닙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니까.

입으로는 남자에게 의존하는 거 싫다, Girls can do anything! 하면서도.

'정작 인기 있는 여성향 창작물들은 완전 의존적인데.'

히로인(?)들이 다 해준다.

시녀, 아니 시남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개인 투자도, 사업도 제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과정이요……?"

"저는 한국도 미국, 유럽, 일본처럼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1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세상에는 딸기 케이크 위의 딸기만 집어먹고 싶은 사람도 있어.'

대다수의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따로 있다.

남성의 능력에 기대서 살고 싶다.

대놓고 말하기가 싫다.

연인이 됐을 때 주도권을 상대에게 내줘야만 할 것 같다.

"험난할 수밖에 없는 길이지만……, 저와 같은 길을 걸으실 수 있는 분과 이어지면 좋겠다고 제 개인적으로는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언가 했다면?

마음의 빚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대충 군대 기다려줬다 이런 거.'

납득할 수 있는 전개가 된다.

실제 여성향 창작물에서 자주 나오는 흐름이다.

자잘한 설정 오류.

등장인물들의 의아한 판단.

감성적으로 가능하다고 우긴다.

짝! 짝! 짝!

안 먹힐 수가 없다.

일부 작품에서 나오는 특이 취향이면 모를까.

'인기작들의 성공 클리셰잖아.'

빅데이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진실된 속마음은 없다.

여성 출연진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남자들도 분위기 때문에라도 친다.

"에……, 저는 88년생 31살이고요. 서울 강남에서 살고 있고……, 근처에서 병원을 개원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다음 출연자.

심적 부담을 느낀 채 자기소개에 임할 수밖에 없다.

자신감이 사라지니 매력도 사라진다.

사실은 엄청난 능력자인데.

'31살에 전문의면.'

하이패스로 뚫은 엘리트다.

강남에서 개원까지 했다면 금수저.

모르긴 몰라도 의사 가문일 것이다.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병원이에요?"

"치과를 하고 있습니다."

"네……."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문제.

여성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차례가 좋지 않았다.

만약 다른 기수였다면 에이스를 먹고도 남았겠지만.

'그게 비교라는 거거든.'

첫인상의 임팩트를 확고히 새겨준다.

* * *

나는커플 8기.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손익좌 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저깄누?

−누군데 ㅅㅂ 같이 좀 웃자

−스펙 화려하다고 호들갑 떨 만했네

−500억 CEO 묻힘

−손익좌 재산 1000억도 넘을 걸?

−존나 부자인가

−손익좌 아시는구나! 혹시 모르시는 분들에 위해 설명해드리자면 슈퍼개미로 진·짜·겁·나·부·자입·니·다

실시간 반응이 뜨거울 만하다.

채팅창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얼굴이 나왔을 때부터 말이다.

긴가 민가 하던 약간의 소음을.

<주식에 조예가 깊으신 거 같은데 하시는 일과 연관이 있나요?>

<개인 투자하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요?>

−백수시고

−ㅂㅅㅅㄱ

−전문 투자자시고

−킹수시고를 안 받아줘? 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송의 과정에서 깔끔하게 잠재운다.

평소와는 달리 아주 진중한 태도.

진정성 있는 전달력.

기존 팬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만하다.

단숨에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고소한체다치즈님께서 1,000원 후원!

손익좌 평소에도 저렇게 스윗하나요?

"쟤 누구?"

−질투각?

−진짜 모른다는 표정인데

−방송 나온다고 점잔 떠는 거봐

−(위잉~ 위잉~)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소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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